- 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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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밤, 딸기농장에서 잼을 만들 딸기를 잔뜩 사온 엄마는 당장 딸기를 끓이기 시작했다. 이내 곧 달달한 딸기의 향이 집안 가득해졌다. 시간이 늦어질 것 같으니 내일 하는 것이 어떠하겠느냐고 말했지만 당장 딸기가 많이 물러질 것이라고 판단한 엄마는 돌아온 그 자리 그 길로 딸기잼 만들기에 착수했다. 시판에 비해 당도가 많이 떨어지고 점도도 떨어지지만 그다지 단 것을 좋아하지 않는 엄마가 매우 선호하는 정도이고, 점도가 떨어지기에 잼을 바르는 것이 수월하기도 하다. 요리하는 거 벌로 좋아하지도 않고 음식하며 손도 크지 않은 엄마가 오빠네, 인천 이모네, 내 친구, 앞집, 뒷집 등을 세어가며 제법 많은 양의 딸기잼을 만든다.
엄마는 살림에 별다른 취미가 없는 사람이다. 요리하는 것에도 별다른 취미가 없다. 지저분하지 않은 정도, 그리고 굶지 않을 정도의 살림을 한다. 반찬은 집에서 만들기도 하지만 요리는 사먹는 것이 좋다는 것이 엄마의 지론이다. 이쪽저쪽에서 김치를 사먹기에 우리 집 김치의 맛은 항상 가변적이다. 냉장고에서 야채가 썩어 나가는 적도 있고, 무언가를 사 놓고 모르는 적도 많이 있다. 때로는 김치 3종 세트만으로 식사를 구성해주시는 날도 있다. 그래도 경력으로 치자면 30년이 넘었고, 다른 일 하지 않고 항상 전업주부의 길을 걸으셨다.
연구원을 시작하면서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분명 살림에는 취미가 없었다. 최대한 간단한 음식을 만들어서 간단하게 끝내는 것이 좋다는 것이 엄마의 방식이다. 요리를 하면서 들뜨는 경우는 없다. 누군가 손님이 생기면 식사로 고민을 하는 것이 엄마다. 그래서 오빠는 취직을 하고는 명절에도 엄마를 위해 밥을 사주곤 했다. 엄마는 무언가 다른 것을 배우실 때 더 빛이 나고 즐거워 하셨다. 방송통신대학교에서 교육학을 전공할 때 엄마는 즐거워 했다. 한국무용도 배우러 다녔고, 음악치료도 배우러 다니셨다. 평생교육지도자 자격증도 가지고 계시고, 지금은 수묵화와 유화를 배우러 다니신다. 그래도 삼십년이 넘게 이 길을 걸어오셨다. 지금도 아침마다 나와 아이의 밥을 챙겨주시고 매일 돼지우리 같다는 내 방을 청소해 주시기도 한다. 죽어도 싫은 일은 하지 않겠다는 막무가내 딸의 뒷바라지를 묵묵히 해주시고 계시는 엄마다. 몸이 아파 칭얼대는 손녀를 딸을 대신해서 안고 어르고 달래며 재우시고 아이가 침대에서 떨어져 울어도 모르고 자는 딸 덕분에 자가다 뛰어와서 아이를 안아올리기도 하신다. 천 기저귀를 쓰겠다며 선언한 딸을 대신해서 아기의 기저귀를 빨아 주었던 것도 엄마고, 매일 방안에서 무언가를 찾아다니는 나에게 어디어디에 있는 듯 하더라는 말씀을 던지기도 하신다. 연구원 한답시고 컴퓨터 앞에 있는 딸 때문에 어린 손녀를 데리고 나가서 놀아주기도 하시고, 밤마다 책읽을 시간을 마련해 주시려고 손녀를 재워주기도 한다. 자신이 즐거워 하는 일을 부업으로 다른 이들을 챙기는 것을 본업으로 그렇게 보낸 30년은 아직 끝이나지 않았다.
그 어느 누구의 부모인들 이런 점이 없겠는가. 어떤 이라도 제 부모에 대한 애틋한 감정이드는 것은 어쩔 수 없으리라. 그 변치 않는 마음에 그 끝이 없는 사랑에. 그래서 뻔한 내용이라 할지라도 부모에 대한 영화, 연극, 책들은 여전히 우리를 울린다. 가슴 뭉클한 사랑을 느끼고 다짐하면서도 여전히 부모 앞에서 투정을 부리는 것이 또 우리다.
저녁때부터 시작된 딸기잼 만들기는 한밤이 되어서도 끝이 나지 않았다. 정해놓은 분량의 책을 다 읽고 덮자 엄마는 자라고 말한다. 아마 그 후에 엄마는 끊임없이 잼을 젓고 병을 소독하고 잼을 담을 테다. 엄마를 대신해서 잼을 저으며 시덥잖은 농담을 던진다. 깔대기가 없음을 이제야 깨닫는 엄마와 함께 맥주 피쳐병과 올리고당 병에 뜨거운 물을 가득 담아 본다. 같은 방향으로 휘어지는 병을 보고 피사의 사탑이라며 둘이 소리죽여 깔깔거린다. 결국은 제각각 국자를 하나씩 들고 하나하나 병에 담기 시작한다. 아까우니까 흘리지 마라는 잔소리를 가득 들으며 별일 아닌 것에 킥킥대가며 모든 병에 잼을 가득 담은 것이 끝나는 시간은 새벽 1시가 되어 있었다. 책읽고 글 쓸 사람을 이때까지 부려먹어서 어떻게 하냐는 걱정을 들어가며 잠자리에 눕는다. 아마 내일 단군기상시간은 못 맞출 테다. 오늘 읽은 책의 리뷰를 다 작성하지도 못하겠지. 그래도 알 수 없는 만족감이 느껴진다.
일연은 그가 지은 <삼국유사>에도 효편이라는 장을 따로이 마련해서 적고 있다. 79세의 나이에 국사의 자리를 거절하고 고향으로 내려와 96세의 노모를 모셨다. 자신 하나만을 바라보고 혼자서 오랜 세월을 사신 노모에 대한 효심이었으리라. 불교에 귀의해 승려의 신분으로 세상을 살면서 많은 업적을 남긴 일연이고 그로 인해 국사의 자리에 오른 그이지만 마음 한 구석에 부모에 대한 애틋함이 남아 있는 것은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영광된 국사의 자리를 버리고 내려와 노모를 봉양했을 것이다. 그저 매일 노모에게 자신을 보여드리고 맛난 것을 함께 나누어 먹는 것이 일연이 생각했던 효의 모습은 아니었는지 생각해 본다. 국사라는 거창한 자리가 아니라 그저 얼굴을 마주 하고 웃음을 함께 하는 것이 그가 종래에 택한 효는 아니었는지 생각해 본다. 효란 이렇듯 간단한 것 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나의 마음을 편하게 한다.
아마 엄마는 내일 아침까지도 내 과제에 대해서 걱정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침을 먹으면서 나 좀 잘하고 있다고 잘난 척을 해봐야 겠다. 지지 않은 입담으로 나의 잘난 척을 여지없이 깨뜨리겠지만 아직 그런 말을 할 기운이 남아 있음을 알고 안도도 하실게다.
효(孝) 하면 떠오르는 일화가 생각난다.
동네에 소문난 효자가 있어
어떤 사람인가 보려고 마을 원님이 찾아갔데.
원님은 깜짝 놀랬지.
효자라고 한 청년은 마루에 걸터 앉아 있고
어머니가 그 아래에서 아들의 발을 닦아 주고 있었지.
그 모습을 본 원님은 청년을 혼냈다네.
어찌 효자라고 하는 사람이 노모에게 발을 닦게 하느냐고.
그러자 효자 아들 曰
"제 발을 닦아 주는 것을 어머니께서 세상에 더 없는 즐거움으로 여기십니다.
어머니께 더 없는 즐거움을 드리는 것이 진짜 효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내 멋대로 각색을 해서 볼품없어져 버렸네~ㅋㅋ
진짜 효는 부모님께 대단한 뭔가를 해 드리는 게 아니라
당신들의 마음 깊은 곳을 헤아려 그분들께서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드리는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딸기쨈 맛있겠다..^^

지금, 여기에서 아는 만큼만 쓰면 '보여주는' 글이 된다는 것을 스스로 깨우친듯.
어머니께서 살림에 임하는 자세가 저와 너무 비슷해서 급 땡기네요.
어머니께,
쉰에 글쓰기 시작해서 3년 만에 첫 책 내고 글쓰기 강좌하는 선배 있다고 소개 좀 해 줄래요?
-- 대놓고 홍보중 ^^
우선 내 블로그 http://mitan.tistory.com/와 여기 링크된 글쓰기 카페를 둘러 보시고 코드가 맞으면...
위에 소개된 어머니의 학습열을 하나로 꿸 수 있는 도구가 글쓰기라는 것은 루미씨가 잘 알 꺼구요.
이거 어머니께 직관적으로 느낀 동지애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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