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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5월 26일 07시 08분 등록

황새여울 된꼬까리 무사히 지나셨나

물안개가 피어 오른 것인지 산등성이를 타고 내려온 구름인지를 구분하기 힘든 아침이었다. 날이 환해오는 것이 분명 해가 뜬 것 같은데, 조그만 마을을 끼고 앉은 산들이 아직 하루를 내어놓지 않고 있었다. 지난 밤 내내 가까이 흐르던 물소리가 한 걸음 물러섰는지 잘 들리지 않았다. 어깨도 다리마디도 뻐근했다. 무겁게 처진 버드나무 가지 아래 묶인 뗏목이 눈에 들어 왔다. 이렇게 물이 불면 골지천을 따라 굵은 소나무들이 떠내려 왔다고 했다. 임계에서 산판한 소나무들이 비를 기다렸다 강물을 타고 오는 것이었다. 누구는 떼를 타면 떼돈을 번다고들 했다. 소문은 멀리 삼척이나 묵호까지 퍼져 백복령을 넘어 이곳으로 흘러드는 발걸음들이 알고 늘었다. 붙여 먹을 땅도 가진 것 없고, 밑천도 없는 삶들이 딸린 목숨들을 먹여 살리러 강가로 모여들었다. 한 밑천 챙길 수 있다던 떼꾼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떼는 사람을 기다리지 않았다. 뗏길은 이곳에서부터 천리 물길을 따라 마포나루까지 이어졌다. 임금이 궁궐을 짓고, 대원군이 경복궁을 복원하던 시절은 꽃같은 호시절이었다. 60년대 중반 팔당댐이 착공되면서, 물길이 끊겼다. 대신 기차가 다니기 시작하면서 서울로 가던 뗏목은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뗏꾼들도 흩어지고, 들병장수 전산옥도 황새여울 된꼬까리의 전설도 흘러간 옛날 이야기가 되었다. 아우라지에서 동강으로 이어지던 동강 아라리 대신 이제는 래프트들의 고함소리만 가득하다.

2011-05-26 06;54;51.jpg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정선의 아리랑은 꺾이고, 휘감아 도는 동강을 닮았다. 얼핏 푸념 같기도 하고, 체념 같기도 한 구슬픈 자락이 영락없는 태백준령들이다. 계곡을 따라 강물이 울고, 산자락을 끼고 떼꾼들의 아라리가 서럽다. 여울목에서 빠르고, 소에서 느려졌다, 늘어진 뗏목처럼 이어지는 곡조에 목숨을 띄워 싣고서... 물길은 오르락 내리락 어라연 계곡 황새여울 된꼬까리를 지난다.

우리 서방님은 떼를 타고 가셨는데
황새여울 된꼬까리 무사히 지나 가셨나
황새여울 된꼬까리 다 지났으니
만지산 전산옥이야 술상 차려 놓게

된꼬까리에 묻힌 이름들.. 성난 강물이 삼킨 목숨들.. 아리랑 고개는 어디고.. 문경세제는 또 어디메쯤인가... 한치 뒷산 곤드레 딱주가 님의 맛만이야 하라먄... 들병장수 전산옥이 들려주던 아라리 소리에 술과 웃음이 곤드레.. 또 만드레... 목숨 값으로 주고 산 하루저녁 치마폭에서 붉어진 눈물이 떨군다. 이 눔의 질긴 목숨.. 이 눔의 썩어 문드러질 떼꾼 팔자.. 그렇게 동강이 소리없이 흐느끼고, 만지나루의 짧은 밤이 지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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