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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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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5월 26일 07시 16분 등록

그렇게 하늘과 구름과 산들을 담고

좋은 반찬도 한두 끼라는 말이 맞나보다. 강이 지루해질 즈음 발이 꾀를 내기 시작했다. 용이 울었나? 새로 난 큰 다리가 있는 삼거리 마을은 용탄리였다. 이따금 지나는 하이킹 자전거가 부러웠다. 혹 여기 앉아서 다리 아프다고 울고 있으면, 용이 나타나 태워줄까? 지나가는 차를 세워볼까? 태워줄까? 얼마 전 읽었던 남도기행문을 더듬어 보았다. 승용차는 아니야.. 특히 선텐이 짙은 승용차는 백중백발 헛탕이라고 했다. 그래.. 트럭을 잡으라고 했다. 특히 남자 혼자 운전하고 가는 트럭은 확률이 높다던 말이 떠올랐다. 궁하면 다 방도가 생긴다던데.. 한 번 해볼까.. 진짜로 책속의 그 인상 좋게 생긴 사내처럼 될까 싶었다. 다리를 건너자 오른편에 자작나무가 심겨진 오르막길이었다. 힐끗 힐끗 뒤를 돌아보았지만, 다가오는 차들이 없고, 반대편으로 내려가는 차들 뿐이었다. 한 번 꾀를 부린 다리가 계속 칭얼거렸다. 용기를 낸다기보다는 염치가 없어야겠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다행이었다. 고개 정상 즈음에서 뒤에 오던 트럭이 자꾸 힐긋거리는 모습이 안쓰러웠나 보다. 몇 발짝 앞에서 차가 섰다. 냉큼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며 올라탔다. 아직 젊어 보이는 부부는 자리를 좁혀 앉으며, 어디까지 가는지를 물었다. 동강 가는 길 입구, 광하 안내소까지는 겨우 인사 몇 마디도 못할 정도 짧은 걸음이었다.

화장실도 좀 보고, 새로 물도 채울 요령으로 꾸벅 인사를 하고 안내소에 들었다. 풀을 매던 아주머니 한 분이 따라 들어오며 커피까지 한 잔 내어주었다. 친절하기 보다는 심심했던 모양이었다. 동강 길을 물었더니 잘 몰랐다. 대신 동강길 안내가 실린 리플렛을 건냈다. 종이컵에 담긴 커피를 두어 모금 마셨을 때, 유리창 밖 길에 승용차가 한 대 멈춰 섰다. 머리가 약간 벗겨진 50대 중반의 사내가 내리더니, 문을 열고 길을 물었다. 가수리 느티나무와 하늘벽 유리다리를 궁금해라 했다. 아주머니가 나를 쳐다보았다. 커피 값을 한다 생각하고, 열심히 설명을 했더니 사내는 네비게이션을 찍어도 자꾸 다른 곳을 가르쳐 주더라며 불평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고집은 또 얼마나 세던가. 한번쯤 당해본 사람만이 알 일이다. 중년 사내가 문을 나서는 뒷모습을 본 순간, 갑자기 마음이 급해졌다. 혹시?

“저기요... 죄송한데요.. 혹시 가시는 데 까지 만이라도...”

한 번 쓴맛을 본 염치는 온데 간 데 없었다. 차에 타려던 사내가 말이 끝나기도 전에 씨익 웃으며, 타라는 손짓을 했다.

가수리 느티나무에서 잠시 눈도장을 찍었다. 비개인 오월 하늘.. 언제 그랬냐는 듯이 구름한조각없이 시치미를 뗀다. 깨물고 싶도록 예쁘다. 둘러싸인 산들의 연두빛을 씻어 내린 듯 동강은 초록빛이었다. 아니다. 여울목을 지날 때마다 새하얀 구름 빛을 닮았다가 다시 멀어질 때는 적당히 파란색이었다. 다시 굽이도는 소에서는 어김없이 진초록이 되었다. 오월의 동강은 그렇게 하늘과 구름과 산들을 담고 흘렀다. 운전을 하던 중년사내와 지도를 보며 안내를 하는 나는 변죽을 맞춰 감탄사를 했지만, 어째 조수석에 앉은 부인은 말이 없었다. 그저 태백에 사는 아들을 보러 간다는 말만 하고선, 시종일관 무표정이다. 분위기가 어색했다 싶었는지 사내는 말없는 네비게이션이 조수석에 앉았다는 둥 지도도 볼 줄 모르고, 방향도 거리감각도 무딘 부인의 약을 올렸지만, 화내는 척도 안했다. 좋은 것인지 아닌지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여자들 속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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