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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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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5월 26일 07시 21분 등록

길이 끝나는 동강의 가장 깊은 곳

떼꾼들이나 가끔 지났을 법한 동강의 가장 깊은 곳. 이곳에서 길이 끝났다. 겹겹이 절벽이고, 강물만 푸른 구포리 거북이 마을.. 사월이면 강 건너 코앞에 동강 할미꽃이 핀다는데... 벌써 할미꽃도 다 지고.. 하늘의 뜻을 안다는 지천명... 돌아갈 날도 멀지 않아서야.. 제 뜻을 알게 하는 하늘을 탓할까... 이제 더는 찾는 발길도 끊어질 듯.. 그 절벽 앞에서 속으로만.. 속으로만.. 나는 울었다.. 고개 숙여 숨죽이고, 삼배 흑단같이 짙던 머리카락이 다 사위어지도록 울기만 했다... 물 건너 절벽 위로 달이 오르고.. 별이 질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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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여기서 끝났다. 이제 왔던 길을 되돌아 나가던지 아니면 백운산 줄기자락을 타고 하늘다리를 넘어야 했다. 강물 위에 목숨을 걸고 몸을 띄운 떼꾼들이야 저 골짜기를 따라 굽어지는 동강을 따라갔겠지만... 내겐 몸뚱이 하나 받아줄 뗏목도 아라리 한 자락 이어갈 재주도 없었다. 눈앞에 푸른 용은 길게 가로질러 백룡동굴로 돌아가는데, 제 몸 하나 굽히고 살 줄 몰라 뻣뻣한 삶은 고달픈 하늘다리로 올라야만 했다. 물길만 남고 발길은 끊어진 곳. 동강 할미꽃은 고개를 숙일 줄 몰랐다. 자주색깔 꽃은 늘 위험했다. 꽃은 하얀 솜털을 벗지 못해 여려 보이지만, 독한 뿌리는 어린 단종의 목숨을 빼앗기도 했다. 유형의 땅에서조차 살아남으려면, 절벽 끝에 붙어 꽃을 피우려면 그리 독하지 않고선 견뎌낼 수 없는 시절이다.

하늘에도 다리가 놓였다. 온전히 제 몸을 바꾼 구름이야 다리도 없이 산을 넘고, 하늘로 오른다지만 절벽 틈새로 이어진 좁은 낭떠러지일망정 다리없이는 넘지 못할 길이었다. 하늘의 법도는 인간세상과는 달랐다. 하늘에서 여신하나가 내려왔다. 천기로 하늘의 뜻을 이룬다는 천봉을 훔쳐 이 곳 하늘벽자락에 숨어들었다. 지상의 삶을 더는 지켜볼 수 없었던 모양이다. 뒤이어 천군의 군대가 뒤쫒아 왔다. 더는 숨길 수 없었다. 하늘벽자락은 여신을 토해내고 천봉은 삼켜버렸다. 여신은 달아나고, 천신의 천봉은 아직도 하늘벽 뼝대에 숨겨져 있다고 한다. 나는 여신을 보지 못하였다. 그녀의 치맛자락이 지나쳐 남기고간 바람 속에 감추어진 향기만을 맡았다. 아찔한 분꽃나무 체취가 벼랑 끝에서 곤두박질을 친다. 늙은 소나무 하나가 가지를 뻗어 잡으려고 했지만 바람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말을 잃은 동강이 멀리서 또 한 굽이를 돌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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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고개.. 고개 너머로...

아우라지에서 목 놓아 울고 싶었다. 강물보다 더 큰 소리 내어 내 사랑을 묻고 싶었다. 그렇지만 그러하지 못하였다. 이름도 없이... 기약도 없이... 지금까지도 기다리고 서 있는 아우라지의 처녀 앞에서 내 사랑을 내어놓지 못하였다. 황새여울 된꼬까리를 지나 치맛자락을 파고들던 떼꾼들의 울음소리를 받아내던 들병장수 전산옥을 다시 찾을 수 없었다. 깜깜한 목구멍 너머로 토해내던 검은 피를 받아내며, 아흔 살을 넘게 묻혀 살아온 할머이... 뼈마디가 으스러지도록 견뎌온 아주머이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그리 할 수가 없었다. 부끄러웠다. 살면서.. 살아질수록 점점 더 가슴에 깊이 묻어야만 하는 일들이 늘어 간다한들... 그들의 삶에 비할까... 강물 빛을 닮은 강원도 정선 땅에 묻힌 아리랑 같이 굽이굽이 흐르는 동강만 같을까... 차마 염치없는 짓이었다.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건너편은 영월 땅이었다. 나는 아직 정선 땅을 딛고 있다. 강을 건너지 못해... 골 깊이 숨겨진 유형의 땅을 아직도 떠돌고 있다.

한치 뒷산에 곤드레 딱주기 님의 맛만 같다면
올 같은 흉년에도 봄 살아나지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 고개로 나를 넘겨 주게

버스가 아리랑 고개를 넘어가고 있다.
누군가 그랬다.
정선 땅이 좋다고 하기에 구경하러 왔더니 아리랑 가락에 푹 빠져서 나는 못가겠네. 당신이 정선에 왔다가 그저 간줄 알아도 콧노래 흥얼거릴 때 아리랑 묻어 나오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 고개로.. 나를 넘겨 주게
버스는 아직도 아리랑 고개를 넘어가고 있었다.
여기 앉아서 내가 노래를 했었지...
백발이 오지 마라고 가시성을 쌓는데 그 몹쓸 백발이 앞을 질러왔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사랑했고 헤어졌으며 다시 만났지만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 봄날이 가고 있었다.
아리랑.. 고개.
고개 너머로.. 나를 넘겨 주게
나를 넘겨 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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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석
2011.05.26 23:20:44 *.108.80.74
백룡동굴은 평창 땅인데요? 
아래 사진 '칠족령'이 영월하고도 연결되나요?

미탄면에 청춘을 묻은 사람으로서^^
각별한 감회를 가지고 읽었어요.

하지만 이 글이 개인적인 기록이 아니고 책을 겨냥한 원고라면 물어보지 않을 수가 없네요.
읽는 사람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은가?
읽는 사람은 이 글을 통해 무엇을 얻어 가는가? 하구요.
쓰는 사람이 너무나 자기 안에 갇혀 있어서 읽는 이가 끼어들어갈 여지가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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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석
2011.05.27 11:41:56 *.108.80.74
독자로서의 의무감이 지나쳐서 너무 모지락스럽게 얘기했나 신경쓰이는 중.^^

20대 중반에 아우라지 가는 길목의 '별어곡'에 있는 중학교에 2년간 근무한 적도 있어서
내 추억의 코스였답니다.
맘먹고 한 번 걸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글이었어요.

글 속에 선보인 사진만으로도 감탄이 절로 나오지만 좀 더 올려 주지요?  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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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철
2011.05.27 07:22:25 *.1.108.38
맞아요.. 백룡동굴은 평창 땅에 있지요.
동강물줄기를 따라서 폐교된 연포분교에서 거북이 마을로 들어가다 보면..
그 강 절벽만 건너면 영월땅이지요. 가정마을은 줄배로 건너서 들어가고요.
동강은 거북이마을을 지나 백룡동굴 체험장과 미탄면 마하리로 연결되지만
사람이 가려면 칠족령을 넘어 백운산 자락을 타고 갈 수 밖에 없다더군요. ㅎㅎ
찍어온 사진들에 담긴 풍광들이 너무 좋은데.. 다 보여드리지 못해 아쉽네요.. 너무 좋드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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