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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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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5월 29일 08시 46분 등록
부제 : For Edge Life

내가 동양고전을 가지고 글을 쓴다면 어떤 글을 쓸까 고민해봤다. 신영복은 동양고전에서 '관계'라는 키워드를 찾아냈고, 구본형은 '리더십'이라는 키워드를 찾아냈다. 나의 관심사와 동양고전의 이야기를 연결해 보니, 초월과 깨달음, 도약 같은 동양고전의 주제를 사진예술과 연결시키는 방법이 떠오른다. 예술이라는 것이 ‘일상을 낯설게 바라보는 것’이라 생각한다면 동양고전의 초월이라는 주제와 맞닿을 수 있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런 이야기를 풀 수 있는 경전을 들라면 <도덕경>, <장자>, <벽암록> 등이 있을 것이다. 그 중 <장자>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한 꼭지 글을 풀어본다.

혜자가 장자에게 말했다.
"나에게는 커다란 나무가 있는데, 사람들은 이를 가죽나무라고 부른다네, 그런데 나무 기둥은 울퉁불퉁해서 쓸 수 없고, 작은 줄기들은 꾸불꾸불해서 도무지 쓸 데가 없다네. 그래서 길 한복판에 이 나무를 세워 두어도 목수조차 거들떠보지도 않는다네. 자네의 주장 또한 이 가죽나무와 같이 크기만 할 뿐 전혀 쓸모가 없으니 누가 듣겠는가?"
장자가 대답했다.
"선생께서는 너구리와 살쾡이를 보지 못하셨습니까? 이 녀석들은 어떤 먹이라도 나타나기만 하면 낚아채지만, 그러다가 결국은 덫에 걸리거나 그물에 걸려 죽을 뿐입니다. 황소는 쥐조차 잡을 수 없지만 능히 큰일을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선생께서는 모처럼 커다란 나무를 소유하게 되었으면서도 그것이 쓸모없다고 걱정하고 계신 모양인데, 차라리 그것을 아무도 없는 드넓은 벌판에 심어서 평화로이 나무 그늘 밑에서 낮잠이나 자는 것은 어떻습니까? 이 거대한 나무는 도끼에 찍혀 쓰러질 염려도 없고 어떤 것도 이 나무를 해코지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이 곧 '쓸모없음의 쓸모'입니다. 그러니 어찌 이런 일을 가지고 근심 걱정을 하시는 것입니까!"

혜자는 장자와 서로 벗 사이라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생각하는 바는 완전히 반대인 것으로 그려진다. 혜자는 항상 시비를 가리고자 한다. 이 우화에서 혜자는 장자의 주장을 비판하기 위해 쓸모없는 가죽나무 이야기를 꺼냈다. 이 이야기에서 만이 아니다. 또 다른 이야기에서 혜자는 "당신의 모든 가르침은 언제나 쓸모없는 것에 역점을 두고 있다"고 장자를 직접 비난하는 말을 하기도 했다. 장자의 가르침이 실현가능성이 없이 공허하다는 얘기다. 장자는 그때도 이렇게 말했다. "저 땅을 보라, 땅은 넓고 끝이 없다. 그러나 그 넓은 땅 중에서 사람은 작은 일부만을 사용한다. 그렇다고 발의 크기만큼만 땅을 남기고 모두 없앤다면 어쩌겠는가? 그가 서있는 땅이 과연 쓸모가 있을 것인가?" 그렇다. 쓸모 있는 것들은 쓸모없는 많은 것들 때문에 쓸모가 있어지는 것이다. 혜자의 완패다. 삶에 대한 애착과 집착에서 한 걸음 물러나 삶을 꿈으로 보고 한 순간 바람같이 느낄 수 있는 마음이 장자의 마음이다. 그렇지 않아도 삶은 치열한 전쟁터요, 소란한 시장터다. 그 삶에 커다란 여유를 불어넣어 주는 것이 동양의 지혜다. 동양의 그림에는 여백이 있다. '여백의 미'라는 말이 있듯이 여백은 그려진 한 송이 꽃이나 사물을 더욱 고귀하게 만드는 방법이다.

꼬박 일주일간의 방황을 했다. 어쩌면 아직 끝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내 꿈을 향해 정진해야 할 시기에 방황이라니 얼마나 아까운 시간이냐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동안 노력해 쌓아둔 것들을 다 무너뜨리는 게 왠 말이냐 할 것이다. 하지만 지나고 나니 '방황없는 내 꿈은 얼마나 무색무취의 싱거운 그림일까?' 라는 생각이 떠오른다. 방황은 내게 동양화의 여백 같은 것이었다. 일주일간의 짧은 방황을 통해 내 꿈이 얼마나 한 쪽으로 치우쳐 왔는지 돌아보게 되었고, 가까운 관계를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렇게 동양의 지혜는 쓸모없어 보이는 방황의 시간에도 의미를 부여해 준다.

부모들은 자식들이 정해진 길을 가는 것에 안도해 한다. 조금이라도 실패하거나 정처없는 시간을 보내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것이 청춘들의 목을 조른다. 청춘들은 자신을 돌아볼 여유도 없이 부모와 사회가 정해준 길을 가느라 죽어간다. 청춘들의 방황, 무모한 일탈에 사회는 '비행'이라는 표딱지를 붙인다. 학교는 오직 틀에 맞춘 인재만을 양성하는 훈련소 같다. 높은 등록금과 취업이라는 좁은문 때문에 청춘들에겐 낭만과 연애마저도 사치가 되어버렸다. 눈앞의 목표에 맞지 않는 것이라면 돌볼 여유가 없다. 동아리 활동도 자신의 스펙을 높여주는 것이어야 하고, 사람과의 관계도 자신의 인맥 쌓기로 전락해 버린다. 지금 우리에겐 다시 한번 장자의 지혜가 필요할 듯싶다. 청춘에게는 방황이 필요하다. 일면 무모해 보이는 일탈마저도 그들이 참된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보아주고 격려해주어야 한다. 그러면 일탈은 '쓸모없음의 쓸모'로 빛을 발할 것이다.

때마침 유끼 박상현 연구원이 보내준 문자에 이런 글 귀가 담겨있었다. "좌절금지! 인생의 찬란한 순간은 1%, 나머지는 그 순간에서 편집된 장면, 그래도 그 시간이 없으면 1% 감동의 시간 또한 없으리..." 내가 이런 글을 쓰리라고 선배가 예상이라도 한 것일까? 우연의 일치란 소름끼치게 놀랍다. 선배 또한 엄청난 방황을 해온 사람 같다. 그래서 동질감을 느낀다. 지난번 북 페어에서 선배가 고백한 '박한평이란 별명을 얻은 이야기'에도 공감한다. 나또한 집에 못 들어가고 차에서 밤을 지샌 적이 있기 때문이다. <안녕, 구름빵>이라는 칼럼으로 금연을 선포하고, 오늘도 금단증상에 시달리고 있을 선배의 금연성공을 확신한다. 그는 99% 편집된 장면들의 의미를 알기에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사진의 프레임 중 엣지샷(Edge Shot)이란 것이 있다. 의도적으로 피사체를 가장자리에 위치시키는 프레임이다. 이것의 효과는 감상자의 심리적 긴장감을 유도한다는 것이다. 익숙하지 않은 프레임을 통해서 시선을 집중시키는 것이다. 예술사진가들이나 패션사진가들이 주로 이용하는 프레이밍이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프레임 안으로 막 들어오거나 막 밀려난 대상의 특이한 포즈와 흔들림을 강조한 자유로움이 느껴진다. 의도적인 여백이 새로운 의미를 창조해 내는 것이다. 자유로움, 생생함, 살아있음의 긴장감이 느껴진다. 장자의 이야기에서 시작한 '쓸모없음'이 여백과 방황을 거쳐 새로운 의미로 탄생할 수 있다는 것을 눈으로 보여주는 사진미학이다.

그렇지만 쓸모없음과 여백, 방황이 무조건 좋은 것이라는 결론은 순진하다. 참된 자신을 찾으려는 목표를 잃은 방황은 허송세월이 될 것이고, 아무런 대상이 없는 사진 프레임은 막연해서 전혀 감흥을 주지 못할 것이다. 99% 장면을 편집하더라도 최종적으로는 찬란한 순간 1%를 만들어야 영화가 완성된다. 방황은 방황 자체로도 의미가 있지만 결국엔 인생의 엑기스를 뽑아내기 위해 방황하는 것이라 말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장자의 '쓸모없음의 쓸모'는 진짜 '쓸모'를 만들기 위한 전제가 아닐까 싶다.

엣지샷_진동선2.jpg
사진출처 : <좋은사진, 269p> 진동선, 북스코프, 2009


IP *.166.205.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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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30 09:08:08 *.45.10.22
Edge Life-엣지있는 삶... 쓸모없음의 쓸모..에 대한 생각
오빠의 글을 읽으니 아침의 창에 무한한 삶의 여유가 햇살과 함께 쏟아져 내리는 것 같네요.
무엇보다 양갱오빠의 컴백이 기쁜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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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30 21:40:52 *.111.51.110
기뻐해주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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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미
2011.05.30 10:18:55 *.23.188.173
이런 칼럼을 못보게 되었으면 어떡할뻔 했어요~
나 애독자라니까......
방황은 필요한 것 같아요. 안 하면 언젠가는 한 번은 하게 되는 것 같고
아이들의 비행이 심해지는 이유도 그런거겠지
존재의 이유를 찾아가는 과정이 힘들어 진 것일 수도 있고
암튼 다시 돌아온 오라버니의 튼실한 칼럼~
좋아요~~~~우헤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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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30 21:43:02 *.111.51.110
나의 첫번째 애독자! 루미~~
깍듯이 모시마~!
고맙고 나도 좋다!!
꾸준히 잘 해나가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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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훈
2011.05.30 12:00:18 *.219.84.74
칼럼이 한참 밑에 있었구나. 일찌감치 올렸구나.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도 놀란다고 이번주에도...? 깜딱이야.

너의 방황이 나에게도 헛되지 않구나.
쓸모없음이라 치부되는 많은 시간들이 나의 꽃 피는 그 순간을 위해 노래하고 있는 것이구나.
헛되지 않아서 좋지만,
순간 순간 마음에 틈입하여 나를 약하게 하는 생각에 우리를 내어주지 말자.
이를 악물고 해보자. 제대로. 
여백은 어찌보면 영원히 여백일 뿐이다. 언제까지나 조연이지. 
우리는 주연이 되고자 하는 길에 서 있으니 주인공의 역할만 생각해보자. 

보고잡다. 양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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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30 21:44:54 *.111.51.110
여백은 영원히 여백일 뿐! 그렇네요~
그 정신. 기억하며 하루하루 살께요~
저도 보고싶어요 ~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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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현
2011.05.30 13:49:55 *.117.66.71
어떤 사정인지는 모르나 화면을 가득 채운 파란 물결이
침묵으로 심경을 말해주는 듯 합니다.^^ 여행은 바닷바람처럼
상큼했는지...? 요 대목을 편집할건지  안 할건지는 나중에 전체 맥락을
보면 판단이 서겠죠. 지금은 초반 탐색전이니 지금 이 시간에 몰입하는 게 좋을
것 같네요. ㅎㅎ

갱수님 덕분에 칼럼에 등장하는 호사를 누렸는데, 선생님댁 방문한 날 그만
파계를 했습니다...다시 도를 닦고 있습니다만 양심에 찔려 공개합니다.^^
칼럼에 등장할 줄 알았다면 유혹에 눈을 한번 찔끔 감는 건데, 민망하기 그지 없음이오.
하지만 다음에 만날 때는 꼭 깨끗해진 폐를 보여 드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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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30 21:49:07 *.111.51.110
"금연성공을 바랍니다."라고 쓰면, 그저 바람에 그칠것 같아서
"확신합니다"라고 쓰고, 힘을 드리고 싶었답니다.
다음에 꼭 보여주세요~ㅋ

고마운 선배님.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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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30 13:58:08 *.124.233.1
방황은 형님에게 동양화 같은 여백이었군요 ^^
방향성을 가진 방황
언젠가 법정스님의 수필을 읽으며 보았던 침묵의 의미와도
맞 닿아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저는 어찌나 어리석은지 찬란한 1%에 눈이 멀어
삶의 여백을 잃은지 참 오래된 것 같아 씁쓸하네요 형.

저도 보고 싶어요 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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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30 21:53:01 *.111.51.110
인생은 길기도 하고 짧기도 한 것 같아.
여유를 잃은지 오래된것 같다가도
어느 순간엔 너무 많은 여유에 찬란함을 갈구하기도 하지.
힘내라 경인아~ 잘하고 있잖아!
더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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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경
2011.05.31 11:05:05 *.35.19.58
경수의 칼럼을 오랜만에 보니 참 좋구나.
사람은 시련을 통해 배우는 것 같아.
시련이 있어야 우리의 인생도 깊어지는거지.
경수야, 우리 함께 깊은 인생으로 같이 걸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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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갱
2011.06.01 03:52:10 *.111.51.110
그래요~ 같이가요~!
그리고 꿈벗여행 같이 갔음 재미있었을텐데 아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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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
2011.05.31 12:51:59 *.142.255.23
양갱오라버니.. 웰컴백!!! 
저 사진 너무 멋있다... 이런 사진 끊임없이 볼 수 있게 해줘요.. 

그래도 방황의 끝에 또 이런 좋은 글이 나와서 참 좋다능... 나도 언제 한번 방황을...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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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갱
2011.06.01 03:53:00 *.111.51.110
고마워~~
일부러 방황하진 마라~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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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곤
2011.06.02 01:51:38 *.34.156.74
음.. 뭐랄까..
뭔가 할 이야기가 열라 많은 인간인데....
아직 타이밍이 안된걸까?
함양에서 한번봐야 할까?
바쁘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그래도 그대와 여름이 오기 전에 회포을 풀어야 할듯...
좀 더 내려가서 글을 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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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갱
2011.06.02 18:45:48 *.51.37.25
아이고~ 반갑습니다. 선배님.
언제 글을 남겨주셨나요.
당진에 살다보니 수도권모임에 참석이 자유롭지 않습니다.
안타깝네요.
여름이 가기전! 미숙누님계신 함양으로 갈까요!
'좀 더 내려가서 글을 쓰라'는 뒷이야기가 궁금하네요.
어디로 내려가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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