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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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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5월 31일 11시 23분 등록

계절은 쇼윈도로부터 온다. 백화점의 쇼윈도 디스플레이가 파릇파릇 봄 분위기에서 하루 만에 여름으로 바뀌었다. 상점 진열대를 차지한 신상품들이며 현란한 현수막들이 바싹 다가선 여름을 예고했다. 광고문구 대로라면 이제껏 겪어 보지 못한 특별한 섬머타임이 될 듯 했다. 청량한 여름을 보장하는 다채로운 상품 광고가 눈에 익을 무렵, TV 뉴스에 전국의 낮 기온이 25도를 넘었다는 헤드라인이 떴다. 어쩐지 발코니 창으로 들어오는 아침 햇살이 따갑다 싶었다. 현장, 사무실, 집을 연결하는 망각의 삼각지대에 익숙해진 탓인지 솔직히 말하면 오감으로 계절을 느낀 지 꽤 오래되었다. 반복되는 출제와 문제풀이에 익숙해지다 보니 머리만 있고 감각기관은 아웃소싱된 기분이다. 전자칩이 내장된 신분증을 지하철 출입구에 댄다든가 교통카드가 내장된 휴대폰을 사무실 출입문에 대는 일은 예사다. 어제는 면도 중에 키폰 전화가 울렸는데 손가락으로 거울표면을 밀어내고 있는 그 자신을 발견했다. '디지털 치매증세가 이런 것인가. 뭐든 어떠랴. 어느 채널을 통하든 정보가 뇌로 전달되기만 하면 되지.' 라고 그는 생각했다. 요즘 같이 뇌 속이 복잡할 때는 자주 쓰는 감각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밀봉해 두는 게 괜찮을 것 같았다. 그래도 문제가 없는 것이 때가 되면 TV가 계절을 귀띔해 주고, 스마트폰이 일어날 시간을 알려주지 않나. 그는 옷장 서랍을 열고 저 뒤 켠에 뭉개져 있는 반팔 티 서너 장을 꺼냈다. 정갈하게 정리되어 넣어졌을 티셔츠들이 옷 주인이 뒤이은 계절을 황급히 챙긴 탓에 이리저리 흩어져 있었다. 접힌 자국이 눈에 거슬렸지만 그 중에 제일 나은 걸 골라 입었다. 8시에 최영미 사망사건 중간 조사결과를 반장에게 브리핑해야 한다. 외부침입의 흔적이 없었고 사망 당시 어머니와 함께 있었다는 점, 최근 연루된 스캔들로 인해 매우 불안해 하고 있었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심증으로는 자살이 확실하지만 그것을 증명할 물증을 찾아내는 게 그의 일이다.

 

최영미 안티 카페 쥔장 만나 봤어? 브리핑을 마친 후 반장이 물었다.

그제 만났죠. 연락처 알아내느라 애먹었습니다.

뭐 하는 얘야?

얘가 아니고명동병원 수간호사입니다.

! 반장은 철없는 여고생 정도를 생각했었나 보다.

마흔 넘은 초딩 엄마입니다.

살만큼 산 아줌마가 왜 그랬대?

사연이 있더라구요. 이영미가 10년 전에 전신성형수술을 받았습니다.

그래? 금시초문인데…” 반장은 소문으로만 듣던 X파일을 발견한 듯 눈을 반짝거렸다.

수술한 데가 명동병원이고 최영미의 담당 간호사가 그녀였습니다.

입원 중에 무슨 일이 있었나?

저도 그 점이 의심스러웠죠. 뭐가 있겠다 싶어 추궁했더니 처음에는 확인된 사실만을 인터넷에 올렸을 뿐이라고 딱 잡아떼는 거에요. 그래서 협조를 안 해 주면 피의자 신분으로 정식 수사하겠다고 엄포를 놨죠. 그랬더니…”

그랬더니?

※ 작자의 사정으로 인해 연재 내용이 수정되거나 순서가 바뀔 수 있음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IP *.236.3.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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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옥
2011.05.31 14:33:28 *.237.209.28
신작을 개시하셨네요. ^^
흥미진진한 시선으로 읽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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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훈
2011.06.01 11:41:40 *.219.84.74
야~~ 새글의 첫대목을 이렇게 읽어보니 영광스런 생각이.
현실의 울타리를 '망각의 삼각지대'라고 표현하신 것...아주 근사합니다.
최영미 사건이 흥미를 팍!!! 연재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보겠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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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현
2011.06.01 17:01:46 *.236.3.241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네요ㅎㅎㅎ
뭔가 부산한 기운이 느껴지는데...뭐든
잘 되기를 두 손 모아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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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07 14:02:34 *.45.10.22
오호~~선배님 새로운 소설의 시작이군요 
두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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