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書元
- 조회 수 1993
- 댓글 수 0
- 추천 수 0
말 그대로 독특 하였다. 이 한마디로 그를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
행사시 그를 처음 만나본 첫인상 이었다. 다른 여느 이벤트 강사와는 차원이 달랐다.
누구처럼 기타 하나 들고 커플 게임하고 이런 차원이 아니었다.
평범하지 많은 않은 인상을 커버하려는 듯 반짝이는 요란한 의상과 노랗게 물들인 파격적인 머리 스타일.
무슨 밤무대 가수도 아니고…….
하지만 다분히 풍기는 포스가 장난이 아니었다. 그리고 역시나 그만의 개인기와 특유의 카리스마로 청중들을 압도하였다.
그런 그와 술자리를 할 기회가 생겼다. 몇 잔이 돌고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노라니 마음이 통했나 보다.
“이승호씨. 나랑 친구 합시다.”
친구라? 하지만 솔직히 겁이 났다. 나보다 나이도 들어 보이고 범상치 않는 이미지 탓에 그와 잘 맞을지도 의문이었기 때문이다.
“제가 마음에 드는 이유가 있으시나요?”
그는 특유의 웃음으로 한마디를 한다.
“순수해 보여서요.”
행사 진행을 위해서 많은 이벤트 강사들을 접해 보았으나 그만큼 개성 있는 이는 이제까지 보질 못했다. 그래서 어느 중요한 행사를 앞두고 내가 운영을 맡은 기획안의 적절한 강사 일순위로 예전에 눈여겨본 그를 보고서에 올렸다.
브리핑시 사장님이 질문을 한다.
“이승호 차장. 000씨를 염두에 두고 있는 이유가 있나요?”
나는 행사의 이미지와 참석자들의 분위기 조성을 위해서는 그런 스타일의 강사가 필요하다는 당위성과 추천 사유를 설명 하였다.
하지만 나의 소견과는 다르게 받아들이신 모양이다.
개인적이고 무대를 방방 휘저으며 이끄는 스타일이 당신 눈에는 좋게 보이질 않으셨던 것 같다.
서로의 개인차가 있듯 추구하는 취향도 다르다는 점은 어쩔 수 없지만 그럼에도 나는 나 나름대로 운영자로써의 신조가 있었다.
행사의 주체는 누구인가? 본사 직원들인가 아니면 참석자들인가?
그렇다면 누구를 염두에 두고 프로그램을 운영할 것인가?
누구의 기대치에 맞는 포맷을 짜야 하고 강사 섭외를 할 것인가?
고집스럽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위에서 탐탁지 않게 생각을 하더라도 나는 특유의 미련함으로 그를 써야 한다고 밀어 붙였다. 상사는 이런 나를 보고 남들은 쉽게 넘어갈 일을 왜 어렵게 하느냐고 이야기를 한다. 대충 윗사람이 요구하는 대로 묻어가면 되지 왜 고생을 사서 하느냐는 입장이다. 나에게 월급을 주는 이의 의중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서 솔직히 갈등이 들기도 하였다. 대표이사님이 원하는 쪽은 말 그대로 YMCA 분위기가 나는 순수하고 건전한(?) 강사를 원하시는데 굳이 위험성이 다분한 그 사람을 선정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확신했다.
레크리에이션 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흥겹고 즐거운 축제로써의 자리이며 공간이다. 그곳에 참석한 사람들은 경건한 분위기를 느끼기 위해서나 의식 행사를 하러 온 것은 아니다. 무언가 일상의 삶에서 쌓였던 스트레스와 긴장들을 잠시나마 내려놓고 단 몇 시간이라도 즐기기 위해서 온 것이다. 그런 자리를 그저 그런 강사보다는 이왕이면 화끈하고 화려한 퍼포먼스를 연출 할 수 있는 그가 적임자라고 판단한 것이다.
주사위는 던져졌고 행사 시작 시간은 카운팅이 되었다.
그는 오프닝 전에는 청중 누구에게도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식사도 함께 하지 않고 무대 뒤에서 도시락을 스텝진과 외로이 까먹는다.
미리 선을 보이면 대중의 신비감이 없어진다는 이유에서이다.
철저하였다.
무대 뒤의 그를 지켜볼 수 있었다
긴장한 모습이 느껴졌다. 자기 나름대로의 마인드 컨트롤을 하고 있는 듯하였다. 그렇게 무대 위의 경력이 풍부한 사람도 떨리긴 매한가지인 모양이다. 더욱이 어렵게 내가 섭외를 한 것을 알기에 적잖은 심적 부담감도 느꼈으리라.
하지만 그는 역시 프로였다.
전투가 시작되자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자신을 직접 소개하는 묵직한 내레이션 멘트와 함께 궁금증을 유발하며 화려하게 무대에 등장한 그대. 청중들은 술렁대기 시작한다. 무언가 범상치 않은 외모와 분위기. 그리고 그때부터 터지는 그만의 쇼맨십과 대중을 사로잡는 화려한 멘트들.
관계에서는 첫인상과 이미지가 중요하다. 대면 상에서 첫 2초의 힘을 강조하는 말콤 글래드웰의 <블링크>란 책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상대방에 대한 처음의 각인이 끝까지 유지를 하는 경향이 사람들에게는 있는 것이다. 복싱 선수는 링위에서 종이 울리기 전에 가볍게 서로에 대해 눈을 바라보며 탐색전을 한다. 어쩌면 그때 이미 게임의 승패는 결정이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개들도 싸움을 하기 전에 서로 으르렁 대면서 분위기를 살핀다. 기 싸움의 승부에서 이처럼 처음의 시작은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보면 그의 이런 액션은 타의추종을 불허한다. 초장 끗발이 개 끗발이 되지 않기 위한 그만의 작전이라면 그는 이미 절반의 성공을 하고 있는 것이다.
행사 내내 그는 청중을 들었다 놓았다를 반복 하였다. 정말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준 시간 이었다. 열정의 행태가 이런 것이구나 라는걸 땀으로써 샤워를 하고 내려온 모습을 통해 직접적으로 보여준 드라마인 것이다.
행사에 대한 피드백으로 그를 다시 만났고 업무적 외에 자신의 직업관에 대한 사적인 이야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내가 하는 멘트와 화법을 배우기 위해서 따라 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요. 사용하는 어투 등을 받아 적어 그대로 자기 행사시 써먹는 사람들도 있지요. 하지만 개의치 않아요. 나의 것을 그대로 모방한다고 해도 내가 하는 것처럼의 맛은 그 사람에게서 나오질 않거든요. 나는 시나리오를 따로 작성하지 않아요. 제일 중요한건 펄떡이는 물고기처럼 살아있는 생생한 현장에서 직접 맞부닥 치고 느끼면서 풀어 가는 거지요, 대중을 마주하고 무대에 서면 나는 나의 존재감을 확인할 수 있죠. 그러면 거기서 몇 시간을 뛰어 다녀도 피곤하지 않아요.”
그러했다. 대학교 재직 중 000 레크리에이션 강사의 멘트를 배우기 위해 나도 따라다녔던 전적이 있다. 현재 방송인 김제동씨의 스승이기도 하였던 그분은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그 업계에서 신화적인 분이었다. 통기타를 치며 싱얼롱 위주의 형태가 주류였던 상황에서 그는 오로지 마이크를 앞에 두고 자신의 전매특허인 화려한 언변과 말솜씨로써만 사람들을 좌지우지 하였다. 한마디로 굉장한 이빨 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의 추종자가 많았고 나도 그중의 한명 이었다. 행사 내내 쏟아지는 그의 멘트를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노트에 기록해 나도 활용을 하였으니까. 하지만 그의 말대로 그 화법은 나의 것이 아니었다. 느낌이 살아나지 않는 단지 카피본 이었다. 내 것이 필요 하였다. 나만의 것이 필요 하였다.
그런 점에서 그는 동종 업계에서 독보적인 인물이다. 내가 스승이 누구냐고 물었지만 그는 누구에게서도 배운 적이 없다고 한다. 단지 자신의 특성에 맞는 자신의 스타일에 맞는 것을 스스로 연구 개발하고 체득화 및 캐릭터화 시켜 무대에서 뿜어낸다고 한다. 어찌 보면 전형적인 무대 체질인 그. 그렇다고 D/B를 소홀히 하는 것도 아니다. 자신이 다녀왔던 업체에 대해서는 다음을 대비해 참석한 사람들과 자신의 진행 프로그램을 꼼꼼히 기록하고 분석한다. 나는 그런 그의 직업관이 부러웠다. 그래서 마음이 답답할 때면 그를 찾아 상담을 하기도 하였다. 나의 글이 대중성이 없다는 판단을 받아 힘들어 할 때에도 그를 찾았다. 그는 이런 나를 두고 다음과 같은 촌철살인의 코멘트를 내뱉었다.
“이승호님. 당신은 무식할 정도의 고지식함이 있어요.”
이 말에 나의 폐부는 서늘했다. 그러하였다. 나의 최대의 장점이면서도 단점인 점이 들켰으니. 하지만 어찌 보면 이점은 그와 연을 맺게 하는 공통점이기도 하였다. 대립각을 세우며 그를 행사 무대에 서게 한 나와 마찬가지로 그는 그만의 철학이 있다. 그것은 철저히 현장에 맞춘 콘셉트로 행사의 계획을 짜고 실행에 옮긴다는 것이다. 자신과의 계약서 체결은 행사 담당자와 회사 오너의 결정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그 행사의 주인공은 임직원이 아닌 참석자들이라는 것에 초점을 두고 움직이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의 외면적인 모습을 보고 미팅시 미심쩍어 하면서도 계약을 한번 체결한 업체는 말 그대로 단골 고객이 된다. 다른 강사와는 다른 튀는 이미지와 강렬하고 인상적인 연출이 점잖을 떠는 높으신 분들의 입맛에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이벤트를 즐기러 오는 당사자들의 눈높이에는 제격이기 때문이다.
그는 광대이다. 자신의 몸짓과 언변으로 참석자들의 기분과 흥에 코드를 집중하는 철저한 광대이다.
그는 에너자이저이다. 다음을 기약하지 않는 듯 현재 그 자체에 몰입하여 자신의 몸을 사리지 않는 에너자이저이다.
그는 어찌 보면 독고다이의 성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의 진정성은 살아있는 사람들의 마음에 불을 붙이고 그 불을 더욱 밝은 빛으로 이끌어 내게 한다.
자신의 꿈 하나 이야기를 이어갔다.
현재 하고 있는 일을 평생 이어가 환갑이나 진갑을 맞을시 자신이 직접 마이크를 쥐고 축하무대를 진행 하겠노라는 거창한 꿈을.
부러웠다. 자신만의 색깔로 자신만의 이미지로 자신만의 차별화된 콘셉트로 질주를 하고 있는 그가.
부끄러웠다. 나도 어쩌면 그와 같은 색채를 추구하고 있지만 정작 대중들에게 자신 있게 내지르지 못하는 당당하지 못한 현실이.
그는 마지막으로 고민 많고 걱정 많은 나를 위해 자신의 전매특허인 이런 말로 매듭을 지었다.
“인생 그까이거 뭐있습니까.”
그래. 인생 그까이거 뭐있냐.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2472 | 10. 이순신의 사람을 얻는 법. [20] | 미나 | 2011.06.06 | 3498 |
2471 |
[Sasha] 컬럼10-장군의 꿈 ![]() | 사샤 | 2011.06.06 | 2422 |
2470 |
[양갱] 무엇을 어떻게 쓸까? ![]() | 양경수 | 2011.06.06 | 3273 |
2469 | 10. 외로움과 친구하기 [15] | 미선 | 2011.06.06 | 2297 |
2468 |
[평범한 영웅 010] 사람은 죽어서 기록을 남긴다 ![]() | 김경인 | 2011.06.05 | 7086 |
2467 | 나비No.10 - 낯선 하루가 익숙한 것이 될 즈음에 [12] | 유재경 | 2011.06.05 | 4641 |
2466 | [늑대10] 고통의 향기 [13] | 강훈 | 2011.06.05 | 9634 |
2465 |
단상(斷想) 67 - 살아간다는 것 ![]() | 書元 | 2011.06.05 | 1928 |
» | 라뽀(rapport) 54 - 대한민국 최고의 엔터테이너 | 書元 | 2011.06.05 | 1993 |
2463 | 스마트웍의 출발점, 시간 중심에서 성과 중심으로 | 희산 | 2011.05.31 | 2652 |
2462 | 위대한 탄생 [2] | 선 | 2011.05.31 | 2001 |
2461 | <소설> 모던 보이(1) [4] | 박상현 | 2011.05.31 | 1980 |
2460 | 칼럼. 어리버리 인생의 든든한 빽. [4] | 연주 | 2011.05.31 | 2002 |
2459 | [04] 누군가! [5] | 최우성 | 2011.05.31 | 1993 |
2458 | 와글와글, 그녀들의 수다. [2] | 이은주 | 2011.05.31 | 2139 |
2457 | 칠종칠금 [12] | 루미 | 2011.05.30 | 2274 |
2456 | 09. 나의 실패 원인 분석 [10] | 미나 | 2011.05.30 | 2053 |
2455 |
[Sasha] 칼럼9. 영혼의 정원사 ![]() | 사샤 | 2011.05.30 | 1956 |
2454 | 9. "너나 잘 하세요." [10] | 미선 | 2011.05.30 | 2006 |
2453 | 나비No.9 - 격려의 북으로 아이를 춤추게 하라 [15] | 유재경 | 2011.05.29 | 39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