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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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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6월 5일 18시 45분 등록

난중일기를 통해 느껴지는 이순신의 삶은 고통의 삶이다.
적과 대치하는 날 선 고통이요. 적의 칼에 천륜을 끊어내야 하는 애절한 고통이다. 비참함의 길 위에 있는 주군에 대한 신하의 애통(哀痛)이요. 애통(
哀痛)이 암수(暗數)로 돌아와 상처 주는 고한(苦恨)의 삶이다. 그는 스스로 자신의 삶에 대해서 "이 세상 나와 같이 외로운 사람이 또 어디 있으랴"하며 탄식했으니 짐작할 수 없는 고단(孤單)한 삶인 것이다.

나는 여쭙는다. "장군께서는 어떻게 그러한 고통을 극복하셨습니까?" "당신의 삶에 고통은 무엇이었으며, 무엇이 그런 고통을 이겨내게 하였습니까?"

누구든 고통 없는 삶은 없다. 하지만 고통에 대처하는 모습은 우리의 다양한 얼굴처럼 각양각색의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다. 삶을 살아가는 나에게도 고통은 어떤 의미이며, 고통 앞에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지혜로운 것일까?

 

나는 작년에 조직생활(회사)이라는 여태까지의 삶을 정리하면서 어려운 고통의 시간을 보냈다.
스스로의 마음을 결정하는 어찌 보면 사사로운 것이지만 그때의 나에게는 태산과 같이 무거웠고,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알기 어렵다는 말은 스스로에게 딱 맞아 떨어져 내 마음을 한치도 헤아리기가 어려웠다.

조직이라는 울타리 안에서의 길이 내가 가야 할 길이 아님을 느낄 수 있었지만 새로운 길은 보이지 않았다. 가던 길을 멈출 수도 그렇다고 계속할 수도 없는 진퇴유곡의 막다른 지경에 이르렀다. 마음 속의 답답함은 마음의 어지러움으로만 남지 않았고 몸은 갖가지 증상으로 나에게 해결책을 요구했다. 마음의 짐이 병이 되었고, 그때가 '선택'하지 않을 수 없는 쫓김의 끝이었던 듯하다.

 

마음 속에 이는 질문들의 끝을 붙잡고 답하기 위해서 나는 지금 새로운 곳에 서있다. 스스로를 절박한 곳으로 내치고 나니 삶이 좀더 윤곽을 드러내고 그 모습이 적나라해진다. 드러남은 옷을 벗은 여인의 마음처럼 민망하고 부끄럽다. 하지만 그것에는 심장을 벌떡이게 하는 아름다움이 있다. 종국에는 치유될 상처이며, 푸른 빛을 깨치게 될 새순과 같은 생명임을 알고 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은 것이다.
1년 전 그리고 오늘, 같은 나를 두고 그때의 고통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보면 고통은 문제요, 앞길을 가로막는 큰 돌과 같은 것이다. 나는 작은 벌레 한 마리로서 그 돌을 내 앞에서 치우고 싶었고, 그것을 치우기 위해서 안간힘으로 땀을 흘리며 오르내리기를 반복했다. 해결할 방법을 찾기 위해 많은 밤낮을 고민했다. 돌을 들어내어 내 앞길을 열겠다는 마음이 충실했다.

시간이 조금 지나 지금은 그때의 고통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 벗어남은 내 앞의 큰 돌을 치워버려서 가능한 것이 아니고 벌레가 나비로 성숙하여 도약하고 날아가는 것처럼 그 돌멩이를 지나치고 넘어선 것과 같은 느낌이다. 문제가 해결되었다 라기 보다는 어느 순간 나의 길에서 비껴나 있는듯하다. 나는 여기서 극복과 견딤이라는 구분에 대해 조금은 사숙할 수 있었고, '고통'이 나를 나비가 되어 날아갈 수 있게 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흔히 고통 앞에서 "시간이 약이다"라는 말을 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시간이 약'이라는 말에는 두 가지의 서로 다른 의미가 중첩되어 있는 듯하다. 하나는 잊혀짐이요, 다른 하나는 넘어섬이다. 잊혀짐은 시간의 속성에 따라 물 흐르듯이 무언가가 나를 떠나게 내버려 두는 것이고, 넘어서는 것은 그냥 무용하게 잊혀지지 않고 내 안에서 녹아 들어 내가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제대로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고통을 겪고 있는 어떤 사람에게 현자가 이런 질문을 했다.

"지금 당신이 겪고 있는 그 일은 마치 끓는 물속에 던져진 것과 같습니다. 만일 당신이 계란이라면 끓는 물 속에서 더욱 단단해지고 차차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게 되겠지요. 하지만 당신이 감자라면 끓는 물속에서 더욱 부드러워지고 유연해지면서 탄력이 생기겠지요. 당신은 어느 쪽이고 싶습니까?

고통은 이렇듯 선택할 수 있다. 고통 앞에 어떠한 태도를 지닐 것인가 하는 문제는 바로 나 자신에게 달려 있다. 나 자신의 선택에 의해 고통이 계란처럼 굳어버릴 수 있고, 잘 익은 감자처럼 부드러워질 수도 있는 것이다. 시간이 진정한 약으로서 나에게 보신(補身)하려면 고통을 잊혀지게 해서는 안 된다. 고통의 의미를 찾고 의미로부터 넘어서야 하는 것이다.

 

나는 이순신 장군에게 어떻게 고통을 극복하셨는지 물었다.

차언(借言)하여 그의 대답을 구해보면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견디는 것이다." 라고 답한다.

극복은 문제의 대상을 해결하는 능동의 힘을 전제로 하고, 견디는 것은 고통을 담을 수 있도록  ()라는 그릇을 키워가는 것이라고 나는 정의해본다. 나 보다 훨씬 크고, 무수히 많은 삶의 돌멩이들을 매번 짐 지어 나를 수는 없다. 견딤을 통해 성숙해지고 벌레가 나비가 되듯 그렇게 문제들을 넘어서서 바라보는 지혜를 구할 뿐이다.

 

향수의 원료로 쓰이는 용연향(ambergris)이라는 것이 있다. 이는 원래 고래의 상처에서 발생된 부산물이다. 수컷 향유고래가 대왕오징어 등의 먹이를 섭취하다 내장에 생긴 상처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생긴 부유물을 입으로 게워내게 되는데 이때 그것의 냄새는 아주 고약하다고 한다. 하지만 이 냄새 나는 토사물이 세월을 거쳐 바다를 떠돌면서 염분에 씻기고 햇볕에 바짝 말라 '고래의 진주' 혹은 '떠다니는 황금'이라 불리는 귀한 향수의 원료가 되는 것이다. 처음엔 비록 냄새 나고 역겨운 토사물이었지만 오랜 세월 인고의 시간을 견딤으로써 '고통의 향기'를 지니게 된 것이다.

 

1년 전 나의 선택을 가능하게 했던 것은 내가 견딜 수 있는 고통의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보는 것에서 출발했다. 최악은 벌어놓은 돈이 다 떨어질 때까지도 내 길을 찾지 못하고 헤매는 상황이고, 내가 내 길을 찾는 중에 가족 중에 누군가 크게 아파서 그것에 온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이고, 사람들과 멀어져 홀로 무용하게 시간을 죽이는 것이고, 내가 아무 것도 되지 않아 자신도 잃고 결국에는 가족들이 궁지에 몰리는 그런 것이었다. 그런 고통이 한꺼번에 혹은 몇 가지가 중첩되어 나를 엄습한다면 내가 담아내기 어려운 최악의 고통이 되겠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런 최악의 고통이 아니라면 내가 선택한 길에서 나를 알몸처럼 드러내어도 내가 견딜 수 있을 것이라 자신했다.

나는 지금 적은 돈을 벌고, 적은 돈으로도 그럭저럭 먹고 산다. 나의 가족은 건강하고, 나의 주위에는 좋은 사람들이 있다. 내가 생각했던 최악(最惡)은 오지 않았다. 최선(最善)이 아니면 차선(次善)인 것처럼 최악(最惡)을 가정하고 차악(次惡)으로 살아 보는 것도 고통을 껴안는 괜찮은 방법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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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경
2011.06.05 21:20:27 *.35.19.58
오라버니, 글이 너무 좋네요.
고통으로 단단해 질수도 있지만 더 부드러워질수도 있는거네요. 저는 어느 쪽인가 생각해봅니다.
저도 조직에서 떨어져나와 6개월 즈음이 되고 보니 마냥 자유롭고 편안하지만은 않네요.
낯설고 설레였던 일상이 이제는 익숙한 것이 되고 보니 이런저런 상념들이 저를 괴롭힙니다.  
이 시간도 지나고 나면 저에게 뭔가 가르침을 주겠지요.
저도 견디어 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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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늑대
2011.06.06 17:19:01 *.69.251.200
벌써 6개월의 시간이 지났구나. 그 사이에 충만함이 허무함을 넘어서고 있기를.
선택한 자유이지만 진정으로 자유로워 지려면 뭔가가 채워져야 할 것 같은 느낌이 있지?
그것이 무엇일까? 나에게도 그대에게도 그것을 채우는 것이 진정한 숙제인지도...
장마철 눅눅한 곰팡이처럼,
일상에서 나를 약하게 하는 상념은 보이지 않게 마음 구석에서 곰팡이처럼 꽃을 피우지.
그 놈들을 어찌할지 잘 생각해보자. 잘 궁리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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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06 04:57:01 *.109.24.41
이순신에 대하여 알면 알아갈수록 스스로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어요 형님. 
그는 참으로 힘겨운 시절을 살았지요.
힘겨운 시절, 하루도 버티기 힘든 그 시절의 하루하루를 살아갔지요.
그렇게 그는 전란의 한 가운데서 하루 하루를 살았습니다.
저라면 전쟁의 한 가운데에 서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한 목숨 부지하고자 허둥지둥 도망 다니기 바빴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나 그것이 인지상정이고, 정상적인 인간의 모습이겠지요.
평화의 시대에는 깊숙이 가라 앉아 있는 인간의 어두운 본연의 모습이 위기의 순간에 극명하게 나타나게 되지요.
그래서 난세가 영웅을 만든다는 말이 있는가 봅니다. 
그러한 전란의 한 가운데서도 이순신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을 헤아릴 줄 알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전념했으며,
자신의 어떤 위치에 있고, 그 자리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분명히 알고 있었던 것 같아요.
물론 그가 앉아 있던 자리가 그를 그렇게 만들었을 지도 모르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건 같은 자리에 앉아 있던 원균을 보면 알 수 있는 것 같아요.
형님! 저는 이순신이 뜸 아래 앉아, 때로는 수루에 기대어 있을 때
늘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보았을 거고, 심지어는 꿈을 해석하고, 점을 치는 행위를 통해서까지
자신이 처한 환경을 이해하고 해석하려고 노력하는
끊임 없는 내적 성찰을 통해 자신의 중심을 지킬 수가 있지 않았나 싶어요.

형님과 저의 같은 질문!
무엇이 그를 그렇게 하도록 이끌었을까요?
조국에 대한 사랑? 군왕과 백성에 대한 사랑? 불굴의 의지?
그러나 저는 이런 당연해 보이는 것들이 왜 이렇게 식상하게 느껴지는 걸까요?
물론 그 또한 타고난 천재일 수도 있고, 억수로 운이 좋은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제가 궁금한 것은 어떤 계기나 자극 혹은 내적 통찰이
그로 하여금 초인적인 인내를 발휘하게 한 것일까요?
뭔가 알쏭달쏭하지만 비밀 가까이에 다가왔다는 느낌이 들어요.
이 열쇠를 찾으면 형님과 저도 이순신 처럼 될 수 있을까요?

깊은 글 잘 읽었어요 형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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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훈
2011.06.06 17:27:25 *.219.84.74
경인아 너는 나의 칼럼 끝에 칼럼을 하나 더 달아 놓았구나.
고맙다. 나의 넋두리 앞에 누군가 정성으로 그 마음을 이해해주면 얼마나 고마운지.
같이 마음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을 너가 증명해 보여 주니 '동행'이란 어떤 것인지 알 것 같다.
마음만 동행이 아닌, 말과 글로써 동행이 아닌 진정 삶에서 동행이라 할 수 있는 그런 추억이 있기를...

요즘은 다시 가지치기를 하고 있다. 생활이 너무 번잡해졌다.
생활이 번잡하니 생각도 그렇다. 내가 원하던 것이 이런것이었나 다시 생각해본다.
만남도, 아르바이트도, 기계적 편의들도, 생활하는 공간도...
그렇게해야 연구원 생활도 너희들과의 만남도 좋은 자리를 내어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것이 진정 나를 위하는 길이기도 하고...
말이 길어졌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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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06 10:21:33 *.108.3.39
역시 깊이가 있는 글 앞에 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오빠가 우리와 함께 레이스를 하고 계시다는 그 자체에 깊은 감사를 하게 되네요. 
이순신 장군이 고통을 견뎌내고 이겨내는 모습을 보면서 
다시금 저를 담금질하게 되네요. 
오빠의 글에서 배어나오는 그 깊은 향기에 잠시 도취되었다가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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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늑대
2011.06.06 17:35:03 *.69.251.200
이순신 장군의 말씀
 "
망령되게 움직이지 말고 조용하고 무겁기를 산과 같이 하라"가 책을 덮고도 자꾸 생각나.
글 한줄이, 마음 한 자리가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는데
요즘은 너무 많은 사소한 것들에 마음과 시간을 허락한 까닭에
두번 오지 않을, 내가 간절히 원했던 시간을 졸졸졸 망령되게 흘려보내고 있는 것 같다.

그대가 좋게 보아주니 많은 위로를 스스로 얻어보지만 스스로를 좀더 돌아보아야 겠다.
담금질 되는 쇠처럼 단단해지려면 생각이 냉탕과 온탕을 오가야 하나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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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06 18:30:06 *.166.205.131
모닝페이지의 힘인가요~
일년에 125권 책읽기의 힘인가요~
아마 그 둘의 통일된 모습이 이런 글을 탄생시키는 것이겠지요.
모닝페이지로 영감을 얻고 자신의 중심을 잡아가고,
책읽기로 풍부한 어휘와 표현으로 살을 붙이고
글의 기승전결을 다듬는 것.
그런 모습이 그려집니다.
저도 무조건 따라해봐야겠어요.
모닝페이지와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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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갱
2011.06.07 16:47:40 *.46.48.253
어제부터 <아주특별한즐거움>이란 책을 다시 꺼내들고,
이 책과 12주간의 여행을 떠나기로 했답니다.
형말대로 모닝페이지를 Do! 시작했답니다.
즐거운 여행길 될꺼같아요.

밤근무 끝나고서 낮에 일어나 모닝페이지하는게 관건일듯,
잘 시도해야 하는데, 상황이 잘 안맞을 수가 있어 걱정이네요.
아내가 집안일을 하고 있거나, 아이가 와있는 상황이 될 수 있기때문에...
어쨌든 Go!입니다~~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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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훈
2011.06.07 07:52:20 *.219.84.74
모닝페이지를 해본다는 것은 쌍수를 들고 환영할만한 일이지.
모닝페이지 Do! (모닝페이지는 쓴다라고 하지 않고 '한다(Do)'라고 함)하는 나의 아침은 이러하다.
미리 저녁에 물을 한컵(약간 많이) 떠서 머리 맡에 두고 잔다.
아침에 의식이 몽롱한 상태에서 기상시간에 맞춰 물 한컵만 마시고
그 자리에서 Do하는 것이지, 글을 쓴다는 생각을 버리고 그저 정해진 분량을 채운다는 생각으로만
마음이 가는 자리를 쫓아 내려가면 끝!!

그 누구도 볼 수 없도록 보안을 철저히 하는 것이 중요.
그리고 그 안에는 쓸말 못쓸말 그저 내 마음이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따라가는 것이 중요.
욕도 좋고, 천벌을 받을 만한 일을 했던 기억도 좋고...무엇이든 마음에 떠오르면 써야하는 원칙이 중요.

나는 삼분의 일(1/3)정도는 졸면서 적고 있는 것 같아.
약 6개월 정도를 하고 나니 내가 어떤 사람인지 쬐금 알 것 같아. 그것이 가장 큰 소득인것 같아.
나는 침대에서 손으로 노트에 적고 있는데,
컴퓨터에 타이핑 하려고도 해봤는데 분위기가 맞지 않아서...아침에 컴 커고 하는 것도 정신을 흐트러뜨리고...
자신에게 잘 맞는 방법을 찾아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무엇이든 하고, 그리고 제대로 하는 것이 중요하니
경수야 모페를 DO하고 그리고 빠지지 말고 해보길 적극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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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미
2011.06.07 05:38:26 *.23.188.173
어떻게 해야 이런 글을 쓰는지......
계란, 감자, 최악, 차악.... 읽히기 쉬운 요소를 갖추고 있으면서도
한치의 벗어남이 없다.
그놈의 고래 이야기는 정말 처음 듣네요
나도 이런 글 쓰고 싶당~ 오빠야가 부럽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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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훈
2011.06.07 08:00:26 *.219.84.74
(부럽다고 하니 부끄럽다.)

루미야 토피카는 만들고 있니.
김용규 선생님의 말씀 생각나니?

"작가가 되고 싶으면 꼭 자신만의 토피카를 만드세요.....
좋은 습관 하나는 사람을 엄청나게 달라지게 합니다. 마치 약간의 각이 있는 두 개의 직선과 같지요. 시간이 지나면서 극복할 수 없는 간격이 생깁니다. 여기 이 자리에서 내 이야기를 듣고 토피카 노트를 만드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차이가 생길 겁니다. 실천하는 사람은 머지 않아 좋은 작가가 되어 만나게 되겠지요."
 

너는 어디에 있니? 토피카를 만드는 대열에 있니? 그렇지 않은 대열에 있니?
나중에 우리가 우리들의 정성어린 토피카를 서로 교환하여 보고 공유할 수 있다면
아마도 우리도 괜찮은 글쟁이가 되지 않을까?
지금의 너의 좋은 생각과 글들이 너만의 토피카로 더욱 반짝 반짝 빛이 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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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현
2011.06.07 13:51:11 *.236.3.241
이순신의 삶으로부터 '고통'이라는 의미있는 주제를 끌어낸 것 축하합니다. ㅎㅎ
평전을 통하여 과거의 인물이 훈님의 현재에 화학작용을 일으키는 과정을
흥미롭게 볼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

칼럼을 읽고 나니 이순신에게 고통은 어떤 가치였을까 궁금해지네요.
난중일기를 읽으며 이순신이 누구보다 고독한 내면과 예민한 감수성을
가진 인물이었다고 느꼈는데, 그런 그에게  가치란 중요한 삶의 동력이
었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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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훈
2011.06.09 11:52:13 *.219.84.74
임진왜란의 7년 세월을 위해 휘~~익 하고 나타나셨다가 전쟁과 함께 휙하고 사라지는 과정에서
조개의 고통속에 빛나는 진주알을 남기듯 그렇게 일기를 남기고 사라지셨네요.

성현의 삶을 통해 잠시 나의 삶을 위로 받아 봅니다. 
선배님 들러 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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