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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6월 8일 08시 54분 등록

응애 73.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지난 일요일 다시 일 년 만에 시댁 형제들이 모여 부모님 산소엘 다녀왔다. 시누이 중 한명이 어느 해 부터인가 자신의 생일 파티를 고향을 찾아 부모님과 몇몇 어른들을 모시고 점심을 대접하는 일로 꾸며갔다. 빠지지 않고 우리도 늘 초대전화가 오면 간다.  

춘천가는 길은 상쾌했다. 새색시였던 시절 시댁 가는 마음은 좀 부담스러웠지만 이 경춘가도를 달려가는 그 시원한 눈맛은 비길 바 없는 즐거움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고속국도로 간다. 2시간 가까이 강물을 따라가며 젖어들던 향수는 이젠 이야기책에서나 읽을 수 있는 먼 옛날이 되어버렸다. 고속 전철에, 고속 국도에 ...낭만을 가져가고 번영을 약속했다. 그러나 그들의 진정성은 소통이 부재한 자기들만의 사업이었던 것 같다. 예스럽던 김유정 역 대신 고래등 같은 역사를 옮겨왔고.. 그날도 덜컹, 덜커덕 두 갈래 세 갈래 길을 내느라 유년시절을 이곳에서 보낸 사람들 마저 아주 헷갈리게 했다. 모든 아름다운 것은 다만 한 장의 그림으로만 남게 되는 것인가? 

어쨌든 우리는 산소에 참배를 드리고 밥을 먹으러 갔다. 작년에 당신의 모든 친척들을 불러 서로 소개 시키고 크게 한턱을 쏘셨던 삼촌은 올해엔 나오시지도 못했다. 1년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숙모는 심장에, 삼촌은 무릎에 이상이 와서 요양 중이라 하신다. 얼굴도 내비치지 못하실 만큼 상황이 돌변한 것이다. 그래 이제 여든을 넘기셨으니 무리하시면 안된다. 그러나 바로 얼마 전까지 그리도 정정하셨건만 ...그래서 사람들이 말하고 있었구나. 어른들 일은 내일을 알 수 없으니 기회가 될 때마다 열심히 찾아뵈라고. 

우리는 연휴중이어서 붐비고 또 잘나가는 음식점 귀퉁이 방을 예약해서 1년 밀린 이야기들을 했다. 놀라운 것은 우리와 매우 가깝게 지내던 시누이가 며늘아기의 유혹에 넘어가서 턱밑 주름과 처진 눈을 성형한 것이었다. 늘 주체성 있는 철학으로 종가집 며느리 역할을 잘해오던 시누이가 그만 새로운 성형 문화를 따라가고 만 것이다.  웃으면 눈가에 정다운 주름이 잡히던 그 시누이의 표정이  쌍꺼풀 땜에 눈이 더  똘망똘망해지고 커져서  이젠 그 눈빛이 편안하지가 않았다. 그래서 그만 가지고 간 선물만 건네고 말았다. 더 깊이 얘기할 기분이 나지 않았다. 사람의 얼굴이 변해버렸으니 마음이 그대로 남아 있었던들 알아 볼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아니 인상을 이리 완전히 바꿨으니 성공한 투자인가? 그러나 이젠 안녕, 사랑스럽던 나의 시누이여! 

신혼 초기에 가까이 있어 매일 미사를 다니며 거의 매일 만났던 약국장인 또 다른 시누이는 더욱 영성적이 되어 있었다. 우리는 한때 성서의 마리아와 마르타처럼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었다. 지금까지도 나를 이끌어가는 영성의 뿌리는 그때 형성된 것 같다. 우리는 같은 선생님께 오랫동안 성서공부를 했다. 노마디스트였던 우리가족이 이사를 떠나오기 전까지는 우리 세 사람이 친자매처럼 함께 다녔었다. 그 선생님이 불현듯 생각이 났고 그분의 근황을 묻고 안부 전화를 드렸다. 그곳에 뿌리내려 큰 느티나무처럼 살고 있는 약국장 시누이는 아직도 일을 한다. 이젠 마리안나 선생님도 일흔이 넘으셨다. 목소리는 지금도 변함없이 곱고 영성적이다. 나는 지난 일요일 삼촌이 금방 그렇게 쇠약해지신 것에 놀라 당장 마리안나 선생님께 전화를 드리고 약속을 정했다. 선생님은 우리가 만나기로 한 목요일을 손꼽아 기다리겠다고 하셨다. 나는 이제 내일이면 한동안 내게 닥쳐왔던 긴급했던 일을 놓고 더 중요한 일에 시간을 쓰기 위해 선생님을 만나러 간다. 그리운 마음에 벌써부터 가슴이 쿵쾅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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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석
2011.06.08 11:05:00 *.108.80.74
아!  정말 좋은 아이디어네요.
생일날 나의 삶을 있게 해 준 분들을 기억하는 모임, 너무 좋아요.
저도 어떻게든 따라 해 보고 싶어요.
우선 엄마한테 전화부터 한 통 드려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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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08 22:13:27 *.67.223.154
명석샘은 엄마가 계셔서 좋겠다.
나도 우리 엄마한테 전화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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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혼자어린척하는것이~
2011.06.08 21:18:58 *.104.207.203

샘 ..저도 시간이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것을 느껴요... 하면 혼나겠지용 ^^
새파랗게 ? 젊은 것이 ??  emoticon
어디 댓글 핑계로 느물쩍 ... 어른으로 엉겨붙으려고 ㅋㅋㅋ

샘은 .. 늘 청춘 .. 이신것 같아용 emotic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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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해
2011.06.08 22:09:01 *.67.223.154
animated/animate_emoticon (45).gif 그러게.... 요정도는 되어야지...같이 줄을 서지.... 우히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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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13 11:34:45 *.237.209.28
월욜 아침, 다시한번 샘을 글을 찬찬히 읽으며
'지금 이 순간'을 어디에 할당해야할 것인가를 생각해봅니다.

세월에 숙성된 경험 엑기스.
늘 고맙게 받아 마시고 있습니다.
새삼스레 다시 감사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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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15 08:42:47 *.237.209.28
쓴글들...을 어케 함 좋을까요?

소녀, 궁금증이 생기면 먹지도 자지도 심지어는 쓰지도 못하는 괴이한 질병이 있사옵니다.
부디 이 가련한 것을 불쌍히 여기시어 하시던 말씀을 계속해주시기를 간청드리나이당!!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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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해
2011.06.14 22:52:47 *.113.130.40
묘기야
난 요새 임재범에게 푹 빠져있단다.  
그의 프로페셔널과 어펙션과 소통능력에 감탄하며.... .... 우리도 계속 쓰자.  쓴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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