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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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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6월 11일 17시 29분 등록

봉鳳이 떳다고 했다.

안개 같은 구름에 감춰진 신무산神舞山에서 신들이 춤을 추었고, 어느 날 새벽 봉황이 떴다는 소문이 돌았다. 나무목木에 아들자子라는 성을 가졌으니, 그는 필시 숲의 자식임이 분명할 것이다. 벌써 백 일째 그가 단壇을 쌓고 제를 지내며 하늘의 뜻을 구했다는데, 마침내 봉황이 떴다는 말은 결코 상서로운 일이 아니다. 사실일까. 그것이 분명 신의 계시일까. 누구도 본 사람이 없고, 그런 말을 처음 했을 법한 사람들은 이제 아무도 남아 있지 않으니 어찌 확인해볼 도리도 없는 일이다. 바람에 떠도는 풍문은 언제나 그렇듯 믿거나 말거나... 그저 흥미로울 뿐이다.

 

 5월말, 간간이 골짜기 안쪽에서 뻐국새가 부르는 소리만 울려올 뿐 산은 안개도 구름도 더는 보이지 않고, 온전히 발가벗은 제 몸을 드러내었다. 더는 춤을 추었다는 신들도 볼 수 없었다. 호젓한 물뿌랭이 마을의 뒷산 길을 감아 오르는 오솔길을 따라 느릿한 걸음을 하였다. 길가 옆으로 산수국이 흰색도 노란색도 아닌 연한 미소를 머금고 깔끔한 단장을 한 채 마중을 나왔다. 호두나무가 여럿이 있던 집을 지난 뒤로는 계속 오르막이다. 길이 굽어지는 자리에서 버드나무 하나가 잔바람에 천천히 몸을 흔들며 다가서고, 그 옆으로 이제 막 꽃을 틔우려는 층층나무가 하늘을 향해 욕심껏 팔을 뻗었다. 얼마를 더 가야할까. 널찍한 임도로 뻗은 길모퉁이에서 햇빛을 가린 숲길로 이어지는 이정표를 만났다. 제법 필력이 있어 보이는 모 군수郡首의 친필이 직접 뜬봉샘 가는 길을 안내하고 있었다. 제대로 온 것 같다.

 

 숲 그늘을 벗어나면서부터 어느 틈에 그림자 하나가 따라 붙었다. 아마 수종갱신을 하고 있나보다. 제 몸 하나 가릴 그늘마저도 없다. 군데군데 베어 쓰러진 나무들도 보이고, 새로이 심겨진 어린 나무들은 아직 지지대를 떼지 못하고 있다. 오른편 계곡 아래서 들릴 듯 말 듯 실개천 하나 지나는 소리가 들린다. 아마도 강태등골의 울음소리일테다. 제법 안면식이 있는 어느 단체의 안내판이 아니라면 무심히 지나쳤을 일이다. 누가 저 작은 물줄기가 금강 천리물길의 첫 줄기라고 알 수 있겠는가. 그들의 수고로움에 감사할 따름이다. 강태등골은 바로 발 아랫마을 수분리水分里의 이름을 딴 수분천으로 이어지고 다시 여러 지류들과 합하여 금강으로 이어진다고 했다.

드디어 뜬봉샘이다. 잘룩한 능선을 따라 늦은 봄빛에 비쳐든 나무들의 그림자가 신령스럽게 늘어서 있는 곳. 옴팍한 샘 하나가 비밀스럽게 감추어져 있다. 꼭 여인의 자궁 같다. 생김생김 하나씩 돌아볼수록 어찌 그리 닮았을까. 샘은 제법 큼직한 호박돌로 둥그렇게 테를 두르고 연신 마르지 않을 듯 물줄기를 솟아내고 있었다. 짐을 내려두고, 모자를 벗고 우선 한 바가지를 퍼서 목을 축였다. 달았다. 그리고 시원했다. 물 위로 비쳐든 작은 하늘과 신록의 초여름이 묻어났다. 화려해보이지도 그렇다고 초라해보이지도 않은 발원지의 모습은 물맛처럼 수수하게 보였다.

‘금강 천리물길 여기서부터’

한 가운데 궁서체로 새겨진 글귀가 제법 위엄을 갖추었다.

 

 샘이 깊은 물은 마르지 않는다고 했던가.
이 물길이 천리를 간다. 산이 높고 물이 길다는 산고수장山高水長의 고장 장수군 수분리.. 물길이 길다하여 고을 이름도 장수長水라 불리었다. 구름이 피어나고, 신들이 춤을 추고.. 마침내 하늘이 울음을 우는 날이면 산은 온몸을 드러내어 자신의 몸을 적신다. 그렇게 젖은 몸은 세상을 먹여 살릴 운명을 잉태한다. 수직의 끝이 수평으로 이어지는 삶이 시작되는 장엄한 순간이다. 수분령은 그 끝과 시작의 경계다. 하늘의 명은 엄하고, 분명하다. 거스르지 못한다. 지엄한 하늘 끝에서 내려와 한 어미의 몸을 빌었지만, 지상에서 그들의 삶은 다르다. 남으로는 섬진강이고, 서쪽으로는 금강이다. 멀지 않은 곳에 흰 구름이 피어나는 백운이 있고, 그곳에 데미샘이 있다. 섬진강은 영산강과 벗하여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르고 남해로 갈 것이다. 금강은 장수 진안 무주를 지나 지금은 충청도 땅이 되어버린 금산으로 흐를 것이다. 다시 옥천 영동 보은 공주를 거쳐 청양 부여 논산으로 갈 것이다. 서해바다가 가까워지면 충청도와 전라도를 나눌 것이다. 그 경계를 두고 서천과 군산이 놓여 있을 것이다.

천리 걸음을 하며, 금강은 백제의 시간을 흐르게 될 것이다. 백마강 위로 때 아닌 꽃잎들이 떨어질 것이고, 껍데기는 가라던 어느 시인의 절규도 담게 될 것이다. 달빛 찬 우금치 마루에서 흐르는 반역의 피도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끝은 탁류濁流가 될 것이다. 지금 내가 삼킨 이 맑은 물도 고단한 여정의 끝에서는 바닥을 알 수 없는 시커먼 만신창이의 몸이 될 것이다. 썩은 냄새가 날 것이다. 수많은 골짜기들에서 시작한 서로 다른 삶들이 하나로 모일 것이고, 이야기들이 모일수록 강은 더 소리를 잃게 될 것이다.

두어 번의 우여곡절을 겪게 될 것이다. 커다란 벽에 가로막혀 갈 길을 잃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두려워할 일은 아니다. 이미 정해진 운명을 빗겨가지 못한다. 다시 흐르게 될 것이다. 다만 낮은 곳으로 더 낮은 곳으로 흐르라는 부름대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제 힘으로 채워 넘어야만 할 것이다. 시련조차도 잠시 지친 몸을 쉬어가는 것이라 여기면 될 일이다. 인간의 욕심은 결코 하늘의 뜻을 거스르지 못하는 법法이다. 그것이 물이 가는 길이다. 나는 다만 그 길을 따라 갈 뿐이다. 그것이 운명이다.

 

 마침내 바다에 이르러서야 다시 하늘에 오르게 될 것이다. 자신을 불러들였던 지상의 중력으로부터 자유로워 질 수 있다. 땅 위에서의 모든 기억들을 바다 밑 깊은 곳에 가라앉혀 두고서 가볍게.. 가볍게만... 원래의 모습으로 하늘에 오를 수 있다. 자신의 몸에 담고 흘렀다고 해서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너무 많이 가지면 오히려 제 몸조차도 썩게 마련이다. 미련없이 내려놓아야 할 때가 올 것이다. 그 삶의 흔적들은 서해바다 너른 갯벌 위에서 드리워져 칠면초로 필 것이고, 농발게의 살을 찌우게 될 것이다. 그렇게 다른 삶이 될 것이다. 그래야 또 다른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돌고 도는 순환의 역사는 분명한 가르침을 담고 있다.

등 뒤에서 바람이 불었다. 신갈나무 맑은 녹색이 이파리사이에서 부서지는 소리가 나더니 샘 위로 비쳐들었다. 하늘빛인지 물빛인지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작은 파동이 일었다. 봉황은 어디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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