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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6월 24일 20시 13분 등록

머슬 메모리 (Muscle Memory)

1

팔 관절(엘보) 부근 보이지 않던 근육이 생긴 것을 발견했다. 얼마 전 엘리베이터 안에서 거울을 팔뚝을 비춰 보았는데 엘보와 팔뚝 사이 뼈만 앙상하게 만져지던 곳에 주먹을 꽉 쥐자 근육이 꿈틀 거렸다.

작년 10월부터 시작한 탁구 덕분이다. 근육질의 몸매를 좋아 하는 편이 아니기 때문에 아령을 든다든지 역기를 드는 위이트 트레이닝을 하지 않는 나는 운동을 해도 근육이 실감나게 보이지 않는다.

우연한 기회에 찾은 탁구장이었다. 86년 아시안게임에서 탁구가 우승을 했을 무렵부터 즐겼던 운동은 대학 졸업 때 까지 줄곳 이어졌다. 그러던 탁구가 사회생활을 시작하던 2000년부터 뚝 끊겼었다. 작년(2008) 회사 퇴직 후 목적지를 두지 않고 그냥 버스에 올라 창밖 세상을 물그러미 바라보던 그 때 탁구장이 눈에 띠었다. 별 생각 없이 탁구장 문을 열었고, 그냥 탁구 칠 수 있냐고 주인장에게 물었다. 혼자 그것도 운동하는 복장이 아닌 상태인 나를 확인 한 주인장은 별로 반갑지 않은 표정이 역력했다.

  "저기 아주머니하고 함 쳐봐요. 밤 8시는 넘어야 남자 회원들이 오니까 어쩔 수 없네요."
  "네. 고맙습니다."

나와 함께 탁구를 친 아주머니는 나이가 꽤 들어 보였다. 환갑은 족히 넘어보였다. 파머를 할 때마다 염색을 했을 법한 머릿결과 약간은 주름진 피부 그리고 조금 꾸부정한 자세에서 느낄 수 있었다. 아주머니는 젊은 남정네와 탁구를 처음 쳐보는 듯 했다.

  "저. 탁구 못쳐요. 좀 기다리면 잘치는 남자들 오니까 그 때 쳐요."
그 시간 탁구장에는 그 아주머니와 나 단 둘뿐이었다. 주인장은 저녁식사를 해야 한다며 잠시 자리를 비웠다.

  "괜찮아요. 아줌마. 저도 잘 못쳐요. 탁구 쳐본지 벌써 10년은 됐는걸요."

그러면서 탁구공이 라켓을 떠나기 시작했다. 똑딱거리며 치기 시작한 탁구. 한 20분쯤 하면 상대가 오겠지 하며 연신 아주머니 공을 받아줬다. 처음 치시는 것 같지는 않지만 운동을 시작한 나이가 워낙 오래된지라 마음처럼 공이 원하는 곳으로 보내지지 않는 분이었다.

  "잘 치시는데요. 스윙도 좋으세요. 탁구공 안 떨어뜨리고 열 번 정도 왔다 갔다 할 수 있게 치는거 이거 아무나 잘 못하잖아요."

내 말이 끝나자마자 아주머니는 굿 었던 얼굴표정이 활짝 피었다.
  "에이. 놀리지 마세요."
  "아니예요. 공을 띠우지 않고 앞으로 보내는데 어떤 사람은 몇 년 걸리기도 해요. 탁구 치신지 얼마나 되셨어요."
  "이제 6개월 됐어요. 병원에서 꾸준히 운동하래요. 그래서 시작했어요."
  "6개월 되셨는데 이정도 치시면 금방 느시겠어요."

역시 칭찬은 사람의 마음을 열리게 하는 마력이 있다. 남자회원들이 오고도 한참을 아주머니와 탁구를 즐겼다.

그날 난 탁구장 회원이 되었다. 10년 만에 다시 잡은 펜홀더. 학창시절 사용하던 라켓은 10년의 세월과 함께 어디로 자취를 감췄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을 만큼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 10년은 내 몸에 고스란히 살로 쌓였다. 62kg이던 몸무게는 78kg을 향하고 있었다. 잘록했던 허리는 허리띠를 바꿔야 하는 위기에 직면했다. 1인치만 더 는다면 모든 옷을 바꿔야 하는 궁지에 몰리기 직전이었으니 어쩌면 이런 상황은 세상이 내게 준 선물이다.

그러나 마음은 김택수인데 몸은 조형기였다.

2

역시 운동은 꾸준히 하는 것이 왕도다.
벼락치기 공부가 시험 순간만 지나면 어느새 나라가듯이 운동도 가끔 몰아쳐서는 알만 잔뜩 베인다.

새로 산 펜홀더 손잡이 옆면에 이름과 날짜를 써넣었다. 2008년 10월 23일이 선명하다. 그무렵 주인장님을 관장님으로 부르기 시작했고 라켓도 관장님께 장만해 달라고 부탁했다. 뭔놈의 러버가 그렇게 가지가지로 많은지. 10년 전 러버에 나비문신을 한 것이 최고인줄 알았던 나인지라 그냥 "네. 그렇게 해주세요." 라고 했을 뿐이다. 나무도 머리를 목탁삼아 두드려서 수박고를 때 처럼 맑은 소리가 나면 그게 최고라 여겼다. 어디서 들었던지 옆면에 나이테가 보이는데 그게 촘촘하고 일정하게 나있는 것이 좋다고 하여 관장님이 준비해주신 라켓을 보자마자 두드려보고 옆면을 확인해 보았다. 괜찮아 보였다. 관장님은 브레이드라고 하셨고 나는 끝까지 나무라고 했다. 그 나무가 내손에 오기까지의 사연이다.

"브레이드는 가벼운게 좋아. 묵직한게 좋아."
"브레이드가 뭔데요."
관장님은 잠시 뭔가를 생각하는 듯 했다. '아니 이놈이 탁구좀 쳤다고 하더만 브레이드가 뭔지도 모르네.' 하는 눈치다.
"라켓에 목판 말야."
"아! 나무요."
"그래 그게 브레이드야."
"전 당구장에서도 가장 가벼운 나무를 고르거든요. 팔에 힘이 없어서인지 묵직한 것으로 치면 공이 정확하게 맞질 않아서요."
"그래서! 가벼운거로 해달라는 거야 뭐야."
아참. 관장님도 까칠하시기는.
"가벼운걸로 해주세요."
"알았어. 가벼운걸로 가자. 그리고 얼마짜리로 할까."
"얼마짜리가 있는데요."
"싼 것부터 열라 비싼 것까지 많아."
"얼마짜리로 치면 되요."
"너무 비싼 건 돈지랄이구. 10만원 좀 넘으면 괜찮아."
"그럼 그걸로 해주세요."
"알았어. 알아서 해줄게."

이렇게 해서 나무는 골랐다. 그다음은 러버였다.
"러버는 뭐로 할까?"
이 물음은 나무를 이야기할 때 보다 더 막막했다.
"뭐로 하면 되는데요. 관장님."
"너. 정말 러버가 뭐가 있는지도 잘 모르는거냐."
"옛날에 칠 때도 그때 탁구장 주인아저씨가 알아서 해줬어요. 딱히 뭐 아는 것도 없구요."
"그래. 그럼 뭐가 좋을까? 아무리 그래도 알면서 골라야지."
"어떻게 하면 알 수 있는데요."
"며칠 게임 하는거 보니까. 주로 드라이브를 걸던데. 전에 드라이브만 배웠냐."
"아뇨. 탁구 치는게 좋아서 동네 탁구장에 죽을 때렸을 뿐 누구한테 레슨같은 거 받아본 적 없어요. 우리동네 슈퍼마켓하던 아저씨가 탁구장을 하시더라구요."
"그럼 그 드라이브는 누구한테 배웠어."
"누구한테 배운 건 아니구요. 김택수 탁구치는게 멋있어서 따라하다 보니까 폼이 이렇게 후지게 됐어요. ㅎㅎㅎ"
"김택수가 치는 스타일로 치고 싶다는 거지."
"택도 없는 얘기지만. 그래요."
"참. 꿈도 야무지다. 그래 꿈이라도 그렇게 꾸면 돼. 그럼 드라이브 전형으로 가야하니까. '오메가3'부터 붙여보자."
"네. 그런데 관장님!"
"왜. 싫으냐."
"그게 아니구요. '오메가3'부터 붙여보자고 하시면 다음엔 뭘 또 붙여야 돼는 건가요?"
역시 무식하면 용감할 수 있다.
"어. 그게 아니구. 러버가 그게 무지하게 종류가 많어. 서로 다 지 잘났다고 나온 거니까 어떤 놈이 나하고 맞는지는 좀 쳐봐야 안다는 거지. 그리고 꾸준히 치면서 힘도 붙고 자세도 좋아지다 보면 몇 가지 러버를 바꿔서 쳐봐. 누가 좋다고 해서 비싼 러버 덜컹 사지말구."

솔직히 뭔 말인지 잘 몰랐다. 하이텐션 러버라는게 있는지 처음 알았으니 말이다. 어쨌거나 그렇게 나무와 러버를 골랐다. 내일 온단다. 지금 당장 손에 들고 쳐보고 싶은 심정 굴뚝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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