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경수
- 조회 수 4292
- 댓글 수 10
- 추천 수 0
Episode #1
나의 중학생 시절은 발을 헛딛는 것으로 시작됐다. 첫 조회였던가 입학식이었을 것이다. 운동장에 전교생이 모이는 행사였다. 좁은 운동장에 북적 북적대며 줄을 맞추고, 마이크 소리가 웅웅 울렸다. 반편성고사에 대한 상장을 받는 순서였다. 난 상장을 받게 되었고 담임선생님이 학생주임이라 여러 명의 학생들 중 내가 조회 단상에 올라가게 되었다. 그때 난생 처음 단상이란데를 올라가면서 발을 헛딛는 몸 개그로 전교생을 웃기게 된 것이다. 그 순간은 창피했지만, 왠지 마음은 편했다. 어쩌면 무의식이 일부러 발을 헛딛게 했는지도 모른다.
국민학교 시절엔 공부란 것을 모르던 내가 중학교 반편성고사를 잘 보게 된 사건은 융이 유년시절 겪은 경험과 비슷하다. 국민학교 시절, 내가 살던 장위동, 번동 지역은 아직 논밭이 남아있던 서울의 북쪽 변두리였다. 친구들의 부모님들은 대게 맞벌이를 하셨기 때문에 방과 후에는 무조건 모여 골목을 누비며 놀러 다니는 것이 일이었다. 내 주변의 아이들만 그랬는지도 모르지만 학원 다니는 아이들은 거의 없었고, 공부에 신경쓰는 아이들도 별로 없었다. 초등학교 졸업식날이었다. 보통은 할머니랑 같이 잤었는데, 왠일인지 그날은 부모님과 동생과 한 방에서 잤다. 특별한 날이어서인가 밤에 잠이 잘 오지 않았고, 부모님의 대화를 엿듣게 되었다. 그때 난 아버지의 걱정을 들었다.
"저 녀석, 어쩌려고 저러지? 공부를 전혀 안하나 보네."
내가 졸업식 날 받은 상이 개근상 뿐 인 걸 두고 하는 말이었다. 다른 친구들은 뭔가 이것저것 상도 많이 받던데, 난 빠지지 않고 열심히 다닌 증거 밖에 남지 않았다. 카를 융이 간질병이 의심되어 집에 있을 때, 아버지의 대화를 엿 듯고 벼락을 맞은 듯 충격을 받은 것처럼 나또한 큰 충격을 받았다. 그 순간의 충격은 그 뒤 나의 학창시절을 규정했다. '공부를 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부모가 그걸 바라고 있지 않은가! 난 우리 동네 아이들 중에 유일하게 반편성고사 문제집을 사서 열심히 풀었다. 그 결과 조회 때 앞에 나가 상을 받게 된 것이다. 이건 나에게도 놀라운 사건이었다. 그런데 무의식이 말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부모의 기대라는 현실과의 충돌로 인해 공부를 하긴 했으나, 그것만이 내 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전교생이 보는 앞에서 발을 헛 딛은 것은 아닐까?
Episode #2
중학교 시절, 전교생을 웃긴 또 다른 에피소드가 있다. 체육대회 때였다. 동네를 누비고 다녀 가벼운 몸이었던 나는 우리반 릴레이 두 번째 선수로 뽑히게 되었다. 우리 학교는 남자반 여자반이 나누어져 있는 남녀공학이었다. 내가 2학년 9반이었는데, 8반 여자반에 나를 좋아한다는 애가 있었다. 원래 그 시절엔 누가 누구를 좋아한다는 소문만 무성한 시절 아닌가. 달리기를 기다리는데 내가 뛸 방향에 그 반 아이들이 모여서서 나를 응원하고 있었다! 무척 긴장이 되었다. 무관심한 척, 신경 안쓰는 척 했지만 그 애들이 부르는 내 이름이 자꾸 신경이 쓰였다. 출발 총소리가 들리고 첫 번째 주자가 들어왔다. 릴레이는 바통 터치가 중요하다. 잽싸게 뛰어 나가면서 바통을 잡고 앞에서 나를 응원하며 환호하는 그 애들을 쏜살같이 지나갔다. 내 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 여자반 다음에 우리반이 모여 있었는데, 우리반 애들도 소리치며 막 난리다. 그런데 어떤 놈이 주전자를 나한테 던지는게 아닌가. 난 멋지게 주전자를 뛰어넘고 계속 발이 안보이도록 뛰었다.
그렇게 1등으로 다음번 주자에게 바통을 전해주려 하는데 이게 웬일인가, 다음 주자가 손을 내저으며 바통을 안 받는 것이 아닌가? 뒤를 봤다. 아무도 따라오고 있지 않았다. 나 혼자 뛴 것이다! 누군가의 실수로 릴레이가 중단되었는데 난 그것도 모르고 반 바퀴를 혼자 전력질주를 한 것이다. 그때서야 나를 응원하는 줄 알았던 아이들이 나를 멈추게 하려고 소리를 쳤으며, 주전자를 던졌던 것임을 깨달았다. 내 머릿 속엔 모든 사람이 나를 보고 있는데 혼자 뛰고 있는 모습만 그려졌다. 그 뒤 그 릴레이가 어떻게 되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이 황당한 경험도 무의식이 나만의 독특한 면을 보여준 것이며, 더 나아가 현실에 대한 규칙을 넘어서려는 모습을 보여주고자 한 사건으로 받아들인다. 적어도 나에겐 이 코메디같은 일화가 세상에 대한 저항의 모습을 상징한다.
Episode #3
버스 안에서였다. 차가 신호에 걸려 정지해있었다. 지나가던 학생들의 얼굴을 멍하니 쳐다보며 상념에 빠졌다. 그런데 문득 이상한 질문들이 떠올랐다.(생각한 것이 아니라 떠올랐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왜 나는 저 아이가 아니라 나로 태어났지? 내가 저 아이로 태어날 수 도 있지 않았을까?' 질문은 더 나아가 '그럼 나라고 의식하는 이 나는 뭐지?' 하며 '나'라는 존재에 의문을 가지는 생각들로 나아갔다. 내 인생에 처음으로 던진 철학적인 질문이었고, 아직까지도 그 때의 놀라운 느낌을 생생히 기억한다.
유년시절 칼 융이 돌 위에 앉아 돌에게 질문을 던졌던 것처럼 나는 버스 안에서 다른 사람을 바라보며 질문을 던졌던 것이다. 융은 돌과의 대화를 통해 영원한 것과 일시적인 것의 실재를 체험했다고 하는데, 나는 이 체험을 통해 영원한 것은 모르겠으나 최소한 내가 실체가 있는 존재라는 것을 명확히 체험했다. 그 사건 뒤로도 나는 여전히 덜렁거리며 실수도 많이 하는 아이였지만, 속으로는 진지한 아이가 되었다. 밤에 혼자 깨어 어둠 속에서 상념에 빠지기도 했으며, 이해도 못하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책을 붙잡고 끝까지 읽기도 했다. 융이 그랬듯이 나의 정신이 무의식적인 출발을 한 것이었다. 중학생 이후로 난 굉장히 종교적인 사람이 되었고, 영적인 것들에 끌렸었다.
<사진/양경수>
이런 외적인 사건들과 내적인 체험들이 얽히고 설켜 지금의 내 모습을 만들었다. 돌아보면 외적인 사건, 그 자체 보다는 그것을 어떻게 내적으로 받아들였는지가 중요하다. 기존의 사회 조직에 그대로 들어가기는 하지만 내적으로는 저항하는 모습, 남과 다른 독특한 나만의 모습을 찾고자 노력하는 기질, 종교적인 것에 관심이 많고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는 성향 등이 중학교 시절의 세 가지 일화를 통해 찾은 나의 모습이다. 이러한 기질과 성향이 타고난 것인지 만들어진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이 무의식의 표현 과정을 통해 참된 나 자신의 모습을 찾아 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칼 융은 자서전 첫머리에 이렇게 썼다.
"나의 생애는 무의식의 자기실현의 역사다. 무의식에 있는 모든 것은 외부로 나타나 사건이 되려 한다."
난 이 말을 거꾸로 적용해 외부의 사건들을 관찰함으로써 나의 무의식을 엿보려고 했다. 아직 깊고 통합적으로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이런 사건들을 통해 내 안에서 무의식이 표현되었고, 그게 또 나의 개성이 되어 내 자아를 발달시켰다는 것은 알게 되었다.
융 심리학의 중심개념을 '개성화'라고 말한다. 진정한 개성을 실현한다는 뜻이다. 융은 이 '개성화'를 위해 자신의 무의식에 관심을 두고 그 뜻을 이해해야 한다고 했다. 또한 무의식에 존재하는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실천해야 '개성화'가 가능해진다고 주장했다. '개성화'는 인간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욕망이다. '자기계발', '자기실현'의 욕구라고 생각해도 좋겠다. 융은 그것을 통해 흔들리지 않는 중심에 이르게 된다고 했다. 우리 변화경영연구소에서 하고 있는 '개인사' 쓰기가 '개성화'의 좋은 방법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사'를 쓰면서 내 삶의 무의식적인 표현들을 주의 깊게 바라보게 된다면 더욱 '융'이 말한 '자기실현'에 다가서게 될 것이다. 무의식과의 대화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명확히 알 수 있는 방법이다. 그것은 내 세상을 만드는 첫 걸음이 되리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