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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7월 3일 15시 51분 등록

서른아홉 살 무렵 나는 또 하나의 사춘기를 맞이하였다.

마흔 살에 대한 두려움이 밀려 왔기 때문이다.

어떻게 될까. 무엇이 되어 있을까.

삼십대와 사십대의 차이는 어떤 것일까.

이루어 놓은 일없이 이렇게 나이만 먹는다는 다급함이 엄습 하였다.

무언가 해야 한다는 조급함이 밀려들었다.

그리고 마흔 살.

세상이 바뀌는 줄 알았다. 무언가 저절로 변화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런데,

아무런 일이 일어나질 않았다.

정말 열심히 살아야지 라는 각오로 마흔을 맞이하였지만 그때뿐.

일상은 변함이 없었다. 세상은 그대로였다. 나 자신도 그대로였다.

그렇게 마흔은 흘러갔다.

 

나이를 먹어 간다는 것이 실감이 느껴지는 현재이다.

하루하루가 빨리 지나 간다는 것이 체감이 되는 작금이다.

공공장소 또는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새파랗게 젊디젊은 남녀들을 볼 때면, 그들의 눈부신 청춘이 부럽기도 하거니와 그 아까운 시간을 잘 활용 하였으면 좋겠다는 노파심이 들기도 한다. 아마도 나 자신 그들과 같은 나이였을 때에도 나를 바라보는 어르신 분들의 시각도 동일하였으리라. 그래서 세상은 돌고 돈다고 하는 것인가.

그럼에도 이 같은 연배와는 상관없이 자신의 꿈을 꾸어 나가는 이들이 있다.

 

“석세스 일지 점검 하겠습니다. 작성 하신 분은 제출해 주세요.”

세일즈에서는 일반적인 활동뿐만 아니라 과정 점검을 할 수 있는 여러 도표와 양식을 활용하곤 한다. 일일, 주간, 월간, 분기 등의 일정표에 의거 계획 및 실천사항 등을 스스로가 기재하고 체크해 나가는 목적으로 만들어 진 것인데 비즈니스맨들이 많이 사용하는 프랭클린 다이어리가 그 예제의 하나이다. 한마디로 스스로의 목표설정에 따른 중간 점검을 통해 궁극적 달성 이라는 당면과제를 실현케 해주는 도구의 하나인 것이다.

그런데 내가 접해본 여성분들의 대다수는 이것을 기록 하는 것 자체를 부담스럽게 생각하는 경향들이 있다.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첫 번째로는 사회생활을 하는 남성들처럼 목표관념이 그렇게 뚜렷하지 않다는 데에 있다. 생계를 일차적으로 책임지지 않음에 따른 나아갈 방향이 명확하지 않기에 어떤 활동관리가 필요한지를 스스로가 자각하지 못하는 데에 따름이다. 두 번째로는 가사와 직장을 병행하는 터에 스스로의 완급 조절이 힘들다는 것이다. 즉, 남성은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직장외 계획을 스스로가 점검을 할 터인지만, 여성은 가정과 관계된 일을 책임지고 있는 부분이 있어 여러 가지 변수가 발생이 되곤 한다. 친정이나 시댁에서의 여러 대소사 혹은 아이들 학업문제 등.

 

그럼에도 돋보이는 이들이 있으니 그분이 그런 경우였다. 삐뚤삐뚤 글자가 엉망. 줄 칸도 왔다갔다. 처음에는 무슨 내용을 기재한 것인지 알아볼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마음으로 찡하게 와 닿는 것은 당사자가 열심히 써내려간 주간 활동 내역이었다. 되든 안 되든 고객을 하루에 두세 명씩 꾸준히 만나고 무언가 하고 있다는 것이 눈앞에 그려지는 것이다.

“000씨가 누구세요?”

호기심이 느껴져 호명을 했더니 장본인은 예상과 달리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어르신이었다.

“실례지만 몇 학년 몇 반 이신지?”

수줍은 듯 그녀는 대답한다.

“육학년 칠반 인데요.”

우와! 감탄사가 나온다. 그런데도 이렇게 젊은 사람 못지않게 활동을 하시다니. 덕분에 나는 애꿎게 다른 분들을 책망할 수밖에 없었다.

“000씨를 보세요. 그 연배에도 이렇게 하루의 계획을 알차게 세워 나가면서 활동을 해나가시는데 그보다 어리신 분들은 도대체……. 부끄러운 줄 아세요.”

 

세 명의 자제분들을 출가 시키고 현재는 남편과 함께 살고 있다는 그녀. 아침에는 수영장에 들려 건강을 돌본 후 10시가 되면 정시 출근을 하신다. 곱상한 외모에 무엇 하나 빠질 것 없어 보이는데 굳이 이일을 하는 이유가 무얼까.

“저는 솔직히 일을 하지 않아도 먹고살 만큼의 돈이 있어요. 큰아이가 미국에 있어 편하게 같이 살자는 말도 하고요. 그런데 굳이 자식들에게 손을 벌리고 싶지는 않아요. 시대가 바뀌기도 하였지만 많이는 아니더라도 이일을 통해서 내가 쓸 만큼의 용돈도 벌고 있으니까요. 또 손자가 유학 생활을 하고 있는데 할머니의 도리로써 학비도 조금 도와주고 싶고요.”

대단하다 싶었다. 이런 분 앞에서면 내가 오히려 작아지는 기분이다. 나이는 다만 숫자 놀음에 불과 하다지만 나도 저분 연배가 되었을 때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생각이 드는 것이다.

 

최근에 어머니가 서울에 올라 오셨다. 작은 어머니가 외국에서 사시다가 병환으로 인해 한국에 귀국한 탓에 그분을 만나기 위해 일부러 거동을 하신 것이다. 자주 왕래는 없었지만 칠십대 중반의 한 살 터울에다가 서로가 혼자인 처지이기도 하여 아마도 동병상련을 느끼시는 입장에서 무리를 하셨으리라. 거기다 중풍으로 쓰러진 후 몸도 불편하고 사람 식별도 잘못하는 터이기에 아마도 이번 방문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고 여기시어 더욱 결심을 하신 것 같다.

오랫동안 서로가 서로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골이 깊은 세월의 흔적인 주름살의 과거를 공유하고 반추하는 듯 아무런 말씀들이 없다.

그러면서 하루를 넘기고 다시 내려가실 차비를 차린다.

“서울서 저희들과 함께 사시는 건 어떠세요.”

운을 띄어본다. 점점 더 연세도 들어가고 몸이 불편 하신 터에 나의 입장에서 보면 여러 생활의 편리함이 구비되어 있는 서울에서 사시는 것이 좋다고 여겨지지만 당신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그것은 당신이 사시는 곳에는 말벗도 있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있기 때문 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내가 갓 난 아기 때부터 해오시던 일이 어느덧 생계의 밥벌이를 넘어 이제는 가장 가까운 동반자가 되었다.

비가 오든 눈이 오든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매일 자신의 일터로 출근을 한다.

홀로 자식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아등바등 몸서리쳐 하시던 일이 이제는 어느새 한 부분으로 함께 자리 잡은 것이다.

자신의 삶으로써

자신의 역사로써

자신의 생활로써

그러다보니 이제는 하루라도 일을 나가지 않는 것이 좀이 쑤시게 되었다.

아니 어쩌면 그 이상으로 자신이 세상에서 살아왔던 흔적 이었고, 이제는 그것을 넘어선 증명으로 인해 당신이 세상에 발을 디디고 살아가는 존재가 되었기 때문이리라.

 

000씨에게 올해 하반기의 목표를 여쭈었다.

“저도 젊은 사람들처럼 팀장이 되고 싶어요. 그래서 시상으로 제주도도 가고 해외도 나가고 싶어요.”

젊다. 무척이나 젊다.
눈발이 흩날리는 은빛 머리카락의 외양이 아닌 진정한 푸름인 그들 앞에 나는 부끄러움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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