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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7월 4일 10시 38분 등록

과제를 하는 동안 아이를 봐주시던 아빠가 나에게 이야기한다.
“야, 너도 정말 종알거리고 말로는 못당했는데 쟤는 너보다 더 한 것 같으니 넌 어쩔래? 난 다 키웠다.”
안방으로 사라지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며 별 생각없이 한 마디를 던진다.
“아빠, 저게 나같으면 되겠어요? 기껏해야 나같은 것만 키우지. 당연히 나보다 더해야지. 사람이 발전이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아~ 그래 니 말도 맞다.”
아빠가 호탕하게 껄껄 웃는다.


이제 만 35개월이 된 아이는 자신의 의견을 고수하는 부분이 많이 늘었다. 무언가의 이유를 대며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 시킨다. 뻔히 보이는데도 “몰라서 그랬는데.”라며 발뺌을 하기도 하며, 어린이 집에 다녀왔으니 아이스크림을 내놓으라며 전혀 연관성이 없는 사실을 인과관계인양 말하기도 한다. 때로는 “비오면 우산쓰고 나가.”라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말하기도 하며 “엄마가 했으니 엄마가 치워.”라는 제법 그럴듯한 말을 내뱉기도 한다. 아이도 자신만의 세상과 철학을 구축하기 시작했으며 지금은 우호적 관계인 가족 안에서 자신의 것들을 펼쳐 나가는 시기인 듯 하다.


아이는 나와 참 닮은 부분이 많다. 삐졌다며 컴컴한 방으로 혼자 들어가는 것이나 뭐라고 나무랄 때 머쓱하게 서 있는 부분이 어딜봐도 나와 같다. 예쁜 옷 입겠다며 옷장에서 옷을 꺼내어 갈아 입는 것도 나와 많이 닮아 있다.

그렇다고 아이가 과연 나와 같을 것인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남들이 보기에도 “딱 지 어매네” 하는 부분이 없지는 않겠지만 그녀와 나는 분명 다른 사람일 것이다. 우리는 많은 부분이 닮아 있겠지만 그렇다고 그녀와 내가 같은 사람이라는 말은 아니다. 그녀는 처음 나를 통해서 세상을 보겠지만 그녀 나름대로의 사유의 방식을 키워갈 것이다. 자신만의 좋고 싫음을 갖게 될 것이고, 세상에서 보게 된 부분을 자신의 방식으로 이해해서 자신만의 철학을 갖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우리는 때로 오류를 범한다.


러셀은 <서양의 지혜>에서 말했다.
“새로이 자라 나오는 학문 분야에 대해 너무 일찍 지나치게 엄격한 태도로 상상을 질식시키고 발명을 쓸모없게 만들어 버린다는 사실은 새로운 학문이 발생하여 성장하는 과정의 특징이기 때문이다. 새로이 발생한 학문 분야에 종래의 융통성 없는 기준에 의한 혹평을 보류하고 어느 정도 자유를 허용하는 일은 - 물론 약간의 과오를 범할 위험이야 있지만 - 학문 발생의 초기 단계에서는 발전을 촉진시키는 것이 상례이다.”

아이는 현재 자라나는 하나의 학문 분야와 같다는 생각을 한다. 이제 세상을 향해서 자신의 의견을 펼치기 시작하는 나이. 아직 어리고 세상을 잘 모르니 미숙한 부분과 말이 맞지 않는 부분 또한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그 때마다 타박을 준다면 이제 막 자라나는 여린잎과도 같은 아이는 상상을 질식당하고 자신의 발명이 쓸모 없는 것이라며 좌절해 버릴 지도 모른다.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에디슨의 일화를 보라. 그는 어린시절 달걀을 부화시키기 위해서 자신이 직접 품고 있었다. 이미 이 이야기에 익숙한 우리들은 아이가 달걀을 품고 있어도 처음은 웃으며 넘겨줄 수 있겠지만 이것이 몇날 며칠 계속된다면 말도 안되는 짓 하지마라며 그 행동을 끝내게 해버릴지도 모른다.

누가 자기 자식에게 혹평을 가하고 싶겠는가. 거의 모든 사람이 자기 자식에게 그런 평을 내리고 싶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때로 그런 혹평을 내린다. 아이들이 저마다 발전시켜 놓은 생각에 그래도 세상은 그런 것이 아니라며 말한다.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사상의 오류를 때마다 콕콕 집어내어 수정을 가하려 한다. 30년쯤 먼저 세상을 겪어본 사람으로써 자신의 생각을 지혜라는 이름으로 포장해서 아이들에게 주입하려 한다. 그것만이 오류와 과오를 범하지 않을 수 있는 길인듯 짐짓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인 근엄한 표정으로 아이의 사고를 이리저리 조립해 마치 나와 같은 복제인간을 만들어 내려 한다. 4살짜리 아이에게 서른 살이 느끼는 것들을 주입하려 하니 잘 될 리가 없고 결국은 억지로 밀어넣으려는 나와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에게서 팽팽한 긴장감마저 형성된다.

오늘도 어김없이 활동성 좋은 반바지를 입으라는 나와 예쁜 원피스를 입겠다는 아이 사에의 힘겨루기가 시작된다. 날씨가 흐리니 운동화를 신으라는 나와 토오픈 샌들을 신겠다는 실랑이가 시작된다. 원피스의 단추를 채워주고 샌들의 찍찍이를 붙여주며 속으도 생각한다. 뭐 사실 아이들이 입을 때는 치마나 반바지나 활동성이 좋기는 마찬가지이고, 샌들을 신어서 양말이 젖는다면 쿨하게 벗어버릴 테다.

아이는 현재 나와 같은 사람이 될 수 없다. 이는 우리와 부모가 같은 사람이 아니었던 것과 마찬가지이다. 아이는 기존의 것들을 제 나름대로 흡수하며 거기에 자신만의 견해와 비판을 더해 자신의 세상을 만들어 갈 것이다. 그리고 그 길은 아마도 나와 다른 양상을 띠게 될 것이다. 때론 안타까운 마음까지 들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아이가 세상을 배워 나가는 방식이다. 하나의 학문이 자리잡기까지는 많은 비판과 때로는 조롱과 비난까지 감수해야 한다. 아이 역시 그런 과정을 거치며 자리를 잡아 갈 것이다. 나는 최초의 비판자가 되고 싶지는 않다. 에디슨의 어머니가 달걀을 품고 있는 에디슨을 따뜻한 눈초리로 바라봐주었던 것처럼 그 아이의 여러 가지 시도를 즐거운 탐구의 과정의 하나로 바라봐주고 싶다.

사람은 누구나 타인의 관점을 비판하고 분석해서 내것화 시키는 과정을 겪어야 한다. 내 아이 역시 나의 생각을 비판하고 분석해서 자신만의 것을 만들어 낼 것이다. 내것을 주입해서는 결국 나와 같은 인간밖에 되지 못한다. 푸른색은 쪽빛에서 나오지만 쪽빛보다 더 푸르다. 모든 부모의 이상은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을 만들고 싶은 데 있지 않은가?

IP *.23.188.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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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04 11:04:55 *.45.10.22
사람은 누구나 타인의 관점을 비판하고 분석해서 내것화 시키는 과정을 겪어야 한다

마음에 드네 .. 우리도 모두 그러한 과정을 건너고 있는 것이겠지 
나도 빨리 아이 낳아 기르고 싶구만 ^^ 
emotic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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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늑대
2011.07.04 13:31:23 *.219.84.74
쪽빛은 파랑에서? 파랑이 쪽빛에서? 뭐 어쨌든.
부모와 아이는 그런 관계지.
나와 닮았지만 다른 존재.
나와 닮기를 바라지만 많이 다르게 커 주기를 바라는 대상.
나보다 훨씬 더 푸르고 깊은 색을 갖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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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
2011.07.04 13:54:52 *.142.255.23
요즘.. 엄마에게 가장 많이 듣고 있는 소리..

"너도 너같은 딸 낳아서 키워봐라." 라는...

참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많이 다른가봐. 예전엔 엄마랑 많이 닮았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아빠랑 많이 닮은 거 같아. 성격같은건 말이지.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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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04 14:09:55 *.198.55.104
루미는 아이를 통해 참 많은 세상을 보고 있네
전에는 나 같은 딸 낳을 까봐 애 못 낳겠다고 말했었는데,
지금은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한다는ㅋㅋ
루미도 루미와 비슷한 딸이 있어 더 많은 세상을 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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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04 14:48:49 *.124.233.1
소유를 경험해 보아야 절제를 알 수 있는 것처럼
먼저 자신의 생각을 가져보아야 비판도 할 수 있는 거겠지?
자신의 세계를 가져야 하는 것은 아이뿐만 아니라
이곳에 모여 있는 우리의 공통된 과제이기도 하네.
하은이를 통해 삼촌과 이모들이 많은 것을 배우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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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05 01:59:56 *.160.33.89
네 첫 책은 무엇에 대하여 쓰려느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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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갱
2011.07.05 09:38:31 *.216.137.129
러셀의 얘기 "...혹평을 보류하고 어느 정도 자유를 허용하는 일..." 를
통해 자연스럽게 아이를 키우는 것을 떠올리는 것은 부모의 당연한 마음이겠지.
근데 루미는 더
심해~ㅋ
마지막 단락은 사족같이 느껴진다.

우리 무엇에 대해 쓸까? 주제는? 소재는?
오리무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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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11 14:11:06 *.185.1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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