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書元
- 조회 수 1975
- 댓글 수 1
- 추천 수 0
출장 일정중 짬을 내어 어머님이 장사 하시는 곳을 오랜만에 들렸다. 함께 계시는 분과 임대를 하여 마련한 자그마한 자투리 공간. 예전 뙤약볕 아래에서 일을 하실 때 보다는 사정이 좋아졌지만 그래도 마음이 짜하기는 마찬가지다.
“무얼 드시고 싶으세요. 여름철인데 삼계탕을 드실래요 아니면 지난번에 드셨던 복지리를 드실래요.”
식당으로 인도하는 동안 어머님은 나를 힘들게 쫓아 오셔야 했다. 절뚝절뚝 발걸음에 꾸부정한 허리 그리고 반백의 하얀 머리카락. 몇 걸음 옮기다가 멈추어 서서를 반복하며 어머님을 기다리노라니 어릴 적 코흘리개 기억이 떠오른다. 그때는 내가 어머님의 등 뒤를 작은 종종 걸음을 하며 따라 다녔었는데…….
무엇하나 잘하는 것이 없이 밖에서 보다는 집에서 가만히 앉아 있는걸 즐겨했던 나에게, 책이란 매개체는 세상을 잠시라도 벗어날 수 있게 해주는 희망의 도구이자 이상향의 수단 이었다. 특히 그림이 들어가 있는 만화책 등의 종류들을 좋아 하였는데 우연히 하나의 도서를 접하게 되었다. '제임스 본드' 시리즈의 창시자인 이언 플레밍이 아들에게 들려주기 위해 집필한 동화책인 <치티치티 뱅뱅>. 주인공은 폐차 직전의 녹색 자동차로써 외양 덕분에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지만 그 안에는 놀라운 능력이 감추어져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하늘을 나는 자동차 이었던 것이다.
하늘을 나는 자동차? 정말?
야호!
이는 나의 머릿속에 나의 가슴속에 나의 밑바닥 속에 겉모습만 어른인체로 성장이 되어서도 깊이 각인이 되었었다.
누구나 마찬 가지듯 사람들에게는 어느 정도의 콤플렉스가 존재를 한다.
공포, 불안, 부적응, 열등감, 소외감, 무기력함 등.
이런 콤플렉스는 개인에게 마이너스적 영향을 줄 수도 있지만 어떻게 받아 들이냐에 따라서 동기를 부여해주는 원동력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나는 스무 살 이전까지 한정 없는 나락의 수렁에 깊이 빠져 있었다.
세 차례의 수술, 쳤다하면 떨어지는 시험에 대한 두려움, 군대를 갈 수 없는 신체 등이 나를 꽁꽁 옭아 메고 가두어 두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결심을 하였다.
언젠가는 하늘을 날아 보리라.
나는 궁금했다.
어디서든 당당하게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는 사람들이.
어떤 일이든 제가 해보겠습니다 라고 주저하지 않고 나서는 이들이.
저 사람들의 힘의 원천은 무엇이고 그것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내가 가장 부러워하는 이는 이처럼 자신감이 가득한 사람이었다.
나는 어떤 일을 해도 어설펐다. 무얼 해도 내가 이일을 잘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다. 성공적인 경험의 기억이 없었기에 더욱 그러하였다.
덕분에 새로운 환경에 부닥치고 일을 해나가노라면 그 적응에 대한 부침의 시간이 남보다 무척이나 오래 걸렸다.
그리고 기대했던 대로 성과나 반응이 나오질 않으면 그럼 그렇지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허무감과 절망감에 사로잡히곤 하였다.
그럴 때 그나마 나의 가슴속 껴져있던 심지에 불을 붙일 수 있었던 것은 이 하늘을 나는 자동차에 대한 동경을 끄집어내는 것 이었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고물 자동차 이었지만 겉으로 드러내기에 무엇 하나 보여줄 것 없었던 자동차였지만, 그를 눈여겨보았던 인연의 끈에 의해 자신의 숨겨진 능력을 주인공은 펼쳐 보일 수 있었다.
나의 가슴은 도리질 쳤었고 나의 가슴은 흥분이 되었다.
그래 나에게도 저런 하늘을 날 수 있는 탁월함의 존재가 있을 거야.
나도 남에게 인정을 받고 두발로 세상을 헤쳐 나갈 수 있는 무언가의 자질이 반드시 있을 거야.
나는 찾았다.
결사적으로 찾았다.
죽을 둥 살 둥 찾았다.
찾고 또 찾았다.
여러 길을 노크했고 두드렸다. 하지만 나약함 때문이었는지 아님 정말 나의 길이 아니었던지 끝없는 안개속의 미로를 헤맬 뿐이었다.
보이질 않았다. 낭떠러지를 걷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넘어지고 또 넘어지고 수많은 생채기를 입었다.
그럼 그렇지. 내가 무슨…….
해가 바뀌었고 또 다른 해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마흔의 발자국을 시작하는 길에서 드디어 그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기뻤다. ‘그리스인 조르바’처럼 덩실덩실 자유의 춤이라도 추고 싶었다.
내가 세상에 존재할 수 있는 가치를 심어준 그것.
그런데 정작 발견한 그 길은 아주 가까운 곳에 있었다.
외부가 아닌 내 몸 안에 있었다. 내안에 있었다.
파랑새를 찾아 멀리 머나먼 길을 헤매다온 누구처럼 수많은 시간을 돌아온 끝에 찾은 그것은 내가 이미 가지고 태어난 것이었다.
다만 그것을 깨우치지 못했던 것이었다. 다만 그것을 제대로 보질 못했던 것이다.
드디어 찾았다. 해방이었다.
그렇구나. 나에게도 이런 날 수 있는 능력이 있었구나.
나에게도 이제 당당하게 걸어 나갈 수 있는 끈이 생겼구나.
나에게는 사십대라는 나이가 두려움의 대상 이었지만 이제부터는 이것을 어떻게 하면 좀 더 가다듬고 다듬어야 하는 과제로써의 충만함으로 다가왔다.
날 수 있는 비행기를 찾았으니 이제는 나침반의 목표점을 정하고 질이 좋은 연료를 가득 채워야할 일만 남은 것이다.
꿈의 명함을 만들었다. 내가 앞으로 10년 후에 하고 싶은 일 세 가지를 기재를 하였다. 그리고 앞면에는 그렇게 나의 마음속에 깊게 봉인이 되어있던 <치티치티 뱅뱅>의 사진을 고이 드러내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하늘을 나는 자동차가 생산에 앞서 미국 교통부의 허가를 취득 했다는 기사를 보게 되었고, 이르면 내년 초부터 비행기 겸용 자동차가 미국에서는 실제로 운행될 예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게 무슨 소리람. 실제로 하늘을 나는 자동차가 상용화 된다는 말이지.
좀 더 기사를 살펴보았다.
주인공은 미국 테라푸기어(Terrafugia)사의 ‘트랜지션(Transitin)’이었다. '트랜지션'은 하늘과 지상을 오가는 비행기 겸용 자동차로 전직 미 항공우주국(NASA)출신 과학자들이 개발 끝에 완성을 하였다고 한다.
또한 이의 운전을 위해서는 자동차 운전 면허증과 경비행기 자격증을 이수한 사람이 몰 수 있고, 가격은 2억 5000만원 내외라고 기재가 되어 있었다.
남들은 그냥 공상이려니 하고 흘러 넘길 기사였지만 내 가슴은 어릴 적 그것과 처음 마주친 그날처럼 동요가 되었다.
라틴어로 ‘땅에서 탈출’ 이라는 의미를 지닌 ‘테라푸기어’사를 통해 또 하나의 꿈의 실현의 목표가 생긴 것이다.
그렇구나. 신기루가 아니고 정말로 존재 하는구나.
진짜로 날고 싶은 또 다른 욕구가 다시금 일어났다.
하늘을 나는 자동차는 나의 꿈이었고 실현이었고 희망의 하나였다.
단순한 동화책의 상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어머니는 식사를 하며 감수성 많은 막내아들의 넋두리를 묵묵히 듣고 계셨다.
때론 원망에 때론 슬픔에 때론 탄식의 나의 살아온 과거사를 뱉어 내었다.
나도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를 몰랐다.
하지만 어머니에게 알리고 싶었다.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얼마나 나에 대한 피해의식에 사로잡히고 살아왔는지 같은 가족 간에도 이해하기 힘든 이야기들을 털어내고 싶었다.
식사가 마칠 때쯤 되자 따뜻하던 국물도 이제 차가워졌다.
“나는 네가 그렇게 힘들었다는 것을 솔직히 잘 몰랐다.”
그 말에 나는 목이 멨다.
괜히 이야기를 했구나 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제 와서 이런 이야기를 한들 무엇 하냐는 후회도 밀려왔다.
하지만 나는 내가 왜 이런 이야기를 꺼내었는지 까닭의 당위성을 말하고 싶었다.
“어머니.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당신에 대한 원망도 아니고 답답함도 아닙니다. 단지 막내가 이런 힘듦이 있었지만 그런 것을 통해 서울 객지에서 그래도 열심히 묵묵하게 잘살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을 따름입니다. 누구처럼 떼돈을 버는 것은 아니지만 꿋꿋하게 잘살고 있다는 것에 대해 잘난 아들의 자긍심을 가져달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겁니다.”
후식으로 나온 매실차를 들고 이제는 일어나야할 시간이다.
다시 어머니는 일터로 나는 서울로 올라 가기위한 기차를 타야했다.
밖으로 나오니 바람이 세차게 분다. 기상 예보대로 아마도 많은 비가 내릴 것 같다.
집으로 돌아와 전화를 하였다. 의의로 어머니의 목소리는 밝았다.
걱정하지 마세요. 나는 어머니의 덕택으로 하늘을 잘날아 오를 테니까요.
그때는 어머님도 함께 동행을 하실 거죠.
꿈을 꾸었다.
마흔 살의 이륙을 필두로 실제로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타는 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