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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7월 17일 20시 46분 등록
빨래.JPG

하루의 일과를 시작하며 새 옷을 입지만 저녁이 되면 그 사용분에 따른 용량의 다함으로, 허물 벗는 꽃뱀을 닮은 양 날마다 먼지 묻은 의복을 벗어 놓는다.

그러다보면 일곱 날의 어느새 그것은 작은 동산이 되어있다.

일요일. 쉬고 싶지만 한주를 미루게 되면 다음 주가 더 힘들어 지기에 나의 땀의 산물들을 잔뜩 들고 빨래터로 나섰다.

나무 빨래판, 빨래 비누, 대야를 대동하고.

세월을 닮은 주름이 거칠게 쳐져있는 빨래판에다 양말, 속옷, 와이셔츠 등 세상의 흔적들을 비누로 문지른 후 헛둘 헛둘 구령을 외치며 밀어젖힌다.

옛날 우리네 여인들이 시어머니 구박에 한이 맺혀 그랬었던 것처럼 팔에 힘을 주고 이리 뒤집고 저리 뒤집으며.

 

어느새 이마에는 땀의 노동의 깊이가 맺혀있고

열심히 살았던 한주만큼 빨래 곳곳에 땀내와 체취가 배설작용을 하듯

시원하게 땟국물로 형상화 되어 녹아내린다.

힘이 들긴 하지만 빨래판을 문지를 때의 쾌감은 의의로 상쾌하다.

역시 빨래는 손빨래가 최고야를 외치는 동안 어느새 가지고온 그것의 무게를 헹굴 시간이다.

한번으론 되질 않는다.

때가 빠지도록 여러 번 헹구어야 한다.

몸에 배여 있는 나의 살아온 고집스러움이 쉽게 바뀌지 않는 것처럼.

 

땟물이 빠지고 새물이 나오도록 헹군 다음에는 기다란 빨랫줄이 기다리고 있다.

먼저 빨래더미와 마음을 넌다.

상처, 시기, 질투, 원망, 비판, 비난도 넌다.

살균의 효과아래 세균이 죽듯이 부정적이고 아쉬운 것들이 사라진다.

바람과 뜨거운 햇살아래 빨래는 잘 익어간다.

가을날 나무에 매달린 감이 튼실하게 영글어가듯이 말이다.

이른 계절 임에도 고추잠자리 한마리가 편히 빨랫줄에 앉아 쏟아지는 눈꺼풀과 씨름을 하고 있다.

꾸벅 꾸벅 거리며 졸고 있는 것이 아무래도 어제 과음한 눈치다.

 

빨래를 거두어 서랍에 개켜 넣을 때의 마음은 뿌듯함 자체이다.

은은하게 퍼지는 빨래 비누의 향내(?)에 마음도 개운해 진다.

보들보들 한 것이 내 마음도 펴진다.

할 때는 귀찮고 힘들지만 아무래도 빨래는 이 맛으로 하는 것 같다.

전업 주부는 아니지만.

하지만 중요한 속옷은 방안에 잘 감추어야 한다.

슈퍼맨 팬티가 적에게 노출되어서는 곤란하기 때문이다.

 

겨울이다.

반지하 월세 방에 세 들어 사는 자취생은 이 계절이 그렇게 달갑지 많은 않다.

보일러 비용의 지출이 늘어나는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빨래하는 것이 더욱 성가시기 때문이다.

뜨거운 물이 나오질 않기에 전장에 나서는 병사처럼 사전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한다.

싸늘한 기운이 몰아치는 가운데 고무장갑으로 무장을 하였다.

그럼에도 찬물에 닿은 손끝이 장난이 아니다.

그래서 보통 때처럼 충분히 물에 행구지 못한다.

차가운 겨울바람에 이내 볼이 빨개지고 손끝도 얼얼하여 입김을 불어 넣는다,

어떡하든지 빨리 끝내야 한다.

가만있어보자. 빨리 끝래(?)야 한다고 빨래라 했던가.

추우니 별생각이 다든다.

겨울에는 햇볕에 말리는 것이 힘들기에 천생 방안으로 직행해야 한다.

서둘러 했지만 완료 했다는 자족감에 방긋.

 

헹군 것을 손으로 힘차게 비틀며 물을 짰지만 부족했던지 방안 일렬종대로 늘어선 빨랫줄에 널어놓은 빨래가 방바닥으로 물방울을 흩뿌린다.

이런. 남자에게는 흘리지 말아야할 방울이 몇 가지가 있다는데 이것은 아니겠지.

무거운 빨래는 그 무게만큼 빨랫줄이 길게 늘어 쳐진다.

가벼운 빨래는 그 가벼움만큼 공간과 무게를 덜 차지한다.

내 마음은 어느 쪽일까. 황새처럼 가벼울까. 코끼리처럼 무거울까.

 

임시방편으로 대야를 받쳐 놓았다.

한밤의 적막함속에 뚝뚝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와 멀리서 들려오는 찹쌀떡 장수의 외치는 소리가 묘하게 잘 어우러진다.

그런가보다. 세상에 불협화음은 없는 듯 무엇이든 그 쓰임새와 화음이 있으리라.

언뜻 잠이 깨었다. 방바닥이 차갑다. 이런 보일러가 꺼졌나 보다.

서둘러 형광등을 켜고 빨래부터 점검한다.

출근해야 하는데 양말이 마르지 않았다.

어떡하지.

헤어 드라이기로 쬐었다.

 

이제는 세상이 바뀌어 손빨래의 노동을 대신할 세탁기가 등장을 하였다.

한 무더기의 빨래를 크게 벌린 그놈 입안에 집어넣는다.

가루 세제와 피존을 일정량만큼 집어넣고 메뉴 선택 버튼을 누르면 게임 끝.

그러면 그놈이 알아서 내가 해야 할일을 시간만큼 두드려 주고 토닥여 주고 이리 메치고 저리치고 혼자 장난질을 한다.

유리통 너머로 그놈의 짓거리를 지켜보노라면 예전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려 진다.

격세지감의 시간도 느껴지고.

 

올해 장마는 무척이나 길다.

이럴 때는 무엇보다 빨래가 더욱 신경 쓰인다.

기껏 해놓았더니 비가 오면 아무래도 말리는데 애를 먹기 때문이다.

빨래는 뭐니 뭐니 해도 뽀송뽀송 한 게 제일이다.

우리 마음의 햇살처럼.

IP *.117.112.86

프로필 이미지
우산
2011.07.20 16:25:22 *.146.26.24
볕이 좋은 날
옥상 빨랫줄에 하나 하나 집게로 집어 놓는 일..
고해성사 하듯
빨래를 널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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