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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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달을 맞아 버틀런드 러셀의 <서양의 지혜>와 <서양철학사>, 그리고 윌 듀랜트의 <철학이야기>를 읽으며 가장 놀라운 두 가지 사실을 발견했다. 하나는 서양철학사를 샅샅이 뒤져도 여성철학자를 도무지 찾을 수 없다는 것, 나머지 하나는 위대한 철학자들이 가지고 있는 어처구니 없는 여성관이었다.
러셀의 <서양철학사>에는 히파티아라는 여성 학자가 잠깐 소개된다. 히파티아는 고대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활동한 신플라톤주의의 대표적인 그리스계 여성 철학자이자 수학자다. 그녀의 명성을 널리 알려져 왕자들이나 철학자로부터 여러 차례 구혼을 받았으나 그녀는 “나는 진리와 결혼하였다”고 대답하였다 한다. 그녀는 수학자로서 유명한 것만큼이나 철학자로서도 잘 알려져 있어 ‘뮤즈 여신에게’ 또는 ‘철학자에게’라고 주소가 쓰인 편지는 당연히 그녀에게 배달되었다고 한다. 그녀의 사상은 과학적 이성주의로 당시 지배적인 그리스도 종교의 사상에 반대되는 것이기 때문에 기독교 지도자들에게는 심각한 위협으로 느껴졌다. 결국 그녀는 알렉산드리아의 총대주교였던 키릴루스에 의해 살해되었다. 그의 사주를 받은 광신자 폭도들은 대학으로 강의하러 가는 히파티아를 마차에서 끌어내 벌거벗기고 교회까지 질질 끌고가 고문해 살해하였다.
자료를 찾아보니 러셀과 듀랜트의 책에서는 언급되지 않았으나 철학사에 기억되는 여성철학자들도 다수 존재한다. 스페인의 카르멜 수녀이며 신비가인 테레사 다빌라, 독일 사회주의 혁명가인 룩셈부르크, 하이데거와 야스퍼스의 제자인 아렌트, <제2의 성>으로 유명한 프랑스 작가이자 철학자인 보봐르, 그리고 프랑스 철학자이자 사회운동가인 베이유가 바로 그들이다. 마르트 룰만이 쓴 <여성철학자>과 잉에보르크 글라히아우프가 동일한 제목으로 쓴 책에는 철학사의 뒤편에 머물러 있던 여성 철학자를 재조명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볼 때 여성 철학자가 존재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러셀이나 듀런트와 같은 남성 저자의 경우 그들의 업적을 다소 과소평가하는 면이 있지 않나 싶다.
이제 위대한 철학자들의 막무가내 여성관에 대해서 알아보자. 위대한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여자는 낮은 발달 단계에 남게 된 남자’라고 정의한다. 그는 암컷은 날 때부터 열등하며 의지가 약하고 자주적인 태도를 취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에 한 발 더 나아가 남자의 용기는 지휘에서 나타나고 여자의 용기는 복종에서 나타난다고 말한다. 참으로 놀랍지 않은가? 아리스토텔레스는 도시국가 아타르네 이오스의 참주가 된 헤르미아스의 누이동생을 자신의 부인으로 받아들였다. 그들은 행복한 결혼생활을 영위했는데 그의 유언장에는 아내에 대한 애정 어린 말이 있었다고 한다. 또 한번 놀랍지 않는가? 그의 여성관에 따르면 그는 여성을 노예로 생각했을 것 같지 않은가?
쇼펜하우어는 한 술 더 뜬다. 그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우리는 여자와 관계가 없을수록 좋다. 여자는 ‘필요악’ 조차도 못 된다. 인생은 여자가 없으면 더욱 안전하고 순조롭게 되어간다.” 그는 또한 여자에게는 중대한 일을 맡겨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여자는 재산을 관리할 능력이 없으므로 아버지, 남편, 아들의 감독을 받아야 하며 재산 소유권을 주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그는 프랑스 혁명이 원인을 루이 13세의 궁정에서 부인들이 사치와 낭비를 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염세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어머니와의 사이가 매우 좋지 않았다. 인기있는 소설가였던 그의어머니는 남편이 죽자 자유연애를 했다고 한다. 쇼펜하우어는 그런 어머니를 못마땅하게 생각했는데 어머니와의 싸움으로 그는 여성에 대한 반쪽 진리를 배우게 되었다. 이런 일화도 있었다고 한다.
괴테는 쇼펜하우어 부인이 초대할 때, 크리스티아네를 동반하여도 좋다는 것을 허락하였으므로 그녀를 좋아하였다. 그러나 괴테는 그녀에게 당신 아들은 아주 유명한 사람이 될 것이라고 말했기 때문에 난처하게 되어 버렸다. 이 어머니는 한 가족 중에 천재가 둘이 있다는 말 같은 것은 들은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마침내 논쟁은 최고도로 달하여 어머니는 아들과 말 상대자 – 괴테 - 를 층계를 밀어 떨어뜨렸다. 이때 우리의 철학자는, 당신은 나 때문에 후세에 그 이름이 알려질 것이라고 극언하였다. 쇼펜하우어는 그 뒤로 곧 바이마르를 떠났으며, 그의 어머니는 그뒤 24년 동안이나 더 살았지만 모자는 한 번도 서로 만나지 않았다. – 윌 듀런트의 <철학이야기>중에서
평생 어머니가 없었고, 아내가 없었고, 자식도 가정도 없었던 쇼펜하우어는 방이 두 개있는 하숙집에서 30년 동안 아트만이라는 개와 함께 살았다. 여성에 대한 긍정적인 경험이 전무한 그가 왜곡된 여성관을 가진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듀랜트에 의해 다윈의 아들이자 비스마르크의 동생이라 불리는 니체의 경우는 어떠한가? 니체는 여성에 대해서 항상 경멸조로 말한다. ‘남자는 여자에게 있어서 수단이다. 목적은 항상 자식이다. 그러나 여자는 남자에게 무엇일까. (중략) 가장 위험한 장난감이다.’ ‘남자는 전쟁을 위하여, 그리고 여자는 전사의 휴양을 위하여 교육되어야 한다. 그 외는 모두 어리석은 일이다.’ 사실 니체는 여성 경험이 전무하다. 그에게 여성이란 자신의 어머니와 여동생 리스베드가 뿐이었다. 러셀은 니체의 여성관을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 ‘니체의 여성관은 여느 남성의 의견과 마찬가지로 여자들에 대한 자신의 감정, 훤히 드러나는 두려움의 감정을 객관화한 결과이다.’ 니체는 여성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적대시했다는 것이다. 니체는 여성을 알지 못했고 그래서 두려웠고 경멸했던 것이다.
러셀의 <서양철학사>의 영문 제목은 ‘History of Western Philosophy’이다. 그렇다. 이것은 서양철학에 대한 남성들의 이야기, History, he-story가 아닌가? 누군가 말하지 않았나. 역사란 남자들의 이야기를 기록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올 초 만난 철학자 김용규에게 나는 저자 사인으로 ‘책은 저자의 최고이자 최선이다’라는 문구를 받았다. 스펜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그는 정신활동 최상의 소산은 그 사람이 쓴 책이라고 말한다. 나는 나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 그것은 아마 Herstory가 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사람들에게 한 명의 여자보다는 인간으로 각인되길 바란다. 그래서 나의 이야기는 미스터리한 Mystory, me-story가 될 것이다. 히파티아

쇼펜하우어의 여성에 대한 무지를 어떻게 보아야 할지 궁금해서 찾아보니 이런 글이 있더군.
쇼펜하우어가 여성을 혐오하게 된 정확한 이유는 사회에 의해 발달된 여성의 의존성향 때문이다. 의존은 쇼펜하우어에겐 해선 안되는 행위였다. 주의주의자였던 그에게 의존이라는 것은 개인의 의지의 박약을 의미하고, 주체로서 자리매김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의존이라는 것을 주의주의 사상만이 부정적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주체로서의 삶을 역설하는 쇼펜하우어에게 의존성향은 비판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여성들은 공공연하게 의존성향의 행동들을 행하고 있었고, 쇼펜하우어은 의존성향을 거리낌없이 행하는, 이용하는 여성들에 대해 혐오할 수 밖에 없게 된 것이었다.
시대적 상황, 철학사조 등을 감안해도 대학자들의 이해가 이정도 밖에 안될까하는 의문은 풀리지 않음
이사하느라고 고생했슈
숙제하느라고 수고했슈
이탈리아가서 잼있게 놀것으로 위안하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