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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7월 21일 12시 39분 등록

응애 75 - 어떤 출판 기념회

 어제 4기 연구원 선배이자 소설가인 정예서 작가의 출판기념회가 있었다. 연구원 내부 사람들이 모인 아담한 파티였다. 주인공은 이미 글 빨로 알려져 있고 스스로  글쓰기 그룹을 이끌어 가고 있다.
책이름은 <유쾌한 가족 레시피>

 
30가지의 상담으로  사람이 사는 모습을  그려놓았다. 사람들이 책을 읽고 와서 저자에게 직접 묻는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인드라망 세상에 살면서 어느 것 하나 내 얘기 아닌 것이 없고, 내 이웃의 아픔이 그대로 나의 아픔으로 다가오는 그런 세상을 우리는 그리워한다. 어느 페이지를 골라 읽던지...너와 나, 그리고 우리의 인생을 날줄과 씨줄로 엮어놓은 따뜻한 책이다.   

작가는 그의 스승에게 이 책을 헌정했다. 스승의 가르침과 격려가 없었으면 어찌 이 책이 나올 수 있었겠느냐고 울먹인다. 스승은 예의 그 사람 좋은 표정으로 제자를 안아 토닥거려 준다. 보기에 좋았다.

2차는 호프집으로 갔다. 다시 20명 넘게 모여앉아 온갖 현란한 얘기들을 꽃피우고 깔깔 웃었다. 1기부터 7기까지 모여온 연구원들은 할 말이 많았다. 이미 초고를 다 끝내고 손질 중인 문턱에 가있는 작가도 있고 주제를 어떻게 정하느냐고 묻고 또 묻는 사람도 있었다.

특히 7기는 2년 내에 책을 쓰지 않으면 수업료 천만원을 다시 토해내야 하기에 배수에 진을 친 듯 비장하다. 아니 날선 작두에 오른 기분일까? 이젠 다시 내려설 수는 없기 때문이다. 너무 과장을 한 것일까? 어쨌든 이 팽팽한 긴장감은 선배들에게도 폭력의 고고학처럼 다가왔다. 5기인 나조차도 정말 이러고 있다가는 추월을 당하고 말 것 같은 위기감에 젖어든다. 그러니 지금 이라도 발등에 불을 하나 얹어 놓고 절박 모드로 전환해야 할 것 같다.

새벽 두시 호프 집에서 나와 3차를 갔다. 2차는 작가와 같은 기수인 동료가 지갑을 크게 열었다. 장마가 끝난 뒤의 밤바람이 시원하다. 반쪽 달이 떠있고 파란 밤하늘에 나뭇잎들이 흔들거린다. 아름다운 밤이다. 이 밤에 왁작북적, 숟가락으로 맥주병 따기에도 도전해 보고 처음처럼을 흔들어 회오리 바람을 불러 일으키기도 해봤다.

르네상스 시대의 피렌체 얘기를 했다. 7기의 여름 연수는 이태리 토스카나에서 진행된다. 인간 중심의 문화가 꽃피던 그 동네에서 그렇게 찬란한 작품들이 나온 힘의 근원이 과연 어디 있었던 것일까? 분명 메디치 가문이 후원한 플라톤 아카데미도 한 역할을 충실하게 했을 것이다. 과연 우리 변경연도 10년이 지나면 무언가 그렇게 다양한 책이 탄생해서 이 무기력한 시대에 도움이 되는 문화를 꽃피울 수 있을까? 스승과 제자는 깊은 질문을 던지고 잠시
고요하게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연구원 원년에 열심히 읽기와 쓰기로 1000페이지가 넘는 책들을 매주 읽어 머리와 손가락을 단련시킨 것은 험한 길을 달리기 위한 기초 작업이었다. 삶의 태도를 바꾸려는 노력은 힘들었겠지만 저마다 자기의 역사를 다시 쓰는 변곡점이 되었을 것이다. 두 번째 해에는 혼자 견디는 힘을 기른다. 고독하게 혼자 묵묵히 걸어야 한다. 이 과정이 없으면 자기만의 생각과 자신의 힘을 끌어다 쓰지 못한다. 그런 경우에는 남의 책을 여기저기 베껴다 붙인 것에 불과한, 책이라고 말할 수 없는 책이 나올 수밖에 없단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책이 있는데 바로 책 같은 책과 책이라고 말하기에는 뭔가 좀 부족한 책이다. 두 번 다시 읽지 않게 되는 책이 바로 두 번째 책이 될 것이다. 아아, 갑자기 좀 춥고 두려워졌다.

그리고 새삼스럽게 연구원 일년 차일 때, 매주 월요일 정오 , 마감시간에 맞춰 뒤쫓아 오는 시간호랑이를 느끼며 휘몰아치는 격정으로 마구마구 칼럼을 써내려가던 그때 그 글과 그 시간들이 그리워졌다. 사실. 매주 벅차게 진행되던 그 훈련의 글들이 지금 다시 보니 정말 괜찮았던 것 같다. 마치 내 속에 있는 알지 못하는 어떤 이가 대신 써내려간 것처럼 뮤즈가 도와주었던 그 순간들.....지금은 그때처럼 글이 써지지 않는다. 한 리듬을 놓쳤더니 고삐풀린 망아지처럼 여기저기 떠도는 것같은 안타까움이 남아있다. 너무 많은 생각과 너무 많은 걱정이 나를 감싸고 방어막을 치고 있어서 두렵기도 하다. 

연구원 선배의 출판 기념회에 가는 것은 새로운 자극이 된다. 작가는 글을 쓰는 동안 힘들었던 과정을 진솔하게 말해준다. 3년도 더 걸린 작품, 몇 번이나 망설이고 또 고쳐 쓰고 ..이미 다 끝난 원고이지만 산통을 제대로 겪어 드디어 세상의 빛을 보게 된 작품. 프리 북페어에서 초대를 받은 글들도 이렇게 힘든 과정을 거쳐서 우리 앞에 나타난다. 적어도 우리 연구원들은 책상 앞에 바르게 앉아 이 책들을 읽음으로써 작가에게 대한 예의를 다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만약 내 책이 세상에 나온다면 그때 나를 아는 연구원들은 구둘장을 짊어지고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자세로 드러누워 잉크냄새 나는 새 책을 뒤적이며 언젠가 이런 글을 썼던 나를 기억해 주기를 바란다.  

꽃다발을 여럿 받은 작가가 선물로 받은 아름다운 장미 꽃다발을 내게 준다. 테두리를 국화로 장식한 이 꽃은 향기롭기까지 하다. 마치 결혼식장에서 받아온 신부의 부케처럼 내 마음에 소중하게 와 닿는다. “그래 만약 이 꽃을 받고 3개월 안에 시집을 못 간다면 그후로는 3년을 더 기다리려야 한다는 전설이 있지“... 꽃을 받아들었을 땐 몰랐는데 새벽에 집에 돌아와서 생각을 하니 그렇다. 딱 3개월, 적어도 올해가 가기 전에는 시집을 가야한다. 머리를 올려야 한다. 그래야 변경연에서는 사람다운 사람이 되고 진짜 연구원이 된다. 

지금 내 책상 앞에서 한껏 화려함을 빛내고 있는 꽃들에게 손가락을 걸고 약속을 해본다.
 "3개월 안에 어떻게든 초고를 완성해 볼게...." 라고.

오늘이 7월 21일. 마감은 10월 21일. 

이 글을 읽으시는 연구원 선 후배 여러분께서는 나를 만날 때마다 “원고는 얼마나 썼는지 ?” 꼭 물어봐 주기를 바란다. 마음 약한 사람은 그 절박한 심정을 미루어 짐작하고는 차마 물어보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호랑이가 뒤에서 쫓아올 때 가장 좋은 글을 쓸 수 있었던 때를 그리워하며 다시 인본주의 르네상스로 되돌아가고 싶은 오기 연구원은 간절히 기원한다. 올해 안에 일의 결말을 보고 싶다. 

“스트레스를  줘야... 그 다음에 한번 쩔어요.” <나는 가수다>에서 임재범이 김범수에게 해 준 말이다. 나도 스트레스 팍팍 받으며 노래를 부르고 그 다음에 한번 쩔어 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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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암
2011.07.21 13:28:15 *.244.220.253

정작가님, 어제 일찍 가서 죄송합니다. 몇날 몇일 술퍼먹고 새벽에 귀가를 해서시리...ㅜ.ㅜ
좌선생님. 참 공감가는 글이네요... 결론은 엄청 쪼이기를 원하신다는 거죠?? 암튼 건투를 빕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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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21 15:27:51 *.67.223.154
젊으신 선배님은 다 쓴 원고를 들고 문턱을 밟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진행 과정을 알리며 약을 팍팍 올려주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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뎀뵤
2011.07.21 14:51:07 *.133.220.200
그거. 제가 도와드립죠! ㅎㅎㅎ
걱정하지 마십쇼! ^-^
홧팅입니다.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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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21 15:35:11 *.67.223.154
뎀뵤야. 눈물이 나게 고맙구낭....
뭐 벌써 2집 냈고......이미 여행기를 위한 107일간 여행도  마친터이니....
어쩜 나의 첫째보다 더 빨리 그대의 세째가 세상에 나올지도  모르니...
그대의 존재감 그자체가  이미 막강 스트레써 이구만이라구라.......ㅋㅋ
그럼에도 불구하고 .... 화욜엔 또 팍팍 소리 질러줍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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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갱
2011.07.21 18:30:37 *.166.205.131
궁금했던 출판기념회 소식을 잘 전해들었습니다.
마주앉아 조곤조곤 얘기해 주시는 듯한 느낌이네요~
참 좋습니다.
선배님! 아직 땡7이들이 정신 못차릴때 어여 초고 쓰셔야죠!
땡7이들 정신차리면 큰일납니다~
(이렇게 스트레스 주는걸 원하신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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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22 10:26:43 *.113.130.40
아침 바람이 상쾌하군요.
땡 7이들이 이태리 남자에게,
그리고 이태리 여자에게 빠져있는 동안에 열쓰기 해야쥥. ㅋㅋ
지난번 수업에 좋은 사진 공들여 올려준 것 고마워요.
나도 지금 사진 올리는법을 익히고 있는중이예요. 얼른 익숙해져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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쪼아쪼아
2011.07.21 18:40:08 *.104.207.204
흐흐흑^^ .. 샘... 이리 빨리 일어나심 어쨰요 ..
요즘 바이러스는 합성이라 그 뭐냐.. H1N1 인가.. 이것도 안듣는다 하던디요 ^^
샘의 열정항체는 그 어떤 실망의 바이러스도 치료해버리고 마는 ..것도 빠른 시간내에..
막강스런 것인가본디요 ^^
고럼 .. 앞으로 웬만한 쪼임에는 끄떡없으실 것을 미리 예상해부리고..
아조.. 막강한 것으로 쪼아쪼아.. 드려야 할랑가욤 emotic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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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22 10:32:47 *.113.130.40
         에공 내 팔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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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석
2011.07.22 11:28:10 *.108.80.74
좌샘, 부케 받으신 것 축하드려요.
다짐하신 대로 3개월 내 초고완성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좌샘이 초고를 완성하면 읽어보고 구성과 내용에 대한 아이디어를 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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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22 15:19:44 *.67.223.154
감사합니다. 명석샘
우리가 너무 늦지 않게 만나야 할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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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25 11:12:20 *.45.10.22
이야... 이제 드디어 나오는건가요? ^^ 기다려집니다 벌써부터
선생님 힘내세요~
emotic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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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해
2011.07.25 22:49:30 *.113.130.40
사샤,
원 투 쓰리 포 , 그날로부터 나흘이 지나갔네.
이미 작가인 것처럼 글을 써야지...하는데 글이 쓰다.
잘 들어봐, 사샤...
글을 쓴다가 아니고 글이 쓰단말이지... ㅋㅋ 쓰디 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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쎄이
2011.07.27 17:44:58 *.91.137.63
공감되는 내용이 많아 끄덕끄덕 했습니당~
글쓰는 것도 탄성이라 팽팽할  때 써야 잘 써지는 것 같아요
결연한 의지만큼이나 이번에는 꼭 머리 올리시길!
10월 21일 저두 기다릴게욧 으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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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기 범
2011.07.28 21:41:34 *.67.223.154
쎄이야, 무지 오랫만에 세이란 이름을 보게 되는구나... ㅋㅋ
답답해서 바다 끝까지 나가 보려고 마라도 행을 목표로 집을 나섰다.
서울은 폭우에 천둥 번개에 정신이 하나도 없는데....제주는 해가 쨍쨍
그러나 제주 바당은 역시 만만치 않아, 결국 바람 때문에 결항, 가까운 가파도로 항로를 바궜지만
가파도 역시 땅에 내리지도 못하고 바로 그  배로 돌아와야 할 운명...풍랑주의보가 바로 그시간에 떨어졌지..
분명히 서울에서 떠날 때는 배가 뜬다고 듣고 갔는데도 결국 마라도는 코 앞에서  그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구나.   
벌써 5번째 시도인데.... 그 앞에서 농성이라도 해야 겨우 가 볼수 있으려나.....

결국 꿈꾸던 마라도 해물 짜장면은 서귀포 월드컵 경기장 앞에서 먹고 돌아왔단다... ㅎㅎㅎ
웬 짜장면?...난 짜장면을 아주 좋아해...
10월 21일엔 툭툭 털고 우리 세이,  짜장면 사 줄 수 있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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