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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7월 24일 12시 59분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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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 역사는 상반된 두 사람의 인물을 대비 시키곤 한다.

정몽주와 이방원이 그 예이다.

그들은 개인의 생각대로 세상을 받아 들였고 이를 행동으로 옮겼다.

 

그 시각에 대해 후대의 사람들은 이런 평가를 내어 놓는다.

그런데 그 평가가 웃기다. 한쪽은 나라를 팔아먹은 역적으로 다른 한쪽은 충신으로 묘사하고 있으니.

당사자의 신념에 의해 내린 자신의 결정일진대 우리는 쉽게 그 사람을 좋은 사람 혹은 나쁜 사람인 이분법적으로 판단을 내린다.

엄연한 당시 시대적 배경과 깊은 고뇌가 있었을 터인데.

그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우리의 판단에 대해서.

 

정몽주는 단심가를 이방원에게 바친다.

사람들이 부패할지언정 세상이 썩어갈지언정 자신은 이 현실을 버리지 않고 그 안에서 타파할 수 있는 길을 찾아보리라고 용기백배로 이야기 한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중고등 학교 시절 이 시조는 나의 가슴에 메아리쳐 왔다.

그래. 남자가 세상에 태어났으면 이정도 지조와 절개는 있어야지.

자고로 사내라는 타이틀을 안고 태어났으면 자신의 의지와 기개는 꺾지 말아야지.

나는 당연히 저자의 팬이 되었다. 그의 의지와 사고가 한마디로 딱 내 스타일 이었다.

시 한구 한구가 가슴에 되놰졌다.

저렇게 살아야지. 아무렴 폼 나게 살아야지.

방황의 시대였던 약관(弱冠)을 거치고 뜻을 세우기는커녕 나의 꿈을 찾기 위해 돌고 돌았던 이립(而立)을 지나면서도 그 사상과 정신은 변하지 않았다.

남들이 뭐라 그러든 나 혼자 깨끗하고 도도하게 살면 돼.

오해도 받았다.

혼자만의 객기도 부렸다.

세상이 하얀색과 검정색으로 되어 있는 것만이 아닌데도 나는 한쪽을 고집 하였다.

 

이방원은 하여가를 통해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한 혁명가를 자처하였고 이에 동조키 위한 시를 그에게 한수 바친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어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서 백 년까지 누리리라

 

대리 직급 시절. 부서 상사 중에 정말 무척이나 싫어하는 한사람이 있었다.

그는 나에 대해 사사건건 시비를 걸었다. 원래 성격이 꼼꼼한 탓도 있었지만 내가 올리는 기안 내역과 보고사항에 대해 작은 토씨 하나라도 트집을 잡았다.

넘어갈 수 있는 상황 임에도 이해가 되질 않았다.

거기다 윗분들을 향한 아부와 허세는 타의추종을 불허 하였다.

나하고는 맞지 않는 스타일 이었다.

나는 결심 하였다.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 내가 저 직급이 되어서는 아랫사람에게 베풀며 살아야지.

시간이 흘렀고 사람도 바뀌었다. 그 사람은 퇴사를 하였고 내가 이제 그와 같은 나이가 되고 같은 직급이 되었다.

동병상련 이라고 했던가. 그 위치가 되니 그가 하였던 행동이 조금씩 눈에 들어오고 공감이 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싫어했던 그처럼 되고 있다는 나 자신의 모습에 깜짝 놀랐지만 이런 생각도 잠시뿐.

이내 현실에 매몰되어 갔다.

내가 변해가고 있는 것에 대해 사람들은 현실에 적응하고 있다고 이야기를 하였다.

하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다.

목구멍이 포도청 이었다. 그랬다.

직장에 목을 매는 샐러리맨으로써 현실에 순응할 수밖에 없는 기업이라는 톱니바퀴의 부속품으로써 돌아가는 나는 하나의 작은 부분일 뿐이었다.

거기에 어떤 이상이 있으랴. 거기에 어떤 가치가 있으랴.

오로지 내 자리를 보존하고 유지하는 것만도 버거운데 언제 남을 챙겨주고 배려해 주겠나. 나 혼자 살기에도 팍팍한 세상.

그랬다. 그렇게 싫어했던 그 사람을 나는 어느새 닮아가고 있었다.

이런 나를 밑에 직원은 어떻게 볼까. 그들은 나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혹시나 그때 내가 느꼈던 시각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이 아닐까.

허탈함이 느껴진다. 이게 세상이구나. 이게 순환의 법칙이구나.

점차 나의 신조는 굵고 짧게 살자는 것에서 가늘고 길게 살자는 모토로 바뀌어져 갔다.

하지만 이 말이 싫지가 않았다.

부끄러운 것도 없었다. 남들도 다 그렇게 살아가고 있기에.

그러면서 나를 곱씹는 그대들에게 한마디를 건네었다.

‘너도 내 나이 되어봐. 사람 사는 게 다똑같지.’

하지만 마음 한구석이 씁쓰레하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건지.

 

회식 자리가 그러하듯 모두가 자신 의견의 토로에 정신이 없다.

쌓여왔던 일상의 근심과 업무 스트레스를 한방에 날려 버리기 위해 소리를 있는 대로 지르며 이 순간만큼은 시름을 잊어버리고 몰입을 한다.

집안의 가장이자 아이의 아버지이자 애지중지하는 아들로써의 역할을 묵묵히 수행해 나가는 그들.

상사들과 세상을 회자거리로써 잘근 잘근 씹으며 내장 끝까지 소화를 시키다가, 한잔 두 잔의 쓰디쓴 술을 통해 대뇌에 몽롱한 알코올의 기운을 전달한다.

시간이 익어가는 파장 무렵 마지막 안주 하나가 나왔다.

 

술이 깨었다.

“요놈 봐라.”

모습과 포스 자체가 범상치 않았다.

생명이 끊긴 상황에서도 그 늠름한 자태는 절벽의 한그루 자리를 지키고 있는 낙락장송(落落長松)이 연상 되었다.

요리사의 퍼포먼스일까. 아니면 마지막 한순간까지 자신의 고귀한 절개를 버리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쳤던 마지막 상징의 흔적일까.

뜨거운 물에 자신의 살을 묻어가면서 모진 목숨 한 가닥의 숨을 쉬어 가면서 그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평화로운 세상에서 혼탁한 사바세계로 넘어와 인간이라는 족속의 먹을거리로 전락을 하게 되었을 때 그는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

자신의 가족을 찾았을 것이고 자신의 고향을 애타게 그리워했을 것이다.

자신의 팔자를 욕하고 자신의 더러운 운명을 한탄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왜 이런 모습으로 우리들에게 등장을 하였을까.

어떤 메시지를 남기기 위함 이었을까.

 

쉽사리 그놈에게 손이 가질 않았다.

“먹을 테면 먹어봐.” 라고 외치는 그놈의 사자후(獅子吼)에 주눅이 들어갔다.

그러던 차 주인장이 가위를 들고 와 그놈의 다리를 댕강 댕강 잘라 버렸다.

하지만 그놈의 우리를 바라보는 눈초리는 여전히 변함이 없다.

세상에 대한 삶에 대한 저주와 비난 보다는 오직 의연함으로써 끝까지 자신을 지켜보는 외부의 세계에 대해 대처하고 있었다.

부끄러웠다. 나도 저런 기백으로 살았던 때가 있었는데. 나도 한때는 저렇게 당당할 때가 있었는데.

그러면서도 배가 고파왔다. 갑자기 묵직한 그놈 대가리를 잘근잘근 씹고 싶었다. 그리고 끝이 났다.

그런데 웬일일까.

정몽주의 꿈을 꾸던 청년이 이제는 이방원으로 변신해 가고 있는 중년의 입장에서 한편으로는 서글프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현실에 맞추어 살게 됨을 위안으로 삼게 되는 것은.

그놈은 지금도 나의 뱃속에서 무슨 말을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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