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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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안에서 전혀 모르는 사람끼리 아무 말 없이 앉아 있다. 목적지에 도달하기까지 아무 말 없이 가는 때도 있다. 서로 가진 것을 빼앗기지나 않을까 경계하면서 자기의 물건을 지키기 위하여 좀처럼 자리를 뜨지 못한다. 이런 세계가 닫힌 세계이다. 서로 마음을 닫고 사람을 적대시 하는 상황이다. 서로 믿지 못하고 서로 의심하고 서로 경계하느라 긴장한다. 눈감으면 코 베어가는 세상이요, 이런 사회는 홉스가 말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의 장소일 뿐이다.
나는 지난 2박 3일간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의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에 다녀왔다. 프로그램 진행 장소는 충남 당진이었다. 찾아가는 길에 나는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될지 궁금했다.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라는 타이틀을 생각하고 나를 대입하여 보면서 그것을 스스로 찾아오는 사람들의 이미지를 생각해보았다.
아마도 거기를 찾아 오는 이들은 외부로 향하든, 내부로 향하든 삶이라는 무대에서 알게 모르게 상처 받은 이들일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처받지 않고서야 약국 찾을 일이 없지 않은가.
모두 6명이 참석했다. 첫날은 경계하고, 긴장한 가운데 말과 행동이 조심스러웠다.
첫날 분위기에서 스스로를 가만히 살피니 조수설화의 내용이 생각났다.
옛날에 큰 메기가 바다 속에 있는 굴에 살았다. 이 메기가 굴에서 나오면 바닷물이 굴 속으로 들어가 썰물이 생기고, 반대로 메기가 굴로 들어가면 굴 속에 들어갔던 물이 도로 나와서 밀물이 생긴다. 메기가 때때로 몸부림을 칠 때면 바다에 큰 해일이 일어나게 된다.
내 마음도 그러했다. '자기방어'라는 내적 기제가 마음 속 동굴을 들고 날 때마다 관계에 대한 조응은 밀물처럼 밀려왔다가 썰물처럼 빠지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이런 밀물과 썰물의 작용은 달이 당기는 인력(引力)에 따른 변화이듯이 우리는 서로의 인력 작용에 따라 조금씩 보여 주면서 닫힌 마음을 열었고, 서로를 조금씩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첫날의 만남은 6개의 세상이 따로따로 놓여져 있었다.
하룻밤을 자고 나니 어제의 상호간의 인력이 경계를 많이 누그러뜨린듯하다. 호칭의 변화와 표정의 변화에서 섞임을 느낄 수 있었다. 배고픔과 공통의 고민인 숙제를 통해서 우리 사이에 공감이라는 울타리가 생겼다. 하지만 시간의 흐름이 편안함만을 선물하지는 않았다.
고민이 깊어지고, 서로를 통한 느낌이 각자의 안에서 충돌을 일으키기도 했다. 외적으로는 수업이 거부되기도 했고, 내적으로는 더 이상 무엇인가를 받아들일 수 없는 거부감이 머리와 몸의 통증을 만들기도 했다. 갑자기 지난 시간의 삶이 경사진 길에 쏟아진 드럼통처럼 무리 지어 굴러오는 것 같은 느낌, 그러면서도 혼자 힘으로 어쩌지 못하는 당혹감 같은 것이 우리 각자를 엄습하는 것 같기도 했다. 내가 짐작하기는 이런 것들이 아마도 우리를 실존하게 하는 시작의 징후들인 것 같다.
"실존(existence)은 어의만으로 보면 ‘실제로 존재함’을 의미합니다. 대부분의 신학자가 이런 뜻으로 사용하고 있지요. 그러나 키르케고르 이후 하이데거, 아스퍼스, 사르트르 같은 20세기 실존주의자들은 실존이라는 용어를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결단함으로써 의미 있게 산다’라는 특별한 의미로 간략해서 사용했습니다. 예컨데 하이데거는 ‘기획투사(entwurf)’함으로써, 사르트르는 ‘앙가주망(engagement)’함으로써 인간은 실존한다고 했지요. 기획투사는 자신의 ‘존재가능성’을 향해 그 자신을 던진다는 의미이고, 앙가주망은 역사적, 사회적 현실에 제 스스로를 잡아매는 것을 뜻합니다. 이로써만 인간은 무의미하고 권태로운 자신의 삶을 의미 있게 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김용규 <서양문명을 읽는 코드 신> 179페이지
이렇듯 우리는 둘째 날 하이데거가 말한 기획투사를, 사르트르가 말한 앙가주망의 한 자락을 붙잡고 씨름했다. 자신의 가치관을 정리하여 버릴 수 없는 한가지를 확인했고, 지난 과거를 돌아보고 분석해봄으로써 스스로 선택하는 미래를 만들었다. 우리는 타임라인 위에 미래의 의미를 적당히 배치했고, 그것을 바탕으로 '먼저 달려가보는' 미래의 풍광을 마음 속에 그렸다.
충돌과 화합이 병존했던 둘째 날이 그렇게 지나갔다.
마지막 날의 해가 떴다. 어제 저녁은 과일로 제법 넉넉한 식사를 했지만 밥과 국에 대한 기대감은 배고픔을 간절하게 했다. 먹는 것은 별것 아닐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전부일 수도 있는 아이러니한 느낌을 단식을 통해 어렴풋이 느껴봤다. 잘 먹는다는 것에 대해서 나름대로 정의 내리고 실천해 볼 수 있을 듯했다.
우리는 이틀간 쉼 없이 사유했다. 자신에 대해서, 가능성에 대해서,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 고민하고 정리했다. 스승을 통해서 배웠고, 서로를 통해서 배웠다. 같이 배웠으니 동문이 되었고, 우리는 벗이 되었다. '꿈 벗'이라는 의미 안으로 서로가 들어와 있음을 마지막 날 느낄 수 있었다.
각자의 미래의 풍광이 영화 속 장면처럼 멋지게 그려졌다. 그곳에는 웃음과 희망이 있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3일째 밀려오는 누적된 힘이 지난 삶의 부비트랩을 밟아 누군가의 가슴에서 멈춰지지 않는 울음을 터트리게 했고, 우리는 그 울음을 따라 마지막까지 숨겨두었던 각자의 깊은 일면을 들킨 것처럼 같이 울었다.
우리의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은 완성되지 않았다. 아마도 완성의 기쁨은 영원히 없을지 모른다. 이렇게 여행은 웃고 울고 서로 다독이며 걸어가는 영원한 진행형의 과제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우리의 34기 모임은 완성되지 않은 상징성을 남기고 피날레를 했다.
누군가 그랬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괴로운 사람과 괴롭지 않은 사람.
돌아 오는 길, 나는 그 말이 조금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괴로운 사람과 그저 괴로움을 들키지 않으려고 애쓰는 사람. 우리는 다른 듯하지만 깊은 곳을 드려다 보면 너무나 비슷하다.
닫힌 사회,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과 같은 세상에서 열린 마음을 갖게 될 땐 어떤 후련함 같은 위안을 느낀다. 이해관계로 얽히고 설켜 있어 상처를 주고 받을까 염려하지 않고 담담하고 담백하게 서로의 인생을 지켜보며 격려하는 그런 만남, 그 열린 마음의 끝에 오래된 친구처럼 '꿈벗'이 있고, 연구원 동기들이 있다. 함께 있어서 행복하다. 그리고 참으로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