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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던가. 얼마나 많은 사람이 밟고 올라갔던가. 그래도 계단은 내어주는 마음 받쳐주는 마음으로 그 세월의 풍상을 지나왔다.
때론 깨어지고 부서짐에도 도무지 아무런 말도 없이.
계단은 단지 올라가야 하는 곳으로 인식될 뿐만 아니라 쉬어가는 장소라고도 인식이 되면 좋겠다.
가파르게 넘어야할 산이 아닌 힘들면 잠시 앉아서 담소를 나눌 수도 있는 공간으로서의 역할로 말이다.
때론 친구처럼 때론 연인처럼 어깨동무를 하고 앉아 지친 어깨를 잠시 기대며 숨을 고르며 또 다른 앞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벤치와 같은 역할.
아침 출근길 지하철역에는 매번 선택의 기회를 부여하는 두 가지의 존재가 놓여있다.
문명의 이기인 에스컬레이터와 일상의 노고를 짐작케 하는 가파른 높이를 자랑하는 계단.
망설여진다. 오늘은 어느 것을 이용을 하지.
간밤의 숙취가 가시지 않은 터라 에스컬레이터의 안락함이 당연지사 먼저 떠오른다.
그냥 편하게 가면 되지. 속도도 빠르잖아. 무어 그리 힘들게 올라갈 필요가 있어.
한편에는 도시인의 운동 부족이라는 문구가 나를 잡아끈다.
그래 오늘은 계단이야.
한발 두발 걸음을 옮긴다. 헉헉 거리는 와중에 옆에 이십대 새파랗게 젊은 놈은 무엇을 처먹었는지 두세 계단씩 한꺼번에 시간을 넘나든다. 이런 시팔. 남은 힘들어 죽겠는데 유세를 떠는 것도 아니고. 괜한 심술이 난다. 너도 내 나이 되어봐.
부럽기도 하지만 나도 한때는 00동 날다람뒤 라는 애칭에 자족을 하며 또 다른 발을 옮긴다.
체력이 떨어져서인지 나이의 횟수만큼 발걸음이 무거워 져서인지 땀이 나고 숨이 자연히 헐떡여 진다.
그러면서 삶은 이맛이야 라고 애써 자위하며 역시 한 계단 한 계단을 자신의 두발로 올라가는 동안 무언가의 희열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 감정도 잠시. 옆에 무어 그리 아침부터 기분이 좋은지 낄낄대며 올라가는 연인들의 재잘거림에 또다시 시간의 화살이 꽂힌다.
괜히 오른다고 해서 이 고생을 하다니.
하필 이쪽 환승 노선 계단은 왜이리 높은 거야.
순간의 선택이 몇 년을 좌우한다고 그랬나.
그래도 어쨌든 한번 올랐으면 끝을 보아야지.
기운을 낸다. 마음을 다잡는다. 용을 쓴다. 마지막 에너지를 쏟아 붓는다.
고지가 얼마 안 남았어. 아자~
학창시절 100m 달리기를 한 그때의 추억처럼 올라와서 마지막 숨을 헐떡인다.
그리고 정상에서의 계단을 내려 본다.
상쾌함. 짜릿함. 그래도 아직은 쌩쌩한 나의 두 다리가 자랑스럽게 느껴진다.
역시 계단을 오르길 잘했어.
하지만 이 선택의 실랑이는 아침마다 계속 되풀이 된다.
빠른 스피드의 문명의 이기. 편하다.
아날로그의 세월의 이기. 힘들다.
그럼에도 누군가 올랐을 이 시간의 롤러코스트를 오늘도 나는 이용을 한다.
씩씩함을 자랑하고 뿌듯함을 내세우며 두발로의 쾌감을 오늘도 나는 질주를 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올라가는 것을 넘어선 누군가를 받쳐주는 존재가 되길 희망을 해본다.
화이트칼라 남정네의 구둣발이 커다랗게 찍힌다.
한껏 멋을낸 미니스커트 아리따운 아가씨의 아찔한 킬 힐의 한방에 새파란 멍울이 든다.
아장아장 이제 세상을 시작하는 아기의 걸음은 한껏 편안하다.
새 생명의 잉태를 앞둔 산모의 발걸음은 또 다른 순환 고리의 삶의 무게를 인지해 준다.
기분 좋게 막걸리를 걸친 갈지자의 아저씨의 운동화는 노년 인생의 쓴맛을 느끼게 한다.
도시를 떠나 산을 오르는 등산화의 여운은 나를 또 다른 상쾌함으로 인도를 한다.
그리고 시골 봇짐을 메고 이제는 아득한 세월 속으로 사라진 흰색 고무신의 여운의 무게는 오래전 그때의 과거를 회상케 한다.
누군가 밞고 올라갔을 앞으로도 수많은 이가 디디고 올라갈 이제는 누군가에게 빌려 주어도 될 그런 받쳐주는 계단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