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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7월 31일 18시 03분 등록

3. 망원경 對 현미경

 

사십 줄에 접어드니 갑자기 뱃살이 나오기 시작한다. 희한하다. 다른 데는 살이 찌지 않고 임산부처럼 배만 불러오니. 이러다 올챙이배처럼 되는 게 아닐까.

주말 날도 좋은데 오랜만에 산에 올라가 봐야 되겠다. 지난번 사둔 등산화도 한번 볕을 쪼일 겸.

 

오르막길이 초입부터 시작된다. 헉헉. 벌써 호흡이 가빠온다. 흥건히 땀이 고이고. 그러게 와이프 이야기대로 평소에 체력관리를 해둘걸. 하지만 살기도 바쁜데 운동할 시간이 좀체 있어야지. 비 오듯 쏟아지는 땀을 닦아내기 위해 중턱에서 잠깐 쉬는 동안 앞서 자리한 두 아줌마의 도란도란 대화가 귀에 들어왔다.

“똘똘이 엄마. 이번에 옥수수 싸게 샀다면서요?”

옥수수라? 그렇지. 지금이 제철이지. 알싸한 알맹이 속살의 이미지가 떠오르는 가운데 상대방은 자랑스럽게 대답을 이어간다.

“두말을 한말 값에 샀지 뭐예요.”

무슨 비밀이라도 되는 양 남들에게 이야기 하지 말라며 은밀히 화답을 하자 질문을 했던 분은 무척이나 부러운 모양이다.

“거기가 어디예요. 나도 좀 알려줘요.”

갑자기 입안에 침이 고인다. 그런데 이 풍광 좋은 곳까지 와서 꼭 저런 사소한(?) 옥수수 이야기를 해야 하나. 다른 주제도 많은데.

 

겨우 정상에 다다랐다. 역시 산은 꼭대기까지 올라야 제 맛이지. 위에서는 먼저 도착한 남성분들이 야호 메들리를 합창하고 있다.

“야호~”

남자는 자신의 기세를 멀리 멀리 실어 보내 날린다. 야수의 본능이 발동한 것일까. 먹이 사냥을 끝내고 포효하는 사자처럼 승리의 자축연을 벌리는 가운데 지긋한 두 명의 남성분이 앉아 담소를 나눈다.

“오늘 신문 일면 봤어? 스티브 잡스 한명 때문에 우리나라 IT 산업이 휘청거린다는 것.”

삼성전자, LG 디스플레이 등 한국 대표 기업들이 올해 2분기 영업이익이 적자까지 나는 상황에서도 애플은 아이폰, 아이패드 등 제품을 내세워 최대실적을 경신하고 있다는 내용 이었다. 말을 들은 상대방은 덩달아 흥분된 모습이다.

“이게 말이되. 나 참, 그러게 똑똑한 인재 한명이 몇 만 명을 먹여 살린다는 말도 있잖아. 내가 누누이 이야기 했지만 우리나라 현재의 입시제도 가지고는 국제 사회에서 게임이 안 된다니까. 창의는 무슨 얼어 죽을 창의.”

경제로부터 시작된 화두는 어느새 교육 전반의 정책에 관한 내용까지 확대되어 입에 거품을 무신다.

그렇지. 누구처럼 옥수수 이야기나 주고받는 것 보다는 거시적인 안목을 가지고 자라나는 청소년과 이 나라 비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야지. 왠지 모를 뿌듯함이 느껴지는 가운데 어깨에 자연히 힘이 들어간다. 꼴에 나도 남자라고.

 

1. 망원경으로 보는 남자

거시적, 장기적, 이상적 이런 단어의 표현을 남자들은 좋아한다. 그래서인가 그들은 대체로 눈앞에 닥쳐있는 현실 보다는 멀리 있는 잡히지 않는 꿈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덕분에 현실에 만족하기 보다는 무언가 벌어지지 않은 색다른 일을 벌이기를 원한다. 시험 삼아 주말 과천을 가보라. 한 번의 말에 대한 배팅으로써 대박의 몫을 챙기려는 핏빛어린 눈망울들이 가득하다. 도박장은 어떠한가. 한번 내손에 걸리기만 하면 우후후~

 

“이번엔 무슨 일이야? 내가 못살아. 한두 살 먹은 애도 아니고.”

이 땅의 남자들은 마눌 님에게 이런 잔소리 한두 번씩은 들어보며 살았을 것이다. 여자들은 남자들이 벌이는 행위에 대해 좀체 이해하지를 못한다. 현재 일에 몰입을 해도 시원찮을 판에 왜 저런 행동들을 하는지. 하지만 이에 대한 남자들의 대답은 짜고 치는 고스톱인양 일맥상통하다.

“내가 혼자 잘살려고 이랬겠냐. 처자식 먹여 살리다 보니 일이 이지경이 된 거지. 아닌 말로 그럼 내가 살림 살고 그냥 가만히 집에 들어앉아 있어볼까. 나도 남들 보기에 번듯한 사업 하나 해봐야 될 거 아니야. 이번에 정말 좋은 건수가 들어왔으니 나를 믿고 딱 한 번만 돈을 융통 해봐. 지난번 처남이 투자한 주식 종목이 상한가를 쳐서 짭짤한 수입을 얻었다고 하니 그쪽에 이야기를 해주던가.”

“내가 미쳐 미쳐. 제발 지금 하는 것이라도 잘해. 다른 일벌이지 말고. 아니면 그냥 가만이나 있던지. 도대체 이게 몇 번째야.”

그렇다. 남자는 자신의 개인적 안위보다는 오로지 처자식을 우선적으로 생각한다. 그런 내 마음을 몰라주니 답답할 노릇이다. 열이 받은 남자는 대문을 세차게 닫고 나가 담배 하나를 피워 물다 말고 친구를 호출해 술로서 화를 푼다.

“도대체 여자들은 멀리 보지를 못한다 말이야. 지금 하고 있는 일은 별로 비전이 없는걸 왜 모른담. 그래서 내가 알아보니까 이번에 아이템이 기가 막힌 게 나왔지 뭐야. 그것도 모르고 바가지만 박박 긁어대니. 어떤 여편네는 남자 사업한다고 하면 처가에 돈을 긁어 주기도 하더니만. 하여튼…….”

죽이 잘 맞는 친구 분은 부창부수 맞장구의 역할을 열심히 해댄다. 그러다 다시 단순한 남자들은 금세 그 상황을 잊어버리고, 금번 갑작스러운 수해에 대한 피해를 안주로 삼아 서울특별시의 안전 불감증과 시장에 대해 성토를 한다.

얼마나 자랑스러운가. 자신의 안위 보다는 오로지 나라 걱정이 우선이니.

 

업무 관계로 첫 기차를 타기위해 이른 새벽 서울역에 도착했을 때, 노숙자 두 사람이 술에 취한 상태에서도 신문을 펴놓고 대화를 나누는 것을 보고 이 같은 남자들의 속성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 정치가 말이야. 꺽~. 이 나라의 미래를 보며 해야지. 꺽~”

그렇다. 이것이 남자의 본능인 것이다.

마트에서 하나를 더준다고 하여 사소한 일에 목숨 거는 여자들하곤 차원이 다른.

 

2. 현미경으로 보는 여자

그래 나는 쪼잔 하고 속 좁은 여자다. 그래서 어쩔래. 말이야 바른 말이지. 남자인 당신들이 여자들에게 해준 게 뭐가 있어. 맨날 사고만치는 통에 그 뒤를 따라 다니며 뒤치다꺼리 하는 우리들은 이제 넌덜머리가 나. 겉만 번지르르한 당신들이 일을 벌여서 해놓은게 뭐가 있냐고. 한번 따져 볼까. 올림픽 나가서 금메달 따는 효자 종목만 보더라도 양궁, 하키, 핸드볼, 스케이트 다 여자들 아냐. 서울 대학교, 사법시험 수석 졸업생도 그렇고. 당신들이 그렇게 거시적으로 떠드는 지구 온난화를 들먹여 볼까. 다 남자들이 신나게 전쟁 해놓고 안 좋은 공장 짓고 해서 그렇게 된 것 아냐.

 

그래. 나는 멀리 못 본다. 그 대신 남자들 족속과는 다르게 현실 앞가림은 잘하고 산다고.

당신이 그 잘난 입으로 나라 경제 들먹일 때 나는 애들 등록금 걱정해. 당신 00이가 학원비 얼마 들어가는 것 알고나 있어.

당신이 비즈니스라는 명목으로 술집에 돈을 덤터기로 안길 때 나는 두부 한모, 파 한 단 살 떨리게 시장가서 치열하게 흥정하고 푼돈 모아 놓아.

당신이 일요일이면 할 일없이 방바닥에 퍼질러 누워 리모컨 운동할 때 나는 그 시간에 뭐하는 줄 알아. 세일 시간 맞춰 마트 가서 옆집 아줌마와 치열하게 싸워가며 1+1 상품을 확보해.

당신이 하루 한 갑피는 담배 줄이면 얼마나 절약이 되는 줄 알아. 나도 누구처럼 미장원 가서 비싼 거 하고 싶지만 굳이 잘 펴지지 않는 아줌마 파마 하는 이유를 알고나 있는지.

당신이 해외 출장 가서 우리 아버지 준다고 양주 사와서 유세 떨 때 나는 시어머님 다달이 용돈 챙겨주고 있었어. 그런 이야기를 왜 안하느냐고. 치사해서 그런다.

그리고 올해 여름휴가 때 어머님, 아버님 해외여행 가시고 싶어 하는데 경비는 어떻게 할 거야. 뭐라고? 회사가 어렵다고. 나는 그 잘난 월급에서 푼돈 모아 용돈 드릴 것 이미 만들어 놓았어.

 

세상은 당신들처럼 어쭙잖게 멀리 본다고 자랑하는 남정네들 보다는 가까운 현실을 세세하게 볼 수 있는 우리가 만들고 있어.

IMF때 나라가 어렵다고 모두가 야단할 때 당신은 뭐했어. 어떻게 우리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았냐고 한풀이 하며 나가서 술만 퍼마셨지. 우리는 그때 금모으기 운동을 벌였어. 아깝지만 시집올 때 패물로 해온 것들을 장롱에서 꺼내 다 팔았다고. 덕분에 다른 나라들로부터 대한민국의 저력에 대해 찬사를 받았다는 거 당신도 알지.

이번 평창 올림픽 개최지 선정도 보라고. 자랑스러운 우리 두 여성들이 프레젠테이션을 정말 멋들어지게 해서 그나마 삼수 도전 끝에 결정이 된 거 아냐.

그리고 광우병 파동날 때 누가 맨 앞에 섰어. 바로 우리들이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이까지 담보로 하여 거리에 나섰다고.

이상, 꿈 다좋아. 하지만 어떤 게 우선순위인지 자문자답을 해보라고. 핏대 올리며 보이지 않는 신기루에 대해 열변을 토하기 전에 당신 앞에 놓인 당면과제나 먼저 해결하란 말이야.

 

자고로 세 명의 여자들 말을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고 했어.

세 명의 여자가 누구냐고?

어머니, 와이프, 내비게이션이야.

우리가 애기 안 나으면 어떡할 거야. 그렇게 거품 물고 떠드는 미래의 희망도 없다고.

자유 시장 경제에서 소비 물가 지수의 키팩터(key factor)가 누구야. 우리들 아니야.

우리가 허리띠 졸라매고 가정을 긴축 모드로 돌입하면 당신들이 그래프 그리며 고민하는 내수시장이 회복이 되질 않는다고.

알아 몰라. 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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