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칼럼

연구원들이

  • 강훈
  • 조회 수 2125
  • 댓글 수 5
  • 추천 수 0
2011년 7월 31일 23시 18분 등록

당신은 현재 '처벌이 학습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모의실험에 <교사>역할을 수행하기 위하여 조그마한 방에 앉아 있다. 당신의 뒤에는 상황에 따라 당신에게 지시를 내릴 진행자가 서있고, 당신 앞에는 '전기충격장치'가 놓여있다. 당신의 옆방에는 또 한 명의 피실험자가 당신의 상대역으로 '학생'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이 학생은 당신 앞의 '전기충격장치'와 연결된 전기 수신기를 몸에 부착하고 있다.


실험은 아래와 같이 진행된다.

당신은 학생에게 문제를 내고 학생은 이것에 답을 하여야 한다. 만약 학생이 틀린 답을 제시하게 되면 당신은 당신 앞에 놓은 '전기충격장치'를 이용하여 15볼트부터 시작하여 450볼트까지 한번에 15볼트씩의 전기 충격을 더하여 학생에게 가하게 된다.

당신은 이 실험에 참여함으로써 약간의 보수를 받게 되어 있으며, 이 실험에 대한 모든 책임은 진행자에게 있음을 사전에 들어서 알고 있다. 당신은 학생의 오답에 대해서 몇 볼트까지 전기 충격을 가할 것 같은가? 당신은 피실험자인 학생의 위험을 고려하여 어느 순간 이 단순한 실험에서 진행자의 명령을 거부할 수 있을 것인가?

 

아마 당신의 생각과 나의 생각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일정 수준의 전류이상을 가하여 피실험자인 학생이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보거나 듣게 되면 우리는 실험을 거부할 것이다.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우리의 보편적 심성으로는 이 어설픈 모의실험에서 450볼트라는 치명적인 전류를 타인에게 가한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상황일터이니 말이다.

 

나는 최근에 내 삶의 가치관을 정리해 보고 싶었다. 살아가는 중에 크고 작은 무수한 선택 앞에 나는 무엇으로 판단하고, 무엇을 기준으로 삶의 방향들을 결정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삶이 더 혼란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했다. 판단의 지표, 결정의 기준으로서 가치관을 만들면 혼란스러움이 줄어들고 괜찮은 인생을 살아가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했다.

지난 과거를 들여야 보고, 현재 살아가는 마음을 뒤적여보고, 꿈꾸는 미래를 해석해보니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내가 간절히 바라는 것들은 <자유, 사랑, 용기>라는 세 가지의 가치꼭지로 정리될 수 있을 듯했다. 그래서 이것들에 대해서 스스로 구체적인 정의를 내려보고 몇 가지의 행동지침 등도 덧붙여 놓았다. 제법 그럴싸한 정의와 지침은 내가 마치 그런 것을 예전부터 훌륭히 지켜왔고, 앞으로도 그런 기준에 부합되는 삶을 살 것만 같은 위안을 착각처럼 부여했다.

 

얼마 전 사부님은 연구원 수업을 통하여 이것과 상통하는 가르침을 주신적이 있다.

"여러분은 어떤 원칙을 가지고 사느냐? 원칙과 유연함은 상충되는 것인데 이 두 가지는 살아가는 선택의 지점에서 어느 순간 서로를 배신하게 된다. 어떤 경우에 원칙을 지켜야 하고, 어떤 상황에  유연함을 지향해야 하느냐?

원칙은 삶의 가치관이다. 나의 가치관과 틀린 것이라면 어떤 순간에도 흔들리지 않아야 할 삶의 기준인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구분해야 할 중요한 것이 하나 있는데 이것은 '다름'이다.

다름과 틀림의 기준은 대단히 중요하다. 우리는 나와 다른 삶의 방식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배워야 한다. 이것이 다름에 대한 자세이다. 하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가치관을 넘어서는 것은 용납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틀림에 대한 개념이다. 여러분이 괜찮은 인생을 살려면 여러분은 아주 좋은 만남을 통해서 배워야 하는 것이고, 그래서 좋은 책을 읽어야 하는 것이다."

나는 이런 사부님의 가르침을 견지하여 내 가치관들을 잘 실천하면서 살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있었다. 다름과 틀림을 혼돈하지 않고 나의 가치관에 비하여 틀림의 순간이 오면 나는 힘써 이겨 내겠다는 초보적인 가치관념을 보강했다.

 

다시 서두에서 이야기 한 실험의 실제 결과를 이야기 해보자.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 중에서 450볼트짜리 전기 충격을 가한 사람은 전체의 70퍼센트에 육박했다.
당혹스럽지 않은가.
실험은 중간에 조건을 조금씩 바꾸어 진행되기도 했다.
학생 역할을 맡은 참가자의 고통에 몸부림치는 모습을 직접 보여주는 조건이 되자 450볼트까지 전기 충격을 가하는 사람의 비율은 40퍼센트 정도로 줄었으며, 직접 자기 손으로 학생의 팔을 '전기충격기'에 가져다 대도록 하자 그 비율은 30퍼센트까지도 줄어들었다.

그러나 이러한 최악의 조건에서도 끝까지 전기 충격을 가하는 사람이 자그마치 30퍼센트에 달했다. 결과는 충격 그 자체였다. 이들 교사인 피험자들은 진행 거부에 대한 어떤 불이익도 주어지지 않았으며 아무런 협박도 받지 않았다. 그저 진행자로부터 당신이 그 실험을 계속해줘야 한다는 지시만을 중간에 받았을 뿐이었다.

 

이 실험은 많은 사람들이 <밀그램의 실험>으로 알고 있는 <인간의 권위에 대한 복종>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게 했던 실험으로 1961년 예일 대학교의 심리학과 교수 스탠리 밀그램이 실제로 모의했던 내용이다. 밀그램은 실험 하기 전에 동료 심리학자와 대학원생들에게 결과 예측을 요청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마도 전기 충격 실험이라는 설명을 들으면 애초에 실험 참가를 거부하거나, 참가하더라도 학생 역할자가 난리를 치는 순간부터 실험을 그만둘 것이라는 예측이 대부분이었으며, 만약에 끝까지 전기 충격을 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아마도 사회병질자일 것이라는 의견까지 나왔다고 한다.

 

가치관의 정립과 더불어 '나는 이렇게 살리라'하는 다짐 앞에 지난 주 두 번째 읽는 <서양문명을 읽는 코드, >이라는 김용규 선생님의 책의 한 구절이 나의 생각을 흔들었다.


"
독일 출신 유대인 정치학자 한나 아렌트가 지적한 '악의 평범성'은 이렇게 언제 어디에나 웅크린 채 숨어 있습니다.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의 본질이 무사유(thoughtless)라고 설파했지요. 무사유는 일반적으로 '사려 깊지 못함'을 뜻하지만, 그녀는 이 단어를 - 보다 실천적 의미로 - '자신이 하고 있는 행위에 대한 반성의 불능 또는 거부'를 지칭하는데 사용했습니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사회다윈주의자 들이 바로 그렇게 행동했고, 아렌트가 경악했던 나치의 유대인 학살은 그 역사적 귀결이었지요."

(한나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괴물들과 악마들이 수백만 명의 학살을 설계한 것이 아니고, 지극히 평범한 사람도 - 스스로를 정당화할 수 있는 조건만 갖춰진다면 - 얼마든지 그런 악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기 위해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정립했다.)
 
 

나는 나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마음에 떠오르는 멋있는 세 가지 가치관을 자신 있게 드러내고 그렇게 살 수 있으리라고 자신해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한나 아렌트의 지적' '밀그램의 실험'은 나의 파놉티콘적 시선 혹은 생각 앞에 칼로 찌르는듯한 기세로 그것의 근거를 물어왔다. "너의 가치관은 안녕한가?"

나는 앞으로 선택과 갈림길에서 얼마나 나의 가치관에 부합하는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 틀림과 다름에 구분하여 지혜롭게 판단하고, '틀림' 앞에서 부끄러움 없이 거부권을 행사하는 용기는 내가 가질 수 있는 것인가. 흔들리지 않는 힘은 어디에서 생기는 것인가. 그런 힘은 운동선수처럼 지금이라도 노력한다면 내부에서 굳건하게 뿌리 내릴 수 있는 것인가. 나의 가치관은 이런 물음들 앞에서 '밀그램의 실험'처럼 나를 피실험자로 테스트할 것이다.  

<자유, 사랑, 용기>는 나의 것이 될 것인가. 그렇지 않을 것인가. 과연 그들은 내 안에서 안녕할 것인가.

 

<>

IP *.69.251.200

프로필 이미지
유재경
2011.07.31 23:49:18 *.143.156.74
우리 오라버니가 생각이 많으신가보네.
가치관, 그래 내가 옳다 생각하는대로 살기가 쉽지 않아요.
회사 다닐 때는 조직이 있으니 그렇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1인기업이 되어 내 일을 할 때는 어떨까 생각해봅니다.
역시 쉽지 않을겁니다.
하지만 쉽지 않으니 해볼만 한 것이 아니겠에요?
힘내세요, 오라버니!
프로필 이미지
강훈
2011.08.02 08:48:25 *.163.164.177
요즘은 그다지 생각이 많지는 않다.
저번주깢지 머리가 터질듯해서 이번 주에는 조금 풀어놓았지.
이번 칼럼은 저번주에 쓰고 싶었던 내용인데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후기때문에 이번 주로 넘긴 주제이지.

암튼 이리 저리 휘둘리지만 않아도
삶은 내가 바라는 길로 갈것이라는 확신이 있다.
요즘은 행복하고 재미있다.
프로필 이미지
2011.08.01 10:11:26 *.124.233.1
마땅하다 여기는 그 가치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이성에서 오는 것일까요? 감성에서 오는 것일까요?
아니면 그저 마음에서 오는 것일까요?
또 아니면 사회로부터 부여받는 것일까요?

참 어렵네요 가치란 무엇인지
그러나 결코 놓아서도 포기해서도 안 되는 중요한 질문이기도 하구요.
좋은 화두 고맙습니다 형님.

자유란 가치가 형님의 진짜 자유를 속박하지 않기를 바라며..^^
프로필 이미지
강훈
2011.08.02 08:54:11 *.163.164.178
본성과 이성사이에서의 다툼이
가치관을 지키는 중요한 갈림길인것만은 틀림없는듯하다.
 
자유에 가짜와 진짜가 있을까?
그래. 그것을 잘 구분하는 것이 중요할 듯하다.
내 마음이 자유롭다고 느낀다면
그리고 그것을 내일도 모레도 연장하고 확장하고 싶다면
그것은 진짜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피렌체의 바람이 우리의 철학을 깊게 해주길 바란다.
프로필 이미지
2011.08.02 16:05:16 *.45.10.22
오빠는 담금질 중 ㅎㅎㅎ 냉탕과 온탕을 왔다갔다하면서 강해지고 있는 것 같아요~
우리모두에게 이번 여행이 큰 의미가 되어주기를... 
우리들의 기준이 좀 더 명확해지기를.. .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652 강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file [7] 신진철 2011.07.25 3055
2651 [양갱] 10만원짜리 상추 file [4] 양경수 2011.07.31 3318
2650 [평범한 영웅 018] 여행을 떠나기 전에 [5] 김경인 2011.07.31 5099
2649 단상(斷想) 75 - 삶은 계단 file [4] 書元 2011.07.31 2283
2648 성공 키워드 아줌마를 보라 - 3. 망원경 對 현미경 書元 2011.07.31 2546
» [늑대18] 그대의 기준은 안녕한가 [5] 강훈 2011.07.31 2125
2646 나비 No.18 – 나는 왜 워커홀릭인가? file [4] 유재경 2011.07.31 5332
2645 18. 당신에게 있어 최선이란 file [4] 미선 2011.08.01 3552
2644 돌아보기 [4] 루미 2011.08.01 2089
2643 18. 신치님은 올바르게 ‘일’하고 계신가요? [4] 미나 2011.08.01 2339
2642 [Sasha] 컬럼18. 인생의 수수께끼 file [6] 사샤 2011.08.01 3503
2641 장마가 지나고.. 신진철 2011.08.04 2197
2640 단상(斷想) 76 - 보수과정 file [2] 書元 2011.08.06 2222
2639 생태조사 보고서 [1] 신진철 2011.08.10 2625
2638 옆에 있는 사람도 사랑 못하는데 누굴 사랑해? file [17] 양경수 2011.08.17 3345
2637 2011년, 신치의 이탈리아 여행 [12] 미나 2011.08.18 2578
2636 나비의 이탈리아 여행기 No. 1 file [14] 유재경 2011.08.19 4744
2635 [늑대19] 여행에 대한 감사의 마음 file [9] 강훈 2011.08.19 3438
2634 이탈리아 여행이 나에게 말해준 것 file [9] 미선 2011.08.19 2460
2633 [Sasha] Becoming Renaissance Woman (1) file [10] 사샤 2011.08.20 2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