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칼럼

연구원들이

  • 미선
  • 조회 수 3105
  • 댓글 수 4
  • 추천 수 0
2011년 8월 1일 01시 49분 등록

  기사에 유망직종이 나오면 할 만한 게 없나 하며 유심히 보던 때가 있었다. 직업을 선택할 때 적성이나 흥미보다는 안정성이나 보증성이 더 중요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때는 몰랐다. 그렇게 안정성과 보증성을 우선순위로 한다는 것은 결국 이 두 가지 요인에 내 삶을 건다는 것임을. 장애물은 되도록 피하고 싶었고, 안정성 있는 직업을 선택해서 편안히 가고 싶었던 마음이 컸다. 하지만 그런 직업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생은 드라마가 아니고 삶에 역경이 없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난 착하고 당하기만 하는 주인공이 나오는 드라마를 싫어한다. 악녀가 밉기도 하고, 악녀 쪽으로 사건이 흘러가는 것도 싫고, 무엇보다 당하기만 하는, 자기 목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하고 악녀와 정면대결을 하지 못하는 주인공이 싫다. 그런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마치 내가 답답한 주인공이 된 것 같아서 분통이 터진다. 그래서 난 모든 난관을 뚫고 당당히 승리를 거머쥔 모습을 보여주는 마지막 회만 보곤 한다. 같은 맥락이 아니었을까? 삶에서 장애물이 아예 존재조차 하지 않기를 바랐듯이 드라마를 보면서도 난 착한 주인공에 나를 투사하고 있었던 것이다. 큰 어려움 없이 빨리 장애물을 극복해서 악녀를 밟고 승리를 거머쥐기를... 그렇게 어렵지 않게 얻은 승리를 과연 승리라고나 할 수 있을까? 또한 큰 고난 없이 얻게 된 그 성취를 얼마나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지금껏 살아오면서 운이 좋은 편이였다. 원하는 것을 지원해 주시는 부모님이 계셨기에 많은 것들을 누리며 살아왔고, 이거 한 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 그런 기회들이 주어지곤 했었다. 그랬기에 나에게는 힘들게 역경을 뚫고 뭔가를 성취한 경험이 없다. 그래서 그런지 세상은 나에게 험난한 곳이 아니었고 장애물이 나타나면 피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당연하지만 이런 것은 나의 성장에 결코 도움이 되는 일이 아니었다. 기회가 쉽게 주어졌던 만큼 포기도 빨랐다. ‘나한테 맞지 않는 것 같아.’ 라고 하면서 기회를 아무렇지 않게 보냈고 또 다른 기회를 찾았다.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지 않았던 나는 ‘내가 생각을 잘 못 한 거 같아.’, ‘이건 나에게 맞지 않은 일이야.’ 라고 스스로를 합리화 시키며 말이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을 한다. ‘나한테 맞지 않다.’ 는 말은 ‘잘 할 수 없지 않을까?’ 라는 말과 같다고. 그랬다. 잘 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댈 수 있는 모든 핑계를 대면서 원해서 찾아 얻은 기회를 쉽게 보내버렸던 것이다. 기회가 왔으면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은 머릿속에 들어있지 않았다. 기회가 온 것은 너무 좋은 일이었지만 하나 둘 어려운 일들이 나타날 때면 그것만 눈에 들어왔다. 처음 해보고 싶던 마음은 다 사라져 버리고 나쁜 점들만 부각되어 내 눈을 가득 채웠다. 어떤 패배 경험도 없이 한 방에 모든 것을 거머쥐고 싶었기에 내가 그 싸움에서 질 것 같으면 재빨리 발을 빼버렸다. 그렇게 나는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차단하고 있었던 것이다.

가끔 생각해 본다. 내 인생의 철학을 제대로 가지고 있었다면 그렇게 세상을 우습게 여기지 않고 주어진 기회를 최대한 살려 그 순간에 집중하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지나고 나서 후회하는 것을 되풀이 하지 않았을 텐데...하는. 또한 최선이라는 것을 너무 거창한 개념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 최선이라는 것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실천하기에는 너무 멀리 있는 개념으로 느껴졌다. 최선은 어떤 일을 100% 완벽하게 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1%도 부족하면 안 되는 것으로. 그러니 최선은 그 단어 자체만으로 나를 숨막히게 했고, 그럴바엔 차라리 포기하는 것이 숨통을 터주는 것이었다. 내가 만들어 놓은 그 틀이 나를 억누르고 있었던 것이다. 소설가 조정래 선생님은 최선을 이렇게 정의 내리셨다고 한다. “최선이라는 말은 이 순간 내 자신의 노력이 나를 감동시킬 수 있을 때 쓸 수 있는 말.” 이라고. 나 자신을 감동시킬 수 있는 기준은 누구나 다를 것이고, 같은 사람에게도 어떤 일을 하느냐에 따라서도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기준을 타인에게 그것도 너무 높은 곳에 있는 사람을 기준으로 빠른 시간 안에 저 만큼은 되어야 한다고 나를 다그쳤기에 제대로 해보기도 전에 지래지쳐 버렸던 순간들이 많았다. 내가 3의 수준인지도 모르고 10의 결과를 내지 못한다고 스스로에 실망하며 자책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를 감동시킬 수 있을 때란 과연 언제일까. 과거엔 내 노력을 언제나 보잘 것 없는 것으로 치부해 버렸고 그것을 통해 나온 결과물은 대수롭지 않은 것이 될 수밖에 없었지만 너무 거창할 것도 없다. 나의 노력으로 뿌듯함을 느꼈던 그 순간이 바로 나를 감동시킨 순간이다. 그런 순간들이 쌓이다 보면 노력도 감동의 강도도 점점 커지게 되지 않을까? 그렇게 콩나물 자라듯이 조금씩 나를 감동시키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바라보았던 그 위치에 서 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윌 듀랜트는 우리는 비행기나 새와도 같이 비상하기 위하여 저항을 필요로 하고 힘을 강하게 하고, 성장을 촉진시키기 위해 장애물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라고 하지만 난 내 앞에 나타난 장애물은 피하기에 급급했고 있지도 않은 장애물을 만들어서 나를 쉼 없이 괴롭히고 있었다. 최선의 노력과정에는 여러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어떤 일이 나타나든지 그것을 나의 성장을 발판으로 삼을 수 있는 마음을 가질 수 있다면 장애물이 장애물로만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걱정이 없는 사람을 찾으려면 무덤으로 가보라고 했던 얘기처럼 내 앞에 장애물이 너무 오랫동안 나타나지 않는다면 내가 더 이상 넘어서야 할 장애물이 없구나 하며 기뻐하기 보다는 세상이 나를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는 건가 하면서 슬퍼해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또한 장애물을 피해서 간다 하더라도 그 장애물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더 넘기 힘든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날 것이다. 이런 경험 한 번쯤 있지 않은가? 너무 싫은 사람이 있어 그 사람을 피해 다른 곳으로 옮겼더니 그 곳에 얼굴만 바뀐 채로 그 사람이 그대로 있거나 더 악화된 상태로 다시 맞닥뜨리게 된 경험 말이다. 먼저 찾아보자. 과연 나는 어떤 노력으로 나를 감동 시킬 수 있는지.

그림.jpg

노력으로 인한 피로로 다크서클이 눈 전체를 덮는 것이 나에게 감동을 주는 일이라면 내 눈이 저 상태일 때가 바로 최선인 것이다.

IP *.139.110.78

프로필 이미지
2011.08.01 10:50:25 *.124.233.1
보왕삼매론에도 비슷한 구절이 있더라구.

"세상살이에 곤란 없기를 바라지 말라.
세상살이에 곤란이 없으면 제 잘난 체하는 마음과 사치한 마음이 일어난다.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기를 '근심과 곤란으로써 세상을 살아가라' 하셨느니라. "


힘냅시다! ^^
프로필 이미지
유재경
2011.08.01 18:28:23 *.143.156.74
지난 토요일에 보니 미선의 눈에 다크 서클이 왕 진하게 보이던데.
이미 너는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야.
너 자신에게도 가끔은 칭찬을 해줘야지.
나는 미선이 그림이 참 좋다.
스타일리쉬하면서도 메시지가 있고 포스트 모던해. (뭔소린지??) ㅋㅋ
프로필 이미지
강훈
2011.08.02 08:58:13 *.163.164.178
최선은 스스로에게 감동하는 것이라는 조정래 선생님의 말씀. 
좋은 구절이구나.
자신에게 물어볼 수 있는 좋은 기준이 될것 같구나.
이정도면 되겠지라는 생각앞에
항상 '너는 감동했니?'라고 물어봐야겠다.

고개를 넘어가면서 루미의 곡소리가. 미선의 다크써클이 우리를 대변하고 있구나.
프로필 이미지
2011.08.02 14:45:32 *.45.10.22
미선아 그림 참 좋다 ^^ 진짜 신기하게도 널 닮았다 그림도 글도 신기한 일이야 ㅎㅎ
7기들에게 선물해줄거지? 
emoticonemoticon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112 7월 오프수업 과제 -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4] 희산 2009.07.19 3094
1111 (14) 백범과 묵자의 딜레마 [6] 박승오 2007.06.24 3095
1110 동지, 그 아름다운 동행 [3] 현운 이희석 2007.06.19 3098
1109 [36] 궤도수정(5) 현웅 2009.01.11 3099
1108 <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 애드거 앨런 포우> 3. [9] 정재엽 2010.05.04 3099
1107 말 더듬이 왕 조지 6세와 한비 [4] 샐리올리브 2013.02.12 3099
1106 10만원의 위력을 아시나요? [11] 최정희 2007.06.23 3100
1105 (21) 달리는 말 [4] 香仁 이은남 2007.08.23 3100
1104 나비 No.35 - 오지랖 주의보 file [10] 재키 제동 2011.12.25 3100
1103 [32] 소심 만세 - 1장 소심 안의 나 (1) [7] 양재우 2008.12.22 3101
1102 나비칼럼 No.8 – 전업주부열전 [13] 유재경 2011.05.22 3101
1101 [Sasha] 컬럼13. 인류의 만다라 (Neti-Neti Circle) file [20] [2] 사샤 2011.06.27 3102
1100 (011) 그 시절의 영웅들 [3] 교정 한정화 2007.05.28 3103
1099 [06] 지록위마 [7] 2008.05.12 3103
1098 천상의 골짜기 시놉시스 1- 공간 [1] 정야 2010.02.08 3106
» 18. 당신에게 있어 최선이란 file [4] 미선 2011.08.01 3105
1096 [63] 울어라 열풍아 밤이 새도록 [2] 써니 2008.03.12 3108
1095 나의 발전을 가로막는 세 가지 [3] id: 깔리여신 2012.09.12 3111
1094 소통의 엔트로피 - 지금 만나러 갑니다 숙인 2009.08.02 3112
1093 나는 왜 소심에 대해 쓰려 하는가 [13] 양재우 2009.06.17 3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