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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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일주일의 끝이었다.
두 번 째 읽어도 철학이라는 것은 쉽사리 자신을 허락해주지 않았다. 더군다나 여행의 준비는 끊임없는 과제를 양산해 내었다. 난생 처음 해보는 듯한 PPT는 실수와 실패의 연발이었다. 결국 그것을 끝내놓고 나는 책을 다 읽을 만큼의 시간을 사용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했다. 주말에는 이탈리아 여행 파티가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시간이 나지 않아 새벽까지 책을 읽고 아침 일찍 정안으로 아빠를 마중 나간다. 부랴부랴 돌아와서 준비물을 사서 오른 버스 안에는 빈자리 하나 없다. 겨우 제 시간에 도착해서 이런 저런 일로 동동거리며 행사에 참석한다. 끝이 나고 언니의 차로, 지하철로, 버스로 집에 도착해 휴식을 맞이한 시간은 11시를 넘겨 있었다.
일요일은 마지노선의 날이다. 무언가 해내야 한다. 이번 주를 마무리해야 한다. 아직 남아 있는 책의 끝자락을 다 읽고 리뷰를 정리해야 하며 저자에 대한 서치도 해야 하고 구성에 대한 생각도 곁들여야 한다. 엄마는 공부하러 가는 거라며 아이에게 말하고 소리 나게 현관문을 열었다 닫은 후 조용히 방안으로 숨어 들어 하루 종일 컴퓨터 앞을 제대로 떠나보지도 못한다. 해도해도 끝이 없는 과제에 힘을 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제는 끝이 나지 않아 결국은 아이를 재워 놓고 밤을 새운다.
끝난 것 같은가? 아니다. 아직 칼럼은 손도 대지 못했다.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는다. 이제는 쓰고 싶은 주제가 아니라 쓸 수 있는 주제를 찾아내야 한다는 사실이 머릿속을 괴롭힌다. 리뷰를 쓰는 중간중간 떠오르는 생각을 정리하며 하나의 글이 탄생하기를 기다렸으나 허사였다. 반페이지 정도를 채운 글들만이 남아 나를 바라보고 있다. 더군다나 이제 잠이란 놈도 나를 스멀스멀 찾아온다.
내가 지금 뭐하는 거지? 이번주에 편안하게 자본 날이 있기는 한가? 충분히 자고 일어나서 커피를 마신 아침이 있었던가? 커피가 떨어졌는데 사러 갈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었다. 아침마다 커피가 없음을 깨닫고 안 떠지는 눈을 떠가며 하은이가 밥 먹는 옆에 앉아 있어주곤 했다. 정신없고 분주하기만 한 일주일이었다. 이걸 왜 하고 있는 거야?
학원에서는 책을 읽을 시간이 없다. 그래도 책을 들고 다니지 않으면 왠지 뭔가가 불안한 마음에 항상 두꺼운 책이라도 끙끙거리며 들고 다녔다. 이것을 보던 중학교 아이들이 지나가는 말로 때로 묻곤 한다. “샘 그거 왜 봐요?” 독서동호회라며 일주일에 한 권씩 읽는 다고 대충 말을 둘러대면 “그런 거 왜해?” 이런다. 오늘은 내가 나에게 묻고 싶다.
내가 원래 글쓰기를 좋아했던가? 책을 한권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던가?
전혀 아니다. 초등학교 때 무슨 일마다 글짓기를 숙제로 내주면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도 몰라서 발을 동동 굴렀었다. 아무런 쓸 말이 없었다. 글짓기는 언제나 하나의 공포였다. 빨간 줄이 쳐진 원고지를 바라보는 것이 제일 짜증나고 싫은 일이었다. 그런데 책이라니. 그건 작가들이 쓰는 거고 나는 그냥 그들의 생각을 읽으면서 “정말?” 또는 “그으래?” 이 정도의 반응을 보이면 되는 거다.
그렇다면 넌 이걸 왜하고 있는 거냐? 철학은 원래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데 미친듯이 읽고, 그리 싫어하던 글쓰기를 일주일에 한번씩 해가면서 뭘 원하고 있는 거냐?
나는 인생을 바꾸고 싶었어. 나에게느 변화라는 것이 너무 필요했지. 하은이가 태어나고 하은이가 자라나고 나는 예전과 같이 살아갈 수가 없었어. 물론 하은이도 세상을 살아나가면서 많은 일을 겪을테고 언젠가는 주저앉고 싶은 순간이 올 수도 있지. 그때 내가 해줄 수 있는건 기운내고 다시 걸어가라는 말일꺼야. 그 말을 하는 나의 모습이 예전과 같은 모습이고 싶지 않았어. 예전의 모습으로는 다시 걸어가라는 그 말이 매력적으로 들리지 않을 테니까. 나는 자유롭고 당당한 모습으로 세상에 있는 나이고 싶었어. 그런 바램이 엄마가 되면서 실천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게 한 것이지.
그럼 넌 네가 원하는 대로 바뀐거냐?
이건 정말이지 잘 모르겠어. 어떤 날은 희망에 가득 차 있다가도 어느 날은 분노와 회의감에 빠져드는 날고 있지. 특히나 오늘 같은 날이면. 네가 생각해도 그렇지 않겠니? 무얼 구하고 있는건가 하는 생각도 들고 내가 왜 이렇게 사서 고생하는 건가? 하는 생각도 솔직히 아예 안든다면 거짓말일거야. 내일 아침도 하은이가 일어나서 방방 뛰는 것 보고 엄마는 조금만 더 자자라며 이불을 뒤집어 쓸것 같잖아. 그런데 이런 생각이 안 들겠니?
그런데 왜 해?
글쎄. 그냥. 원하는대로 바뀌는 건지 아니면 끝나고도 그대로인지 나는 아직 잘 모르겠어. 그때가 온다고 해도 내가 알까? 어느 쪽의 결과라며 확실하게 말할 수 있을까? 아닐지도 모르잖아. 그래도 그냥 해 나가는 거야. 어차피 인생이란 모르는 거잖아. 어떤 결과가 나타날지, 내일 나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 그건 아무도 알 수 없어. 그렇기 때문에 기대는 처참한 결과를 보게 될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래도 지금은 그냥 하는거야. 무언가 구하려 할 수록 멀어질 수도 있잖아. 이루어질 바람이었다면 이루어지겠지. 그런거 걱정하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그저 눈앞에 주어진 과제를 해내기에도 지금은 허덕이고 있는 거 같지 않아?
계속 무엇인가가 되고 싶었어. 어느 하나의 일을 통해서 무언가 바라는 것이 하나씩 있었지. 이루어질때는 기뻤고 이루어지지 않았을때는 실망스러웠어. 이 일도 충분히 그럴 수 있겠지. 그런데 어차피 결과를 보기에는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 있을지도 모르잖아. 결과가 언제 발표될 거라는 예고도 없는 데 뭘.... 그래서 그냥 해 나가는 거야. 하나씩 하나씩 클리어 하고 계단을 올라가 듯이 그저 걸어가는 거지. 마음에서 많은 것을 놓고 편안한 마음으로 그저 별 생각없이 따라가는 거야. 지금은 그저 한 권의 책을 마음에 담는 것도 공간이 없어서 허덕이고 있으니까.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을 여유가 없기도 하지. 그래도 대단한 건 그 포기쟁이가 지금까지 잘 따라가고 있는 것 같지 않니? 벌써 어떤 이유를 둘러 붙여 가면서 포기할 구실을 여러번 찾아어야 하는데. 그걸 찾을 시간도 없었네. 역시 바쁘면 건강해 지나보다. 그거 하나는 얻은 거 갗지 않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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