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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차칸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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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8월 24일 17시 37분 등록

난데 없다, 너는 누구인가라는 말에 머리가 하얘지던 경험처럼. 어색하다, 너에게 자유가 무엇이냐고 물어오는 질문에 그렇게 데면데면할 수 없었음을 느꼈던 것처럼.


숱한 산행과 한 때는 존재의 이유이기도 했고 청춘의 피를 쏟아 붓기도 했던 산이었다. 내 발목을 부러뜨렸고 손가락을 꺾어 버렸고 죽음의 두려움에 몸서리치게 했던 산이 이제는 낯설다. 나는 산을 누구보다 사랑했다. 그곳에서 피를 나눈 형제와 같은 악우들의 잔정을 나누었고 생사를 같이 하며 죽음으로부터 서로를 지켜주던 기억이 여전히 새파랗게 살아 있다. 아찔한 바위와 거대한 빙벽을 향한 두려움과 동경은 아직도 내 피를 거꾸로 흐르게 한다. 그런데 오늘, '나에게 산은 무엇인가'라는 느닷없는 스스로의 질문이 내 머릿속을 한동안 어지러운 싸이렌 소리로 채웠다.


그랬던 산이 뜬금 없는 질문 하나로 이렇게 낯설어 질 수 있음이 어이없다. 나를 지배하는 사유와 육신이 '나'인지 '나'가 아닌지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가 '너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받을 때 허가 찔리는 느낌이다. 내 안의 자유가 내 의지의 소산인지 환경이 주는 제약의 결과인지 알지 못하고 '너의 자유를 말해보라'는 요구에 유구무언의 상황과 같음이다. 내 사유를 무장해제 시키는 것은 산에 대한 내 마음인가. 스스로 했던 질문인가. 산은 나에게 어색하고 난데 없다.


그러나 나는 안다. 높은 암벽에서 바람에 흔들리는 자일의 춤을 잊을 수 없고, 눈보라 치는 봉우리, 어둠 속에서 저 멀리 희미하게 새어 나오는 한 줄기 텐트 불빛의 기억을 지우기 힘들다는 것을. 만년설에 시커멓게 타버린 얼굴, 부르터진 입술 사이로 하얀 치아를 내보이며 활짝 웃어주던 악우의 미소를 잊지 못함을. 그래 나는 아무래도 산으로 가야겠다. 내 심장을 뛰게 만들기도 했지만 나를 때려 눕히기도 했고, 나를 달 뜨게 했지만 나를 쓰러뜨리기도 했던 산으로. 친구도 되어주었다가 범접할 수 없는 신성으로 엎드리게 만들기도 했던 그곳으로 말이다. 사랑했고 미워했고 동경했고 분노했다. 그래, 어색하고 난데 없었던 이유는 'a=b라는 모순된' 공학적 의미로는 도저히 해석하기 힘든 갈등과 미움,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안에 내 삶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어색함 속에는 나에게 '자유'와 '나'라는 가치에 필적할 등가(等價)의 무엇이 존재하는 것이겠다.


나는 산을 붙들고 내 모든 질문을 던지려 한다. 소유와 속도에 미쳐가는 세상에 희미한 메아리 한 자락 지르자. 차로 3시간이면 갈 길을 30일을 걸어간 자의 아둔함이 제 인류의 원형이었음을 각인 시켜보련다. 자본과 신기술의 파괴적 전진이 결국 삶을 절단 내고야 마는 사태를 산은 알려 줄 것이다.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묻어둔 무수히 많은 졸렬한 삶들에게 히말라야의 눈부신 아침을 이야기 하자. 제 자신이 평범함으로 똘똘 뭉쳐 있음을 자괴하는 개인에게 일갈하자. '지금까지 살아온 대로 살 것인가?, 잊혀진 것을 회복할 것인가?' 그 원형의 삶이 산과 숲과 나무에 있음을 이야기하자.


‘그래 이것이야말로 세계다. 나의 세계, 고유한 세계요 그 비밀이다. 이곳에는 선생도, 학교도, 해답 없는 문제도 없다. 사람들이 질문을 하지 않고도 있는 곳이다.’



                                                            2012년 10월 2일


                                                 --  장재용(변화경영연구소 8기 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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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칼럼을 쓴 장재용은 뼛속까지 산악인입니다. 


그는 절벽을 타다 떨어져 발목이 부러지는 큰 부상을 당했습니다. 목숨까지 잃을 수 있었던 아찔한 사고였죠. 의사는 그에게 더 이상 산을 타지 말 것을 권유합니다. 하지만 그에게 산은 유일한 삶의 낙이자 구원의 장소였습니다. 그는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오로지 산에 오르겠다는 그 열망 하나로 자신에게 찾아온 고난을 떨쳐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해 국내 아흔아홉 번째로 동료 산악인들과 함께 에베레스트 등반에 성공했습니다.  


그는 또한 평범한 직장인입니다. 대학에서 산악동호회로 활동했고, 직장에 들어와서도 산을 잊지 못해 주말이면 산을 타러 다니는 산을 좋아하는, 아니 산에 미친 남자 직장인인 거죠. 그는 산에서 삶의 의미를 느낀다고 합니다. 산의 온전한 모습이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만나게 해준다고 말합니다. 왜 산에 오르는가? 그는 말합니다.


‘그래 이것이야말로 세계다. 나의 세계, 고유한 세계요 그 비밀이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2017년 <딴짓해도 괜찮아>란 책을 펴냈습니다. 평범한 직장인으로서 삶과 돈, 자유와 비애, 욕망과 절제 등 산에 대한 열망과 현실 사이에서 방황하는 자신의 모습을 여과없이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내면이 이끄는 데로 향합니다. 그 곳이 바로 에베레스트였죠. 한걸음 내딛는 것이 그야말로 바늘로 찌르는 것과도 같은 고통이며, 숨 한번 쉬는 것조차 괴로움을 수반하는 그 곳에서 그는 자신과 마주합니다. 과연 이대로 살 것인가.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그는 쉬지 않고 산으로 향합니다. 자신과 마주하기 위해. 삶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




차칸양 

"경제·경영·인문적 삶의 균형을 잡아드립니다"

Mail : bang1999@daum.net

Cafe : 에코라이후(http://cafe.naver.com/ecolifuu) - - 목마른 어른들의 배움&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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