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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옹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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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월 4일 08시 25분 등록

이 글은 3기 연구원 박승오(옹박)님이 쓰신 칼럼입니다 <2008. 12. 15.>

 

오랜만에 서산 부모님 댁에 내려와 아버지께 편지를 씁니다. 이 편지 속에서 그대를 발견하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버지께

 

영균이 결혼 전에 함을 팔러 광주에 다녀왔어요. 영균이 집 사정이 많이 어려웠었는데 이젠 형편이 많이 풀렸나 봐요. 박사 그만두고 의대를 갔고, 의대에 다니는 여자와 곧 결혼한다니 앞으론 괜찮겠죠. 오늘 보셨죠? 영균이 차가 그랜져에요. 준호 집은 예전부터 제법 잘 살았고, 처가도 부유해서 결혼하면서 큰 집을 장만했어요. 현실적인 재열이는 기술고시에 합격해서 공무원 5급 사무관이고, 벌써 네 살 된 아이가 있어요.

 

아버지, 아들만 뒤쳐지는 것 같았어요. 저는 아직 차도 없고, 집도 없고, 아이도 없고, 아내, 직장도, 돈도 없으니까요. 오늘은 미래도 없고, 용기도 없고, 희망도 없어 보였습니다. 잘 지내다가도 이렇게 어쩔 수 없이 친구들과 비교하게 되는 날에는 저만 세상을 모르는 철부지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오늘 기분이 좋질 않았습니다.

 

그리고 여기, 서산에 왔어요. 생활비가 없어서 전세에서 월세로 옮겨오신 당신들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더 안 좋았어요. 이 곳은 너무 조용하네요. 몰래 담배를 피우러 집밖을 나갔다가 가로등조차 없는 허허벌판이 지독히 쓸쓸해 보였어요. 허허 웃으며 노인 둘이 살기에는 좋다 하시지만, 이 황량한 벌판만큼 아버지도 무척 외로우실 거에요. 이곳저곳 돌아다니기 좋아하시는 어머니는 더 그러시겠죠. 아버지, 죄송합니다. 지금 해 드릴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아버지는 이상주의자였죠. 다른 아버지들이 의사, 변호사를 권유할 때 당신은 제게 늘 조금 어려운 경제 사정이라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라 라고 가르치셨어요저는 그렇게 살고 있는데 왜 이런 느낌이 드는 걸까요? 어쩌면 세상은 이상을 꿈꾸는 사람들의 몫이 아닌가 봐요. 단단히 먹은 마음이 이렇게 반복되다 보면 완전히 무너질 수도 있겠어요. 그게 참 두렵습니다.

 

그런데 아버지. 그래도 저 하고 싶은 거 하며 살래요. 후회할 지도 모르죠. 오늘처럼 무너지는 날도 있을 거에요. 그래도 지금처럼 실컷 울고 다시 시작할래요. 모든 일에 이유가 있는 건 아닌가 봐요. 저 그냥 아버지 말대로 살아갈래요. 남부럽지 않은 아들이 되어드릴 자신은 없어요. 그러나 언젠가 아버지가 옳았다고 증명할 수 있는 아들이 될 거에요. 존재가 증거가 되어 제 자식들에게도 똑같이 말해줄 겁니다.

 

오늘부터 거울을 보며 매일 제게 주술을 걸 거에요. 아버지와 사부의 말을 반반 섞어 말해줄 거에요.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자. 내 꽃도 한 번은 필 것이니, 두려워하거나 의심치 말자. 나는 내 길을 갈 것이다.

 

 

                                                                       박승오, 변화경영연구소 3기 연구원 (directan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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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04 08:47:18 *.45.129.180

우리의 인생이 아름답고 의미있는 것은 삶이 주어진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들어 갈 수 있다는 데에 있는 것 같애. 내가 만들어 가는 삶의 핵심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작은 성공을 만들고, 그런 성공들을 쌓아 나가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고, 정체성에 기반한 자신감을 가질 수 있을 때에 비로서 남과 비교하지 않게 되는 것일꺼야. 비교의 괴로움은 그 때에야 비로서 사라지게 되겠지.

 

스승과 등불이 그래서 소중한 것 같애. 이런 삶의 지혜는 누군가 알려주고 격려해 주지 않으면 혼자의 힘 만으로 실행하고 깨닫기에는 마치 미로처럼 숨어 있어서 알아내기 너무 어려우니까.

 

'편의설리부쟁춘' - 매화는 눈 속에 홀로 피어 고고하니 꽃들과 봄을 다투지 않는도다.  내 길을 가는 자 모두 화이팅.

 

이제 아내도 있고 아기도 생길테니 가족과 함께 길동무하면서 더욱 멋진 자신의 길을 가는 승오의 모습 새해에 기대합니다. 홧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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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04 10:56:44 *.247.149.244

네 형 ^^

이 글을 쓴게 3년전인데, 이젠 제법 마음이 단단해져서 남과 비교는 잘 안해요.

 

형을 보면 늘 '열심히 살아야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도 형이 연구원에서 처음 소개할 때 하신 말씀이 강하게 각인되어서였던 것 같아요.

그래서 형 또한 제겐 등불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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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04 09:12:50 *.30.254.21

이미,

충분히,

그대의 편지에서

나를 발견했으니..

 

이제 가자구..

각자의 길을

더불어 함께

쉬엄 쉬엄..

쉬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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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04 10:58:12 *.247.149.244

넵! 형도 파이팅 하세요. ^^ 아음편지.. 그거 참 쉽지 않은 작업이더라구요.

그래도 1년 맘고생 하면 쑥쑥 자라있는 자신과 만나게 될거에요.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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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04 10:25:48 *.160.33.30

승오야, 네가 이 글을 쓴지 3 년이 지났구나.   

네 길을 간지   몇년 동안  너는 종종 울었을 것이고,  종종 자신에게 분노했을 것이고,  종종 너를 믿지 못했을 것이다.  

아직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아내라는 동지 구했고,  함께 키워야할  아이를 얻게 되었다. 

다시 몇년이 지나  다른 사람들이  떠 밀려간  길에 회의할 때, 너는 네 길을 가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고단할 것이다.

그러나  다시 몇년이 지나  그 길을 꾸준히 간 너를 보면,  너에게 놀라워 할 것이다. 

세월은 빨리 간다.   좀 더 내가 되어 살지 못한 날들만이 아쉬움으로 남는 것 같구나.   

그러니  열심히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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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04 11:04:43 *.247.149.244

오랜만에 사부님 응원 받으니 정신이 번쩍! 드네요. ^^

이제 6년 되었어요. 6년 동안 이 일이 한번도 지루한 적 없었다면 거짓말일까요?

항상 그랬습니다. 교육을 할 때는 에너지가 쫙 빠지는데, 마치고 터벅터벅 집에 돌아올때면

에너지가 다 빠져나간 그 자리에 기쁨과 보람이 가득한 느낌이었어요.

 

사부님을 책으로 만나지 않았다면, 저는 이 길로 접어들지 못했을 거에요.

무엇보다도 그 인연에 감사합니다.

사부님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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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04 11:01:49 *.42.252.67

이 번 송년회에서 넉넉히 여유있는 모습으로 살이 오른 그대의 글이라곤

믿기지 않았던 시절의 이야기로군요. 호호

아내의 입덧을 흉내내며 행복해 죽겠다는 그 표정과 너무나 대비 되는

이 아침의 편지를 올리며 다른 누구보다  마음이 찡~~~했을 것 같아.

다음 글에는 뉴 버젼으로 아버지께 올리는 편지를 지금 마음으로

써 보는 것은 어떨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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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04 11:17:30 *.247.149.244

ㅋㅋㅋㅋ 아 정말, 오늘 아침에 보면서 '내가 이런때가 있었지' 했었네요.

작년 한 해는 제게 정말 최고의 해였으니까요. 누나 말대로 뉴 버전 편지를 써봐야 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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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04 21:39:47 *.32.193.132

"두려워하거나 의심치 말자" 글귀가 확 다가오네요 용기 듬뿍받고 갑니다. 보고 싶어요 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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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14 23:26:56 *.169.218.205

아. 짧지만 강렬하네.

좋은글 잘 읽었어. ^^

송년회 때 통통(!)하게 살이 오른 오빠를 보니 웃음이 났어.

오빠가 잘 지내는구나 싶어서.

올해도 화이팅하자! 우리길을 가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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