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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월 6일 06시 39분 등록

                                            * 본 컬럼은 변화경영연구소 5기 연구원 범해 좌경숙 님의 글입니다. (2009.06.08)

 

 

전에 연구원 입학식날 연구원 공동체에 도움이 되는 일 세가지를 약속했다. 그중의 하나가 연구원과 꿈벗을 대상으로 세미나 하나를 시작하겠다고 했다. 이제 그 시간이 된 것 같아서 길상사에서 정오에 만나자고 벙개를 쳤다. 천둥소리 없이 4명이 모였다. 우리는 함께 길상사의 비빔밥을 공양받고 찻집에 둘러앉아 모임에서 기대하는 것과 앞으로의 계획을 얘기했다. 그래서 논의된 사항은 <융과 그림책>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자기의 삶과 닿아있는 그림들을 우선 탐색해 나가기로 했다. 아무래도 각자 일에 매어있으니 오프 모임은 한달에 한번하고 궁금한 것은 게시판에서 나누자고 했다. 다음 달 모임은 첫 번째 일요일 길상사 설법전 앞에서 만나기로 하고 각자 아끼는 사진을 한 장씩 가져와서 자기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고 했다.

 

오늘 절집에서는 하안거 결제가 시작되는 날이다. 법정스님은 멀리서 법문을 하러 길상사로 오시는 대신  <一期 一會>라는 책을 세상으로 보내셨다. 그동안의 안거 법문을 모아놓은 책이다. <일기 일회>는 다도에서 쓰이는 말로 “주인과 손님의 만남은 일생에 두 번 다시 오지 않는다. 차를 대접하는 주인과 손님이 모두 정성을 다해 그 자리에 임해야하는 이유다. 또 우려낸 차의 맛은 오직 그때 그 자리에서만 유효하다. 단 한번의 고유한 향과 빛깔을 지닌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단다.

 

우리는 <융과 그림책>을 위한 첫모임을 마치고 모두 정화스님의 방으로 가서 차담을 했다. 차담에 함께하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서 이제는 모든 찻잔이 다 나왔다. 변함없이 맑은 말씀과 향기로운 차가 함께했다.  전부터 나는 참선 수행을 제대로 해보고 싶어서 조금씩 준비를 해왔다. 그래서 불자는 아니더라도 이 하안거 기간에 맞추어서 제대로 정진을 해보려고 마음의 준비를 해왔다. 마음의 변화를 불러 일으키려면 먼저 몸의 변화가 시도되어야 하고 몸이 바뀌려면 적어도 100일은 지속해야한다고 들었기에 많은 사람이 가는 길을 나도 함께 따라가기로 했다. 그리고 수행일기를 쓰며 변화를 기록해나가기로 했다.

 

난중일기와 백범일지를 읽으며 기록의 중요함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그리고 얼마나 성실한 태도로 임해야 단 한번 주어질 뿐인 삶을 완성하고  다음 사람의 마음속에 살아남게 되는지도 알게 되었다. 남들이 다 넋을 놓고 있을 순간에도 치열하게 자기 성찰을 하고 앞일을 가늠하며 고뇌의 시간을 가져야하고 이렇게 저렇게 엮인 인연의 사슬도 회한이 남지 않게 잘 가꾸어나가야 비로소 마음 편하게 이 세상 소풍을 마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이 순신과 김구, 이 두남자의 공통점은 참 딱한 나라에서 빛이 사라져 어두움을 더듬어가야하는 그런 시대에 태어나 자기 한 몸을 불태워 민중의 앞길을 밝혀준 겨레의 등불이 되었다는 것이다. 사나이 가는 길 앞에 국가와 민족이 있었고, 매순간 일신의 안일보다 동족의 평안을 위하여 가시밭길을 걸었다.  누구보다도 시대가 요구하는 것을 먼저 읽었고 그래서 험한 길을 앞서서 걸었다. 한평생, 한결같이 그렇게 걸어가 하얀 눈 위에 아름다운 발자욱을 남겼다. 그래서 깨어있는 사람은, 그래서 눈이 밝아진 사람은 지금도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간은 흘러갔지만 사람 사는 세상은 이순신의 시대나 김구의 시대나 우리가 사는 이 시대나 별반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다. 분단 민족의 아픔이 있고 열악한  국제적 위상과 경제적 어려움이 주변에 널려있다. 희망은 점점 줄어드는 것 같고 그렇게 불투명한 앞날은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무서운 짐이 되어 좌절을 맛보게 한다. 누가 이런 절망을 이기고 용감하게 자기의 시대를 극복할 수 있는지, 밝고 또 맑은 눈으로 이 시대를 기록하고 성찰하고 있는지, 또 백년 후에는 누가 우리시대의 영웅을 찾아 북리뷰를 할지 주변을 세심하게 둘러 보았다.

 

분명 어딘가에서 제2의 이순신이 자라고 있고 제 3의 백범이 웅혼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아니 나는 조금 앞선 선배들의 고난이 방패가 되어주었기에 굶지 않았고, 글을 읽을 수 있었고, 말과 생각으로 자유로운 세상을 누릴 수 있었다.  이런 자유는 선인의 피와 땀의 결실이며 적어도 보다나은 모습으로 후배에게 물려주어야 할 자산이라는 생각이 가슴을 뚫고 지나갔다. 너무 교과서적으로 위인전을 읽은 것일까? 분명 그렇게 가볍게 넘어갈 느낌은 아니다. 인간에 대한 예의는 글을 읽은 사람이 가장 먼저 갖추어야할 태도가 아닐까?  펜 끝에서 우리의 희망이 기뻐 춤추게 하라 . 적어도 숙제를 하지 못한 채 무거운 걸음 옮기는 사람은 되지 말아야지.....그 걸음을 보며 뒤쫓아 올 훗날의 사람들을 위하여.

 

이렇게 정리를 하며 보통사람인 나는 친구들과 헤어져 집으로 돌아왔다. 오는 길에 꽃과 나무를 다루는 선한 표정의 아저씨에게 관음죽의 분갈이를 부탁했다. 나무가 몇 년이 되었는지? 혹시 10년이 지났는지 되물어 보았다. 관음죽은 뿌리를 흙속에 깊이깊이 내리기에 10년이 넘으면 화분에서 빼내기가 힘이 든단다. 그래서 경우에 따라서는 분을 깨야하기도 하고 뿌리를 다듬느라 비싼 조경가위의 날이 다 나갈 수도 있단다. 나는 분갈이 후 거의 7년을 두고 키우고 있는, 우리 집의 척박한 성장환경을 잘 견뎌온 나무에게 좀 잘해주고 싶었다. 이상하게 나는 인연 따라 우리 집으로 온 나무들을 많이 죽였다. 물을 너무 많이 주어서 죽이고 또 어느 때는 물을 너무 적게 줘서 말려 죽이고... 그래서 이사를 왔다고 나무를 가져다주면 제발 “생명에 대한 부담 없이 좀 살게 해 주세요.”라고 말하며 이리저리 책임을 피해 다녔다. 함께 사는 아름다움을 감당할 사람이 못되는 것이다.

 

사실, 전문가들의  충고를 따라 노력은 많이 해보았다. 어제 만난 그 아저씨는 드디어 사건의 핵심을 알아내셨다. “샤워꼭지로 겉만 물이 닿게  한꺼번에 흠뻑  주지 마시고  깊이깊이 스며들게 물을 줘 보세요. 세찬 소나기 보다는 봄비처럼 스며들게 해주세요.” 아니, 사람을 사귈 때  내가 늘 하는 말인데.....식물을 사귈 때, 나는 아는 것을 실천하고 있지 못했다. 나름 긴장하며 3일, 7일, 15일 단위로 물을 주었지만 한번도 손을 넣어서 뿌리가 편안한지 함께 느껴주지는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집에 남아있던 모든 빈 화분을 다 가지고 나가서 새 식구들을 맞이했다. 아저씨가 정성껏 심어주셔서 마음속으로 이제는 정말 잘 돌보겠다고 다짐을 하며 옮겨다 두었다. 관음죽은 분갈이를 했기에 한 달은 조용한 곳에 두고 새 환경에 적응할 때까지 기다려주라고 하셨다.

 

나는 이제 이 관음죽과 같이 선수행을 해나가기로 했다. 조용히 가장 작게, 필요한 만큼의 물만을 마시고 나의 뿌리가 어디로 뻗어 나가려고 하는지, 어떤 시도들을  하고 있는지  주시하려고 한다. 나와 함께 오래 살았지만 그 뿌리까지 살펴주지 못한 관음죽처럼, 나와 함께 오래 살았으나 깊이 느껴보지는 못했던 나의 마음의 뿌리를 관찰하려고 한다. 깊이, 조용하게, 그리고 느낄 수 있는 변화들을 기록해봄으로써 나의 첫 번째 선수행 결심을 잘 따라가 보려고 한다.

 

                                                                                                변화경영연구소 5기 연구원 좌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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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14 23:44:08 *.169.218.205

오래전 글을 읽으니 느낌이 새롭네요. ^^

글쓰기 코드가 유머(!)로 바꼈다는 것도 눈에 확 보이구요.

그나저나 요즘 어디서 모하고 계세용? ;;;

송년회 때도 안 오시공. 연락도 안 된다던데.

마음 열리시면(!) 언제든 한번 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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