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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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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월 10일 09시 41분 등록

이 글은 2기 연구원 박소정 님의 칼럼입니다. (2기 연구원 수련 기간의 어느 날에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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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정(旅情) [명사]

여행지에서 느끼는 외로움이나 시름 따위의 미묘한 심정. 나그네의 심정. 객정(客情). 객회(客懷). 여심(旅心).

 

여정(旅程) [명사]

1. 여행의 노정(路程).

2. 여행의 일정.

 

여정(餘情) [명사] 마음속 깊이 아직 남아 있는 정이나 생각.

 

여ː정(勵精) [명사][하다형 자동사] 마음을 가다듬어 힘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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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내 꿈의 첫 페이지 프로그램’을 다녀왔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회사에 인력공백이 많은 상황에서 어렵게 휴가를 받아내고, 내게 아주 큰 돈인 100만원을 썼다.

본의 아니게 회사 워크샵과 일정이 겹치고 연구원 과제에 손도 못 댄 상황이라 갈까 말까 고민을 많이 해야 했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일을 무리해서 하려고 하는 게 아닌가 싶어 후회가 되기도 했지만, 어찌어찌 시간을 맞추어 프로그램에 참가했고 오늘 돌아왔다.

무리해서까지 내가 이 프로그램에 참가한 이유는 단 하나다. 이제껏 살면서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뭘 잘하는 지 정말 모르겠다는-가끔은 지겹기조차 한 이 질문들 때문이다.

나는 왜,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르고, 무엇을 잘하는지 모르는 것일까.

이 고민에 대해, 나름대로 느낀 점들에 대해 써보려고 한다.

 

이 나라에 태어난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순서의 교육과정을 밟아왔을 것이다. 초등학교 때까지는 서울대- 연대- 고대만 가면 뭐든 다 될 것이라 생각했고, 그런 대학을 들어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중학교 시절, 일류대가 들어가기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일단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는 걸 알았다. 시키는 대로 공부도 하고 적당히 반항도 하면서 고등학교 입시를 치렀다. 이런 저런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어쨌든 대학에 갈 고 3이 되고 일단 수능을 치라고 해서 쳤는데 어느 대학에 무슨 과가 있는지도 잘 알지 못했고 그 과에서 무엇을 하는지도 알지 못했다. 영문학은 영어공부를 하겠지, 경영학은 회사를 경영하는 거겠지 정도의 지식으로 점수에 맞는 대학을 선택하고 부모님이 선호하는 과를 선택하여 원서를 썼고 대학에 입학했다.

 

중, 고등학교 때까지의 시간표가 정해진 생활에 익숙한 나는 대학에 와서 당황했다. 무엇을 하라고 명령하는 담임도 없고, 정해진 시간표도 없으며 조례도 종례도 없다. 과 선배들의 도움을 받아 수업 시간표를 대충 짜고 나니 불안하다. 지방에서 올라온 나는 아는 친구도 없었다. 난생 처음 주어진 자유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고, 어느 곳에서 소속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이 불편했다. 친절한 동아리 선배가 사주는 밥을 먹고 나서 그 동아리에 들어갔다. 동아리 활동이 재미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마냥 신나는 것만도 아니었다. 나가기 싫어도, 내가 이 활동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은데 일단 갈 곳이 없으니 계속 나갔다. 중 고등학교 시절부터 별로 하고 싶지 않아도 그냥 끌려가듯 하는 것에 얼마나 익숙했던가. 그런 끌려 다니는 기분을 느끼면서도 당장 무엇을 할지 몰라서, 다른 일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라서, 무엇보다 방법을 생각하는 것이 귀찮고 힘들어서- 계속 그런 생활을 했다. 대학생활의 1-2년이 지나고 머리가 크면서 나름대로 방안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다른 동아리에 가입도 해보고, 휴학을 하고 사회경험을 한답시고 몇 가지 아르바이트를 해보기도 했다. 인사동에서 사진 찍기, 신문사 아르바이트, 타워팰리스로 배달을 하러 다니기도 하고, 빨간 모자에 유니폼을 입고 마트 도우미를 하기도 했다. 혼자 배낭여행을 다녀오기도 하고, 책도 읽어보고, MBTI 검사를 받아보았다. 나름대로 용을 쓴 것 같은데, 내 내부에서 달라진 것은 별로 없었다. 여전히 암담했고, 무엇을 잘하는지 몰랐고,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 몰랐다.

 

취업시즌이 되어 남들 하는 대로 토익을 보고 학점 관리를 하고 좋다는 대기업에 원서를 넣기 시작했다. 두 번째로 원서를 넣은 회사에 합격하였고,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내가 이 회사에 정말 들어가고 싶은 것인지에 대한 어떤 결정도 내리지 못하고 입사를 했다. 입사하고 많이 힘들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고 회사원으로 평생 산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만 자꾸 하게 되었다.

불가피한 상황에 놓이게 되고,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해야 하고, 책임감이 생기는 것-이 어른이 되는 조건 중 하나가 아닐까- 라고 느끼면서 여전히 답답한 마음으로 살았다. 무언가 더 있을 것 같은데, 내가 미치도록 하고 싶은 일이 있을 것 같은데, 무엇을 잘 하는지 뭘 하고 싶은지 모르는 상황이 참으로 답답했다. 지금도, 그렇다.

 

나는 여전히 탐색 중이고, 아직도 미로 속에 있다. 이 곳에서 연구원을 신청하고, 꿈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이유가 그 미로에서 빠져나오는 길을 찾기 위해서다.

꿈 프로그램에서 나의 직업을 정해 발표하는 과제를 수행할 때, 우리 ‘참깨’ 동기들이 나에게 비수 같은 말을 던졌다. 본인이 꿈이라고 써 놓은 것이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도피처를 쓴 것이 아니냐고. 본인에 대해 좀 더 파악을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고. 아직 그 일을 꿈이라고 결정하기보다는 다른 것을 탐색해 볼 시간을 갖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그들 앞에서 말하지 않았었는데도 내 속에 감추고 있던 질문들을, 은연중에 스스로 불안해하던 의문들을 그대로 이야기해주고 있었다. 결국 나는 10대 풍광의 가닥을 제대로 잡지 못했고, 구본형 선생님은 내게 한 번 더 꿈 프로그램에 참가할 필요가 있다고 말씀하셨다. 역시, 나는 아직 긴 탐색과 자기성찰의 시간을 가져야 할 것 같다.

 

아직 미로의 중간에 있고, 방향을 찾기 위해 헤매고 있는 사람으로서, 어렸을 때 이랬더라면 내 길 찾기가 좀 더 즐겁지 않았을까, 하는 바람에서 몇 가지 적어본다. 주위에 어린 친구들이 있는 분들께, 부모님들께 하고 싶은 이야기다.

 

어렸을 때, 오감을 다 써볼 수 있는 경험을 많이 하게 해주었으면 한다. 자연을 많이 접하고, 식물이든 동물이든 냄새 맡고 만져볼 수 있는 경험이 중요하다고 느낀다. 좋은 음악을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직접 소리를 내보는 것에 비할 수 없고, 텔레비젼이나 오락을 통해서가 아니라 실제로 몸을 굴리고 공을 던지고 벌판을 달려보는 경험을 해야 한다. 무엇이 존재한다는 것을 아는 것뿐만 아니라 나가면 그것을 접할 수 있다는 것, 존재하는 무언가와 그것을 몸으로 부딪쳐 느껴보는 그 연결고리가 아주 간단하고 자연스럽다는 것을 깨우치기를 바란다. 사실 이건 나의 취약점이라고 느끼는 부분이다. 책은 나름대로 어렸을 때부터 많이 읽었고 무언가 계획도 세우곤 했지만, 용기랄까 실행력이랄까, 직접 부딪쳐 얻는 것에 대해 익숙하지 않다고 해야 할까, 그 일을 시작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 괴리를 없애는 경험을 어렸을 때부터 많이 한다면 방황의 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다. 학원에 인터넷이 아니라, 내 몸을 통해 직접 세상을 만나는 경험을 자주 한 친구들일수록 더 넓게, 깊게, 다르게 볼 수 있을 거라는 내 믿음이기도 하다.

 

내게 꿈을 찾는 길을 여전히 험난하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고민의 필요성도 별 느끼지 않고 살아가는지 모르겠다. 주어진 대로 살아가는 것, 살아지는 대로 살아가는 것, 그것이 자연스럽고 편안하다면, 나는 그의 삶을 부러워해야 할까.

 

일단은, 마음이 가는 대로 움직여볼 생각이다. 나처럼 직관이 발달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나처럼 많이 경험하지 못한 사람이라면, 일단은 이렇게, 다른 무엇인가를 계속 시도하도록 몰아붙여야 한다. 일상의 권태에 침잠하지 않도록, 영혼이 떨리는 기분으로 살 수 있도록.

 

긴 여정 속에서-

 

계속해서 시작, 시작,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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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10 09:50:50 *.183.177.20

함께 연구원을 하던 그 시절, 이 글을 읽은 기억이 없다..

나의 과제, 나의 칼럼, 나의 책, 나의 일, 나의 가족.... 이것만으로도 정신이 없었던 것 같다.

그 시절, 조금만 여유를 낼 수 있었다면, 우린 아마 조금 더 일찍 친해졌겠지? ㅎ

 

- 뒤늦게 친해진 2기의 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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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26 23:21:21 *.169.218.205

응. 소정아. 그때 생각난다. ^^

그리고 나는 최근에 다시 다녀왔다.

아무래도 그땐 너무 어렸던거 같아. ㅋㅋㅋ

오래전 생각들을 다시 읽으니 새롭다. 재밌고.

요즘은 뭘 시작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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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06 08:38:51 *.244.218.8

하하. 저도 이게 제 글인가 긴가민가했습니다 ㅎㅎ

아주아주 처음에 쓴 글이네요.

심란한 아침에, 이 글 읽으니까 더 심란함.  결국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인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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