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오늘의

연구원의

변화경영연구소의

2013년 6월 24일 16시 31분 등록

나의 안식년의 중심에는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가 크게 자리잡고 있다. 그 곳을 통해 접한 많은 것들이 내 삶을 바꾸어 주었다. 큰 깨달음을 얻게 해준 것은 스승이었지만 나아갈 길을 보여준 것은 책읽기와 글쓰기, 그리고 여행이었다. 앞에서 가장 큰 자리를 잡고 있었던 나와 스승과의 만남에 대해서 논했으니 이제 그 외의 것들에 대해서 정리해 보려 한다.

 

독서력을 키우는 고전 독서법

나는 연구원 과정에 참여하면서 고전을 처음 접했다. 어릴 적부터 독서를 그리 즐기지도 않았고 학교에서는 입시 위주의 공부를 하다 보니 고전을 읽을 기회가 없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용서 중심의 독서를 했다. 그러니 고전 읽기는 정말 고역이었다. 연구원 커리큘럼에는 신화, 역사, 철학, 경영, 문학 등 다방면의 양서들이 들어 있는데 베고 자도 좋을 만큼의 두께에 아무리 정신을 집중해도 이해가 쉽지 않은 구절이 가득한 책들이 대부분이다. 인스턴트 죽 같은 얄팍한 자기계발서에 길들여져 있던 내 입맛에 고전은 씹기 조차 힘든 잡곡밥 같았다. 현미와 보리가 가득 들어 몸에 좋을 것 같기는 한데 아무리 씹어도 맛을 음미하기는커녕 삼키기 조차 어려웠다. 하지만 1년 정도 스승이 골라준 양서를 권하는 방식으로 읽다 보니 독서력이 일취월장했다. 이젠 어떤 책이든 두려움 없이 읽기를 시작할 수 있을 정도다.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책을 읽었기에? 궁금한 그대를 위해 그 비법을 전격 공개한다.

 

연구원 북리뷰 형식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저자에 대한 심층조사,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를 필사 한 후 자신의 소감을 정리, 마지막으로 내가 저자라면 이 책을 어떻게 다시 구성할 것인가를 고민하도록 디자인되어 있다. 저자를 조사하다 보면 그 사람의 삶을 이해하게 되고 그러면 책의 집필 의도를 파악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또한 마음에 드는 구절을 필사하다 보면 작가의 메시지를 나의 삶에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 또한 이런 것들이 자신의 글을 쓰는데 자연스럽게 ‘토피카 노트’로 활용된다. 토피카 노트는 예화, 경구, 통계자료, 역사적 사실 등을 모아 놓은 것으로 글을 쓸 때 적절히 활용하면 설득력 있는 글을 쓰는데 큰 도움이 된다. 마지막의 내가 저자라면 또한 읽은 책을 전체적으로 고찰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이 책의 인상적이고 탁월한 점과 아쉬운 점을 정리하고 자신이 책을 쓰게 된다면 어떤 점을 벤치마킹할 것인지가 정리된다. 이렇게 1년간 매주 한 권씩을 한 조각씩 뜯어 먹다 보면 어느덧 고전을 제대로 음미할 수 있는 독서력이 길러지는 것이다.


『서양문명을 읽는 코드, 신』의 저자 김용규는 고전을 읽을 때 고전 해설서보다는 고전 자체를 읽으라고 강조한다. ‘책에 대한 책’을 읽으면 어느 정도 도움을 받을 수는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책’을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플라톤 철학에 대해서 플라톤 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이 없는데 왜 플라톤이 아닌 사람의 책을 읽느냐는 논리다. 나는 연구원 과정 지정도서인 『난중일기』를 세 번 읽었다. 처음에 읽을 때는 아무런 감흥도 느끼지 못했다. 교과서에 나오는 영웅의 수백 년 전의 일기는 지루했다. 두 번째 읽을 때는 성웅 이순신이 아닌 인간 이순신이 내 마음 속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세 번을 읽자 그의 색다른 면모들이 보이고 그에 대한 긴 글이 쓰고 싶어졌다. 만약 내가 난중일기의 해설서를 읽었다면 이순신을 보는 나만의 관점을 갖지 못했을 것이다. 고전은 혀에 까끌거리고 목구멍에 걸려 삼키기 힘들지만 음미하며 씹다 보면 그윽한 향기와 함께 깊은 맛을 알게 된다. 그래서 고전은 천천히 여러 번 읽어야 한다.

 

삶의 길을 밝히는 글쓰기

연구원들은 매주 한 편의 책을 읽고 북리뷰와 칼럼을 써야 한다. 칼럼은 그 주에 읽은 책의 주제 범위 내에 있으되 자신의 관심사와 연결하여 써야 한다. 양서를 읽으며 자신의 관심사를 다양한 관점에서 모색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자신만의 주제를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나는 사기열전을 읽고 ‘보스열전’이라는 칼럼을 썼다. 한비의 ‘세난(說難)’편에 나오는 유세의 어려움에 큰 감명을 받고 쓴 글이다. 그 시절의 군주가 요즘 직장인에게는 보스고, 유세는 보스와 함께 논의해 일을 도모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한비의 말대로 유세의 어려움은 아는 것이 부족하거나 말솜씨가 없거나, 또는 할 말을 자유롭게 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군주의 마음을 잘 살펴 내 주장을 그 마음에 들어맞게 하는데 있다. 보스는 자신이 원하는 바를 명확히 말하지 않는다. 아랫사람이 그 마음을 읽고 알아서 일해주길 바란다. 하지만 그 마음을 읽어 내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 글에서 나는 내가 그동안 모신 보스들에 대해서 말하며 나는 어떤 보스였나 반성해 보았다는 이야기를 풀어 놓았다.

 

연구원 과정의 하이라이트는 한 달에 한 번 있는 오프라인 수업이다. 이것은 스승과 동기를 직접 만나 과제를 발표하고 서로간의 피드백을 주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스승은 매월 색다른 과제를 내주었다. 예를 들면 연구원 커리큘럼에서 첫 달은 ‘신화의 달’이다. 비교신화학자인 조셉 켐벨의 책과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는다. 그리고 다음 달의 과제는 ‘나의 신화’를 만들어 발표하는 것이다. 자신을 제일 매혹시킨 신화를 고르고 자신의 신화를 써내려 가다 보면 자신의 내면의 소리가 울려 나오게 된다. 나는 삼국유사에서 모티브를 따서 ‘선덕여왕과 유재령’이란 글을 지었는데 내가 전생에 유재령 부인이었고 선덕여왕과 힘을 합쳐 신라의 여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책을 출간하고 상담센터를 운영했다는 이야기였다. 놀라운 것은 이 짧은 글에 나의 무의식, 꿈과 욕망, 미래의 편린들이 모두 들어 있었다는 것이었다. 두 번째 오프라인 수업 과제는 ‘나의 역사적 장면’이란 테마였다. 인류의 역사 중 가장 인상 깊은 장면 3가지를 골라내고 그 이유를 설명하고 그 상징을 나의 역사에 어떻게 반영할 것인가를 연구하여 발표했다. 나는 이순신 장군이 명량해전을 앞둔 날 밤에 조선수군에게 한 연설, 마틴 루터 킹 목사가 미국 노예 해방 100주년을 맞아 열린 평화 행진에서 한 I have a dream 연설, 그리고 개그맨 김제동이 노무현 대통령 서거 1주기 시민추모문화제에서 사회를 본 김제동의 말이었다. 이 과제를 하면서 내가 진심을 담은 메시지를 유머에 버무려 전달해 감동과 변화를 창출하는 일을 하길 원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나의 역사적 장면으로 첫 책을 내고 출간기념회에서의 인사말을 하는 장면을 그렸다. 이 책이 나오고 나면 그 장면이 현실로 이루어질 것이다.

 

오프 라인 수업을 거듭할수록 그 동안 알지 못했던 나 대해서 많은 부분을 깨닫게 되었다. 또한 나와 다른 이들이 분명 존재하고 그들의 사고방식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과제를 하면 할수록 내가 꿈꾸는 미래에 대한 그림이 갈수록 선명해지게 되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나는 새로운 삶의 길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느끼는 여행

연구원 입학여행지는 경주였다. 4월 초순이라 벚꽃이 장관을 이루고 있었지만 초등학교 때 수학여행으로 왔던 경주는 별다른 감흥을 불러일으켜 주지는 못했다. 스승은 스스로 투어 가이드가 되어 경주의 문화 유적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놓았다. 나는 혼령이 된 진지왕이 도화녀와 정을 통해 낳은 비형랑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비형랑은 열 다섯이 되던 해부터 귀신과 어울려 놀았고 진평왕의 명령으로 귀신들의 힘을 빌어 귀교라는 다리까지 놓았다고 한다. 그 날 밤 우리는 진평왕릉에 놀러(?) 갔다. 사방에는 가로등 하나 없어 칠흙 같이 어두운 밤이었다. 진평왕릉은 왕릉답게 여러 명이 묘소 위에 올라갈 수 있을 정도의 넉넉한 크기였다. 우리는 묘소 위에 누어 밤하늘의 별을 보았다. 안동 소주를 한 잔씩 돌리고 나니 봄 밤의 추위도 참을만 했다. 진평왕릉에 누워 있으니 도화녀와 비형랑, 진지왕이 우리의 손을 더듬는 듯 했다. 밤바람에 벚꽃향이 함께 스며와 코 끝이 간질거렸다.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군위의 인각사에 들렀다. 인각사는 일연 스님이 머물며 『삼국유사』를 집필한 곳으로 보각국사비가 보존되어 있는 곳이다. 비문은 불세출의 서성 왕희지의 글씨로 일연 스님의 행적을 새겼다고 하는데 마멸되어 그 흔적을 찾아 보기 어렵다. 그것이 그 여행의 마지막 일정이었다. 나는 그런가 보다정도의 감흥밖에 얻지 못했다. 하지만 이후 연구원 필독서로 고운기의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를 읽으며 기억과 관심이 되살아 났다. 이후 나는 가족 여행으로 경주를 다시 방문해 삼국유사의 흔적과 정취를 더듬어 보았다. 그러자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이 살아나 눈 앞에 보이는 듯 했다. 그리고 스승이 왜 작은 절에 불과한 인각사에 버스를 세웠는지 알게 되었다. 여행은 모름지기 그렇게 하는 것이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저자 유홍준의 말대로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느끼는 법이다. 나는 스승과의 여행에서 그 말의 참뜻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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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안식년 1년 반은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었다. 그 여행의 길잡이가 스승이었고 연구원 동기들과 내가 읽은 책들의 저자와 등장인물들이 여행의 동행이 되어 주었다. 길수도 짧을 수도 여행이었지만 나는 이 여행을 통해 진정한 나와 조우할 수 있었다. 그대가 만약 자신을 잃어버렸다는 생각이 든다면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을 고려해 보길 바란다. 여행은 어디를 가는가 보다 누구와 가는가가 여행의 참맛을 알게 해주는 법이다. 그러니 길잡이와 동행인들을 잘 고르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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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24 16:34:02 *.252.144.139

<그만둬도 괜찮아>라는 제목으로 여성직장인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정리한 책을 쓰고 있습니다.

이 글은 그 책의 한 꼭지로 쓴 글입니다.

변경연 연구원 과정에 관심이 있는 분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네요.

스승은 계시지 않지만 그 분의 유산을 우리들 마음에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오늘은 더욱 스승이 그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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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25 09:05:21 *.216.38.13

이 글을 읽으니, 안식년을 변경연과 함께 보내기로 했던 결심도 궁금한걸요? 무엇이 황금같은 안식년을 변경연 연구원으로 참여하게 되었는지.. 아마도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아요. 이 글을 읽으며, 연구원 첫해 무엇을 했는지 저도 나름대로 정리해봐야겠다는 생각이듭니다. 좋은 칼럼 잘 읽었습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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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25 10:48:10 *.252.144.139

좋은 질문이네요.

쉬겠다고 사표까지 낸 황금같은 안식년에 왜 그 고생을 하게 했을까요?

그것은 아마도 사부님 때문이었을거에요.

연구원 과정은 제가 시간이 나면 꼭 참여하고 싶은 일이었거든요.

그리고 저는 후회하지 않습니다.

사부님과 연구원 과정이 없었다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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