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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효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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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1월 20일 12시 55분 등록

돌아간 사람, 이승의 의무를 다하고 돌아간 사람을 우리는 어떤 형식으로 기억하게 될까?

그들의 궤적의 표상인 기록과 작품으로 그들의 삶을 유추하고 좇는 일은 참으로 흥미롭다.

난중일기를 읽으면서 나는 이따금 책을 쓸어 내렸다. 그 책을 번역한 역자(이은상) 까지도 이 땅에 존재하지

아니한 그 세월의 무게가 각별히 다가왔기 때문이다.

책상위에 놓인 탁상용 달력에는 내가 챙겨 주어야 할 가족들의 일정과 나의 일정이 함께 적혀 있다.

당일에 한두 가지라도 미루게 되면, 며칠씩 밤 시간을 쓸 수밖에 없는 처지여서 그날 밀린 일이 없다는 것은 곧

내 일상의 맑음지수를 뜻하는 것이었다.

 

운전자 앞에 나타나는 장애물은 예고가 없다는 것을 잠시 잊었던, 나는 무용지물이 된 일정표 앞에서 지난 며칠이

마치 출구 없는 공간에 갇힌 듯 답답했다. 때문에 신경증 환자처럼 무엇을 해도 수런거리는 마음을 다스리느라

화집을 펼쳐 보았다. 칸딘스키 작품을 좋아하는 내가 손에 든 것은 고흐의 화집이었다. 마침 조간에서 그의 초기

작품이 25억이란 가격으로 경매에 나온다는 기사를 읽기도 한터였다. 그의 그림에 찬사만 보낼 수 없었던 것이 평소

미천한 나의 사견이었다.

고흐가 죽기 이 년 전, 프로방스 ‘아를르’의 시대라 불리는 시기에 그렸던, 여러 점의 해바라기.

그가 화폭에 쏟아낸 물감을 내가 좋아하는 바다의 치마폭에 마구잡이로 풀어 놓고 싶었던 어느날처럼 그의 해바라기는

여전히 도발적이고 또 여전히 슬퍼 보였다. 많은 평론가들은 고흐가 네덜란드에서 파리로, 또 파리에서 아를르로 이동한 것은

태양과 더 가까워지려는 것이었다고 풀이하고 있다.

아를르의 ‘노란집’에 살았던 이시기 화가의 그림은 온통 노란빛깔이다. 해바라기를 그리는 동안 알콜에 중독되었던 고흐는

술을 금지하는 의사에게 “노란색의 정점에 도달하기 위해 서는 나 자신을 속일 필요가 있어 술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는 예술가로서의 그의 지향점이 잘 드러나 있다.

"이제 네 번째 해바라기를 그리고 있다. 이 작품은 노란 배경 앞에 있는 해바라기 열네 송이야. 언젠가 그렸던 마르멜로와 제몬 정물하고 비슷하지만 이번작품이 좀 더 크고 그 느낌도 좀 독특한 것 같다." “정신을 집중해 해바라기 그림을 그리고 있다. 황금도 녹여버릴 것 같은 해바라기의 강렬한 느낌을 다시 얻기 위해서다”

해바라기를 무척 좋아한 고흐는 태양바라기를 하는 해바라기의 생태 본능을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을 찾아 헤매는 자신과 동일시한 것처럼 보인다. 1987년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3,629만 2500달러라는 세계대전 이후 유래 없는 가격으로 팔렸다는 고흐의 ‘해바라기’

현대에 그는 위대한 화가 중 한 사람으로 평가 받지만, 살아 있는 동안 한 번도 천재성과 작품성을 인정받지 못했으며, 지독한 가난과 병에 시달리다가 자살로 삶을 마감했다.

‘황금도 녹여 버릴 것 같은 해바라기의 강렬한 느낌’을 찾고자 그 자신을 예술가적 삶에 온전히 바쳤던 고흐. 술에 의지해 자신을 속여서라도 자신이 표현하고자 했던 빛깔에 다다르고 싶었던 간절한 작가로서의 열망.

우리가 그의 작품에 경외감을 표현하는 것은 바로 그 시간에 대한 경배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우리에게 특별한 사람이 되는 인물에게는 그것이 어떤 형태였든 간에 (파우스트적 계약) 어떤 순간에도 놓지 않는 일관적 열정이 있다는 특징이 있다.

그들이 남기고 간 이순신의 칠년간의 일기와 고흐 자신의 삶을 대변하고 있는 해바라기는 단순한 작품이나 기록을 넘어선 치열한 삶의 증표요 상징이다. 엉망이 된 단 일주일간의 일정에 걸려 다음 고개를 넘지 못하고 있는 나에게 이순신과 고흐.

‘열정을 일상화해야 할 것이라는 두 사람의 가르침에 고개를 숙이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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