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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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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 8일 08시 06분 등록

 

지난 2주간 글을 못 올렸다. 개인적인 불찰도 있지만 지난 두 달 동안 숨가쁘게 진행된 한 프로젝트가 주된 이유였다. 

유명한 모 전자 회사에서 국내 최초로 최근 IT 업계의 핫 이슈가 되고 있는 빅 데이타 관련하여 전사 표준화 PoC(Proof of Concept: 해당 기술의 내용과 성능을 검증하는 작업)를 수행했다. 내가 총괄 PM이었고 약 20여 명의 인원들을 이끌고 1월 달에는 약 500 여 페이지의 제안서 작성을, 그리고 2월 초부터는 엄청난 고가의 장비들을 가지고 고객사에 들어가 고객사의 실 데이타를 가지고 실제 빅 데이타 처리 작업의 시연을 수행해야 했다.

국내 최초로 진행된다는 점 때문에, 회사의 유명도가 가지는 파급력 때문에 IT 업계의 관심은 뜨거웠다. 언론들은 해당 내용을 조금이라도 알아내기 위해 혈안이 되었고, 관련 이야기가 해당 종사자들의 SNS를 덮었다. 거의 모든 IT 벤더들이 출동했고, 그 중 몇 개 업체가 1차 제안 평가를 통과해서 실제 PoC를 진행했다. 단순히 한 회사의 표준을 넘어 산업 표준이 될 가능성이 높아 경쟁은 뜨거웠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고객사가 제시한 PoC 시나리오는 엄청나게 복잡하고 또 까다로웠다. 2월 한 달 동안 우리 팀원들은 주말도 잊은 채 밤을 낮의 연장인 것처럼 일했다. 또한 회사 브랜드 때문에 본사에서도 아시아 지사에서도 이 작업은 뜨거운 관심사가 되었다. 문의가 이어졌다, 하지만 중요성 덕분에 관련 지원도 얻어낼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일을 하고, 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진 만큼 이슈도 많았다. 특히 엄청나게 어려운 테스트 과제가 주어진 탓에 이것을 풀어내기 위해서는 지적인 능력과 함께 짧은 기간 동안에 실제로 많은 시간을 투여할 수 있는 능력, 즉 밤을 새워 문제에 몰입할 수 있는 체력적인 능력 역시 필요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수행 팀원과 관심을 가진 주변 임원들의 숨겨진 면이 자연스럽게 표출되었다.

테스트 수행 중에 기술적인 이슈들이 많았다. 하지만 나의 보스인 임원은 별다른 조건 없이 필요한 자원들을 신속히 추가적으로 투입해 주었다. 너무 과도한 것이 아니냐는 주변의 불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인원을 추가 배정해 주셨다. 그 분과는 벌써 함께한 지 10년이 넘는다. 항상 나를 믿어 주신다. 내가 어떤 스타일인지를 너무 잘 아신다. 내가 징징댈 때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주신다.

하지만 또 다른 관련 임원은 시시콜콜 나를 괴롭혔다. 고객의 조그마한 반응 한 마디에 민감해 하며 왜 그 문제에 빨리 대응하지 않냐고 나를 몰아쳤다. 현장에 있지도 않으면서 고객과 전화 중에 듣게된 작은 사안 하나를 가지고 나를 몰아부쳤다. 나는 안다. 그는 책임지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잘 되면 발 담그고 안 되면 발 빼고 그 전에 귀책자를 만들기 위한 사전 명분 작업에 치중하는 사람임을. 우리는 함께 보낸 시간이 없다. 당연하다. 나는 내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은 타입이 아니기 때문이다. 

단편적인 비교일런지는 모르지만 믿어 주는 사람을 모시고 일한다는 것은 더 없는 행복이다. 돈과 비교될 사안이 아니다. 위로 올라갈수록 그 중요함은 더해진다. 천금을 주어도 믿어주지 않고 사사건건 자신의 면피를 위해 시비 거는 소인배와는 일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깊어진다. 단지 자존심 때문 만은 아니다. 내 삶의 행복감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일 것이다.

업무 수행 중 한 팀원은 믿을 수 없는 능력과 체력을 보여 주었다. 일에 몰입했고 별도로 시키지 않았는데도 문제를 풀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몰입의 농도가 짙어지자 어렵던 문제의 해결책이 제시되었다. 50분 걸리던 어떤 기능을 1분 30초로 줄여 내었다. 

반면 어떤 팀원은 살살 뺐다. 시간을 투여하지 않았고 정해진 시간만 일하고자 했으며 내가 명시적으로 지시한 것 이외에는 수행하지 않았다. 어제 밤샌 동료가 도와달라고 한 부탁을 나 몰라라 했다.

극한 상황에 처할 때 그 사람의 본질적인 가치관에 기반한 묵은 행동이 수면 위로 드러난다. 그래서 태도 값의 범위가 (-1 ~ 1)인 것이고 그 사람의 능력과 곱해지는 것이다. 능력이 아무리 좋아도 가치관에 기반한 태도가 불순할 때 그의 능력을 조직에 해가 된다. 커다란 문제가 앞에 있을 때 태도는 결정적인 요소가 된다. 좋은 태도를 기반으로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사람은 결과와 상관없이 믿게 된다. 그가 행한 노력과 시간을 알기에 그의 태산 같은 묵직함에 무한한 신뢰를 보내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노력을 별로 보이지 못한 것 같은데 나를 믿어주는 분이 오버랩 되면 새삼 좋은 인연에 감사하고 더욱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믿어 주는 자와 믿을 수 있는 자, 나를 둘러싼 인간 관계의 핵심 노른자이다. 그 안에는 함께 보낸 많은 시간의 역사가 숨어 있다. 문제가 앞에 닥쳤을 때 그것을 어떻게 돌파해 나가는 지를, 그 과정에서 어떻게 서로 의지할 수 있는 지를 알기에 믿어 주고 또 믿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믿게 되면 간섭하지 않게 되고 그러면 상호 신뢰에 기반한 업무 수행이 가능하게 된다. 더 이상 그가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 가는 중요하지 않게 된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으로 성과를 만들어 낼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이다. 어제 밤을 새운 피로 때문에 오늘 아침에 회사에 보이지 않음을 알기 때문이다. 또한 내가 잠든 사이 그는 불면의 밤을 보낼 것임을 역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과정과 시간에 대한 전적인 자유를 부여할 수 있는 것은 이러한 신뢰를 가질 수 있을 때이다. 

그나저나 지금 나의 보스께서 정년을 맞으셨다. 해가 바뀌면 새로운 보스가 올텐데... 그 분의 믿어줌에 익숙해진 나는 새로운 고민거리를 하나 짊어지게 될 것 같다. 뭐 잘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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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24 16:40:32 *.62.164.198
BDA 하셨군요 ^^ 한달간 고생 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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