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이 기쁨에게
천지가 꽃인 사월이 싫어 잔설이 남고 눈바람이 매운 곳을 찾아 다녀왔습니다. 올해, 어느덧 스승의 추도식은 4주년이 됐고 부활주일은 세월호 3주기였습니다. 아랫글은 지난해 사월, 여러분께 보냈던 수요편지입니다. 4월을 보내는 제 마음이 전해와 다르지 않은 한겨울인지라 그 편지를 다시 전합니다.
온 천지가 봄꽃으로 만발한데 슬픔을 견뎌야 하는 사월이 됐습니다. 슬픔으로 짓무른 꽃물이 흐르는 슬픔의 강이 내내 흘러도 아무렇지 않은 척, 한 치 어김없이 다가오는 엄숙한 일상을 살아냅니다.
어느덧 스승의 세 번째 추도미사가 있던 그날, 제자들은 스승의 서재와 뜰을 찾았습니다. 또 그 저녁이 아버지의 기일이었던 저는 가족들과 아버지를 추모해야 했지요. 그제는 채 피지도 못한 채, 동백처럼 뚝뚝 떨어진 수많은 꽃들을 애도 했습니다.
그래도 절대 떠나지 않을 거 같던 슬픔이 그예 일상에 떠밀려 가고야마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정호승시인은 슬픔에 관한 시를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슬픔이 기쁨에게 정호승
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
겨울밤 거리에서 귤 몇 개 놓고 살아온 추위와 떨고 있는 할머니에게 귤 값을 깎으면서 기뻐하던 너를 위하여 나는 슬픔의 평등한 얼굴을 보여 주겠다.
내가 어둠 속에서 너를 부를 때 단 한 번도 평등하게 웃어 주질 않은
가마니에 덮인 동사자가 다시 얼어 죽을 때 가마니 한 장조차 덮어 주지 않은 무관심한 너의 사랑을 위해
흘릴 줄 모르는 너의 눈물을 위해 나는 이제 너에게도 기다림을 주겠다.
이 세상에 내리던 함박눈을 멈추겠다. 보리밭에 내리던 봄눈들을 데리고 추워 떠는 사람들의 슬픔에게 다녀와서 눈 그친 눈길을 너와 함께 걷겠다.
슬픔의 힘에 대한 이야길 하며 기다림의 슬픔까지 걸어가겠다.
그들을 기억하는 힘으로 오늘을 살고 있는 그대, 슬픔도 때로 동력이 된다는 거, 슬픔은 사랑의 다른 말인 거, 기쁨보다 슬픔의 힘을 아는 얼굴이 예를 지킬 줄 알게 되고 그 예가 무엇인지 비로서 깨닫는 아침입니다. 기다리는 슬픔 역시 사랑의 다른 말이었다는 거, 때로 일상이 스승이 된다는 거, 그대에게도 이르게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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