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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3월 14일 09시 27분 등록

이 글은 3기 연구원 박소라님의 글입니다.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의 목소리가 불안한 듯 떨리고 있다. 나는 회의 중이라 전화를 끊일 수 밖에 없었다. 회의 시간 내내 엄마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회의가 끝나고 엄마에게 전화를 급히 했다. 하지만 통화가 되질 않는다. 엄마가 나에게 전화 하는 일은 살면서 흔한 일이 아니다. 칼 퇴근은 생각하기도 힘들지만, 오늘 만큼은 엄마에게 빨리 달려가야 했다. 일을 뒤로 하고 집으로 부랴부랴 달려 왔다. 엄마는 해가 저물어가는 거실에서 TV를 보고 계셨다. 엄마의 얼굴빛이 해를 등진 그림자처럼 어두웠다.

엄마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엄마는 막내둥이에 대한 실망을 늘어놓으셨다. 낮에 동생과 심하게 다투셨나보다. 엄마의 목소리가 또 떨리기 시작했다. 지켜보는 조마조마한 마음에 나는 고개를 숙였다. “막내랑 싸우고 친구들과 등산을 갔는데, 등짝이랑 온몸이 아파서 한발 한발 걷기가 너무 힘든거야, 소라야” 잠시 침묵이 흘렀다. 고개를 돌려 엄마를 바라보니, 엄마가 두 손으로 눈물을 훔치고 계셨다. ‘세상에, 엄마가 내 앞에서 울고 있다. 엄마가 내 앞에서 울고 있다.’ 나의 30년 인생에 처음 있는 일이다. 믿을 수가 없어 아무 말도 못하고 멍하니 있었다. 미친 듯이 뛰는 심장 소리가 엄마한테 들릴까봐 조마조마 했다. 조금이라도 소리가 덜 세어나가게 두 손으로 가슴을 꾹 누른다.

“엄마가 너희들을 잘못 키웠나보다. 너희들을 이 세상에 잘못 나오게 했나보다. 엄마가 매번 부족해서 늘 이렇게 힘든가보다. 어제는 언니 집에 가는 길에 전철을 탔는데, 신문 줍는 아저씨 5명이 한꺼번에 정신없이 타더라. 그리곤 서로 싸워가며 신문을 한 장이라도 더 가져가려고 안간힘을 쓰는데.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그냥 눈물이 나는 거야 소라야. 고생하는 아빠도 생각나 안쓰럽고, 사는게 뭔지, 엄마가 요즘 그냥 아무것도 아닌 일에 눈물이 자꾸 난다..” 엄마는 더 이상 흐느껴 울지도 못하고 꺼이꺼이 눈물을 흘리셨다. 가슴이 새카맣게 타들어 갔다. 심장이 오그라들고 또 오그라들며 짜내는 아픔이 이런 걸까.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침묵 속에서 눈물이 볼을 지나 가슴의 길로 타고 내려갔다. 그때, 엄마의 포옹이 스쳐지나갔다. 고3때, 나는 조각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가정형편으로 그림을 그리기 어려웠던 나는, 몇 개월의 화실수업을 뒤로하고 꿈을 접어야 했다. 뒤늦게 다시 인문계로 공부를 시작하였지만 역부족이었다. 내가 대학입시에 처음으로 실패했을 때, 두려움이 앞서 말을 꺼내지 못하던 나에게 엄마는 따스한 포옹을 선물로 주었다. 그리고 센스 있는 농담도 잊지 않으셨다. “폭신폭신 하지? 엄마가 한 쿠션 하잖니” 나의 눈물과 실패 그리고 웃음이 뒤범벅이 되었던 그때, 그렇게 엄마는 나의 실패를 품어내는 폭신폭신한 영웅이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래, 이제는 엄마를 내 품으로 안아야 할 때다. “엄마 안아 줄께.” 혹시라도 엄마가 날 이상하게 보면 어쩌나 내심 걱정하며, 용기 있게 두 팔을 벌렸다. 엄마는 거짓말처럼 나의 품에 안겼다. 놀라움도 잠시, 나의 몸이 한 송이의 꽃처럼 활짝 피어났다. 활짝 핀 나의 몸속으로 스며드는 한 마리 꽃벌 같은 엄마. 꼭, 나의 어린 딸 같다.

엄마의 우주는 내 품안에 쏙 들어올 만큼 작아졌다. 작은 몸에는 완결되지 않은 엄마의 한숨들, 사랑들, 절망들, 기다림들, 추억들, 시간들이 파도친다. 그 파도의 리듬이 내 몸으로 전해져 가슴이 먹먹해 졌다. 내가 아파하던 그때, 엄마도 먹먹해진 마음을 뒤로하고 나를 품었다는걸 새삼 깨닫게 된다. 꼭 안긴 엄마에게 나는 이야기 했다. “엄마, 기억해? 엄마가 이 세상에 날 내 놓은게 아니라, 내가 엄마를 선택해서 이 땅에 온 거야. 내가 엄마한테 반해서 엄마배속에 자리 잡고 버텼다고. 얼마나 경쟁률이 쌨는데. 그러니 그런 말 말아요. 나 엄마 원망 절대 안해. 오히려 엄마가 나 원망스럽지?” 순간 ‘킁킁!’. 막혀있던 콧물 터지는 소리. 엄마가 허탈하게 웃었다. 성공이다.

“엄마, 우리 매일 아침 포옹으로 모닝 인사 하는거 어때?” 늙은 엄마, 계집아이처럼 환하게 웃으시며, “그래, 그래, 요샌 아메리칸식 인사가 유행이라더라. 우리도 하자.” 그러신다. 어느새 나는 엄마의 품에 안겨있다. “소라야, 엄마 여전히 폭신폭신 하지?”. 물론이다. 정말 폭신폭신하다. 왜냐하면 그건 엄마의 전부니깐.

누군가의 개입을 향해 온몸을 열어둔 채, 오늘도 그 자리에 여왕처럼 앉아 계신 엄마. 엄마는 늘 그렇게 내게 있다. 나의 역사의 끝에서 서성이는, 아득히 다 마치지 못한 말로, 나의 폭신폭신한 영웅 ‘엄마’라는 이름으로.

 

 

                                                                                박소라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gimmorrison@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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