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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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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월 20일 07시 35분 등록

                            * 이 글은 변화경영연구소 5기 연구원 수희향 박정현 님께서 쓰신 글입니다. (2009.6.10 & 2009.6.25)

 

 

1

 

내가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고 외국 땅에 발을 디딘 것이 언제였나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20여년 전이었다. 처음으로 부모님 곁을 떠나 혼자 시드니 땅으로 날아가고 있었는데, 그 때만해도 서울-시드니 직항편이 없어서 일본 항공인 JAL기를 타고 가야만 했다.

 

문제는 영어도 일어도 한 마디도 못하는 내가 동경에서 갈아타야 하는 그 때의 나로서는 일생일대의 모험을 강행해야 하는 난관이었다! 그랬었다. 지금 생각하면 부모님께서 걱정하실까봐 겉으로는 티를 안 내는 척 (지금 생각하면 나의 불안을 어찌 모르셨을까만은) 하면서도 속으로는 소위 말하는 국제미아가 되면 어쩔까 어찌나 불안했던지

 

그 후 시대가 바뀌어서 시드니 공항에서 영어연수나 조기 유학을 오는 초등학생들의 의젓하고 또랑또랑한 눈빛을 대할 때마다 그 옛날 다 큰 내가 겁에 질려 벌벌 떨던 모습이 떠올라 혼자 슬며시 웃음짓고는 한다.

 

그렇게 겁에 질려 외국으로 가는 첫 비행기를 타본 이후 수십 년 동안 때로는 관광이라는 이름으로 때로는 출장이란 이름으로 외국의 낯선 땅들을 밟아 보았지만 어쩐지 첫 출발에서 느꼈던 느낌 <두렵지만 미지의 세계에 대한 설레임>같은 것은 더 이상 느껴보지 못했던 것 같다.

 

궁금은 했던 것 같다. 이번에 가는 나라는 어떨까? 하는 호기심이나 궁금증은 일었지만, 그 때 느꼈던 낯선 곳에 대한 원초적인 두려움은 그 이후 두 번 다시 느껴보지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일까? 늘 여행에 목말라 했었다.

 

나를 단정짓고 나를 한정 지으며 나를 표현하는 그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 미지의 세계로 훌쩍 떠나고 싶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그러지 못했다.

 

이유가 무엇이었냐고 묻는다면 대답할 자신이 없지만 변명을 하라면 몇 장쯤은 단숨에 쓸 수 있을 것 같다. 홀로 여행을 떠날 용기가 없었던 나의 모습이 인생에서 진정한 홀로서기를 하지 못한 내 모습과 겹쳐지며 이제 변경영을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스토리텔링의 형식이 아닌 라는 일인칭으로 글을 쓰고 있는 내 모습이 낯설기도 하지만 한편 나름 반갑기도 하다. 스토리 텔링 형식은 나의 상상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나를 드러내지 않고 글을 쓸 수 있는 도피처가 될 수도 있기에 말이다.

 

이런 나였기에 언어가 통하지 않는 나라에 홀로 여행을 가는 모든 여행자들은 늘 경외의 대상이었다. “우와…. 저 사람들 그 낯선 곳에서, 더군다나 말도 안 통하는 낯선 땅에서 어떻게 여행을 하는 거지? 무섭지 않나? 두렵지 않나?”

 

그랬다. 내가 떠나지 못했던 가장 큰 걸림돌은 다름 아닌 낯선 곳에의 두려움이었다. 나는 언제나 그 거대한 두려움 앞에 무릎 꿇고 여행이 아닌 관광으로 적당히 타협을 하고 있었다. 삶을 대하는 나의 태도와 많이 닮아 있다.

 

하지만 아무리 곱씹어 생각해보아도 그건 적당한 타협일 뿐, 절대 여행의 자리를 메꾸어 줄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꽉 짜여진 일정, 짜증나리만치 밀어 부치는 쇼핑 투어, 현지인들과는 늘 차창 안에서 버스 창문이라는 경계를 두고 만나야 하는 안타까움. 아무리 낯선 곳을 다녀왔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으려 해도 결코 채워질 수 없는, 오히려 갈증만 더해 갈 뿐인 타협이요 거래였다.

 

그런 내게 변경영 연구원 프로그램 속의 해외 연수 프로그램은 한 줄기 시원한 빗줄기와도 같았다. 아직도 혼자서는 선뜻 나설 용기가 없는 내게, 단체 관광이 아닌 여행. 사부님과 동료들과 함께 길을 따라 땅을 밝으며 낯선 곳에서 헤맬 생각을 하니 지금부터도 자꾸 무언가를 끄적이고 싶어진다. 

 

처음 나 혼자 미지의 세계를 찾아가던 여행 이후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의 두 번째 여행이긴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어릴 적 나는 분명 그러한 용기를 지닌 아이였었다. 물론 그 때, 나의 시드니 행이 꼭 나의 꿈을 향해서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내 안에는 열정이 있었다고 믿고 싶다.

 

이제 나는 두 번째 여행을 통해 오랜 시간 잠들어 있던 열정에 불을 지피고 싶다.

 

7월 말이면 우리 모두 <나의 히스토리>를 재정비하게 된다. 그리고 8월 초에 8 9일동안 낯선 곳으로 함께 여행을 떠난다.

 

어느 정도 형상을 갖춘 진정한 나를 데리고 낯선 곳으로 가서 그 녀석의 가슴이 뛰게 해주는 의식을 치루고 오고 싶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조용한 기대감이 서서히 나를 감싸기 시작한다

 

 

2

 

내가 부모님께서 내 삶을 대신 해결해주지 못한다는 것을 처음 깨달은 것이 아마 대학교를 떨어졌을 때였던 것 같다. 그 때까지는 그저 부모님께서 그리고 선생님들께서 일러주시고 인도해 주시는데로만 살면 되는 줄 알았다. 세상은 그냥 그렇게 사는 건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대학 입시에서 떨어지자 갑자기 알 수 없는 두려움과 막막함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어라? 이건 뭐지? 그 분들이 해줄 수 없는 게 있네. 뭐야. 그럼 난 지금부터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그 때 난 처음으로 부모님께 어차피 내 힘으로 살아야 할 거면 내 뜻대로 하게 내버려두지 왜 그랬냐고 물었고, 어안이 벙벙했던 부모님은 왜 네 힘만으로만 살아야 하느냐고 내 말이 정말 이해되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으셨다.

 

지금 생각하면 피식~하고 웃음이 흘러나올 정도로 오래 전의 이야기이지만, 아마 그 때부터였던 것 같다. 세상을 살아가려면 나만의 지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

 

요즘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우리나라 부모들은 자식들의 인생에 엄청난 책임이 있는 것처럼 행동함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때로는 너무도 강한 책임 의식에, 자식들 인생에 마치 어떤 권리가 있는 것처럼, 그들의 삶을 인도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세상을 어떤 시각으로, 어떤 관점으로 살아가느냐에 따라 무슨 대학을 나오고 어떤 과목이 전공인지가 중요할 수 있다. 많은 구성원들이 이룩한 사회적 관습을 전면적으로 부인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돈이란 것이 너무 없어도 결국 돈의 위력 앞에 노예가 될 수 밖에 없고, 돈을 너무 쫓아도 그 권력 앞에 무릎 꿇을 수 밖에 없듯이 말이다.

 

하지만 아이들 각자가 타고 태어난 고유의 재능은 어떨까? 어쩌면 나의 두터운 사회적 관습의 벽이 우리 아이들의 찬란한 재능을 행여나 가로막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 아이들의 뛰는 가슴은 또 어떨까? 내 아이가 가슴 뛰는 열정으로 살아가고픈 열정의 길을 내가 단 몇 푼의 돈으로 측정한 엉뚱한 길로 그 아이를 인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그 아이는 자신의 길에서 행복과 성공 모두를 거머쥘 수도 있을 터인데 말이다.

 

나는 진정 행복 측정기같은 것이 있다면, 이 땅 위에 사는 소위 부모님들이 그리도 바랬던 직업군을 가진 사람들의 행복지수를 측정해보고 싶다. 부모님들이 자신들의 목숨보다 더 사랑하는 자식들에게 바라는 것은 단순히 육체적으로 안락한 삶이 아닌 저 밑바닥에서부터 느껴지는 생명력 넘치는 삶. 거기에서부터 오는 가슴 충만한 행복감이 아닐까…? 사실 누구보다 자식들의 행복을 가장 바라는 분들이 그분들일 텐데 말이다.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있음이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인지, 당신들 또한 애타게 열망한 적이 분명 있을 터인데 말이다.

 

내 삶의 지도는 내가 그리고 싶다.

 

부모님들, 선생님들 그리고 사회는 내게 동서남북이 어딘지를 알려주기만 하면 된다. 정글에서 맹수들을 만나면 어떻게 대치하면 되는지를 일러주시면 감사하다. 하지만 당신들이 나를 위해 길을 닦고 산을 오르는 지름길로 인도하려 애쓰지는 않으셔도 된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나는 사랑하는 동료들과 여행을 떠나게 된다. 길동무들과 함께 하는 여행 말이다. 가슴 설레게 여행을 기다리는 건, 아마도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이, 곳들이 그리고 사람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어서 일 게다. 그리고 낯선 이들과 뒤죽박죽 뒤엉킨 관광이 아닌 사랑하는 일들과 함께 하는 여행이 기다려지는 건, 그 시간들을 통해 우리는 더 많이 나누고, 더 깊이 다가설 것임을 떠나기 전부터 감지하고 있기 때문일 게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는 각자 자신만의 체험과 느낌 그리고 생각을 담아 돌아올 것이다. 함께하여 든든하고 행복하지만 그 안에서 나만의 지도를 만드는 일. 그것이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하는 여행의 참다운 기쁨이고, 삶의 기쁨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지 않을까…?

 

인도의 명상가 오쇼 라즈니쉬는 살아 생전 그가 행한 기이한 행적 때문에 섹스 그루혹은 롤스로이스 그루라는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그 스스로도 말했듯이 진리에 이르는 방편은 112가지도 넘고 많은 현자들이 계속해서 더 많은 요법들을 시대에 맞춰 세상에 내놓고 있다. 중요한 건, 달이지 그가 가리키는 손가락이 아니다. 만약 그가 걸어간 길이 내게 적합하지 않다면 내게 맞는 길을 찾으면 될 것이다. 그의 행적 중에 공감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해서, 그가 가리킨 달마저 외면할 필요는 없다.

 

지금부터 난 나만의 지도를 그려나갈 것이다. 그렇다고 지금까지 내가 배웠던 것들을 나의 지난 날들을 버리지도 않을 것이다. 부모님께서 내 안에 심어주신 생각들, 사회가 내게 요구했던 사항들 그리고 최근에 읽은 오쇼 라즈니쉬의 책까지. 이 모든 것들을 끌어안고 거기서부터 나만의 지도를 그려내고 싶다.

 

그 지도는 분명 나의 지도이지만 결코 혼자만의 지도는 아닐 것이다. 간절함으로 맞닿은 소중한 인연들이 함께 하는 지도일 게다. 우린 끊임없이 서로의 지도를 살펴봐주며 서로가 길을 잃지 않도록 손을 잡아줄 게다. 가끔은 서로의 지도에 휴식처도 그려 넣어주면서 말이다.

 

이번 여행처럼 <따로또같이> 그런 나만의 지도를 그리고 싶다. 이것이야말로 이 땅 위의 수 많은 딸들이 당신들의 존재조차 희미하도록 자식들만을 위해 살아오신 수 많은 어머니들의 삶까지 끌어안는 우리들의 사랑이 아닐까 싶다.

 

내 삶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고 있을 크로아티아 여행. 그 시간들을 가만히 불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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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04 07:43:37 *.246.72.31
그로부터 이년반이 지났네요 ^^
그때의 느낌을 고스란히 기억하고
그때의 결심을 착실하게 실천하는
언니에게 기립박슈~~^^
좋은글 잘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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