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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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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월 23일 21시 48분 등록

* 본 칼럼은 변화경영연구소 1기 연구원 김미영 님의 글입니다.

 

 

내겐 두 가지 지병이 있다. 그 중의 하나가 내 글에 감동하는 거다. 아주 오래된 증상이다. 일기를 쓰면서 생긴 병인데 혼자서 훌쩍거리기도 하고 낄낄대기도 하고 암튼 난 내 글을 좋아한다. 지능이 떨어지는 편은 아닌데도 볼 때마다 늘 새롭다. 보고 또 본 지난 일기 보면서 밤새고 그런다. 물론 혼자서만 하는 짓이라 들킨 적은 없다. 혹시 남편은 알지도 모른다. 읽다가 갑자기 돌변해서 남편을 째려보곤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신경 쓰지 않는 눈치다. 그러니 이건 나만 아는 병이다.

 

 

또 하나. 이건 우리 아이들이 아주 괴로워하는 거다. 거울 앞에만 서면 시력이 맛이 간다. 세상에서 젤 예쁜 여자가 거기 있다고 중얼거린다. 이것도 오래됐다. 초등학교 때는 화장실 거울 앞에서 미스코리아 수상 소감 떠들고 그랬다. TV에서 생방송으로 나오던, 머리에 왕관 쓰고 두 손에 봉 들고 마스카라 번진 까만 눈물 흘리며 알지도 못하는 미용실 원장님 이름 대는 그거, 거울 앞에만 서면 자동이었다. 혼자서 하던 그 짓을 아이들에게 들킨 뒤론 아이들 앞에서도 했다. 한동안은 소리 지르며 도망가더니 언젠가부턴 들은 척도 하지 않아 이젠 다시 혼잣말 하듯 한다. 이 병도 깊다.

 

 

두 가지 병의 부작용은 욕심이 하늘을 찌른다는 것이다. 나에게 결혼은, 인생 그 이상이어야 했다. 내가 선택한 남자에 대한 미움과 후회로 가득 찬 삶은 그래서 사는 게 아니었다. 뛰쳐나가고만 싶었다. 내 욕심이 우울이 되어 난 그렇게 아팠었다. 그런데 아이들. , ... 얘네들은 정말 머릿속에서 정리가 안 된다. 이 병 깊은 환자가 두 아이를 어찌 키웠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얘네들은 아마도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졌는지도 모른다. 내가 쓴 육아일기만 없다면 난 정말 그렇게 믿을 것이다.

 

 

병 깊은 내게 큰아이는 소피마르소다. 내가 고등학교 때, 사진을 코팅해서 책상에 온통 도배했던 눈이 깊은 프랑스 배우 소피마르소. 큰아이를 임신 했을 즈음이던가. 그녀가 드봉 화장품 광고모델이었다. 화장품 가게에서 구한 광고 사진, 나는 그녀의 코팅된 사진을 거울 옆에 놓고 번갈아보는 게 일이었다. 내 딸은 그러니까 소피마르소여야 했다. 그때의 내 사랑은 그 모양이었다. 작은애? 얘라고 딴 사람이 낳았나? 병 깊은 내게 작은애는 천재소녀다. 아들 욕심 부렸던 거 미안해서 더 많이 안아줬던 막내는 크면서 날 많이 놀래켰다.

 

 

병도 진화를 하나? 거울 앞에서만 맛이 가던 시력이 아무 때나 맛이 간다. 하루 종일 일을 하다보면 눈이 젤 바쁜가보다. 해가 지고 어둠이 깔릴 즈음이면 벌겋게 충혈이 된 뻑뻑한 눈에서 눈물이 질질 흐르곤 한다. 수업을 받던 학생들이 왜 우냐고 물어보면 깜짝깜짝 놀란다. 젤 바쁜 눈도 지친 날, 나는 일기를 읽는다. 꿈을 위한 밥벌이를 기억하라, 고 적힌. 그래서 하품도 힘겨운 날엔 그래도 내가, 내 오랜 병이 힘이 된다. 내 지병이 낫지 않는 이유이다. 아니 오히려 병이 나을까 두렵다.

 

 

난 아주 오래된 내 병을 사랑한다.

 

 

- 글쓴이 : 김미영 mimmy386@hanmail.net, 변화경영연구소 1기 연구원

 

 

IP *.122.237.16

프로필 이미지
2012.01.24 20:55:37 *.34.224.87

하하하..

병원생활 18년에, 처음 보는

아주 긍정적인 병 입니다...

즐겁게 잘 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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