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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2월 24일 07시 27분 등록

 

* 이 글은 변화경영연구소 5기 연구원 정철님의 글입니다(2009.6.29)

 

나에겐 성환이라는 친구가 있다. 내가 그 친구를 처음 만난게 중학교 1학년때이니, 벌써 23년이 흘렀다. 그 친구와 나는 산동네와 시장동네 사이 이기도 하다. 내가 살았던 곳은 연희동이었는데 안산이라는 산에 가까이 살면 산동네 친구가 되고 하천에 가까이 살면 시장동네 친구로 불리우곤 하였다. 그 친구는 정육점을 하는 부모님 밑에서 자랐는데, 항상 수업을 마치고 그의 친구집에 놀라가면 고기반찬에 맛난 김치찌게가 준비되어 있었다. 부모님이 하루 종일 일을 나가시고 누나와 혼자 있게 되는 자식이 안타까워 항상 푸짐한 먹거리를 준비해 놓고 출근하시는 친구 부모님 덕에 우리들은 항상 방가 후에 성환이 집을 찾곤 하였다. 그 친구의 집에는 권투 글러브가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몸이 약해 권투를 하기 시작하였다고 했는데, 우리 친구들은 글로브를 끼고 방안에서 짝을 이뤄 권투를 하기도 하였다.가끔 장난이 싸움이 되기도 하고, 코피가 터져 울기도 하였지만 굉장히 즐거운 시간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래서 그런지 성환이는 나와 비슷한 중간 정도의 키임에도 덩치 큰 소위 짱이라는 놈들과의 싸움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를 조그만 하다고 얕보다간 대부분 큰 코를 다쳤다. 성환이는 공부를 싫어하기도 했지만, 성적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 항상 내 뒷자리에서 시험을 치뤘던 그에게 가끔 발로 답을 찍어주는 경우도 있었는데 그럴 때면 우리는 선생님을 속이고 뭔가 해냈다는 뿌듯함을 즐길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다른 고등학교에 배치되면서 서로 보기가 힘들어지게 되었다. 가끔 안부를 물어보면 그가 간 고등학교에서 싸움으로 탑3안에 들었다느니, 어느 학교 짱과 싸움을 붙었는데 이겼다는 등의 내용들이었다. 그런 그의 무용담은 나에게 즐거움이었다. 가끔 시험시간이 겹치면 서대문YWCA라는 곳에서 공부를 같이 하곤 하였는데 나에게도 그로 인해 엄청난 시련이 찾아왔다.

 

어느날 YWCA도서관에서 성환이와 함께 공부를 하였는데, 옆 자리에서 심하게 소란을 떨어 성환이가 조용히 하라고 한마디 하였다. 그러자 그 쪽에서 한판 붙자고 나오라고 위협을 하였다. 나는 성환이와 함께 나왔는데 막상 성환이와 대면한 그 사람은 두려움이 느껴졌는지 피하고 돌아가 버렸다.

 

다음날 나는 다른 친구들과 함께 YWCA도서관에서 공부를 하였는데, 어떤 사람이 나를 부르는 것이었다.

너 그 친구 집 알지?”라고 묻기에 순간 멈칫했다. 뭔가 큰일 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 잘 모르겠는데요라고 답하자 그 사람이 물었다.”니 친구 아냐?” 나는 순간 친하지 않은 친구라고 대답했는데, 그대로 3-4명에게 산으로 끌려 갔다. 산으로 끌려가면서 주위를 보니, 연희동 시장동네에서 좀 논다는 초등학교 친구 놈을 보게 되었다. 그 놈도 한 패거리인 것 같은데 내가 위급함을 전하려 하자, 살짝 고개를 돌려버리는 것이었다. 사방을 둘러봐도 도망가기가 만만치 않았다. 그라하여 나는 산 중턱 놀이터까지 끌려 가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그들의 질문에 답해야 했다. 그 친구 집 말해봐, 놓아줄께~!” 나는 침묵을 지킨 죄로 그날 20명 가까운 놈들에게 맞았다. 이렇게 맞다가 죽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홀로 그 어두운 공원에서 맞는다는 것은 너무나도 두려웠다. 얼마나 맞았는지 지금도 허리쪽 어깨뼈가 아플 때가 많다. 성환이 집을 알려주면 그 친구가 맞아죽을것이라는 생각 뿐이었다. 이리 맞다 보면 언젠간 풀어주겠지!하며 버텼다. 마지막으로 성환이와 싸우려다가 피한 그 놈이 내 앞에 섰다. 후에 알고 보니 그 놈은 어떤 고등학교 야간을 다녔는데 나보다 한살이 많은 놈이었다. 그놈에게 뺨을 수십대 맞고서 풀려났다.

 

나는 내 눈을 피한 옛 초등학교 놈에 이끌려 집에 겨우 도착하게 되었다. 그리고 갖은 복수를 꿈꾸었다. 마지막으로 나와 대면한 그 놈을 어떻게든 죽이고 싶었다. 그만큼 나도 독했던 것 같다. 독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 일주일 동안 자리에 누워 일어서지 못하였고 무엇보다 남에게 맞은 뺨이 내 자존심을 쓰라리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성환이에게 이 얘기를 당시에 하지 않았다. 분명 그 놈은 목숨 걸듯이 그 놈들과 싸웠을 것이 뻔하였기 때문이다. 1년이 지나고 이런저런 얘기하다 사실을 말하였는데, 안절부절 못하는 성환이를 보게 되었다. 다 지난일이니 신경쓰지 말라고 하였는데, 후에 얘기를 들어보니 YWCA도서관에 매일 가서 그 놈을 기다렸다고 한다. 그러나 다행이도 그 놈은 거기에 나타나지 않았다.

 

후에 그 친구는 경호학과에 입학하게 되었다. 경호학과 특성상 검도, 태권도, 유도, 합기도등을 배운다고 하는데 매일 술자리에서 성환이를 보면 자신이 배운 기술들을 얘기하기 바뻤다. 나는 그것이 너무나도 재미있었다. 혼자 7명과 싸워서 이긴 이야기를 그의 새로운 친구를 통해서 듣기도 하고, 권투 신인왕전에 나가는 우락부락한 친구를 소개받기도 하였고, 강남에서 기도로 있는 친구를 소개 받기도 하였다다른 건 몰라도 싸움만큼은 최고가 되고 싶다고 한다. 나는 기가 막혔다. 하필이면 니가 최고가 될 것이 그거냐고 핀잔을 주지만 그 놈은 싸우는 것이 재미있다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처음으로 일등을 먹은 것이 그거였기 때문이란다.

 

그렇게 건강하고 활기 넘치는 놈이 친구들과 술을 먹고 집에 오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했다. 그날 저녁에 그의 누나로부터 연락을 받았는데 응급실에 있는데 와주었으면 하는 연락을 받은 것이다. 지방에 볼일이 있어서 갔던 나는 급히 열차를 타고 세브란스 병원에 도착하여 응급실로 향했다. 서로 친한 친구들이 먼저 와 있었다. 성환이의 부모님과 누나들 모두 망연자실한 표정이었다. 친구의 말로는 생명에는 지장이 없으나 한 쪽 다리를 잘라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친구랑 약속한 장소가 집에서 가까워 자전거를 몰고 술을 한잔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횡단보도를 지나쳐 가다 내려오는 구청의 차량에 치여 약 50M정도 자전거와 함께 끌려 갔는데 다리가 끼여 근육과 살이 떨어져 나간 상태라 살리기 어렵다고 들었다.

 

나 역시 아찔했다. 무엇보다 20살 중반의 나이에 다리를 잃는다는 것을 이 친구가 견딜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운동을 좋아하고 그 활동력이 자신감 이었는데 그놈의 모든 것 이었을 텐데 과연 이겨낼 수 있을까그러나 우려와 다르게 서울대 병원의 아는 의사로부터 의족을 하는 것이 걷기에는 좋을 듯한데 성환이가 다리를 자르면 죽겠다고 외쳐대니 그냥 다리를 굽히지 못하는 상태로는 유지시킬 수 있다는 말을 누나를 통해서 들었다. 오른쪽 다리살의 반 이상이 떨어져 나간 것을 그의 엉덩이살을 때다가 봉합하는 수술을 몇십차례하고 그것도 모잘라 다른 쪽 다리 허벅지살을 때어서 붙이는 수술을 반복하였다. 그때마다 성환이는 악을 썼다. 그 고통이 얼마나 심했는지 죽는 것이 났다는 말을 반복하였다. 그에게 다른 미래를 얘기할 수가 없었다. 오직 지금 이 치료를 덜 아프게 받는 것 만이 제일 큰 기쁨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약 6개월이 지나면서 그는 일어설 수 있었다. 그리고 재활훈련을 정말 열심히 하였다. 항상 굽혀지지 않는 다리를 굽히려 노력하였다. 목발을 집고 나와 함께 세브란스 병원 앞을 거닐때면 너무나도 행복하다고 했다. 이젠 그의 목표는 발가락을 드는 것이라고 하였다. 발가락을 들면 신경근육이 아직 살아있는 것이어서 조금은 다리에 힘을 줄 수 있는 것이라고 하였다. 근육은 성장을 하는데 조금만큼의 근육세포가 남아 있어도 다리근육이 강화될 수 있다는 말까지 들었다. 그로부터 약 3개월 후 그는 나에게 목발을 집지 않고 걷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너무나도 감격스러웠다. 그는 해냈다.

 

그리고 그 놈에게는 그 다리의 상처마져도 감싸안아줄 수 있는 여자가 있었다. 나는 결혼식장에서 사회를 보는데 절룩절룩 걸어오는 그를 보았다. 그리고 그 옆에 그를 사랑하는 제수씨를 보면서 멘트를 이어갔다. 그리고 머릿속으로 성환이는 어떻게 제수씨와 앞으로 태어날 아이들을 먹여 살릴지 걱정이 되었다.

 

보험처리로 약간의 보상을 받고 장애3급 판정을 받았다. 어느날 성환이와 술한잔하며 조심스럽게 희망에 대해서 얘기를 꺼냈다. 성환이는 최근의 삶이 너무나도 행복하다 한다. 예전에 멋 모를 때 남과 싸우는 것이 즐거웠고 거기서 이기는 것에 만족해 했는데, 아이를 키우고 애기 엄마와 알콩달콩 살고 이렇게 한잔하며 사는 것이 너무나도 행복하다고 한다. 장애3급이라 아이들의 교육비로 어느정도 절감되고 다리가 조금 나아져 택시운전을 하고 있지만 조금만 있으면 개인택시가 나온다고 하였다. 보험비 받은 것과 부모님의 도움으로 그렌져XQ택시를 한대 구입하였다. 그리고 그는 그런 몸으로도 뭔가 할 수 있다는 것에 너무나도 감사하게 생각했다. 나는 그녀석과 술한잔 할때마다 너무나도 기쁘다.

 

아직도 계단을 제대로 오르지 못하는 그놈이지만, 그 놈은 어떤 때보다도 당당하다. 어느날 자기 택시도 브랜드택시로 만들고 싶은데, 이름 하나 지어달라는 것이다. 나는 소주를 먹으며 이렇게 말했다. 야 넌 참 운이 좋은 놈이야. 다른 사람에게도 행운을 가져다 주는 놈이야. 난 너를 보면 항상 즐겁거든. 그래서 그런데 너의 택시 LUCKY TAXI 라고 해라. 지금도 그는 택시 안쪽에 캔 커피를 가져다가 놓고 승객들에게 하나씩 드리기도 하고 부쩍 여유로운 농담으로 승객들을 웃기기도 하고, 어떻게 좋은 말들을 해줄 수 있을까! 생각하며 책을 읽기도 한다. 나는 늘 희망을 품고 한장한장씩 오늘을 즐겁게 넘기는 그 놈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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