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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3월 9일 16시 02분 등록

* 이 글은 변화경영연구소 5기 정세희 연구원의 글입니다(2009. 6.1)

 

 

마음이 무거울 때나 머리 속이 혼란스러워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을 때 나는 신발장에서 운동화를 꺼내 신는다. 키가 작아 평소 운동화를 즐겨 신지 않는 나이지만 그때만큼은 신발끈을 꽉 매고 집 밖으로 내달리기 시작한다.

 

마치 생각의 홍수가 밀물처럼 나를 다시 적실까 도망자와 같이 전속력으로 달린다.

평소 잘 뛰던 사람도 아니고 내 멋대로 속도를 내어 팔을 크게 휘두르며 달리다 보니 몸이 이내 놀란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입 안에서 단내가 나며 다리가 후들거리기 시작한다. 머리 속의 괴로움이 몸의 괴로움으로 대체되는 순간이다.

 

신기하게도 이렇게 미친 듯이 달리다 보면 마음이 조금씩 정리되기 시작한다. 그 복잡했던 실타래들이 실상을 그렇게 복잡하지도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열기로 뜨겁게 달아오른 얼굴을 바람이 달래주며 '힘내'라고 속삭여준다.

 

처음에는 무작정 내지르며 달리기 시작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뛰는 속도나 폼이 제법 규칙적이게 된다. 그리고 나면 '뛴다'라는 행위가 숨쉬는 것처럼 매우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것이 되어 버린다. 마치 걷는 방법을 잊어버린 기억상실증 환자처럼 팔을 휘두르며 땅을 내딛는다.

달리다 보면 내게 심장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오랜만에 깨닫게 된다. 쿵쾅거리는 심장소리에 맞춰 비트박자를 맞추는 양 리듬감을 타며 달린다. 계속 달리다 보면 심장이 내 몸 이곳 저곳으로 퍼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손 끝도 발 끝에도 심장이 달린 것처럼 쿵쾅거리기 시작한다. 마치 내 온 몸이 하나의 거대한 심장이 된 것 같다. 오랜만에 깨어있다는 것, 살아 있다는 것을 느낀다.

 

어쩌면 내 온 몸에서 들리는 '두근두근' 심장소리가 그리워 그렇게 내달리나 보다.

내 심장이 이렇게 힘차게 뛰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어 그렇게 내달리나 보다.

 

플레이[PLAY] 버튼을 누른 채 무난하게 평이하게 살아가는 일상에서 종종 2배속 4배속으로 일이 진행될 때가 있다. 과열된 일상을 바라보며 삶의 피로를 느낄 때 리셋[RESET]을 하고 싶다는 욕망이 생길 때도 있으나, 삶에는 리셋이 없고 되돌려감기[REW]가 없다는 사실을 이내 깨닫는다. 그럴 때면 잠시 일시정지[PAUSE]를 누르고 그렇게 일상과 떨어진 채 나를 뛰게 한다. 잊혀진 심장소리를 듣기 위해 바람의 격려를 듣기 위해 나를 뛰게 한다.

 

집밖을 떠나 달리기 시작할 때는 돌아올 것을 생각하지 않고 달린다. 그러나 떠난다 라는 행위는 결국을 잘 돌아오기 위해 행하는 것이 아닌가. 돌아올 때는 걸음걸이는 떠날 때보다 제법 경쾌하다. 답을 못 찾고 되돌아올 때도 있지만 내 몸이 여전히 뜨겁고 심장이 뛰고 있다는 것은 확인했기 때문이다.

 

집으로 돌아와 운동화를 벗고 먼지를 털어 신발장에 다시 고이 넣어둔다. '내가 너랑 조금 더 친해져야 할 것 같다' 라고 눈인사를 하며 '고맙다'라는 인사도 잊지 않는다. 샤워를 하고 한숨 푹 자고 나면 다음날 아침 온 몸이 뻑적지근하니 근육이 아프다고 소리를 지른다. 종아리를 손으로 주무르며 나는 내 일상이 다시 자동으로 플레이[PLAY]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많이 달려야겠다. 내 심장소리를 더 자주 들어야겠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비트박스 소리를 언제나 잊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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