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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뫼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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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 5일 00시 04분 등록

라이프 오브 파이

 

 

 

L.jpg

*이미지 출처 www.yes24.com

 

 

 

<라이프 오브 파이 Life of Pi> 라는 영화를 딸과 함께 보았다. 일요일이면 아침 일찍 일어나 딸과 함께 극장에 가는 것에 어느 새부터인가 재미를 붙였다. 먼저, 일요일 아침을 일찍 시작하니, 늘어지지 않아 좋고, 딸이 동생이 생긴 뒤로부터 둘만 데이트 할 시간이 없었는데, 영화를 좋아하는 딸과 함께 자연스럽게 대화의 시간도 가지게 되었다. 일석이조이다. 그런데, 둘 다 팝콘을 너무 좋아하다보니, 영화가 끝나는 점심때 영화 보는 내내 먹었던 팝콘 때문에 아내에게 잔소리를 듣는 것은 여전하다.

 

이 영화는 사실, 내가 뉴욕에 있던 시절, 서점을 강타했던 책이었다. 그 당시, 스웨덴 한림원의 <노벨문학상>, 미국의 <퓰리처 상>과 함께 매년 도박자들이 발표를 기다리고 있는 세계적인 문학상인 영국의 <북커 상>을 수상한 작품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내용에 흡인력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당시는 밥을 굶어가며 책을 사던 시기였기에, 당연히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있던 이 책을 구입했다. 구입한 후에, 전공서적에 밀려 쭉 읽지 못하고, 한국까지 가져왔다가, 집을 이사함과 동시에 2010년 초에, 2000권을 아름다운 가게에 기부했는데, 그 당시 이 책도 기부했던 기억이 난다. 결국, 나는 이 책을 읽지 못한 채 기부해버린 것이다.

 

그리고 이후에 이 소설을 바탕으로 영화가 만들어 진 것을 알게 되었고, 나는 대만 태생 영화 감독인 이 안(Ang Lee)’에 의해 영화화 된다는 사실에 흥분했다. 그 감독이 만든 영화는 이제껏 다 보았던 것 같다. 내가 뉴욕대학교를 졸업할 시 졸업식장에서 자랑스러운 뉴욕대학교 동문상을 수상하면서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했던 것을 나는 생생히 기억한다. 그것을 계기로 그의 초기작인 <쿵푸 선생>부터 <음식남녀> <결혼피로연> <센스 앤 센서빌리티> <헐크> <브로크백 마운틴> <아이스스톰> <, > <와호장룡>등 대부분을 본 것 같다. 이 칼럼을 위해 그의 필모그래피를 다시한번 보았는데, <테이킹 우드스탁 Taking woodstock> <라이드 위드 데블 Ride with the deveil> 이라는 영화 두 편을 아직 보지 못한 것 같다. 기회가 되면 보아야겠다. 어쨌거나, 그가 만든 영화의 토대가 된 소설이라는 생각에 나는 기부했던 것을 후회했다. 그리고, 영화를 개봉하자마자 딸과 함께 극장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영화를 보고 온 날, 나는 <Life of Pi>가 아닌 한국어로 번역된 <파이 이야기>를 인터넷 서점에서 주문했다.

 

**

 

영화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겠다. 충분히 감동했고, 기대했던 것 이상의 기쁨을 만끽했다. 3D가 줄수 있는 기술의 최대치를 상상력에 부어 깊고 아름다운 한 편의 아름다운 서사시를 만들었다. 나 영화를 관람한 사람들은 커다란 감수성을 이 영화를 통해 수혜 받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 칼럼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영화를 먼저 접한 후 원작을 읽었을 때의 또 다른 감흥이다. 영화로 먼저 만나 본 후 만나는 원작 소설은 한마디로 김빠진 콜라 같지만, 이 책에서만은 예외로 해야 할 것 같다. 나만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아무래도 영화를 먼저 만나게 되면 영화의 장면과 책을 자꾸 비교하면서 읽게 되고, 혹시나 영화적 기법을 위해 감독이 자의적으로 해석하게 된 부분이 책과 다른 것을 비교하게 되고, 왠지 책을 읽을 때 손해 보는 느낌이 든다. 어쨌거나, 영화는 망망대해에서 생생하게 날치 떼를 만나는 장면과 살아있는 식인 섬을 근사하다 못해 황홀하게’ 3D로 표현할 수 있는 최대치를 끌어낸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영화 중 하나임에 분명하지만, 역시 맘껏 낱말과 문장 사이사이를 상상하면서 읽어 내려가는 책의 맛에 비할 바는 아닌 듯 하다. 분명히, 화면과 음악, 그리고 연기가 주는 화려함이 다 주지 못하는 장면과 장면 사이를 재미있는 설명과 배경, 그리고 촘촘한 심리묘사로 채워 나갈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 것 같다.

 

영화와 원작. 그 간극은 영화 스텝들이라는 거대한 자본이 메운다. 작가는 홀로 작업하지만, 영화라는 장르는 홀로 작업할 수 없으며, 기본적으로 흥행성을 전제로 한다. 바로 흥미흥행의 경계가 되는 부분이다. 분명히 이 영화 또한 그러한 극단의 단면들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다. 어찌보면, 이 책은 영화로 만들기 참으로 어려운 점들을 지니고 있다. ‘인도라는 배경이 지니는 특수성과 리처드 파커라고 이름 붙인 뱅갈 호랑이와 소년의 277일간의 표류가 성인 관객들에게 어떻게 어필 할 지가 관건이었을 듯싶다.

 

<로빈슨 크루소> <걸리버 여행기> 그리고 <백경>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표류기는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그러나, 호랑이와 한 배에서 표류하는 이야기는 단연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게다가 살아야 한다는 실존의 문제와 더불어, 표류한 곳이 식인 섬이라는 판타지까지 이 소설은 우리의 상상을 극단으로 밀고 나간다.  

 

소설 초반에 비교적 비중 있게 나오는 수영에 관한 부분과 동물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지닌 소년에 관한 부분은 소설 중반 리처드 파커와 표류하면서 자연스럽게 생존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빌미를 제공해 준다. 매일매일을 기도로 시작하고, 기도로 끝내는 파이의 섬세하고도 규칙적인 생활 습관은 망망대해 위에서 어딜지 모를 부모님을 그리며 흘리는 눈물과 함께 오래도록 가슴에 기억될 듯싶다. 이 원작이 문학으로 남을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아마도 식인 섬에 관한 부분과 같은 상상력이 우리를 자극하기 때문이 않을까 싶다. 어렵사리 도착한 섬이 식인 섬임을 알아낸 것은 다름아닌, 꽃 속에 숨겨있는 인간의 치아이다. 다른 부분은 다 이미 소화 되었지만, 소화 불량으로 남은 인간의 치아를 보고는 단번에 식인 섬임을 알아내는 파이.

 

어쩌면 우리도 어린이에서 성인으로 오는 동안 동물원을 옮길 때 인생이라는 거대한 폭풍을 만나는지도 모른다. 어디로 흘러갈지 모르는 막막함, 그냥 죽을 지도 모른다는 적막함, 자연에 철저히 버림받았다는 쓸쓸함이 함께 공존할 것이다. 그러나, 그 상황을 내 것으로 만들 것인지 아니면, 그대로 내팽개쳐 버릴 것인지는 자신의 몫이다. 하루를 열 때, 간절한 기도로서 자신의 생명을 위협하는 리처드 파커의 동태를 살피며 모든 사실을 기록하며, 자연을 자신의 일부분으로 활용할 수 있는 지혜를 발휘 할 수 있는 소중한 팁을 주는 것은 이 책이 주는 또 다른 재미일 것이다. 결국 생명을 위협당하던 리처드 파커 덕에 파이는 277일을 가슴 졸이며 버틸 수 있게 된 것이다.

 

난 죽지 않아. 죽음을 거부할 거야. 이 악몽을 헤쳐 나갈 거야. 아무리 큰 난관이라도 물리칠 거야. 지금까지 기적처럼 살아났어. 이제 기적을 당연한 일로 만들 테야. 매일 놀라운 일이 일어날 거야. 아무리 힘들어도 필요하다면 뭐든 할 테야. 그래, 신이 나와 함께 하는 한 난 죽지 않아. 아멘.” 

 

여러분에게 비밀을 털어놓겠다. 마음 한편으로 리처드 파커가 있어 다행스러웠다. 마음 한편에서는 리처드 파커가 죽는 걸 바라지 않았다. 그가 죽으면 절망을 껴안은 채 나 혼자 남겨질 테니까. 절망은 호랑이보다 훨씬 무서운 것이 아닌가. 내가 아직도 살 의지를 갖고 있다면, 그것은 리처드 파커 덕분이었다. 그 때문에 나는 가족과 비극적인 처지에 대해 많이 생각하지 못했다. 그는 나를 계속 살아있게 해주었다. 그건 그가 밉지만 동시에 고마웠다. 지금도 고맙다. 이것은 분명한 진리이다. 리처드 파커가 없다면 난 오늘날 이렇게 살아 여러분에게 내 이야기를 들려주지 못했을 것이다.

-얀 마텔, <파이 이야기>  

            

 

 

IP *.196.214.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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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06 09:15:59 *.142.47.62

원작과 영화,  제대로 작가와 감독을 만난거지. 똑 같은 주제를 가지고 써도 작가에 의해 제 목소리를 내는 것이니. 

리처드 파커 한 마리 늘 키우고 있다면 괜찮은 삶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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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06 11:49:07 *.216.38.13

작가와 감독의 행복한 만남인것 같아요. 보통 영화를 먼저 보고 원작을 읽으면 그 읽는 맛이 떨어지기 마련인데, 이 작품은 전혀 그렇지가 않네요. 얀 마텔의 원작이 탄탄한 탓이겠지만... 그것을 잘 살린 이 안 감독도 대단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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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06 10:41:04 *.252.144.139

선배님 때문에 큰 일났어요.

<레미제라블> 1권도 사서 아직 못 읽고 있는데

<파이이야기>도 사고 싶네.

파이이야기는 자막없이 봤더니 뭔 이야기인지 못 알아 듣겠더라구요.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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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06 11:52:23 *.216.38.13

원작을 먼저 읽어라, 영화를 먼저 보아라, 이런 것 없이 순서 없이 막~ 접해보는것도 좋은 것 같아요. 그럼, 자막없는 영화를 보셨으니.. ㅋㅋㅋ 이제, 원작 책을 읽어보고 자막없이 영화 한번 더 보는 것도 좋을 듯 싶네요.  

 

<레미제라블>은 다 읽고 나니 읽을때는 참 고통스러웠는데, 개인적으로 1권은 다.시.한.번. 읽고 싶은 생각이 들더라구요. 제일 힘든 부분이었는데, 미리엘 주교 부분은 정말 감동으로 다가오거든요. 1권만 잘 넘기시면 2권에서 5권까지는 후다다다다닥~ 넘어갈겁니당.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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