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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재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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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6월 4일 10시 01분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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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일요일이면, 초등학생인 딸과 함께 어린이 미사에 참석하려고 한다. 가끔씩은 미사에 참여를 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왠만하면 주일 미사는 지키도록 노력한다. 어렸을 적부터 종교적인 신앙을 가지고 자라나면 아무래도 이 세상을 좀 더 용감하게 살수 있지 않을까 하는 부모의 마음에서 비롯되었다. 

 

미사를 마치고, 약 1시간 동안 교리시간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 시간은 각 학년별로 이루어진다. 이 시간에는 성경공부도 하고, 만들기 수업도 진행되고 어떤때는 영화나 뮤지컬 같은 집단 활동이 주를 이룬다. 아이들이 교리시간에 참여하는 동안에 부모들은 성당에 마련된 카페에 앉아 보통 담소를 나누거나 시간에 맞추어 다시 와서 아이들을 데려가는데, 나같은 경우에는 이 시간 동안에는 집중적으로 신앙서적을 읽는 시간으로 정했다. 다행히 우리 성당 내에는 가톨릭 출판사에서 운영하는 서점이 개설되어있어, 다양한 신앙서적들을 접할 수 있다. 무슨 책을 고를까 하다가 문득 마음에 드는 제목이 들어왔다. 바로 <성녀 에디트 슈타인> 이라는 책이다. 

 

에디트 슈타인은 '유태인'인데, 가톨릭 수녀가 되었으며, 수녀가 되기 이전에는 현상학을 연구하던 철학과 교수였다. 2차 세계대전시 결국에는 나치 수용소에서 끌려가 돌아가셨지만, 1997년, 요한 바로로 2세를 통해 '성녀'로 시성되신 분이다. '유태인'- '철학과 교수'- '수녀'-'나치 수용소에서의 죽음' - '성녀시성'의 파격적이면서도 드라마틱한 그녀의 삶을 잠시 들여다 보자.   

 

* 에디트 슈타인은 1891년 독일 브레슬라우에서 목재상을 하던 유다인 집안에서 막내딸로 출생, 유다교 전통 안에서 성장했다. 하지만 두 살 때 갑작스레 아버지를 잃고, 열한 살 되던 해 숙부마저 죽자 그녀는 유다교 신앙을 과감히 버리고 만다. 유다교 전통에 젖은 그는 삶과 죽음에 대한 해답을 유다교 신앙에서 찾았으나 허사였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자신의 철학 여정에 큰 변화를 가져오는 사건을 경험한다. 당시 독일에서 새로운 철학사조를 형성해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든 훗설의 저서 ‘논리학 연구’를 접하게 된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철학에 대한 새로운 열정에 불타오른 에디트는 그 길로 훗설이 몸담고 있는 괴팅겐 대학을 찾아가 그의 문하생이 됐고, 훗설이 제창한 현상학에 전념하며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인간은 왜 사는가’, ‘세상 모든 존재의 근원은 무엇인가’ 등 끊임없이 밀려오는 의문의 해답을 유다교 안에서 찾을 수 없었던 그녀는 철학에서 그 해답을 찾고자 했고, 그래서 사물을 있는 그대로 선입견 없이 파악하는 훗설의 현상학에 매료됐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그녀는 동료의 죽음을 접하면서 삶의 의미는 철학이 아니라 신앙 안에서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체험하게 된다. 세계 대전에 참전한 동료 철학자 라이나하의 전사 소식을 접한 그녀는 그의 부인을 위로하고자 찾아갔으나, 부인은 슬픔에 잠기기는커녕 사랑하는 남편이 하느님의 품에서 평화를 누리고 있다고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에디트는 “그 때 나는 내 안에서 불신앙이 무너지고 그리스도가 자리잡는 것을 느꼈습니다”라고 당시를 회상한다.

 

신을 부정하던 삶에서 벗어나 하느님의 존재를 깊이 체험한 그녀는 수년간 투신했던 현상학과 결별하는 동시에 훗설 교수의 조수직도 사임하고 고향으로 내려가 친구 집에 머물게 된다. 여기서 그는 우연히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 자서전>을 읽고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세례를 받았다.

 

“나는 그 책을 읽기 시작하자마자 완전히 마음을 빼앗겼고 다 읽은 후 이렇게 외쳤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진리다’라고.”

 

이제 그녀의 마음에는 하느님밖에 없었다. 신앙의 참 맛을 본 에디트는 1923년부터 8년간 가톨릭계 학교에서 교사로 지내며 기도하는 사람, 교육자, 진리를 탐구하는 사람으로 살았다.

 

그러나 독일이 히틀러 집권 시대로 접어들면서 유다인 교수를 해직하는 등 박해의 칼날을 빼들자 에디트도 교사 생활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하느님께 대한 같은 신앙을 고백하면서도 서로를 증오하는 그리스도인과 유다인, 또 유다인을 박해하는 독일인들의 모습을 보며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다.

 

서로 화해하고 일치하는 방법을 찾던 그녀는 참된 용서는 주님의 십자가밖에 없다고 확신, 가르멜 수녀회에 입회해 ‘십자가의 데레사 베네딕타’ 수녀로 다시 태어났다. 그 후 그녀는 학문적 재능을 살려 십자가의 성 요한, 성녀 데레사 등 교회 사상가의 영성, 그리스도교 신학과 철학에 대한 연구에 몰두하며 수많은 저작물을 남겼다.

 

하지만 독일의 반(反)유다인 정책이 거세지면서 그녀는 결국 게슈타포에 의해 체포돼 아우슈비츠 수용소 가스실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만다.

 

“나는 하느님께서 마련해주신 죽음을 받아들이고 하느님 뜻에 순종할 각오를 하고 있습니다. 또 유다인들의 불신앙의 보속으로 나 자신을 바칩니다.” 그녀는 유다인들의 불신앙에 대한 보속으로, 나아가 유다인과 그리스도인들의 화해를 위한 희생 제물로 자신을 하느님께 봉헌한 것이다. *

 

이런 성인의 삶도 구본형 선생님의 저서 <깊은 인생>에서 이미 언급된 "깨우침"- "견딤"- "넘어섬"의 단계로 볼 수 있다. 자신이 유태교를 버리고, 무신론자로 살았던 삶에서 벗어나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를 읽고 신의 존재를 믿게 된 "깨우침"의 단계, 그리고, 속세를 버리고,  철학과 교수라는 직함을 벗어던지고 수도자의 길로 건너가 가르멜 수녀원의 수녀로서, 교육자로서, 그리고 저술가로서 살게 된 "견딤"의 시간.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우슈비츠로 끌려가면서도 당당하게 죽음을 맞이해 자기 자신을 넘어서는 영성의 길로 들어갔다. 진리를 깨달은 이상 그녀는 더 이상 머뭇거리지 않았다. 온 몸과 영혼을 하느님께 내맡기는 결단과 실천이 있을 뿐이다. 그러한 "견딤"의 시간을 지나 1997년, 드디어 성인의 반열이 오른 그녀의 길은 우리에게 "깊은 인생"의 길을 제시해 준다.   

 

유태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부당하게 내몰리고 결국 죽음을 맞이하지만 그녀는 이에 반항하거나 절망하지 않았다. 모든 고통을 하느님의 손길이자 사랑이며 섭리로 받아들였다. 세속적 가치와 욕망은 물론 심지어 ‘나 자신’까지도 내 속에서 비워내고 죽음마저 사랑으로 수용한 성녀 에디트 슈타인. 평범함에서 위대함으로 나가는 '깊은 인생'은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선사해준다.

 

 

 

( * 일부 내용은 가톨릭 신문의 <에디트 슈타인의 생애> 기사에서 인용했음을 알립니다.

가톨릭 신문이라 '유태인'을 '유대인'으로, '유태교'를 '유다교'로, 철학자 '후설'을 '훗설' 로 표기하고 있음을 밝히며, 인용시 원문 그대로 인용하였습니다. ** 이미지차용 www.yes24.com 에서. )

IP *.216.3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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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05 09:52:37 *.143.156.74

선배님, 좋은 글 감사드려요.

진리를 깨닫기 위한 에디트 수녀님의 행적에서 많은 것을 배웁니다.

저도 나날이 깊어지는 깊은 인생을 살려 노력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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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05 18:35:30 *.216.38.13

칼럼을 시작한 것이 정말 엊그제 같은데.. (아! 이 진부한 표현!)

그간 참 많은 일들이 벌어진 것 같아요. 벌써 6개월이 지났네요.

큰 일 이후에 구 선생님 책들을 다시 읽고 있는데,

이전에 몰랐던 것들이 하나 둘 씩 보이는 것 같습니다.

 

한겨레 칼럼 잘 읽고 있습니다. 늘 힘을 주는 칼럼리스트가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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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05 12:54:45 *.142.47.62

미사에 참석하는 아빠. 너는 볼 수록 근사하다. 재엽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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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05 18:38:08 *.216.38.13

누님의 글들을 늘~ 질투어린 시선으로 읽고 있답니다^^

 

언젠가는 미사에 참석하기 전에 드는 여러가지 갈등 (갈까~ 말까~) 에 대한 칼럼을 한번 써 봐야겠어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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