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오늘의

연구원의

변화경영연구소의

  • 은주
  • 조회 수 16090
  • 댓글 수 0
  • 추천 수 0
2012년 9월 2일 17시 20분 등록

 4. 결혼 후 남자는 왜 돌변하는가, 연애와 결혼의 차이

 - 이 글은 6기 이선형 연구원의 글입니다 -  

 

  솔직히 고백하지만, 나는 어떤 사람의 참된 성품을 알게 되면, 이 세상에 사는 동안 그 성품을 더 좋게든 혹은 더 나쁘게든 바꿀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전혀 갖지 않는다.    -데이빗 소로우, <월든> -


  세상이 다 변해도 그는 예외일 줄 알았다. 결혼하고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소리가 ‘결혼하더니 사람이 변했다’거나 ‘본색이 드러났다’라 할지라도 그만은 절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는 너무나 자상한 사람이었다. 같이 커피를 마시다가 눈길만 돌려도 어느새 휴지를 건네주었고, 때로는 물 컵을 슬며시 내 쪽으로 밀어주었다. 길을 걸을 땐 자연스럽게 나를 인도쪽으로 세우고 누군가와 부딪칠만하면 재빨리 나를 자신의 품안으로 끌어당겼다. 보고 싶어할 만한 책이나 영화를 먼저 알아오는 것은 다반사였다. 내가 피곤해하거나 불편해하는 것은 바로 알아차리고 반응해주었다. 그와 있으면 나는 공주가 되었고 점차 모든 것들이 당연해졌다. 그 사람의 온 신경이 나에게 쏟아지던 최고의 시간이었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들만의 특권이요, 의무라고 자연스럽게 믿던 시절이었다. 


  결혼 후 무언가 톡톡 나를 건드렸다. 분명 뭔가가 달라졌는데 그게 뭘까? 그는 여전히 자상했고 다정했다. 그런데도 나는 흐릿한 아쉬움을 느꼈다. 처음엔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내가 막연하게나마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던 것은 시간이 꽤 지나서였다. 그 사람은 이미 구애모드가 아닌 생활모드로 스스로를 변신시킨 것이다. 나는 여전히 사랑하는 사람이었지만, 애인이 아닌 아내였다. 상대적으로 난 그 달콤한 시절을 끝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아, 이게 정도가 심하면 보통 말하는 ‘잡아놓은 물고기’라는 거구나.’ 가장 큰 차이는 나를 향해 있던 온몸의 촉수가 꺼진 것이다. 더 정확하게는 그의 관심을 다른 경쟁자들과 나누어 가져야했던 것이다. 구애기간동안 그가 보여준 거의 완벽한 배려를 진짜 사랑이라고 느꼈던 나는 실망했다. 사랑이 변했나 의심도 들었다. 결혼에 대해 배워가면서 이런 의심이 잘못된 전제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자연이 준 본능, 즉 무차별적 성적 욕망을 넘어 특정한 한 사람에게 집중되는 불같은 사랑의 감정을 말한다. 이런 폭발적인 사랑의 감정은 인간의 제1두뇌인 파충류 뇌에 도파민, 노르에피네프린, 세르토닌 같은 자연의 흥분제가 작용하면서 일어난다. 호르몬은 마치 마약처럼 우리 몸과 마음에 작용한다. 흥분 상태가 지속되는 것은 물론이고 에너지가 강해지고 신경이 과민해지며 불면과 식용상실, 떨림, 가슴 두근거림, 두려움 등 여러 기분이 마구 혼합되어 솟구치며 불안정해진다. 정상적인 사람에게 일어나는 비정상적인 상태이다.


  사랑에 빠지게 되면 누구나 자신을 속이기 시작한다. ‘핑크 렌즈 효과’라고도 불리는 이 현상은 무의식적인 작용이다. 만약 이 렌즈를 끼지 않는다면 결혼에 성공하는 사람은 없을지도 모른다. 사랑에 빠진 순간, “나는 그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든 것을 사랑한다”는 진실이 된다. 우리는 사랑을 위해 기꺼이 인생의 우선순위를 바꾸고 심지어 목숨도 건다. 불같은 사랑의 열정은 문학과 예술의 토양이 되어온 삶의 축복이자 가장 황홀한 경험이다.


  누군가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자연스레 결혼을 생각하게 되는 과정은 현재 우리 문화에서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다른 종류의 결혼도 물론 있겠지만 사랑이 결혼으로 이어지는 모습이 많은 이들이 꿈꾸는 이상적인 과정임에는 틀림없다. 사랑의 감정이 넘쳐흘러 늘 함께 있고 싶고 헤어지는 시간이 아쉬워서 참을 수 없어지면, 덧붙여 주변 상황들이 어느 정도 맞아떨어지면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행복한 결혼생활을 꿈꾸게 된다.


  문제는 열정적인 사랑의 감정이 유효기간이 있다는 사실이다. 코 푸는 것도 멋져보이던 짧은 시간이 지나가고 눈에서 콩깍지가 떨어져 나가고 나면 가슴 속의 불꽃은 점차 시들어간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처럼 물리적이나 사회적 장벽을 만나서 조금 더 오래 타오르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의 경우 상대방이 가까이 있게 되고 일상적인 즐거움으로 정착하게 되면 처음의 불꽃같던 열정과 집착은 점차 시들게 된다. 신경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이런 낭만적인 사랑은 보통 12개월 내지 18개월간 지속된다고 한다.


  다행히도 처음의 사랑은 그대로 시들어 없어지진 않는다. 많은 경우 지속적인 사랑의 감정인 애착의 모습으로 변화하며 발전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합하기 위해 타오르던 열정이 함께 만든 새 생명을 보호하며 키우기 위해 평화와 안락함의 모습으로 변신하는 것이다. 자연은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에 전달하고자 하는 최고의 목표를 위해 기가 막힌 단계별 시나리오를 준비했다. 결실을 맺기 위해 집중이 필요했던 1단계에서, 환경과 어울려 ‘생활’을 해야 하는 2단계로 돌입한다. 한 사람을 향했던 집중력과 에너지가 주변의 상황, 타인, 맡고 있는 역할 등으로 자연스럽게 분산되면서 나 밖에 모르던 연인은 무덤덤한 ‘생활인’이 되어 간다. 사랑의 열정에 눈멀기 전의 평상시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연애가 시작될 때 많은 사람들은 서로의 차이점이 아니라 공통점에만 집중한다. 이런 감정은 ‘너는 나를 위해 준비된 반쪽’이라는 고백에서 정점에 달한다. 서로 다른 차이점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무시되고 최소화되어 인식된다. 사랑에 눈이 먼다. 반대로 서로 다른 차이점이 강렬한 매력으로 작용하여 상대를 끌어당기는 경우도 물론 있다. 자신에게 없는 것, 자신에게 부족한 것에 매력을 느끼며 신선한 충격을 받는다. 차이점이 서로의 시야와 경험을 넓혀주고 대화와 사고의 폭을 확장해주는 장점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낭만적인 열정이 사그라들고 저 멀리 사라졌던 일상이 다시 현실이 되면, 별 것 아닌 것으로 여겨지거나 오히려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졌던 차이점이 점차 크게 느껴지고 부담스러워진다. 스스로를 속이며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어느 순간 거슬리고 심각한 단점이 된다. 때로는 좋아했던 이유가 바로 다툼의 원인이 되고 서로에게 실망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서로의 차이를 이겨낼 수 없다고 여겨져 파국으로 끝이 나기도 한다.


  만약 내가 꿈꾸는 모든 요소를 짜 맞춰 만든 이상형으로서 상대방을 바라봤다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자신의 꿈과 바람을 잔뜩 투사해서 만들어진 가상의 모습을 사랑했다면, 그건 상대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내 꿈을 사랑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가 변한 것이 아니라, 내가 눈을 감고 보지 않았던 그의 ‘진짜’ 모습이 점차 들어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있는 그대로의 상대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노력이 순간의 열정을 뛰어넘는 진짜 사랑의 출발이 된다.


  연애는 전혀 다른 공간에 있던 두 남녀가 서로의 이끌림을 따라 마주보고 서로만을 쳐다보면서 한 걸음씩 다가가는 것이다. 둘 사이의 공간이 좁혀지고 좁혀진 끝에 두 손을 내밀고 맞잡게 되는 것이 연애의 절정, 결혼이다. 결혼이라는 안정된 매듭으로 서로의 몸과 마음을 묶고 나면 꽉 잡았던 두 손은 자연스럽게 풀어진다. 그리고 둘만을 바라보던 서로의 몸과 눈은 자연스럽게 주위를 인식하고 둘러본다. 그러면서 나란히 옆에 서서 팔짱을 끼고 같은 방향으로 천천히 걸어간다. 그것이 바로 결혼생활이다. 


  많은 커플들이 현실 속에서 천천히 서로의 기대를 재조정하는 험난한 과정을 거친다. 이것은 연애의 과정이든, 아니면 결혼을 한 이후든지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필수코스이다. 근본적으로 상대는 내가 사랑에 빠졌던 때의 그 사람과 똑같다. 변한 것은 나의 인식과 평가이다.


  신기한 것은 내가 좋아했던 그의 장점은 변한 것 같은데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던 단점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상하고 다정해서 좋아했던 그의 모습은 점점 너무도 당연해지고 나의 기대치는 점차 높아진다. 조금만 못 미쳐도 마음이 변했나싶어 서운하고 섭섭하다. 그에 비해 잘 보이지도 않거나 또는 보이긴 해도 대단치 않게 생각했던 단점은, 점차 생활의 벽으로 다가온다. 이 남자가 이렇게 고집이 셌나 깜짝 놀란다. 처음에는 남자의 ‘주관’이자 ‘심지’라고 좋아했던 부분이었다. ‘이 정도 고집도 없는 사람은 매력없어.’라고도 생각했다. 그 ‘굳은 심지’와 매일 부딪치는 일이 생기자 이런 똥고집이 따로 없다. 애교도 안 통하고 싸움도 먹히지 않는다. 꼼꼼하다 성실하다 좋아했던 부분이 때론 답답해지고 융통성 없게 느껴진다. 좋은 점, 믿음직한 점만 열심히 찾아보던 터라 충격은 더 크다. 어느 순간 ‘완벽한 내 짝’이란 기대가 와르르 무너져 내린다.


  물론 상대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나 또한 그렇다. 연애할 때 애써 숨기고 덮었던 나의 단점 또한 더 이상 숨길 수 없다. 잘 보이고 싶어서 잔뜩 긴장하던 모습이 사라지면서 그냥 ‘내’가 드러난다. 수시로 늦고, 잊어버린다. 내 기분에 따라 하늘과 땅을 오르내리며 신랄해진다. 빈정거리기도 잘 한다. 마음대로 안 되는 일 앞에서는 잔뜩 날카로워져서 스스로를 달달 볶고 그다음 가장 가까운 사람을 괴롭힌다. 차갑기는 얼음 빰친다. 한계상황에 처하고 때로는 극한에 달하면서 엄마조차 혀를 차던 단점이 마구 터져 나온다. 그 또한 분명 실망했을 것이다. 마구 확장되었던 상냥하고 애교 많고 다정한 나의 부분은 원래의 크기로 줄어들고 한구석에 쪼그라져 있던 까탈스럽고 예민한 부분이 제 모습을 찾았다.


  그의 똥고집에 맞서 따지거나 다투지 않고 ‘으이구, 한씨 고집~’ 피식 웃어버리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심호흡 한 번을 한 후에 그의 고집 또한 ‘그’라는 것을 애써 떠올리는 것이다. 쓴웃음 한 번에 팽팽하던 긴장감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살짝 윤기가 돈다. 딱딱하게 굳어졌던 그의 얼굴도 살짝 풀리며, 어색함과 민망함이 깃든다. 내가 고슴도치가 되었을 때, 내 가시에 찔리기보다 피할 줄 아는 현명함을 익힐 때까지 그에게도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사람은 변하기도 하고 변하지 않기도 하는 존재다. 세상이 변하고 우리를 둘러싼 환경이 변해감에 따라 우리의 생활과 생각도 분명히 변한다. 앞으로도 이것들은 계속 변할 것이다. 사실 매년 한 살씩 나이가 들어가는 것만 해도 얼마나 큰 변화인가. 그러나 나는 아직도 그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믿고 있다. 그의 존재의 핵심, 삶과 사람에 대한 그의 기본적인 태도는 결혼할 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았다. 분명히 십 년 후에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아니, 그것은 죽을 때까지 변할 수가 없는 것이다. 나라는 사람의 핵심이 변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이것이 십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내가 여전히 그를 믿고 사랑할 수 있는 진짜 이유이다.


IP *.225.142.18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