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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차칸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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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7월 21일 08시 36분 등록


여행. 


이것을 빼고 난 내 인생을 이야기하기 힘들 것 같다. 여행은 나에게 스승 같은 존재였다. 언젠가 내가 힘이 들어 그것으로 달려갔을 때, 그것은 내게 새로운 관점으로 삶을 보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래서 나는 그것으로부터 그다음으로 나아갈 힘을 얻었다. 


이렇게 말하면 내가 마치 엄청난 여행자인 것 같기도 하지만 사실 나는 오히려 그렇지 않은 쪽에 가깝다. 여행지에서 나는 꼼꼼하고 계획적인 여행자라기보다는 순간을 느끼고 보고 싶은 것만을 들여다보는 매우 비전문적이고 주관적이며 허술한 여행자에 불과하다. 대신, 난 여행지에서 많은 생각들을 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그리고 마치 평소와는 전혀 다른 사람인 것처럼 행동한다. 거기서 나는 또 다른 나를 만난다. 이전과는 180도 다른 나를 만나면서 가끔은 깜짝깜짝 놀라기도 한다. 


나에게 여행은 전환으로 들어가는 문이며, 새로운 이야기의 앞머리이며, 어떤 때는 지금까지의 못난 나와의 결별이다. 


그 어떤 종류의 것이든 여행은 내 머릿속에 칸칸이 막힌 생각의 벽들을 부수고, 나에게 무수하게 다양한 세계를 수용할 수 있는 커다란 앞마당을 하나 만들어 주었다. 


문득 이 시점에서 나는 여행이 내게 가르쳐 준 것들을 정리해야 할 욕구를 느꼈다. 도대체 내게 여행들이 무엇을 남겼을까? 어떤 것들을 가르쳐 주었을까? 그리하여 나를 어떻게 변화시켰을까?


내 정리는 아마 내 여행의 성향을 닮아 무척이나 무질서하게, 시간과 장소를 넘나들면서 등장할 것이다. 그리고 극히 허술할지도 모른다. 독자들이 내 정리를 그저 너그러이 봐주시는 것을 바랄 뿐이다. 



Episode 1. 아빠와 유모차 


1995년 여름, 어느 날, 친구와 나는 덴마크의 한 공원에 도착했다. 북유럽이라서 인지 한여름인데도 날씨가 서늘했다. 가난한 학생 배낭 여행자였던 우리는 점심을 주로 맥도널드 햄버거로 때웠었다. 서늘한 북구의 여름 날씨 때문에 조금이라도 따뜻한 장소를 찾다가 우리는 햄버거를 손에 쥔 채 햇빛이 내리쬐는 대낮의 공원을 찾았을 것이다.


한적한 그 공원에는 삼삼오오 유모차들이 늘어서 있었는데 우리가 평소에 생각하던 광경에서 약간 달라진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유모차들 주위에서 수다를 떨고 있는 젊은 아빠들의 모습이었다. 유모차와 아기들은 당연히 엄마들의 전유물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우리로서는 매우 놀랄 만한 일이었다. 


나는 갑자기 궁금증이 일었다. 

“이 나라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길래 대낮에 남자들이 유모차를 끌고 공원으로 모여드는 걸까? 내가 특별한 상황을 구경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저들만의 이유가 있는 것일까?”


얼마 후 나는 또 다른 북유럽 도시에 있었다. 햇빛이 내리쬐는 잔디밭에 누워서 지난밤 밤기차에서 다 못 잔 잠을 자고 있었다. 신문지를 얼굴에 뒤집어쓰고 배낭을 배게 삼아 잠을 자다가 무슨 소리가 들려 깨어났는데 내 눈 앞엔 또 예의 유모차의 군단과 젊은 아빠들의 수다가 펼쳐지고 있었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이런 장면을 봤다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 같았다. 분명히 우리와 다른 사회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일인 것 같았다. 아무튼 유모차와 아기와 엄마의 삼각형 연상 작용이 더 이상 그 사회에서는 일어날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도 신기하여 나는 그에 대한 궁금증을 그 여행으로부터 가져왔었다. 


그 궁금증은 한참이나 지난 후에 풀렸다. 그 여행에서 돌아온 후 시간이 얼마 지났고 나는 한 여성학 텔레비전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었다. 그것 때문이었다. 북구의 몇 나라들은 아버지가 육아 휴직을 받아야만 어머니도 육아 휴직을 받을 수 있도록 아버지의 양육을 참여시킬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들을 마련해 두고 있었다. 


그 날 내 머릿속에서 고정관념 하나가 깨져 나갔다. 엄마만이 양육을 담당해야 한다는 의무 규정은 이 세상 어느 곳에도 없었다. 다만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만든 어떤 생각 안에 갇혀 있었던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지구 안에는 다양한 생각들이 존재하는구나. 나는 단지 대한민국이라는 한정된 나라 안에서 만들어진 생각의 틀 안에서 살아가는구나.’ 내 머릿속에 벽 하나가 그 날 산산이 부숴 졌다. 



Episode 2. 행복한 독신 


어느 겨울날, 나는 파리에 도착했다.


그 며칠 전부터 나한테는 행운이 따라다니는 듯했다. 남들은 소매치기를 당한다는 위험한 도시들에서도 내게는 여지없이 행운이 찾아들었다. 근사한 레스토랑에 초대를 받기도 했고 혼자 밥 먹고 있는 동안 옆 자리의 현지인이 대신 밥값을 내주고 가기도 했다. 


파리에서도 나는 그런 행운이 다시 찾아오기를 바랐다. 


그 날 나는 퐁피두 센터를 가기로 결심을 하고 길을 나섰다. 길 잃어버리는 것이 취미인 내가 그 날은 정확하게 퐁피두 센터에 도착했으니 다른 엉뚱한 일이 일어나 주는 게 정상이었다. 아뿔싸,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그 날은 센터의 휴무일 이었다.


꼼꼼하지 못한 내게 이런 일은 종종 일어나는 일이다. 나는 자책하는 것도 미루어 두고 ‘로뎅 미술관’으로 발길을 돌렸다. 이번엔 또 길 잃기 취미 등장이시다. 난 또 몇 블록 가지 않아서 길을 잃어버렸다. 아무리 지도를 뒤집어 보고, 바로 보았지만 잘 모르겠다. 이럴 땐 지체 없이 길가는 사람한테 물어보는 게 상책이다. 


마침 지나가던 중년의 아저씨가 있어서 나는 그를 붙들고 길을 물어보았었다. 그러다가 그가 한국에 파견된 적이 있는 군인이며 한국에 있을 때 경험했던 훌륭한 한국인들 덕에 한국에 대해서 매우 좋은 기억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행운을 기다리던 내게 그는 또 다른 행운이 되어 주었다. 


그는 그 날 길을 알려준 호의에 덧붙여 나와 내 일행에게 점심과 저녁을 사 주었고 그리고 도보로 관광객들이 놓치기 쉬운 파리 시내 구경을 시켜 주었다. 한국에 대한 추억과 그리고 파리에 개봉된 최신 한국 영화들에 대한 이야기들, 프랑스의 역사 등등을 이야기하다가 그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들을 꺼냈다. 


삼 남매인 그의 형제들은 세 명이서 각자 다른 공간에 파리 시내 안에 살고 있었다. 내 머릿속엔 즉시 말로만 듣던 독신의 파리지엥들이 그려졌다. 그리고 그들이 사는 이야기가 궁금했다. 그의 이야기에 따르면 그들은 주중에 각자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다가 주말에는 서로를 초대해서 저녁을 먹고 각자의 취향에 부흥해 영화를 보려 가는 일들을 하곤 했다. 이야기를 하는 그를 통해 그들의 매우 즐거운 삶이 묻어 나는 듯했다. 


난 갑자기 내 머릿속의 무언가와 그 행복한 독신 삼 남매의 그림이 부조화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야기를 듣기 훨씬 전에 내 머릿속에선 독신이 외롭고 고독하다고만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외롭디 외로운 파리의 독신들이 꼬장꼬장 늙어 가는 그림만을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 날 나는 또 하나, 내 머릿속의 편견의 벽을 부수었다. 그리고 또 다른 세상을 머릿속에 받아들였다. 세상에는 외로운 독신이 아닌 ‘행복한 독신’도 있다. 



작은 결론 


세상엔 참 다양한 삶의 방식이 존재한다. 그래서, 어떤 삶이 방식이 옳고 어떤 삶의 방식이 그른지를 따지며 이야기하는 것은 어쩌면 매우 미련스러운 일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특히 ‘표준’에 대한 지향점을 갖기 쉬운 우리 한국인들을 그리고 나는 우리와 다른 것을 틀린 것이라고 받아들이기가 너무 쉽다. 


엄마만이 아기를 돌볼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독신은 외롭고 힘들다고만 생각했던 것. 그것은 어쩌면 내가 내 머릿속에 만들어 놓고 있는 한계 일지도 모른다. 


옳고 그른 세상이 정한 기준을 넘어서면 단지 ‘다르다’라는 단순한 단어 하나 만이 남을지 모른다. 그리하면 이 세상이 좀 더 이해하기가 쉬워질 것이다. 


여행은 내게 체험으로 그 ‘단지 다른 사람들의 세상’을 인지시켜 주었다.



                                                    2012년  4월  5일


                                        -- 오현정(변화경영연구소 4기 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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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크게 다르진 않습니다. 북유럽인이든 알래스카인이든, 몽골인이든 네팔인이든 삶을 살아간다는 큰 틀에서 바라보면 말이죠. 먹고 자고, 살아가고 그리고 나이 먹는 인간의 여정은 모두 동일합니다.


하지만 과정은 꼭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작은 것 하나, 소소한 행동 하나, 거의 움직임이 없을 것 같은 감정의 움직임, 감사하는 마음, 여유를 가지고 푸른 하늘을 바라보는 마음, 사랑의 속삭임, 바람의 흔들림, 빵 하나의 넉넉함 등. 삶은 이런 작은 것들을 대하는 태도와 생각에 의해 달라집니다. 여유와 배려, 관심은 그렇게 만들어 집니다.


여행은 자신이 가지고 있지 못한, 그리고 생각지 못한 것들을 사색하게 해주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여행은 일탈아기 때문이죠. 일탈은 우리의 생각을 기존에서 벗어나,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도록 도와줍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행에서 보고 배운 것들이 많이 남아 있게 되는 거고요.


다양한 삶의 방식을 이해하고,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소중한 순간임을 알고, 살아가는데 있어 그리 많은 물건이 필요치 않으며, 아둥바둥이 아닌 자신의 가슴이 이끄는 대로의 삶을 살아가며, 그리고 무엇보다 내 기준대로, 내 바람대로 살아갈 수 있다면 그 삶은 꽤나 괜찮은 삶이 될 것입니다. 물론 자신의 기준에서 말이죠. 사회적 기준만을 쫓으며 살 필요는 없습니다. 그것은 진실된 나의 욕망이 아닌, 사회가 만들어 놓은 헛된 욕망에 불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나 작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거칠지만 잘 새겨야 할 말입니다.


“그래, 너희들의 방식으로 그러니까 ‘미친년’으로 아주 잘 살아주길 바래. 멋지게! 그게 너희들이 살아낼 수 있는 최선의 삶이야”





차칸양 

"경제·경영·인문적 삶의 균형을 잡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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