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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옹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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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 4일 08시 43분 등록

미국의 창의성 전문가인 로저 본 외흐는 수천 명을 대상으로 ‘당신은 언제 좋은 아이디어를 얻습니까?’라는 질문을 했다. 사람들의 답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는데, 첫 번째 대답은 ‘필요성’이 있을 때였다. 이런 사람들은 대체로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문제에 부딪혔을 때”

“일이 잘못되어서 바로 잡아야 할 때”

“마감기한이 가까워졌을 때”

 

충족되어야 하는 수요가 있고, 그 결과에 초점을 맞출 때 사람들은 좋은 아이디어를 얻기 마련이다. 소위 ‘똥줄 효과’가 작동하는 것이다. 이는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다’라는 미국의 속담이 옳음을 증명한다. 그러나 흥미로운 것은, 정 반대의 의견을 낸 사람도 대단히 많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하릴없이 어슬렁거릴 때”

“그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을 때.”

“맥주 두 잔을 마시고 난 후”

 

그렇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경험을 한다. 고민하던 문제에서 벗어나 산책을 할 때, 운전을 할 때, 낮잠을 자고 일어난 직후, 샤워를 하는 도중에 갑작스럽게 아이디어가 생각나는 것이다. 정신이 운동장에서 놀고 있고, 내부의 검열 체계가 무너져 있으며, 정신적 감옥이 느슨해 져 있을 때 우리는 현실을 재창조하고 이미 정해진 방법을 의심해 보게 된다. 결과에 대한 생각을 내려놓고, 그 과정을 즐기고 있을 때 오히려 좋은 결과를 얻는 사례는 너무나 많다.

 

미국의 물리학자인 프리먼 다이슨은 6개월동안 씨름하던 문제를 2주간의 휴가에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간단히 해결했다. 독일의 화학자인 맨프레드 아이겐은 매일 밤, 잠자리에 들기 전에 몇 가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결과가 나오지 않은 실험, 앞뒤가 들어맞지 않는 이론을 머릿속으로 생각하면서 잠자리에 든다. 그러다 아침에 깨어나면 기적적으로 문제의 해결책이 떠오른다. 미래학자인 헤이즐 핸더슨은 아이디어가 고갈되면 조깅을 하거나 정원을 손질한다. 그리고 나서 컴퓨터 앞에 돌아오면 다시 물 흐드릇이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당신은 언제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는가? 곰곰이 생각해보라.

 

중국에서는 이른바 ‘창의성의 명당자리’라는 것이 있다. 첫 번째는 침상으로 이부자리다. 두 번째는 안상, 즉 말 안장 위다. 세 번째는 측상으로 화장실을 뜻한다. 다시 말해 자고, 이동하고 큰일(?)을 보는 중에 좋은 아이디어가 나온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비슷한 주장을 미국 프린스턴 대학의 줄리언 제임스 교수도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가장 위대한 과학적 발견과 수학적 발견은 B로 시작하는 세 장소에서 일어난다고 말한다. 이 3B에 해당하는 장소가 바로 Bed, Bus 그리고 Bath다. 다시 말해 중국의 명당자리와 정확히 일치한다. 정말 신기하지 않은가?

 

왜 하필 침실, 버스, 욕실 안일까? 사무실이나 도서관, 극장은 왜 안될까? 앞의 세 곳은 공통점이 있다. 물론 사람의 기본적인 욕구인 자고, 이동하고, 씻고, 배설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샤워를 하거나 볼일을 볼 때 우리가 완전히 몰입하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우리는 습관화 된 방식에 따라 자동적으로 그 일을 한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어느 정도의 주의력을 필요로 하는 반자동적인 활동에 참여하고 있을 때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의도적으로 생각할 때, 사고는 직선적이고 논리적인, 따라서 예측 가능한 방향으로 따라가게 되어 있다. 그러나 산책을 하거나 버스에서 이동을 할 때면 눈은 경치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으면서 뇌의 일부는 자유로운 연상을 쫓아가게 된다. 말하자면 정신활동이 무대 뒤에서 일어나고, 우리는 가끔씩만 그것을 인식할 뿐이다. 주의력의 중심에서 벗어난 사고는 예정된 방향을 따라거나 ‘내부 검열자’로부터 비판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발전한다. 그리고 이러한 자유와 여유로움이 우리의 사고에서 기발한 구상과 해결책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창의성의 즐거움>의 저자인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창의적인 생각을 얻기 위해서는 ‘잠복기’가 필수적이며, 그 잠복기야말로 가장 창의적인 과정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문제에서 벗어나 한동안 ‘의식의 문지방 밑에’ 문제를 가라앉혀 두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디어의 잠복 단계가 얼마만큼의 시간을 소요하는지는 문제의 종류와 특성에 따라 다르다.

 

광고계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박웅현은 아이디어의 잠복기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한번은 그가 아내와 해외여행을 위해 비행기를 타고 있었다. 아내가 아래에 펼쳐진 아름다운 구름을 보며 그에게 말했다. ‘와 멋있다. 오빠 멋있는 말 생각나는 것 없어?’ 그러자 그는 귀찮다는 듯 대답했다. ‘거품. 에이 몰라. 영화나 보자’ 그렇게 피했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이미 그 아름다운 구름은 거품으로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몇 년 뒤 그는 ‘훔치고 싶은 거품’ 이라는 맥심 카푸치노 광고로 사용하게 된다.

 

그의 다른 이야기도 마저 들어보자.

“광고 회의를 하기 몇 년 전쯤에 길거리에서 제가 전혀 모르는 아이가 넘어질 뻔 할 때 제가 손이 뻗어진 적이 있었어요. 그리고 제가 놀랐거든요. ‘내가 왜 쟤를 잡아주려고 했을까? 왜 넘어지는 아이를 일으켜 세우려고 하는 거지, 내가?’ 그런 생각을 한거죠. 그리고 그게 모티브가 되어서 몇 년 뒤에 ‘왜 넘어진 아이는 일으켜 세우십니까? 사람 안에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을 향합니다.’ 카피가 나온 거죠”

 

자, 이제 처음으로 돌아가서 이야기를 정리해보자. 창조성은 분명한 목표에 대해 몰입할 때 나온다. 그러나 또한 창조성은 몰입을 벗어나 있을 때 작동한다. 이 두 가지는 모순적인가? 그렇지 않다. 모순처럼 보이는 이 두 가지 태도를 모두 지녀야 비로소 창조성의 문이 열린다.

 

1)    문제가 주어지면 그것에 완전히 몰입한다. 분명한 목표를 세우고 문제가 일어난 원인을 파악한다. 레이저 광선처럼 그 문제에 의식을 집중한다. 가능한 모든 자료를 수집하고 자료에 대한 부분적인 생각을 모조리 적는다. 문제의 덩치가 클 때에는 몇 일간 자나깨나 그 생각만 한다.

 

2)    충분히 자료들이 모였다는 생각이 들고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오는 순간이 오면, 딱 한 걸음만 더 나아간다. 한 번 더 문제의 본질을 생각해보고 머릿속에 ‘구겨 넣는’ 느낌으로 자료들을 하나하나 훑어본다. 딱 한 걸음만 더 나아간다.

 

3)    그리고 자리를 탁 치고 일어난다. 생각을 통째로 내려놓고 가능한 한 완전하게 문제를 잊기 위해 노력한다. 산책을 하고 샤워를 하고 낮잠을 잔다. 문제를 무의식에게 완전히 맡긴다. 문제에서 벗어나 한동안 ‘의식의 문지방 밑에’ 문제를 가라앉혀 둔다. 상상력과 감성을 고무시키는 일을 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4)    이런 저런 아이디어가 떠오를 것이다. 그 중에 명쾌한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그 아이디어를 현실의 세계로 데리고 간다. 아이디어를 포켓 속에 넣어두지 말고 현명한 사람들의 비평을 받도록 공개한다. 여러 의견을 통해 아이디어를 다듬고 확장한다.

 

어렸을 적 아버지는 내가 목욕탕에서 냉탕과 온탕을 번갈아 왔다 갔다 하도록 시키셨다. 심장이 탄탄해 지기 때문이었다. 마찬가지다. 뇌를 탄탄하게 만들고 싶다면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를 반복적으로 건너 뛰어라. 필요할 때 돋보기처럼 의식을 한군데로 집중하라. 뇌가 완전히 방전 될 때까지 몰입하라. 그리고 다시 충전하라. 완전 충전, 그리고 완전 방전을 반복하라. 그 사이 아이디어는 날개를 달고 그대는 어느새 ‘뇌짱’이 되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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