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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2월 29일 08시 18분 등록

이 글은 3기 연구원 이은남(향인)님의 글입니다.

 

지난 날을 돌이켜 본다는 것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앞만 보고 가기에도 너무 바쁜 세상임에도 가끔씩 문득 서서 고개를 뒤로 돌릴 때가 있을 것이다. 어쩌다 노래방에 가면 누군가 부르는 노래가사에서 꾸깃꾸깃 밀어 넣었던 감성이 튀어나와 슬그머니 당혹해 질 때가 있다.
눈물샘의 자극으로 밀려나온 한 방울을 아무도 모르게 다시 집어 넣거나 아님 슬쩍 안경을 만지면서 면구스러움을 모면하곤 한다. 사실 울 때는 잘 우는 편이지만 다른 사람들이 멀쩡히 노래하면서 깔깔 대는데 혼자 괜히 센치해지면 안 어울린다고들 하니 그럴 땐 속으로 뜨끔하지만 화면을 잠시 세게 노려보는 것으로 마무리를 짓는다.

나는 노래를 듣거나 혼자 흥얼거리는 것은 좋아하지만 갑자기 마이크를 들이대며 “노래야 나오너라 쿵차라짝짝” 하게 되면 잠깐 패닉 상태로 들어가버리는 타입이다. 옛날엔 어쩌다 새로운 노래를 배우거나 하면 연습하러 가기도 했지만 언제부터인가 거의 가지 않게 된 노래방이다.

그래도 그런 순간을 대비해 딱 한 곡 비상대처용으로 거금을 들여 준비한 것 이 하나 있는데 그게 바로 심수봉의 “사랑 밖엔 난 몰라” 이다. 요 얼마 전 우아한 사람들과의 여행 중 졸지에 고속버스 내에서 급작스런 비상사태가 발생했는데 이 곡으로 겨우 패닉 상황을 극복한 경험이 있다. 사태 원인은 일행 중 가장 연장자이신 분이 최근 급격히 취향이 바뀌셨다 하여 발생했다고 하는데 앞으로 또 어떤 뜻하지 않은 사건이 벌어질지 자못 기대된다.

옛날 같이 근무하던 상사가 젊은 시절 NHK 가수 오디션을 본 적이 있을 정도로 노래를 좋아해 회식이 있는 날엔 그가 일을 빙자하며 취미생활을 하는지라 본의 아니게 노래방에 자주 갔었다. 그 때 한국 사람들이 “칠갑산”을 많이 불렀던 기억이 있다. 다나카상은 그 노래가 딱 그의 취향이었는지 그것을 가르쳐 달라 매번 졸라 할 수 없이 발음만 지도해 주었는데 워낙 노래를 잘하는 사람이다 보니 어느 틈엔가 감정이입까지 해서는 한국사람 보다 더 잘 부르게 되었다.
몇 번인가의 연습 끝에 실전에 선 날, 뛰어난 실력으로 한국손님들에게 호감을 샀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그가 노래를 마치고 내려오자 남자들이 우르르 그를 껴안고 어떤 이는 그를 주먹으로 때리기도 할 정도였다. 물론 일도 노래실력만큼 출중했다.

다나카상이 또 다른 곡을 연습하고 싶어하기에 이번엔 “옥경이”를 가르쳤다. 그 가사 중에 “~어디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았는지~”하는 부분에서 울컥했던 기억이 있어 좋아진 곡으로 이왕이면 듣고 싶은 노래를 가르쳐 나도 즐기면서 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옥경이”가 한창 한국에서 유행할 때 혼자 일본에서 직장을 다니며 서바이벌에 매진할 때로, 어쩐지 그 가사가 자신의 모습을 대변하는 듯했고, 어느 날 한국 손님이 일본에 와서 불러 줬을 때 속이 뜨거워져 혼난 기억이 있는 노래였다.

그 후 옥경이를 잘 부르는 남자에게 어쩐지 진한 동류의식을 느끼게 되고 친근감이 생기곤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다나카상은 그 누구보다도 그 리듬을 잘 소화해 나의 향수를 자극하곤 했다. 그 곡 역시 칠갑산 버금가는 호평을 받았고 덕분에 나는 좋아하는 노래를 가수(?)가 제대로 불러주니 그런대로 지루하지 않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다나카상은 현재 중국에서 사업 중으로 지난 번 한국에 왔을 때 보니 이번엔 중국가요에 정통해 있었다.

지나간 날들을 불현듯 떠올리게 하는 데는 노래방처럼 안성맞춤인 곳이 없다. 아버지가 좋아했던 노래, 첫 사랑과 헤어지고 음반 하나를 사 들고 온 언니가 방구석에서 내내 틀던 노래, 피아노를 연습한답시고 종일 두들겨대어 허구헌 날 싸우던 동생이 좋아했던 곡, 대학시절 바닷가에서 모닥불 앞에서 기타 치면서 부르던 대학가요제 노래, 드라이브 하면서 내내 틀었던 노래, 가는 청춘이 서글퍼 붙잡고 싶었던 처량한 노래들…

이제 그런 노래를 하는 이들은 거의 없다만 어쩌다 동창회라도 하게 되어 몇 년에 한 번 노래방에라도 가게 되면 누군가가 반드시 구석구석에 잊혀져 있던 감성을 건드리는 곡을 신청하는 데, 지나간 사랑과 같이 듣던 노래가 나오면 미처 준비안 된 마음에 허둥지둥하며 손에 땀도 나지만 곡이 끝나기까지 한 오분 정도 그 때의 추억에 살짝 잠겨보는 맛도 있다.
노래에는 그렇게 사람과의 역사가 담겨있다. 곡 하나하나에 어떤 이의 얼굴이 있고 과거의 희로애락의 순간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그런 날은 집으로 와도 지난 날들이 머리 속에서 몽실몽실 떠오르며 그랬었구나..내가 그렇게 살았었구나 하며 침대에 누워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된다. 그 노래의 기억 귀퉁이에 서 있었던 철없던 모습에서부터 의젓했던 기억, 그리고 터닝 포인트의 어느 절실했던 순간도 전부 또렷이 떠오르며 오늘의 나를 조감하는 것이다.

나는 천성적으로 호기심도 많은 편이지만 “왜?”라는 질문을 많이 하며 사는 편이다. 그 노래를 왜 좋아했을까? 가사가 좋아서, 멜로디가 멋있어서, 가수가 노래를 잘해서, 누군가가 좋아해서…이유도 많지만 좋아했던 노래는 그 모든 것이 그 때의 나의 상황과 비슷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윽고 잠이 올 무렵이면 어느 덧 마음이 편안해지며 가끔 하는 과거로의 외출도 나쁘진 않다며 알람 시간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본격적인 꿈 속으로의 여행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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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아낌없이 사랑을 주었던 몇몇 가구들에게 미안하다는 표현은 몇 번인가 했었는데 그러고 보니 CD들에게는 한번도 그런 마음을 나타낸 적이 없다. TV와 침대에게 소원함을 이해시켰고 책상에게는 근래에 드믄 혹사에 얼떨떨하게 했는데 오디오기기들을 잊고 있었다. 이제 두 달 지났단다. 열 달만 기다려 다오. 긴 인생에서 보자면 아주 찰나에 불과하단다. 너희들의 가치에 걸 맞는 음악을 들고 화려하게 부활하는 그 날까지 바이.

 

                                                                             이은남 변화경영연구소 3기 연구원(enlee@hanafo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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