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오늘의

연구원의

변화경영연구소의

  • 은주
  • 조회 수 3051
  • 댓글 수 0
  • 추천 수 0
2012년 7월 28일 09시 19분 등록

 이 글은 6기 연구원 이은주님의 글입니다.

 

엔지가 자다가 벌떡 일어났다. 캄캄한 한밤중이었다. 그녀는 네 발로 방을 기어 다니며 더듬더듬 무엇인가를 찾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녀는 노트와 볼펜으로 무엇인가를 열심히 썼다. 스탠드 불빛에 보이는 그녀의 눈은 감겨있었다. 엔지는 분명 자고 있었다. 그래도 그녀는 마치 깨어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조금 쓰다가 엔지는 볼펜과 노트를 머리에 깔고 다시 쓰러져 잤다. 엔지가 언제부터인가 노트에 무언가를 쓰다 왜인지는 모르지만 노트를 찢어 뭉쳐 던지는 일이 잦아졌다. 종이 뭉치가 쌓이듯 그녀의 스트레스도 쌓이는 것 같았다.

 

사람들이 불쌍하다. 늘 규칙적인 시간에 일어나고 나가기 싫은 일을 나간다. 게다가 이렇게 나갈 곳이 있어 얼마나 감사하냐는 생각으로 등허리를 바짝 세운다. 자신의 불안정한 미래를 위해 자면서도 몸과 마음을 풀어 놓지 못하는 것 같았다. 때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날이면 엔지는 자고 있는 우리들을 보며 너희들 팔자가 최고라고 말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개들의 삶에도 일과는 있다. 자면서도 귀를 세우고 깊은 잠을 자지 못한다. 주변에 발생하는 소리에도 귀를 기울이고 놓치면 안되기 때문이다. 그것이 공짜 밥을 먹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집을 지키고 나의 주인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하나하나 관찰하는 일이 쉬운 일만은 아니다. 주인의 기분을 맞추며 비위를 맞춰야 딱딱한 사료가 아닌 기름진 음식이나 고기라도 한 점 얻어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단지 다른 것이 있다면 개들은 그것을 힘든 일이나 비굴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주어진 나의 삶이라고 생각하기에 충실하게 복종하며 하루를 채워나간다.

 

엔지가 갑자기 어젯밤 무언가 써 놓았던 노트를 집어 들었다. 자신도 해석하지 못하는지 한참이나 노트를 붙잡고 앉아 있었다. 갑자기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벌떡 일어나 컴퓨터 앞으로 갔다. 엔지에게 글을 쓴다는 일로 집중하도록 여유를 주면 안 된다. 그러면 우리는 몇 시간이나 심심하게 잠을 자거나 화창한 날을 집안에 갇혀 답답하게 보내야 한다. 나와 방울이는 그때를 알고 있었다. 글쓰기에 흥미를 느끼게 되면 방해하기가 아주 힘들어지거나 방에서 쫓겨나 닫힌 방문 앞에서 처량하게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그러니까 컴퓨터 앞에 앉자마자 방해해야 한다. 처음 책상 앞에 앉을 때에 글쓰기에 대한 부담감으로 머릿속에는 일을 미루고 싶은 마음밖에 없다. 미적거리다가 억지로 앉기 마련이니까 그때를 노리는 거다. 어떤 일에든 방해를 시작했다면 멈출 때까지 절대 포기하면 안 된다. 끝까지 방해를 하고 그녀가 우리와 놀아주거나 산책을 나갔다 올 때까지 목적 달성을 위한 노력을 중도에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특히 요즘 같이 날씨가 좋은 날에는 더더욱 말이다. 갑자기 돌변한 나의 태도가 냉혹하고 이기적이여 보일지 모르지만 나는 죽음의 문턱에 또 한 번 갔다 돌아오자 하루를 그녀와 보낸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를 알았기 때문이다. 오늘을 즐기고 소중한 사람과 시간을 보내지 않는다는 일은 제일 값어치 없이 사는 생이라는 것을 알았다. 죽은 다음 후회해도 소용없는 일이 세상에는 너무나 많았기 때문이다.

 

나는 엔지의 발 밑에서 아주 애처로운 소리로 끙끙 앓는 소리를 냈다. 그녀가 컴퓨터를 켜려고 전원을 누르기 직전 나를 내려다 보았다. ! 성공이다. 그녀의 집중력을 흩으러 놓았다. 한 번 놀란 가슴에 엔지는 눈이 동그래졌다. “어디 아파?” 엔지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 보자 슬쩍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나의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글은 나중에 써도 되지만 나는 그녀 곁에 언제까지 머물 수 있는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엔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엔지는 방울이와 나에게 장난감을 던져 주었다. 잽싸게 가서 물어 오면 엔지는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닭고기 살을 건조시킨 육포를 주었다. 그녀와 놀이를 하며 맛있는 것을 먹는 시간은 무엇보다 행복했다. 인간들은 개들이 단순하고 할 일이 없어 먹는 것을 좋아하고 노는 것뿐이 할 일이 없어 한심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나는 인간들에게 묻고 싶었다. 그러는 사람들은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감을 느끼는지 말이다. 사람들도 좋아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것 먹고, 잠 실컷 자고, 즐겁게 놀고 이야기 할 때를 가장 행복해 하는 것 같았다. 엔지는 누군가 어느 때 가장 행복하고 좋아하는 일이 무어냐고 물으면 생각하는 척 고개를 갸웃거리다 고상하게 대답했다. , 책 읽고 글을 쓸 대 가장 행복하다고 말이다. 그녀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엔지는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무언가 끄적이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또한 책을 읽을 때도 그녀는 아무 표정도 없었다. 하지만 우리와 양말과 신발을 던지고 물어 오는 놀이를 할 때 그녀의 얼굴을 활짝 피어 있었다. 입으로 거짓말을 할 수 있는 것이 인간이고 얼굴에 나타나는 표정을 숨길 수 없는 것도 인간이었다. 그래서 내 판단대로 나는 이기적일지 모르는 이 생활을 즐기기로 마음 먹은 것뿐이다.

 

망설일 이유가 없다. 가끔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위해 밀어 붙이는 힘이 필요한 것이다. 망설이다 놓친 지금 이 시간은 다시 오지 않기 때문이다. 내 나이를 사람들의 나이로 환산하면 사십 중반을 넘어섰다. 나의 일년은 사람들이 칠 년을 살아내는 시간이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늦출 수가 없었다. 엔지를 괴롭히는 일조차 시간이 지나면 그녀에게는 그리움으로 남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게 인간이니까…… 나는 끊임없이 그녀와 즐겁게 보낼 시간을 궁리하며 오늘도 그녀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IP *.42.252.67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556 의자, 아니 원칙을 사수하라_신종윤 옹박 2012.07.11 2810
555 보험 컨설턴트를 위한 변명 (by 박중환) [1] 최코치 2012.07.11 3768
554 샤먼이 되고 싶은 소녀 (by 박정현) 희산 2012.07.12 3432
553 내 존재에 대한 조감도를 가진 사람은 도대체 누구 (by ... 은주 2012.07.14 3606
552 직장을 내 인생 반전의 기회로 삼아라 (by 오병곤) 승완 2012.07.16 3203
551 감사(感謝)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 (도명수) 경빈 2012.07.16 5001
550 창조할 수 없는 예술가여, 다시 어린아이가 되라! (by 박... [1] 은주 2012.07.19 3088
549 노화가 멈춰버린 나 (by 양재우) 최코치 2012.07.20 2965
548 너도 해볼래? (by 이선이) 승완 2012.07.23 3230
547 평범한 사람이 위대해 지는 법 (한명석) 경빈 2012.07.23 3023
546 신화 속으로 들어가다_김도윤 옹박 2012.07.25 3308
545 여행이 내게 가르쳐 준 것들 (2) (by 오현정) 최코치 2012.07.26 3422
544 선조의 붉은 편지 (by 박정현) 희산 2012.07.27 3012
» 하루의 즐거움을 위해 망설이지 않기 (by 이은주) 은주 2012.07.28 3051
542 주말부부 (by 김미영) 승완 2012.07.30 3733
541 나를 설득시켜야 남에게 다가갈 수 있다 경빈 2012.07.30 3150
540 베트남과 두바이의 아름다움에 대하여_최영훈 옹박 2012.08.01 3657
539 회사 인간 (by 오병곤) 승완 2012.08.06 3072
538 나의 연구원 1년 (박소정) 경빈 2012.08.07 3124
537 손 내미는 아티스트_한정화 옹박 2012.08.08 3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