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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 13일 18시 01분 등록

얼마전 우연히 1기 연구원이신 문요한님의 '굿바이,게으름'을 읽게 되면서 구본형 소장님의 책들도 접하게 되고 이곳까지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과거 여느때처럼 감당할 만한 어려움들만 매일 마주하면서 지냈다면 아마 변화라는 주제를 놓고 이런 공간, 이런 사람들이 있는줄도 모르고 살았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가장 어렵고 불편하게 느껴졌던 변화라는 단어가 이제는 유일한 방법이자 희망이 된 것 같아서 두려움 반 기대 반으로 나름 친해지려고 노력중에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시간이 부족한건지 방법이 서툰 탓인지 다소 어색하고 자꾸 눈치를 보게 됩니다.

논리적인걸 좋아하는 제가 처음 종교를 빋아들이고 교회를 거부감 없이 다닐 수 있기까지 많은 계기와 노력이 필요했던 것 만큼 너무 길었던 그 시간들을 통해서야 뒤늦게 변화의 필요성을 깨닫게 되었으니 또 하나의 큰 의미를 찾아 노력해 볼 생각입니다.


초등학생 시절에 미술시간 준비물로 크레파스를 가져간 적이 있었습니다. 부모님이 사 주신 위 아래로 칸이 나뉘어져 색상이 다양하게 있는 일명 고급 크레파스 였습니다. 학교 앞 문구점에서 산 친구들의 몇 안되는 색상의 크레파스와는 한눈에 봐도 달랐습니다. 몇몇 친구들은 나를 부러워 했지만 난 왠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마음이 영 불편 했습니다. 그 뒤로 준비물을 살 때면 친구들이 사는 물건을 지켜본 후 같은 물건을 골랐고 그제서야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사춘기를 지나 성인이 되면서도 난 늘 커다란 무리 밖으로 벗어날까봐 전전긍긍하며 수동적으로 정해진 길을 가는데만 익숙했고 그 과정에서 은밀하고 날카롭게 내 마음을 건드린 거부감들이 있었지만 솔직함에 그대로 맞설 자신이 없어 무모하고 감상적인 선택쯤으로 치부해 버리면서 내 안의 두려움은 그렇게 잘 포장되어 왔습니다.

오랜 시간을 어중간한 선택이 주는 안정적인 느낌을 유지하는데만 안쓰러울 정도로 집착하면서 살았습니다. 매번 다른 형태로 찾아오는 인생의 중요한 선택의 갈림길에서 내 생각은 고집센 노인처럼 한번도 바뀔줄을 몰랐습니다.

살면서 한번씩 나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걸어왔던 내면의 목소리에 냉정하게 귀를 닫고 잔인하게 짓밟아 버린 댓가는 그때마다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무서운 병일수록 긴 잠복기를 가지듯이 서서히 내 안에서 내가 감당할 수 없을 형태로 자라서 내가 가장 감당할 수 없는 순간에 본 모습을 드러낸다는 사실을 직접 겪게되기 전까지 난 알지 못했습니다.

인생에서 모든 경험과 열정을 불태우며 가장 큰 성취감을 느끼고 살아갈 시기에 나를 둘러싼 외부 환경들은 끝을 모르고 악화되어 갔고 내가 유일하게 자신했던 정신력 마저도 한계에 이르렀습니다. 가족, 건강, 경제적 여건 그 어떤 것 하나 내가 기댈 수 있는 것이 없었고,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건 이 모든 상황을 극복해야 할 이유를 내 안에서 찾을 수 없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마침내 내 정신은 모든 판단력을 잃고 난 그대로 주저 앉아 버렸습니다. 내 몸은 기본적인 욕구와 기능을 모두 상실한채 나는 그야말로 만신창이가 되었습니다. 극단적인 선택의 고비를 넘어 어떻게든 살아 봐야겠다고 다짐했지만 그 정도 결단만으로 치유 되기에는 지난 시간이 너무 길었고 내 상처는 깊었습니다.
일을 할 수가 없었고, 신경안정제를 먹어야 미친듯이 뛰던 심장이 가라앉았고, 아침마다 알람시계 대신 숨막히는 괴로움에 명치끝을 부여잡고 신음하면서 깨어나야 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보는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비참하다는 말로 다 표현되지 않았습니다. 내가 목숨걸고 추구하던 그 평범함에서 난 그렇게 완벽히 벗어나 있었습니다.

추웠던 겨울이 다시 찾아오는 동안 다행히 나는 어느정도 치유되었고 시간이 약이라는 말에만 의존해오던 그 모습을 이제는 조금은 넘어서서 능동적인 선택들로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아직은 예전과 같은 온전한 몸과 마음도 아니고 일을 다시 시작한것도 아니지만 같은 선택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오래된 나와 싸우며 재활하듯 나를 준비해가고 있습니다.

이제 삼십대 후반에 접어드는 적지 않은 나이에 이 모든게 사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가끔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지금의 시간들이 내 위치에서 책임을 외면하면서 존재하는 힘없는 명분이 아니라면 나는 내 마음이 움직이는 확신의 순간까지 끝까지 가보려고 합니다. 문득 한때 내가 이런 결심을 하는 사람들을 그 이상 하찮게 볼 수 없을 정도로 동정하고 비웃었다는 사실에 고개를 들 수 없을만큼 부끄러워 집니다.

힘들고 원망스럽기만 했던 시간들이 이제는 한번씩 고맙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사실 정말 고마운건지 지금의 위태롭고 불완전한 상황들에 맞설수 있는 몇 안되는 의식적인 방편중에 하나인지 확신은 서지 않지만 진심으로 고마워 해야 하는게 맞는 것 같습니다. 그 정도의 고통이 아니었으면 나는 절대로 깨닫지 못할 사람이었을테니까.


여기까지가 제가 보낸 지난 몇 개월의 시간이고 쓰다보니 상황 설명 보다는 감정적인 부분들만 어지럽게 늘어 놓았습니다. 아직은 막연함이지만 점차 구체화되고 가시화되면서 아마도 수 많은 질문들을 하고 답을 찾아 다니게 될 것 같습니다. 이곳에 올려진 많은 글들은 각자 다른 상황속에서도 변화라는 공통적인 문제를 놓고 같이 고민하고 공감하는 사람들의 얘기라는데서 그 자체로 큰 위안이 됩니다. 물론 누군가의 조언이나 격려를 듣는다면 더 반가운 일이 될 것 같습니다.

많이 알려진 글이지만 저에겐 수십번을 읽어도 질리지 않는 포르티아 넬슨의 '다섯 장으로 된 짧은 자서전'을 끝으로 제 고민을 마칩니다. 저를 포함해 이 곳에 글을 올린 많은 사람들이 변화 경영 연구소의 슬로건처럼 어제보다 아름다운 모습일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다섯 장으로 된 짧은 자서전>

1. 난 길을 걷고 있었다. 길 한가운데 깊은 구덩이가 있었다.
    난 그곳에 빠졌다. 난 어떻게 할 수 가 없었다.
    그건 내 잘못이 아니었다.
    그 구덩이에서 빠져 나오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2. 난 길을 걷고 있었다. 길 한가운데 깊은 구덩이가 있었다.
    난 그걸 못 본 체했다. 난 다시 그곳에 빠졌다.
    똑같은 장소에 또다시 빠진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내 잘못이 아니었다.
    그곳에서 빠져 나오는데 또다시 오랜 시간이 걸렸다.

3. 난 길을 걷고 있었다. 길 한가운데 깊은 구덩이가 있었다.
    난 미리 알아차렸지만 또다시 그곳에 빠졌다.
    그건 이제 하나의 습관이 되었다.
    난 비로소 눈을 떴다. 난 내가 어디 있는가를 알았다.
    그건 내 잘못이었다.
    난 그곳에서 얼른 빠져 나왔다.

4. 내가 길을 걷고 있는데 길 한가운데 깊은 구덩이가 있었다.
    난 그 구덩이를 돌아서 지나갔다.

5. 난 이제 다른 길로 가고 있다.

                                                                          - 포르티아 넬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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