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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2월 20일 19시 13분 등록

오늘은 가입하고 글을 올려볼 수 있겠단 생각이 드네요. 그만큼 바라지 않는 끝에 가까워지고 있단 신호일런지도 모르겠습니다, 도움받지 않고자 했던 부분에서 가장 도움을 필요로 하게 된 지금이.

하루도 빠지지 않는 1년 1개월 3일, 30대 초반의 나이에 갖게 되리라 상상해본 적조차 없는 고통과 직면해 온 시간들이네요. 제법 흐른 시간에도 불구하고 마음은 완치될 생각이 없는지.. 글을 쓰는 지금도 목구멍이 아려옵니다. 이제 더는 분노도 아닌 자기연민과 보내야 할 날들이 너무 두려워 소심하게 남겨보는 sos..

누가 시킨 적은 없지만.. 자연스럽게 시작된 사회생활에서 운 좋게도 때로는 사람들이 좋아서, 때로는 일이 흥분될만큼 즐거워서.. 바보스럽지만 금요일 퇴근길이면 남겨진 메일들을 프린아웃해서 일을 음미하는 주말을 보낸.. 그렇게 좀 더 욕심내고, 좀 더 고민해서 이르른 목적지는 보기 좋은, 남들이 부러워하는 회사드군요.

성공적으로 이직을 마쳤다고 생각할 무렵, 저를 채용하고 손발을 맞추며 배려마저 아끼지 않았던 직속상사와 성추행 사건에 개입되었습니다.. (사실을 왜곡하는 듯한 '당했다'.. 는 표현은 저라도 쓰고 싶지 않습니다, 더는..) 부끄럽게도... 당면한 연말성과평가와 정규직 전환이 제일 먼저 떠오르드군요.. 참을 수만 있다면 그냥 넘어가고만 싶었습니다. 인사부에 접수하고 그 분의 사과를 받는 것으로 끝내고자 마음먹었으니까요.

.... 시사프로그램이나 삼류영화에서 볼 만한 일이 눈앞에 펼쳐지드군요. 결과적으로, 제 처신 때문에 벌어진 일이니 본인 책임없고 사과도 없다는. 처음이면 그토록 뻔뻔할 수 없겠단 생각에 나름의 인맥을 통해 조사에 들어갔습니다. 처음이 아니시드군요.. 다녔던 회사마다 하나씩. 전부 외국계입니다..
참지 않겠다고 마음을 바꿨습니다. 스스로에게 없던 혐오가 생겨날만큼 구역질나는 논란을.. 제 뒤로 다른 누군가가 겪게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두 달 가량 진행된 징계위원회.. cctv마저 확보된 상황에서도 그 글로벌금융사란 곳은 납득할 수 없을만큼 임원인 남성을 위해 존재하는 곳이드군요. 권고사직이지만, 보기도 아름답게.. 일신상의 이유란 명목으로 결국 나가셨습니다. 두 달의 삼류 논쟁 끝에 남겨진 저는.. 티브이에서 드라마게임에서 보던 그렇고 그런 여자가 되있드군요.

하고 있던 업무의 전망과.. 과거의 잦은 이직경력을 고려해 1년을 버텼습니다. 그 동안 별 소문들을 다 전해들어야 했으며, 그 소문의 진원자들과 회의하고.. 식사하고.. 웃어주고, 그러나 끝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 한 번의 고용계약 연장과 연봉인상이 있었지만 고용계약 만료되어 갱신할 마음이 없으니 퇴사하란 통보를 받았습니다. 종료일 1주일 전에..

웃긴 비유지만.. 진심을 다 바쳐 사랑한 사람에게 버려진 기분이랄까.., 열심과 최선, 성과만 남았을 뿐, 제 자리는 없어졌다는 생각에 몇 주를 앓아누웠습니다. 마음만이 그렇게 온전히.. 아파본 기억은 없드군요, 여의치 않는 상황에서 유학준비를 시작하며 서너달 심리치료를 받았죠. 그렇게 두 계절을 술과 수도 없이 혼자 바라본 남산의 야경으로 채웠습니다..

우울증 약 때문인지.. 원하지 않는 유학준비를 접고 다시 인터뷰를 보기 시작한 게 벌써 지난 늦가을입니다. 마음을 굳게 무장해서 본 결과, 나쁘지 않은 두 곳에서 동종의 업무로 긍정적인 결과를 전해들었습니다. 많은 면접경험에도.. 당일날 토할 정도로 긴장했던 건 처음인 것 같네요, 면접이 아니라 다시 살고자 하는 발악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최종결과는.. reference check에서 걸러져 채용하지 못하겠다드군요. 전직사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퇴사한 직원이라고 말했다네요, 물론 공식 HR의 입장은 아니리라 봅니다.. 그렇게 바보같진 않겠죠, 그 회사가. 그 분 이후로 들어온 새 상사가 준 평가였다고 생각됩니다.. 저와 일하는 동안에도 그 분과 만남을 지속하며 추호의 배려도 없이 껄끄러운 부하직원 취급하시더니.. 퇴사일에는 심지어, '앞으로는 좀 참고 느긋하게 살아라.. 당신만 억울하다고 생각하는게 잘못이다. 최근 뵌 그 분의 처지는 더 딱하게 되었다.. 볼 수가 없을만큼.'

그렇게 무던하게 살겠다고.. 대답도 해드리고 나왔네요. 하지만, 이미 제 마음 속에는 다시 같은 일이 있어도 다르게 행동할 수 없을 거란 생각 뿐이드군요... 둥글게 사는 법...이 모자란 사람.

사회 매장... 심리적인 불안에서 떠오른 말은 그것뿐입니다. 누가 알았을까요.. 제가 알 수 있었을까요... 둥글게 살지 않으면 치러야하는 희생이 대체 얼마만큼 무서운건지. 헤드헌터나 주변의 어른들은 그러시드군요... 괘씸죄, 인과응보..라고. 사회 무서운 줄 모르고.. 원칙대로 결과보려는 그야말로 그분들의 리그에 남겨두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 저라고.

하긴.. 두 자녀의 아빠고 가장이니 참아 넘기라고 하신 여자 임원이 계셨는데, 제가 그 말을 듣질 못했네요.. 그 때는. 후회합니다.. 제 삶을 잃게 만든, 모든 걸어온 길을 원점으로, 아니 원점보다 못한 지점으로 돌려놓은 제 짧은 용기를. 아니면, 좀 더 치밀하고 독하게.. 회사와 그 분을 양벌죄로 소송이라도 넣어 보상이라도 받았어야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될 것이었다면..

사건이 있고 상담을 위해 만나뵌 변호사님이 하셨던 말이 요즘 생각납니다.. '인간이 어떻게 그럴 수...'란 질문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구요.. 수십년간 경험하신 바로는, '인간은 뭐든 다 할 수 있다.'더라고...

아무 것도 더는 할 수 없는, 할 것이 없는 저는.. 어떤 인간인지.  ###

인터넷뉴스에 최모 국회의원이 복당한다는 기사가 떴드군요.. 치를만큼 치뤘다는게 당내 중론이라는데.
과연... 세상의 단 한분, 그 사건에 연루된 피해기자님도 충분한 시간이었다고 느끼실지... 

사람들이, 사회가 사람에게...
뭘 더 할 수 있을까요...



 

IP *.211.14.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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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형
2009.02.23 09:04:52 *.160.33.149
올려놓은 글을 꼼꼼이 읽었습니다. 내 앞에서 그대가 이야기하는 것을 듣듯 잘 듣기 위해 천천히 읽어 보았지요.

어쩌다 사람들이 말하는 맹랑한 일들, 설마 그렇게 까지야하는 일들이 자신에게 생길 때가 있습니다. 우연한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 것이지요. 그때 막연히 알고 있던 일들이 개인적 체험을 통해 분명하게 다가 옵니다. 마음의 무의식까지 내려가는 검은 좌절과 모욕과 낭패감과 대면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분노에 몸을 떨기도 하겠지요. 어떤 사람은 잊으려고 하고 어떤 사람은 결코 잊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왜곡하고 어떤 사람은 이 일을 통해 전에 알지 못하던 진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이전의 그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으로 성숙하게 됩니다.

당신에게 생긴 그 일은 당신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었을 것입니다 그 일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하고 대응할지에 대한 갈등과 번복을 통해 어떤 깨달음에 이르기를 바랍니다. 어쩌면 더 오랫동안 가슴의 가시같은 그 일을 더 간직하고 살아야 할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일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그대와 세상과의 관계가 정립될 것이고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 지도 알게 될 것입니다. 마음 아픈 일이 당신에게 훌륭한 꺠달음을 주는 교훈이 되기를 바랍니다. 모욕을 넘어서기를 바랍니다. 강해지고 당당해 지기를 바랍니다.

사회를 위해 개인이 희생당하는 사회는 부족한 사회입니다. 사람을 위해 봉사하는 사회가 좋은 사회입니다. 세상을 미워하는 대신 불완전한 세상의 모자라는 한 구석을 밝히고, 그렇게 나아진 사회가 그 속에서 상처 받은 사람을 위로하고 도와 줄 수 있도록, 그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 애쓰는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언젠가 이 일이 당신 인생에 우연히 끼어든 가장 드라마틱하고 생산적인 일로 전환되기를 바랍니다. 이 후의 멋진 인생이 이곳을 출발지로 펼쳐지길 바랍니다. 우연히 겪게된 치명적 상처와 상실을 훌륭한 도약점으로 만들어낸 사람들만이 아직 부족하고 불완전한 세상을 개선할 체험의 힘을 가지게 됩니다. 당신은 일어 날 것이고, 더 용기있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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