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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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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7월 4일 10시 49분 등록
요즘은 제가 이상담코너를 보면서 하루일과를 계획하는 날이 많은데 아무래도 저의고민이 항상 뇌리를 돌고있어 그런가 봅니다 .이나이에 무슨 상담인가 하는 자괴감도 있지만 초아선생님의 고견이 듣고 싶어 챙피함을 무릅쓰고 털어보면


첫째 가정적으로는 7년전 이혼한후 4년간 홀로지내다 아이와 부인의 요청에 혼인신고없이 3년간 함께지내다 올해 다시 따로 나와 살게되었는데

도저히 성격이 맞지않아(저는 긍정형,처는 부정형)20년후를 생각해보면
지금이라도 따로 가는게 맞다는게 제생각입니다.아이도 다큰 상태고
다시 결혼할 생각은 없고 제스타일이 구속받는걸 싫어하는 경향이 있어

남자가 혼자 산다는 것이 어떤의미가 있나요.육체가 건강해서 성적인 부분이
문제가 되거든요? 가정을 이루는 것만이 행복의 길일까 궁금해서요

둘째 경제적으로 지금이 새로운 사업을 다시 시작할수있을까하는 타이밍의 문제가 있읍니다.제가하던일과 관련해서 몇명이 새사업을 하자고 제안해오는
상황인데

현재는 매우안정적으로 고정수입이 들어오는상황(매달 수천의 수입,별로사회적 가치창출을하지는 않는 수입)인데 변화를 해야하는지,젊은이들처럼 매일 공부하고 좋은 피드백으로 자신을 담금질해보지만 대다수 주위의 부정적피드백이 저를 가만 놔주지않는군요

어짜피 한번뿐인 인생이라는 생각이 변화를 재촉하지만,또 내면에 잠들어있는 게으른 본성과 상처를 피하고자하는 마음이 한발자국도 나서지 못하게 한답니다. 그래서 매일 다른 사람의 고민속에서 자신의 답을 찾으려 하는지 모르겠읍니다

행복의 원천이 사람에게 있는것은 느끼는데,또다시 자신을 불행케하는 것도 사람인것을 아는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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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아
2007.07.04 20:02:38 *.253.249.89
"이혼은 아주 잘한 일 입니다."
여인은 남자를 진정으로 사랑 할 때에는 나이가 들어도 육체의 문은 열립니다. 부부가 애정이 없어지니 거부하고 닫히는 것입니다. 그럴 바에는 따로 자기길을 가는 것이 훨씬 좋습니다.그러나 문제는 다시 여자를 만나는 일 입니다. 처녀와 총각이 결혼 할려고 만나는 일에는 순수함으로 가득하기에 연애든 결혼이든 아름답지만. 태환씨같이 나이드어 만남에는 순수함이 적어서 아름다운 생활의 시작이 어렵습니다. 여자들은 한달에 생활비 얼마, 아파트는 내앞으로, 취미생활 레져활동에 얼마나 지원 할 것인지, 그건 좋습니다. 전 자식의 장례는 완전히 남녀의 만남인지 거래인지 구분하기 힘든 상황으로 도래되기 쉽습니다. 특히 선생님같이 경제성이 강하여 돈 쓰는 재미를 모르는 분은 더욱 심한 분쟁이 일어 납니다. 이를 조심해야 합니다.

둘째, 경제적인 변화를 모색하는 일은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현재의 수입이 그러하다면 경제적인 변화보다는 취미 레져활동 대학원 진학 등으로 자신의 원초적인 개발과 변화에 힘써 보세요.

우리의 삶속에 73%가 벌어야 산다는 절박함속에서 진행합니다. 그래서 사회는 바쁘게 완연하게 돌아갑니다. 그들도 선생님처럼 돈에 구속 받지 않는다면 허무라는 병의 엄습에서 피하질 못할 것입니다.

"정말 내가 아끼고, 날 위할 여인을 찾으세요. 그리고 삶의 가치를 위해 진정 나를 인도할 스승을 만나는 것이 지금의 중요한 할 일입니다. 그리고 다시 자신의 길을 밝혀 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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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7.07.04 22:09:38 *.70.72.121
건강한 육체의 쓰임에 대하여 잠시 생각해 보다가

도종환 시인의 <접시꽃 당신>의 시가 문득 떠올라 적어봅니다.

옥수수잎에 빗방울이 나립니다
오늘도 또 하루를 살았습니다
낙엽이 지고 찬바람이 부는 때까지
우리에게 남아 있는 날들은
참으로 짧습니다

아침이면 머리맡에 흔적없이 빠진 머리칼이 쌓이듯
생명은 당신의 몸을 우수수 빠져나갑니다
씨앗들도 열매로 크기엔
아직 많은 날을 기다려야 하고
당신과 내가 갈아엎어야 할
저 많은 묵정밭은 그대로 남았는데
논두렁을 덮는 망촛대와 잡풀가에
넋을 놓고 한참을 앉았다 일어섭니다

마음놓고 큰 약 한번 써보기를 주저하며
남루한 살림의 한구석을 같이 꾸려오는 동안
당신은 벌레 한 마리 함부로 죽일 줄 모르고
악한 얼굴 한 번 짓지 않으며 살려 했습니다

그러나 당신과 내가 함께 받아들여야 할
남은 하루하루 하늘은
끝없이 밀려오는 가득한 먹장구름입니다

처음엔 접시꽃 같은 당신을 생각하며
무너지는 담벼락을 껴안은 듯
주체할 수 없는 신열로 떨려왔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에게 최선의 삶을
살아온 날처럼, 부끄럼없이 살아가야 한다는
마지막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함을 압니다

우리가 버리지 못했던
보잘것없는 눈높음과 영욕까지도
이제는 스스럼없이 버리고
내 마음의 모두를 더욱 아리고 슬픈 사람에게
줄 수 있는 날들이 짧아진 것을 아파해야 합니다

남은 날은 참으로 짧지만
남겨진 하루하루를 마지막 날인 듯 살 수 있는 길은
우리가 곪고 썩은 상처의 가운데에
있는 힘을 다해 맞서는 길입니다

보다 큰 아픔을 껴안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엔 언제나 많은데
나 하나 육신의 절망과 질병으로 쓰러져야 하는 것이
가슴아픈 일임을 생각해야 합니다

콩댐한 장판같이 바래어 가는 노랑꽃 핀 얼굴 보며
이것이 차마 입에 떠올릴 수 있는 말은 아니지만
마지막 성한 몸뚱아리 어느 곳 있다면
그것조차 끼워넣어야 살아갈 수 있는 사람에게
뿌듯이 주고 갑시다

기꺼이 살의 어느 부분도 떼어주고 가는 삶을
나도 살다가 가고 싶습니다

옥수수잎을 때리는 빗소리가 굵어집니다
이제 또 한번의 저무는 밤을 어둠 속에서 지우지만
이 어둠이 다하고 새로운 새벽이 오는 순간까지
나는 당신의 손을 잡고 당신 곁에 영원히 있습니다.

어린시절 시인의 시를 채 외우지도 못했는데, 내 기억엔 그토록 가슴을 저미는 시가 종이에서 잉크가 바래기도 전, 그 아내를 떠나보내고 재혼을 한다는 시인의 소문을 들었더랬습니다.

남자를 알지 못하여 또한 사랑을 알지 못하여 그리고 진정 사람을 알지 못하여 의문만이 남았더랬습니다.


최근에는 시인의 이 시를 읽습니다.


흔들리며 피는 꽃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어언 20년이나 지난 지금에 와서까지도 나는 정녕 남자를 알지 못하겠더이다. 사랑을 알지 못하겠더이다. 사람을 알지 못하겠더이다.

50줄이 내일모레에 애가 타는 내 마음을 부여 잡으며 평생 처음으로 사부님이라는 말을 더듬으며 눈물 고이듯 변.경.연에 합류 했답니다.

윗글 제목에서 50이라는 숫자를 그냥 넘기지 못함을 어찌하겠나이까.
50... 반평생? 아니, 남은 날을 알 수 없는 내 인생의 숫자...

공감이 가다가 짜증이 나고 이해를 하다가 돌아설까 망설이게 됩니다.
공연히 마음이 저리기 때문입니다.


상처

- 이승하

산 개미가 죽은 개미를 물고
어디론가 가는 광경을
어린 시절 본 적이 있다.

산 군인이 죽은 군인을 업고
비틀대며 가는 장면을
영화관에서 본 적이 있다.

상처입은 자는 알 것이다.
상처입은 타인한테 다가가
그 상처 닦아주고 싸매주고
그리고 벌떡 일어나
상처입힌 자들을 향해
외치고 싶어지는 이유를

상한 개가 상한 개한테 다가가
상처 핥아주는 모습을
나는 오늘 개시장을 지나가다 보았다.



나도 본 적 있다.
상한 개가 상한 개에게 다가가 상처 핥는 모습을.
적의도 지나친 친절함도 없이, 다만 상한 것끼리의 본능으로 서로를 핥는 것을.
사람은 어떤가.
상처입은 자는 상처입은 자를 금방 알아본다.
그런 사람은 두 부류다.
상처를 알아본 이들끼리 친구가 되거나 적이 된다.
상처를 들키고 싶지 않아 적이 되는 슬픔까지 상처여, 네 몫인가. (김선우. 시인)


4년 동안 혼자 살아보았다면서 결국은 자신을 발견하지 못했나이까?
남자가 혼자 사는 것이 두려운가요? 왜죠?
병들까봐서, 후회, 천벌 ... 두려움의 정체가 뭐죠? 님만이 알 텐데요.

우리가 인정할 것은 사실은 단 하나 일지 모르죠. 상대가 아니라 무엇보다 내가 견딜 수 없다는 것, 내가 원하는 무엇이 있다는 것, 그게 무엇인지는 아시나요?

저 역시 님과 같이 50이 내일모레일지라도 제게 있어 부모님은 평생 필요한 존재에요. 아니시던가요?

비교적 안정적인 경제력이 혹시 무료할 만치 혹은 무슨 일이든 저질러서 더 크게 벌든 뒤집어 엎든 승부라도 하고 싶은 가요? 그건 아니죠.
망설이는 걸 보면.

정말 서성이면서 스스로가 납득이 안 갈 만큼이라면 전문의와 상담해 보시는건 어떨까요? 저의 경우에는 그렇게 하고 싶었지만 경제적인 측면과 우선 당장에 먹고 살아야 하는 절박함 때문에 저 자신을 뒤로 하는 바람에 아니 세상의 잣대와 현실이라는 벽에 처박으면서 많은 시간을 허비하고 괴로워 했던 것 같아요.

만약 내가 님과 같은 처지였다면 저는 전문가와 상담하기를 주저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 정신과 의사라든지, 상담치료사라든지, 그 모두를 아우르며 자기계발 프로그램과 치료적 변화 프로그램 과정에 등록을 해서 보다 나은 구체적이고 체계적 자아 찾기와 도움을 요청했을 것 같아요. 사실 지금도 그렇게 해보는 것이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거든요.

미움, 증오, 사랑, 기쁨의 이런 일련의 감정들은 어떤 면에서는 외부적인 영향에서라기보다 오히려 자기 자신이 스스로에게 만들거나 덧씌우는 어떤 상이거나 감정일 수도 있을지 몰라요. 경제력도 있고 하니 시간을 내셔서 새로운 사업이나 여러 갈등에 시달리기 보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면서 자신의 인생에 대해 충분히 고민하고 해결해 보는 것은 어떠실런지요.

아, 그리고 건강한 육체에 대해 말해야 겠군요.
저는 여자라서 그런지 -물론 사람은 다 똑같은 생물적 존재는 같다고 생각하는 바이지만- 극복할 수 없는 건강한 육체에 대한 한계는 없다고 봐요. 건강하기 때문에 반드시 성생활을 해야 할까요? 혹시 그래야 건강할 수 있다는 전제에 대한 강박은 아닐까요? 남자의 건강은 성생활의 능력이다라거나 경제력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혹시 아닙니까?

둘 다 자신없어서 마치 자신이 있는 것처럼 환상을 갖고 계신 것은 전혀 아니십니까? 자연스럽게는 오히려 하강 구조가 여러모로 어울리지 않습니까? 50에도 펄펄 끓는다? 50에도 주체 할 수 없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청춘이라면 이해가 될 것 같은데, 그 시기에 그러하다는 것이 다소 의문스러워서요. 실례가 될 지 모르겠습니다만 집착이 아닌 성이 의도적으로 다스릴 수 없다는 것이 납득이 덜 되어서요. 그리고 이 부분의 님의 능력에 의혹이라기보다 건강한 육체의 쓰임에 대해 말하고 싶어서요.

건강한 육체를 육체로서만이 해결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삶에서 혁명에 가꾸운 몰입, 그 강렬함이 육체적 해소 만이 아닌 정신적으로도 얼마든지 해결이 가능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거에요. 생리구조 운운 하면 할 말 없을 것 같구요.^^ 그렇더라도 야박하게는 스님이나 신부의 경우는 어떨까요? 저는 그것이 인간 혹은 생명체에 대한 문제이지 여성 혹은 남성의 대립적 생리구조에 기인한다고 전혀 생각질 않아서 아직도(?) 납득을 못한답니다.

마지막으로 저의 의견은 좀 더 여유를 가지고 전문가와 가족과 함께 정말 최선을 다하는 가장 바람직한 선택을 하시길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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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환
2007.07.06 09:32:30 *.136.193.56
젊은이들이 주로 상담신청하는 이곳에 제가 상담을 요청한것은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삶에대한 고민은 크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읍니다

아니 오히려 중년이 되면 나이때문에 보다 완전한 인간처럼 사고하고 행동해야한다는 무언의 중압감이 행동선택에대한 큰제약이 되는것이 현실이지만, 나이가 든다고 모두 완벽한 사람이 되는것이 아니라는 것을 얘기하고 싶었읍니다

제가 선택해야하는 앞으로의 길에대해서는 제가 책임져야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 (젊은때는 남탓습관이 있었던것 같더군요.부모탓,상사탓,친구탓,주변의 누구탓) 나이든 뒤에 얻은 것이라 할수있지요

아무튼 부족한 사람에게 해주신 좋은 말씀을 참고해서 앞으로의길을 선택하겠읍니다.

사람이 하늘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땅을 딛고 살아가야하기때문에 이런 문제들이 항상생기기 마련인가 봅니다

그래도 가끔씩은 하늘의 구름도 보는 사람이 되고 싶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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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환
2007.07.06 10:23:49 *.143.170.4
고민과 배려,,,책임과 낭만,,,,,^^ 멋지시네요~ 항상 풍요롭고 너그러운 나날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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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7.07.06 13:32:03 *.75.15.205
님의 고민이 맴돌았어요. 내 고민일 수도 있으니까. 에이... 쓰지말 걸, 뭐야 난... 내 궁금증은 무얼까. 관음증에 가깝다는 생각과 함께......

생에 대한 고민은 누구나 다 다르지요, 다 달라요, 다 다르기에 기준을 필요로 하겠지요. 유한의 시간동안 해결해야 할 문제들로부터 자유롭다는 것은 보편의 길에 섰다는 것이 어쩌면 아닐 수도 있어요. 외롭게 태어난 사람은 외롭게 사는 것이 가장 잘 살아낸 모습일 수 있겠지요.

그러나 그것을 세상과 함께 걸으려면 힘이 들어요. 내 삶을 살면서도...
우리 모두는 어쩌면 겁장이 일지도 모르죠. 더러는 심하게 갇힘, 소속, 지지, 한용운시인이 말하는 복종하고 싶은 이(것)에게만 복종하고 싶은, 유한성과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는 핑계를 가지고 산다고 하면 너무 유치한 표현이될까요?

님의 고민을 생각하다가 세상을 향한 이중적 시선과 보편적 가치라는 것의 잣대가 도대체 왜 필요한 것일까도 되짚어보게 되었어요.
현실과 이상을 함께 거머쥔다는 것이 때로는 더 혼란스러울 수 있다는 생각도 들어요. 보다나은 진보는 인간의 사명인가? 물론 이러한 것들 조차 취향과 선택의 문제이겠지요.

혹시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님과 같은 고민을 꽤나 오래 끌며 살아온 사람 중에 하나입니다. 그래서 염체불구하고 남자들의 이야기일 법한 이 고민에 버럭 뛰어들었답니다. 지금은 애써 잊은 듯 하지만 그때 10년 전 타들어갈 것 처럼 새까맣게 죽어갔던 나를 기억하지요. 휴~
그 답을 풀지 못하고 10년 동안 헤매온 사람이기에 사실 남의 일 같지 않아요. 솔직히 드릴 말씀도 딱이 없을 것 같으면서도 맴돌게 되네요.


그 남자와 그 여자가 생각하는 것이 '다르다'. 전혀 다른 것이 아닌 "차이"가 있다. 싫다고 딱 잘라 말하기에는 뭐하고 수용할 만큼 좋지는 않은 계륵 같은 관계, 그 만큼의 그것에서 더 나은 선택을 하고 싶은 내가/ 그 남자 길을 서성이고 있다.

질문 하나, 애인이 있으세요? 사업에 파트너가 능력있는/ 편안한 여자인가요? 지금보다 더 나은 인생을 살아보기에 원군이 될 수 있다고 생각이 되는 그런 아니면 그런 사람을 만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둔 것인가요?
전혀 이성을 고려치 않은 것은 아니었어요. 그 해결 방법을 모르는 것도 아니었어요. 돈도 있다고 했지요. 님께서 원하는 것이 합법적인 완전한 인생에 있는 것인가요?

질문 두울, 사업에 대한 주위의 유혹 말고 본인의 의사는 어떤 것이죠? 현재에 만족하는 것은 아니죠. 지금도 뭐 괜찮지만 더 나아진다면야 하는 기대를 저버릴 수 없는, 유혹의 솔직한 본인의 비중은 얼마만큼 일까요?

만일 님의 그 생각들에 대한 낌새(?)를 댁에서 눈치챘다면 그것은 부정적 마인드가 아니라 당연함이거나 염려라고 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한편 누군가 님께 절대적 믿음으로 살아주기를 바래왔고 본인도 다시 이혼의 상태로 돌아갈 만큼 적당한 이유나 합리성을 찾지 못했더랬죠.
그런데 그러한 계기를 주는 동기요인이 분명 나타났을 거에요. 그것은 내부적일 수도 외부적일 수도 있고 평상시에는 대수롭지 않게 보아넘기던 사소함 일 수도 있지요. 그런데 요는 지금 본인이 그렇게 느끼지 않는 다는 것이고 이대로 살아도 좋을까를 생각하게 되었다는 점이죠.

나와 다른 상대에 대해 바뀌거나 고치는 것에 중점을 두고 헤게모니의 장악을 포기하거나 기대를 늦추지 않는 한 갈등은 나아지는 시늉만을 하다가 도리어 더 쌓여가고 좋은 의도는 퇴색하여 답답함만이 증폭될 수도 있겠지요. 그래서 재결합의 상태를 불안한 상태로 끌어 왔었을까요?

애증으로 인한 갈등구조 속에서 최소한의 상태를 유지해 왔다고 할 수도 있지요. 두 사람 다 희생과 이득(?)의 최소한 것들을 챙기면서...

님의 능력은 돈이고 불안은 불완전한 인생이라 할 수 있죠. 속으로 상대에게 이렇게 말하면서
<네가 필요로 하는 것은 내 돈이잖아. 그러니까 너는 내가 제공하는 만큼의 굴림을 당연히 받아드려야 하는 것이지.

네가 없어도 나는 살아. 나는 사랑해서 산 것이 아니라 내 책임을 다 하고 싶었고 부모님과 형제들을 나로인해 걱정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자존심 상하는 일을 하고 싶지 않았고 좀 더 솔직히는 실패한 인생이 되고 싶지 않았다고 할 수 있겠지. 그래, 나는 네가 아니었더라면 좀 더 완전한 인생이 될 수 있었을 거야. 알아? 아냐구?>

<당신은 떠날 수 있었어. 얼마든지.. 어쨌거나 돌아온 것은 당신이야. 이유를 붙이는 것은 자신의 선택과 진실에 대한 두려움일 뿐이야. 우리가 함께 잘 살아갈 수 없는 이유가 전적으로 나에게 있다고 할 수 있어요?>

일, 사랑, 돈, 신념, 가족, 성취감, 출세, 건강, 인정, 존재의 의미 등등은 어느 한 개인만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법정스님이나 성철스님이 아닌 내가 이 땅에서 사회성을 익히며 살아가는 방식의 선택 또한 지극히 현실적이고 그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생각되었었다. 그런데 아니다. 우리의 가치체계가 흔들리고 나 또한 혼돈스러우며 나는 내 의지와 달리 완전하지 못하다. 이 불감증과 불안증의 이중성의 해결이야말로 내게는 보다 더 적극적 필요와 철학이다. 내게 돌을 던질 자 얼마든지 던져라. 하지만 당신들의 주장으로 제발 나를 납득시켜다오.

세상은 돈보다 가치로운 것들이 많다.

< 나는 너를 다 가르쳤어. 나는 행복하지 않았지만 네가 필요할 만큼 네 곁에 있었다. 이제 너희들은 다 컸다고 생각해. 나도 내 발로 섰고 운도 따라 주었겠지만 내 스스로 자수성가 했어. 너도 할 수 있을 거야.>

<아버지는 자신에게 충실하셨지요. 내 유년은 침울 했어요. 우리는 다른 집과 달랐어요. 아버지는 늘 겉돌았어요. 이제와서 왜 내가 필요하지요. 저에게 남겨줄 재산이라도 있으세요? 이제와서 나와 함께 뭘 어쩌자는 거에요? 내 아내나 남편을 설득할 자신이 내겐 없답니다. 내 아이들도 이제 냄세나 나는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싫테요. 그것을 내 입으로 꼭 말을 해야 하나요? 유료 양로원이 내가 모시는 것보다 훨씬 나을 거에요. 사회보장이 잘 되어있고 나는 세금을 거르지 않고 내고 있어요. 아버지가 계시기에 견딜만 하실 거에요. 무엇보다 돈이 있으시잖아요.>

< 당신 말대로 아이들이 다 자랐지요. 이제 내 몸도 다 귀찮아요. 지쳤어요. 돈이고 뭐고 당신을 내가 무엇으로 어떻게 얼마만큼 이해해 주기를 바라는 거에요. 나는 이제 아무것도 더는 노력하고 싶지 않아요. 당신마음처럼 아니 그보다 100배 1000배 수만 수천 배나 더 힘들었어요.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쉬는 거에요. 쉬고 싶어요.>

라고 할 지 모르겠어요.

그들을 편하게 해주려는 의도가 아니라면 지금의 가정을 지켜야 하는 것 아닐까요? 그쪽에서 헤어지자는 것이 아니고 저들이 내가 버는 돈으로 혜택을 누리면서 나를 없신여긴다고 하는 노여움이 아니라면,
적어도 내가 모든 것을 감당하더라도 우리 가운데 너만이라도 살아 남으라는 염원을 담을 수 없는 것이라면 이제까지 느껴오지 못했던 행복이나 사랑, 감사 등등에 대한 불감증과 앞으로 닥칠 완전한 인간에 대한 목마름과 해갈이 불안/문제없이 찾아질까요? 혹시 사랑을 하지 않은/못한 불행한 삶이 아니라 잘 느끼지 못했거나 덜 풀어나간 것은 혹여 아닐 런지요.

물론 애써오셨을 그동안의 노고를 전혀 반영 못하겠다는 것이 아니오라 적어도 상대가 원하는 것이 돈이나 남의 이목만은 아니었을 거라는 것, 내 귀소가 일말의 바램이었듯 상대도 그런 의지를 가지고 있었을 것들에 대한 한치의 후회도 없는 결정에 자신이 있을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해 다시 물어봐 달라는 부탁 같은 거지요.

우리의 생각에도 식물인간처럼 깨어나지 못할 때가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러다 어느 날 정말 너무나 멀쩡하게 살아 움직이듯 각을 이루어 솟아오를 수는 정녕 없는 걸까요? 없을 수도, 전혀 불가능하게 아득하기만 할 수도 있기는 해요. 그래도...

또 하나, 이 즈음의 우리들의 사회상에 대해 말을 하고 싶어요. 대다수의 제법 많은 남성들이 자신의 삶에 대해 누구보다 부정적 이미지를 정착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시각이에요. 많은 남성과 요즘엔 제법 많은 여성들에게 성이 너무 무분별하고 왜곡된 방향으로 개방되어 가고 있다는 생각 혹시 안 드시나요?
30대만 해도 인생을 다 알아버린 듯 체념하고 여자의 몸을 정복하는 것이나 남자의 몸에 매달려 사는 것이 재미있는 인생을 즐기며 살아가는 방법인양 만연화 되고 있다고 생각지 않으세요? 그러한 상황에 빠진 사람들은 그렇게 인정치 않으려고 할 거에요.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긍정적 소울메이트가 지금이 사회에 몇이나 되느냐는 것이죠. 적어도 30대 후반에서 4~50대에 이르면 이 부분에서 걸려들지 않고 전혀 무관하게 깨끗한 사람이 정작 몇이나 되겠느냐고요. 혹시 눈가리고 아옹하는 격은 아닐까요. 정작 너무나 익숙하다는 이유로 내것은 아무것도 아니게 내팽겨쳐버리고 겉포장만이 화려한 눈요기감들에 현혹되어 구름을 꿈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요?

왜 그토록 많은 일반적인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그리기보다 적당히 얼버무려 암암리에 눈과 입을 맞추면서 혼탁한 사회의 한 부분과 결탁하며 스스로에 대해 그럴 듯하게 합리화를 해 가는 경우가 많은지 안타까워요. 심지어 언젠가 여성부에서 기획화했던 미성년자에 대한 원조교제를 철퇴하는 금기조항으로 성매매금지특별법안에 대한 해석조차 '불륜은 해도 좋다 하지만 성매매는 안된다'라는 아주 단순처방에 입각한 땜빵식 발언을 한적이 있었지요. 예전에는 내가 하면 로멘스 네가 하면 불륜이었지만 이즘에는 너나 나나 그렇지 뭐하는 식의 짜웅분위기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은 것은 아닐까요?

지나치게 거세지는 여성우세 분위기도(사회적 부조리-정치에서 선거시 또는 경제/시장(상품)민주주의에서 상업성 광고 등이 해당) 문제이지만 남성이 스스로가 치어가며 자신의 존재의미를 부여하지 못하고 밖으로 도는 것도 보다 큰 문제는 아닐 런지요. 남성이 밖에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란 게 도대체 뭐죠? 술로 대표되는 잡기에 놀아나고 여자 만나는 것 아니면 솔직히 밖에서 해결되어질 일 없다고 할 수 있지 않나요. 사업은 얼마든지 가정으로 끌고 들어와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잖아요. 굳이 밖에서 해결해야 할 일의 대부분은 예로부터 거론되어온 주색잡기에 불과한 것 아닌가요? 당연 변.경.연 같은 off-line 건전모드를 능가할 일들이 얼마나 되느냐는 거죠.^^

님을 제가 긍정적 시각으로 보면서 이 글에 집착하며 매달리는 이유가 님이 적어도 그러한 경우와는 거리를 두고 싶어하는 긍정의 바람직한 사람이라고 느껴지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반드시 가장 최선의 선택을 찾아 가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깨는 것보다 붙이는 것이 너무나도 어렵다는 것을 짐작하기에. 우리가 사랑이라는 이름하에 집착하는 한 사람에게 국한된 삶이기보다 보다 전체를 아우르며 인간적이고 사람다운 삶의 길에 대한 방향이나 모색, 문제의 재구성을 해볼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저의 당치 않은 지나치게 큰 욕심과 제 머리도 못 깎는 어줍잖음으로...

자신이 살아온 인생이 얼굴에 나타나고 미흡함이 없어야 한다는 불혹의 나이를 넘어, 하늘이 내게 준 사명과 뜻을 알아야 한다는 지천명의 나이가 퍽이나 두렵지 않을 수 없어요. 뿌듯함만 갖고 살아갈 수 없는 저에게는. 님의 고민에 빗대어 나의 넋두리가 되살아 났는지도 모르겠어요. 어제 늦게 택시를 탔는데 타자마자 밑도 끝도 없이 예순이 넘었다는 기사아저씨의 말씀,

<우리나라 큰 일이에요. 요즘 젊은 사람들 왜 그래요. 나도 도통 해결이 안 되는 사람들을 보면서 헤어지라고 말을 합니다.그런데 참 걱정이에요, 나는 다 살았다고 할 수 있지만 이 나라의 매말라가는 정서가 정말 걱정이 되요. 이혼할 자격도 없는 것들이 이혼을 해요. 아니, 애들이 싫어서 이혼했습니까? 애들은 아니잖아요. 그러면 남의 자식도 내 자식처럼 키울수 있는 연후에야 이혼을 해야 할 거 아니겠어요? 제 핏줄이 아니면 거들떠보지도 않으면서 무슨 이혼이냐구요. 그 감당도 할 수 있을 때에 이혼을 해도 해야 할 것 아니겠어요?>

열변을 토하시는 기사님 말씀에 그저 <네.>하고 들을 수 밖에 없었다.
왜 그 말씀을 그토록 강조하셨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든 새로운 문제가 생기고 그에 대한 고민도 함께 해야 한다는 것과 그 어떤 선택에도 책임이 따른 다는 것, 무엇보다 자신을 먼저 가늠하고 모색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 나의 최상의 능동적인 선택보다 무가치해 보이고 무기력해 보이는 보잘 것 없는 선택과 초라한 희생이 더 가치로운 삶일 수도 있다. 그 어떤 것도 그 극과 극(성공과 실패/ 아름다움과 추함 등)의 강렬한 절실함이 뿜어내는 의미/메시지가 아니고는 한 발자국도 나아질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쪼록 지금의 님의 고민이 자신의 인생이 담긴 선택으로 해결 되길 바라며 그 과정들도 여기 변.경.연에서 우리 함께 나눌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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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환
2007.07.09 21:53:46 *.136.193.56
제가 요사이 일전에 영국 비비씨에서 방영했던 인체대탐험을 보고 많은 것을 새삼스레 느끼고 있읍니다

많은 사람들은 지금도 탄생과 혈기발랄한 젊음에 크나큰 관심을 줍니다.당연한 일이지요. 그런데 저는 요사이 나이들어감과 죽음에 더많은 관심이 갑니다

인간의 마음이 발생하는 원리( 여기서는일종의 뇌의 작용으로 해석하고 있읍니다)를 안다면 ,그리고 모든 인간이 서로 다른 마음구조(뇌작용구조)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다면 누구를 비난하고 누구탓을 한다는 사실이 부질없어지고 모든일에 어느정도 객관화가 가능해지지 않을까 생각되네요

저는 써니님이나 썸바리님의 의견 모두를 제기차의 화물칸에 태웁니다
그러나 두의견 다 저는 아닙니다. 저는 제가 필요한 화물은 인생끝까지 싣고 가겠지만 일부화물은 내려놓을것입니다

그리고 어느순간 제기차는 멈출것입니다. 그때 제기차에 실려있던 화물은 저의 일부로 끝까지 같이 가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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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7.07.09 23:34:32 *.70.72.121
그래요, 죽음 한 번 진지하게 그려보게 되지요...

요즘 저가 읽고 있는 책이 님께서 언급하신 인간의 뇌회로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자아발견과 타인에 대한 보다 심층적 모색과 공감이 담겨져 있어, 참고 하시면 도움이 될 것 같아 추천하고자 합니다. 더군다나 어떤 선택을 하든 이 책이 반드시 좋은 조언자가 될 것임을 확신합니다. 꼭 읽어 보시고 알고 하는 선택이 되시길 바랍니다. (1)<위대한 나의 발견*강점혁명> 마커스 버킹엄, 도널드 클리프턴 지음, 청림출판과 (2)<사람의 성격을 읽는 법> 폴 D. 티저 바버라 배런-티저 공저, 더난출판. 두 권을 읽어보시면 아마도 도움이 되실 겁니다. 달리자 꿈! 화이팅!! 더 나은 희망과 선택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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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7.07.10 09:23:30 *.75.15.205
“발전은 생명의 법칙이다. 사람은 아직 사람이 아니다.” -로버트 브라우닝
얼마 전 구선생님께서 마음으로 읽는 편지의 한 귀절에 넣어 주신 표현입니다. 마음에 위안이 됩니다. 여기는 늘 ~ing인 분들의 장소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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