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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6월 12일 11시 52분 등록

그리스 신화 속에서 네메시스는 복수의 여신이다. 그녀는 '신의 정의'를 상징한다. 복수의 방법이 특이하다. 그녀는 과도함을 더욱 부추겨 그 과도함 때문에 불행한 대가를 치루게 만든다. 예를 들면 전쟁에서 늘 승리하는 장군은 그 승리 때문에 죽게 하고, 돈이 너무 많은 사람은 그 돈에 깔려 죽게 하고, 일에 너무 빠져드는 사람은 그 일에 치어 죽게 만든다는 것이다. 자연은 조화로운 것인데 그 균형이 깨어질 때, 신은 대가를 치루게 한다는 고대인들의 사유 방식을 반영한 것이다. 모든 문명은 원시를 품고 있다. 바로 그래서 신화는 인간 무의식 속의 본질과 세상을 이해하는 혜안을 담고 있다.

 Nemesis_Louvre.jpg

(신의 정의를 나타내는 복수의 여신이다.  네메시스, 르브르)

 

일을 열심히 하고 잘하는 사람은 일복이 많은 사람이다. 일을 맡기면 척척해내는 사람은 든든하다. 나도 그런 사람이 좋다. 그러나 일만 해대는 사람은 문제도 많다. 아내는 남편과 시간을 더 많이 보내고 싶어 하고 아이들은 아빠와 더 많이 놀고 싶어한다. 본인도 적절한 휴식과 삶의 여유와 기쁨을 즐기고 싶어한다. 회사와 가정, 일과 휴식, 몰입과 이완, 밥과 존재 사이의 상생은 한 개인이 가지는 다양한 사회적 관계 속의 균형을 요구한다. 이 균형이 무너지면 반드시 대가를 치루게 된다. 과로가 병을 몰고 오거나 가장 소중한 아내와의 관계가 소원해 지거나 그들을 위해 일한다고 믿어왔던 아이들과도 서먹한 하숙생이 되고 만다. 네메시스가 찾아와 과도함의 책임을 묻는 것이다.

 

균형과 조화는 자연이 자신의 강건함을 유지하는 비법이다. 특히 직장인들은 네메시스의 복수를 피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부적을 잘 활용하여 일과 삶의 조화를 맞추어가는 지혜를 터득할 필요가 있다.

 

첫째는 일을 잘하려고 하지 말고 먼저 사랑하려고 애쓰는 것이 중요하다. 일을 잘하려고 하면 스트레스를 받는다. 시킨 사람의 기준을 통과하기 위해 긴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을 사랑하기 시작하면,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라 '내 일'이라는 자각을 통해 스트레스 레벨이 현격히 줄어들면서 일 자체가 기쁨으로 전환된다. 내가 원한 일도 아니고 그저 회사가 시킨 일들을 사랑할 수 있을까 ? 있다! 먼저 받은 업무들을 죽 늘어놓고 그 중에서 상대적으로 내가 좋아하고 부가 가치가 높은 일들을 몇 개 추려 보라. 이 몇 개의 일들이 내가 일에 대한 사랑을 시작하게 하는 교두보다.

 

 

둘째는 내가 사랑하기로 마음먹은 선택된 업무에 초점을 맞추어 애정을 듬뿍 쏟아 넣는 훈련을 시작하자. 마치 농부가 작물에 뿌리까지 젖을 만큼 물을 충분히 주듯이 넉넉한 관심을 집중 투입하는 것이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더해도 보고, 실험도 해보고, 책도 보고 연구하게 되면, 점점 더 그 일들에 빠져들게 되면서 프로가 될 수 있다. 이 업무들에 대해서는 맛있는 음식을 먹듯이 '음미하며 푹빠져서 기쁨으로' 일을 즐겨야한다.

 

 

셋째는 맡은 업무 중에서 부가 가치가 낮고, 적성에 잘 맞지 않는 일들은 잘하려고 시간을 많이 쓰는 대신 마감을 어기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런 일들은 '처리 프로세스를 단순화 시켜 빨리' 해치워 버려야한다. 맛없는 푸석한 사과는 믹서에 넣어 갈아 버리듯이 순식간에 폭풍처리해 버리는 것이 좋다. 하기 싫다고 서랍에 넣어두면 스트레스가 늘고, 작은 일이 큰 일이 되고 만다. 빨리 처리하고 잊어야한다. 이때는 '빨리' 가 핵심이다.

 

 

회사가 일과 삶의 상생을 위해 직원에게 해 줄 수 있는 장치는 다양하지만 기본적으로 회사가 '인풋을 늘여 아웃풋을 늘이는 방식', 즉 일상적 야근과 과로 그리고 매너리즘으로 이어지는 불균형의 구조를 꾾어내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문화적 차원의 접근 법을 우선적으로 실행해 볼만하다. 우선 사무실의 체류시간으로 개인의 충성도나 역량을 평가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어야 한다. 그 대신 일의 품질과 고객의 만족도로 평가의 기준을 바꿔줘야 한다. 또 직원의 부서 요청권을 적극적으로 인사제도적 장치 속에 장착시키는 것이 좋다. 원하는 부서에서 원하는 일을 할 수 있게 함으로써 일을 사랑하도록 내적인 동기부여를 해줘야한다. 그 대신 업무시간 중의 몰입도를 높여줌으로써 정해진 휴가와 퇴근시간을 지켜 갈 수 있는 집중근무 환경과 분위기를 만들어 줘야한다. 특히 휴일근무와 퇴근 무렵 시작하는 회의를 없애고, 느슨한 상시 야근 문화 대신 '저녁은 가족과 함께' 하는 분위기를 정착시킴으로써 고무줄처럼 늘어나는 근무시간을 자율 규제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직원의 희생 위에 만들어 진 성장은 일시적이다. 희생이란 곧 불균형의 징표이기 때문이다. 기업과 직원이 성공을 함께 나눌 때 비로소 두 주체 사이의 균형과 조화가 만들어지면서 '가장 일하고 싶은 회사, 가장 존경받는 기업'으로 장기적으로 지속 성장할 수 있다.

 

(sk를 위한 원고 - 5월) 

IP *.160.33.100

프로필 이미지
2016.02.26 10:39:47 *.170.153.52

필요없는 야근을 줄이고,

저녁을 온전히 가족에게 돌려주며

누구누구의 눈치가 아닌, 

자신의 욕망에 따라 일 하는 환경

'관리'가 아닌 '존중'과 '협력'의 토양 위해 자라나는

천년을 가는 나무를 그려봅니다.

프로필 이미지
2019.06.20 11:06:54 *.242.130.96

조직원의 '희생'이 아닌,

자발적인 '공헌'에 의해 움직일 때

우리는 평범함을 넘어

비범한 조직으로 도약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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