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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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경영에 관한 책이 7월에 나오게 됩니다.
가장 중요한 책 제목에 대하여 여러분에게 물어 결정 하고 싶습니다.
6월 20일, 수요일까지 아래 댓글을 달아 의견 주세요. 감사합니다.
참여하신 분들 중 10분을 선정하여 저자의 서명과 고마움의 메시지가 담긴 책을 1 권 씩 보내드리겠습니다.
(책을 받을 수 있는 주소와 우편번호, 전화 번호 남겨주세요)
아래 예시되지 않은 새로운 제목을 지어주었는데, 가감없이 그대로 책의 제목으로 쓰이게 된 경우 ( c 의 경우) 에는 제목 사용에 따른 고마움으로 '제목을 지어준 분의 이름을 책에 기재하도록 하고, 10권의 저자 사인 책과 저자와 함께하는 와인이 있는 저녁 식사' 에 초대하도록 하겠습니다.
c 에 새 이름을 제안하신 경우, 제안한 제목과 현저하게 유사한 제목을 출판사가 채택하게 된 경우는 가장 처음 댓글로 유사 제목을 제안한 분 3 분을 선정하여, 3권의 저자 사인이 있는 책을 우송해 드리겠습니다. 많이 참여해 주세요.
자, 그럼 시작할까요 ?
오래 생각하지 마세요. 첫 번에 담박 마음을 빼앗아 가야하니까요.
A.. 아래 4개의 제목 중에서 어떤 제목이 가장 마음을 끄는지요?
A- 1. 구본형의 신화 읽는 시간
A- 2. 신화가 읽어 주는 인생
A- 3. 인간, 위대한 위험
A-4 . 사람의 뒤 편
B. 아래 5개의 부제 중에서 어떤 부제면 한번 읽고 싶은지요 ?
B- 1. 신화로 이해하는 모순과 부조리 속의 인간
B- 2. ‘어떻게 다시 나를 창조할 수 있을까?’를 성찰하는 변신의 신화경영
B-3. ‘어떻게 다시 나를 창조할 수 있을까?’를 묻는 구본형의 신화읽기
B-4 모든 나쁜 것들로부터 가장 좋은 것을 만들어 내는 야생의 변화 이야기
B-5 신화를 통해 찾아 낸 인간에 대한 원시의 기억
C. 그 밖에 다른 멋진 이름이 떠오르면 적어 주세요. 물론 부제도 함께 주세요.
책을 이해할 수 있도록 아래 서문 내용을 첨부해 둡니다.
신이 오른 쪽에는 선의 날개를 펼치고,
왼쪽에는 악의 날개를 펼친 다음 뛰쳐 솟아 오른다
나도 신처럼 어긋나는 선악의 두 날개로 날 수만 있다면 !
- 니코스 카잔차키스, 오디세이아, 11편
니체 Nietzsche나 융 Jung은 인간의 내면에는 바다 속 동물처럼 수많은 정신들이 거주하고 있으며, 그 정신들은 서로 자아를 차지하기 위해 싸운다고 말한다. 이 내면의 다툼들은 '유치하고 기괴하며 비도덕적'이다. 신화는 가면 넘어 존재하는 인간의 붉은 욕망들의 다툼을 야생의 언어로 생생하게 들려준다. 그리하여 '꽃처럼 피어나는 그 솔직함과 진실함 앞에 기만에 찬 우리의 삶에 대해 얼굴을 붉히게' 만든다. 만일 우리가 서로 다투는 이 원형질의 욕망들을 잘 판독하고 이해할 수 있다면 자아에 대한 새로운 시계(視界)를 확보함으로써 건강한 자기경영의 진보가 가능할 것이다. 이 책은 개인의 무의식 속 원초적 욕망과 억제된 사회적 질서 사이의 깊고도 끈질긴 다툼을 새로운 차원의 인간 에너지 human energy 로 만들어 보려는 실험이다. 나는 이것을 신화경영이라고 불러 보면 어떨까 생각한다.
신화 독법(讀法)에 관하여
태초에 이야기가 있었다. 보이지 않는 것은 보이는 것으로 이해하기 위해서였다. 그것은 알 수 없는 우주를 이해하기 위한 즐거운 상상이었고, 인간이 무엇인지를 느끼기 위한 노력이었다. 이렇게 상상해 보자. 어느 날 한 남자가 한 여인을 보고 사랑에 몸을 떨게 되었을 때, 도대체 그 기묘하고 치명적인 감정이 어디서 생겨났을까 궁금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에로스(Eros)와 아프로디테(Aphrodite)를 만들어냈다. 한 남자가 한 여자를 보는 순간 에로스가 심장에 작은 사랑의 화살을 꽂아 넣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녀에게 굴복할 수밖에 없는 사랑의 노예가 된 것이다. 아름다운 아프로디테가 ‘나’를 정복하고 말았다. 또 이것은 어떤가? 마음속에 분노와 증오가 걷잡을 수 없이 치밀어 올라 어쩔 줄 모를 때, 그리하여 해서는 안 될 어리석은 일을 저지르고 말았을 때, 그 후회와 회한 속에서 오랜 세월을 보내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을 때, 그들은 복수의 여신들인 에리니에스(Erinyes)를 만들어냈다. 죄 지은 자를 쫓아 결코 놓친 적이 없는 뱀의 머리카락에 핏물이 고인 눈을 가진 이 무서운 신들을 창조해낸 것이다. 그리스인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모든 추상적인 개념은 누구나 볼 수 있도록 의인화시켜 신이라 불렀다. 그리하여 신과 인간의 행적은 장대한 서사시가 되었다. 신화 속의 신들은 '몸을 입고 나타난 자연과 우주의 힘’이었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들의 심장에 꽂힌 에로스의 화살은 사라졌다. 화살이 꽂힌 흔적조차 없다. 그런 일은 결코 벌어진 적이 없기 때문이다. 에로스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에도 우리는 누군가를 못 견디게 사랑하고, 그리움으로 밤을 지새운다. 왜 그럴까? 오늘날에도 우리는 누군가에게 혹은 무엇인가에 알 수 없는 분노와 증오를 품고, 기어이 해서는 안 될 실수를 저지르곤 한다. 왜 그럴까? 에로스는 화살을 쏜 적이 없고, 에리니에스는 핏물을 흘리며 누군가를 증오하지도 않고, 보복하기 위하여 내 뒤를 쫓지 않는다. 그런 일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사랑과 그리움, 그리고 분노와 증오와 보복은 지금, 여기에, 너와 나를 가리지 않고, 강남역 사거리와 광화문 앞에서, 요동치며 날마다 벌어지고 있다. 그러므로 신화는 죽은 옛것이 아니라 살아서 진행되는 지금의 날것인 것이다.
신화는 인간을 벗긴다. 아무것으로도 가려지지 않은 인간의 원시를 보여준다. 신화는 신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인간에게 일어날 수 있는 수치스럽고 치욕적인 날것들을 신에게 뒤집어씌운 이야기들이다. 동시에 인간의 미덕과 통찰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신화란 인간의 무의식에 대한 이야기이며, 상징을 통해 벌거벗은 인간이 무엇인지를 들려준다.
신화를 읽을 때, 우리는 그 독법을 알아야 한다. 이것은 신화라는 신비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열쇠와 같다. 만일 열쇠를 가지고 있지 않거나 전혀 다른 열쇠를 가지고 있다면 신화는 원시적 인간이 꾸며낸 어리석은 이야기에 지나지 않게 된다. 혹은 그것을 그대로 믿는 바보이거나 그 도그마를 맹신하는 광신이 되고 만다. 그러므로 나의 내면으로 이르는 미로인 신화를 읽을 때는 몇 가지 기초적인 독법을 이해해야 한다. 이 독법을 아리아드네(Ariadne)의 실타래처럼 들고, 어두운 내면의 탐사를 시작해보자. 나는 이 방법을 위대한 신화학자 조셉 켐벨에게 배웠다. 최근 몇 년동안 신화를 읽는 재미를 알게 해 준 그에게 이 기회를 빌려 감사함을 전한다.
첫째, 신화는 은유다. ‘그 사람은 사슴처럼 빨리 달린다’는 직유다. 산문적 독법이다. 그러나 ‘그 남자는 사슴이다’라는 말은 은유이며 운문적 독법이다. 신화는 은유 체계다. 따라서 ‘그 사람은 사슴이다’라는 표현에 대해 현실이 아니라고 코웃음 치거나 그것을 글자 그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 그 표현의 너머를 보아야 한다. 그래서 신화는 시(詩)인 것이다. 그리스 신화가 호메로스(Homeros)의 시 속으로 흘러들어 표현을 얻었던 것을 기억하라. 시적 흥취는 우리의 내면에서 ‘영혼을 이끄는 어떤 음악적 상태’를 느낄 때 고조된다. 신화 속에 나오는 시적인 이미지는 원래 우리 안에 있던 것이 현현한 것이다. 비교종교학자인 조셉 캠벨이 표현한 것처럼, ‘예수가 승천했다’라는 말은 예수가 승천하여 하늘로 올라갔다는 말이 아니다. 물리학과 천문학은 물리적 존재를 수용할 물리적 하늘이 없음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 따라서 이 말은 예수가 내면화되어 만물의 시작점인 우리의 의식 속으로, 우리 안에 있는 천국으로 들어간 것이라고 해석해야 한다.
둘째, 신화는 자연과 우주를 반영한다. 자연과 우주가 바로 우리의 본성이다. 다만 내면에 깊이 숨어 있을 뿐이다. 자연은 선악을 넘어서 있다. 자연은 그 자체로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다. 도덕적이지도 비도덕적이지도 않다. 자연은 모든 모순을 품고 있다. 그러므로 신화를 읽을 때는 선악에 갇히면 안 된다. ‘신이 뭐 이래’라며 실망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신화 속 신은 곧 우주이고 자연인데, 어떻게 지금 우리 시대의 인간적 기준을 따르겠는가? 옳고 그름의 시선으로 세상을 볼 때, 우리는 왜곡된다. 무수한 삼라만상이 옳고 그름을 넘어선 영역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고대 에페소스 출신의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 Heraclitus 는 '단상' 102편 Fragment 102에서 이렇게 말한다. "신에게는 모든 것이 공정하며, 선하며, 정의롭다. 인간들만이 어떤 것은 그르고 어떤 것은 옳다고 말한다"
셋째, 신화는 원시적 사고가 지어낸 어리석은 미신이 아니라 갖가지 문화에 의해 왜곡되기 전 인류의 원형 이미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의식이 억압하고 있는 무의식의 세계로 우리를 이끌어 우리의 내면을 통찰하게 하는 통로다. 신화는 영적 순례이며 산스크리트어로 길이라는 뜻을 가진 ‘마르가(marga)’라고 할 수 있다. 즉, 자신에게로 돌아가는 길이 바로 신화다. 꿈은 개인화된 신화이고, 신화는 인류 전체가 꾸는 공통의 꿈이다.
신화는 종교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이것은 자신에 대한 이야기다. 불교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스스로 깨달아 부처가 되려 했느냐의 문제이며, 주일마다 교회에 나가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부활한 그리스도가 자신 안에서 부활했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파스칼(Blaise Pascal)이 쓴 『팡세』 속의 한 구절을 등불로 삼으면 신화에 접근해 가는 기분 좋은 정신적 자세를 잡아 볼 수 있다.
신은 그를 찾는 이에게는 그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고
명확히 나타나기를 원하는 반면,
진심으로 피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자신을 감추기를 원한다.
그를 찾는 사람은 그를 알 수 있고
그를 찾지 않는 사람은 그를 알 수 없다.
‘오직 보기를 원하는 자에게는 충분한 빛이 있고,
이와 반대되는 마음을 가진 자에게는 충분한 어둠이 있다.’
모든 종교가 ‘과거를 죽이고 새롭게 태어나라’고 말하듯이 모든 신화는 자신의 과거를 죽이고 새롭게 태어난 이야기를 품고 있다. ‘새롭게 태어난다’는 것이 바로 변화의 정수다. 신화는 모험을 통한 변화의 이야기다.
나의 신화를 만들어간다는 것은 나의 세계가 없는 평범한 삶에서 자신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나의 세계를 창조함으로써 내 안에 신의 세계를 구현해가는 과정이다. 스스로 주도하고, 고난과 맞서고, 마침내 세상에 자신의 작은 왕국 하나를 건설해가는 이야기다. 성공과 실패가 하나의 물결처럼 서로를 교환하는 것, 승리의 환희와 패배의 모멸이 온몸을 휩싸는 일에 뛰어드는 것, 모든 신화는 바로 이 무수한 모험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리하여 우리로 하여금 '나'를 찾아 떠나는 긴 여정을 시작하도록 부추긴다.
독자들이 이 책을 읽고 난 후, 자신의 세상을 찾아가는 모험을 떠날 때, 강인한 뱃사람처럼 이렇게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위험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위험에 처해서도 두려워하지 말게 해달라고 기도하게 하소서.
고통을 멎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고통을 이겨낼 가슴을 달라고 기도하게 하소서.
- 타고르(R.Tagore)의 「기도」 중에서
야생의 사유를 잃은 삶은 껍데기에 불과하다
1.
여기 시가 하나 있다.
오줌이 누고 싶어서
변소에 갔더니
해바라기가
내 고추를 보려고 한다.
나는 안 보여줬다.
어느 초등학교 3학년 학생의 시다. 귀엽다. 그러나 원래의 시는 다르다. 원작은 이렇다.
오줌이 누고 싶어서
변소에 갔더니.
해바라기가
내 자지를 볼라고 한다.
나는 안 비에 줬다.
「내 자지」, 『일하는 아이들』, 이오덕 엮음, 보리 출판사)
학교 선생은 다른 학생들에게 원작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불편해서 교육적 차원에서 제목도 고치고, 사투리도 표준말로 바꾸어 점잖게 고쳐두었다고 한다. 선생의 개작을 통해 이 시의 어린 작가는 ‘초등학교 3학년 학생’이라는 사회적 한계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었다. 표준화되었고, 무난해졌다. 그러나 교육이라는 거름망을 지나오는 동안 막 꽃처럼 피어나는 ‘열 살짜리 남자 아이’라는 본질을 잃고 말았다. 생명을 잃었고, 진실을 잃었고, 시(詩)를 잃었다. 해바라기가 보려고 하여 숨긴 것은 내 고추가 아니라 내 자지인 것이다. 고추라면 부끄러움도 없고 숨길 필요도 없다. 오직 자지이기 때문에 숨길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것은 지극히 어렵고 위험한 작업인 자아의 발견과 자아의 성장이라는 모험이 시작됨을 예고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 책 속에서 인류의 고추 이야기 속에 위장되어 감춰진 인류의 성기 이야기를 들려주려 했다.
2.
신화는 고치지 않은 문명의 원판이며 야생의 사유다. 모든 어른 속에 아이가 들어 있듯이, 인류는 그 사유 속에 원시를 품고 있다. 마찬가지로 인간이 만들어낸 모든 문명은 원시로부터 시작되었다. 원시를 품지 않은 문명은 죽은 것이다. 야생의 사유가 없는 문명은 아스팔트며, 가면이며, 생명이 다했거나 애초에 생명이 없이 만들어진 조화(造花)에 불과하다.
비교종교학자이며 신화학자인 조셉 캠벨(Joseph Campbell)은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속에서 '어느 시대 어느 상황을 막론하고, 사람이 사는 곳이면 어디에나 인간의 신화는 만들어져 왔고 살이 붙어왔다'고 말한다. 신화란 우주의 에너지가 인류의 문화로 스며들어 발현되는 은밀한 통로이기 때문에 종교, 철학, 예술, 인류의 사회적 양식, 심지어 과학과 기술의 발견에 이르기 까지 인간 활동 모두가 이 은밀한 산도를 통해서 생산되지 않은 것이 없다는 것이다. 신화가 어느 곳에서 채집되든 다양한 의상 속에서도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이유는 이것이 인간 영혼의 부단한 생산물이기 때문이다.
신화는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오래된 원시의 철학이다. 그때 그들은 이 사유의 틀로 사람을 이해했고 자연을 이해했고 우주를 이해했다. 과학이 발달하면서 원시를 미신이라고 불렀고, 문명이 발달하면서 원시를 야만이라고 모멸했다. 그러나 신화는 이야기 속에 체계적으로 위장되어 있는 우주적 진리의 상징이다. 그것을 풀어내면 옷 속에 감춰진 인류의 은밀함에 접근해 갈 수 있다. 나에 체해 나를 보고 싶지 않을 때, 사람을 소화할 수 없어 구토가 일어 날 때, 가까운 친구에 대한 염증으로 심장이 죄어올 때, 더 이상 사람의 육욕의 냄새를 맡고 싶지 않을 때, 인간의 내밀한 본질에 단박 다가가 그 찬란한 갈등을 보고 싶을 때, 우리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신선한 야생의 사유를 필요로 한다.
3.
그리스인들 역시 그 문명을 원시에서 시작했다. 이집트와 소아시아의 가지가지 토속문화의 영향을 받으며 그들 역시 자생의 문화를 발전시켜왔다. 기원전 8세기를 전후하여, ‘겨울에는 비참하고 여름에는 견디기 힘든 척박한 땅’에 농부의 아들이자 목동이었던 헤시오도스(Hesiodos)라는 특이한 인물이 살고 있었다. 그는 가축 떼를 몰고 헬리콘 산을 오르내리다가 무사이(뮤즈들), 즉 학문과 예술을 관장하는 아홉 명의 여신들이 자기 몸속에 들어와 시심을 불어넣는 꿈을 꾸었다. 그 후 그는 꿈같은 상상력으로 무사이가 산허리를 섬세한 발걸음으로 춤추듯 걸어 다니며, 히포크레네(Hippocrene)의 샘에서 그 부드러운 살결을 씻는 모습을 그려냈다. 시인이 되고 노래를 하고, 음악 경연대회에서 우승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어느 날, 영감에 가득 차서 신들의 계보에 대하여 쓰기 시작했다. 역사에서는 왕들의 계보가 중요하듯이 신화 속에서는 신들의 계보가 중요하다. 그리하여 이 가난한 시인은 호메로스 이후로 숱하게 전해 내려오는 민간 설화에 자신의 상상력을 더해, 괴물이 등장하고 유혈이 낭자하는 신학적 포르노에 거리낌 없이 신들의 이야기를 써넣었다. 이 이야기에는 지루할 만큼 수많은 신들의 간통 사건이 소개되는데, 이는 수많은 그리스인들이 자신들의 계보를 신들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주었다. 전혀 앞뒤가 꿰어지지 않는 구절들이 수없이 많지만, 이렇게 하여 『신통기(神統記)』라는 책이 탄생했다. 또한 그는 농부였기에 활기찬 농경시로 농부의 생활을 노래한 『일과 나날』이라는 책을 쓰게 되었다. 그 속에서 그는 동생인 페르세우스(Perseus)라는 게으른 인물에게 끊임없이 농사에 대한 조언과 책망을 해댄다. 이때 진정한 내조자로 아내를 잘 고르라는 조언을 하면서, 최초의 여인이자 인간의 불행의 근원인 아름다운 여인 판도라(Pandora)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게 된다.
제우스의 사촌 프로메테우스(Prometheus)는 인간을 몹시 사랑하여 헤파이스토스(Hephaestos)의 대장간에서 불을 훔쳐 인간에게 주었다. 신에 속한 것, 즉 번갯불과 자연의 불이 아닌 부싯돌이라는 지혜를 인간에게 선물한 것이다. 신에 속한 것을 인간에게 주는 것은 신성모독이다. 죄를 지었으니 벌을 받을 수밖에 없다. 프로메테우스처럼 초인적 노력을 하는 개인은 필연적으로 신성모독을 범할 수밖에 없다. ‘인간아, 너의 분수를 넘지 마라’는 명령을 어긴 것이다. 화가 난 제우스는 올림포스의 신들에게 인간의 남자에게 주는 그리스 식의 재앙으로 여자를 만들게 했다. 흙과 물로 여인을 빚은 뒤, 모든 신들로 하여금 그들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자신의 특징을 한 두개씩 그 여인에게 선물하라고 말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제우스의 비밀 병기인 ‘최초의 여인 판도라’는 에피메테우스(Epimetheus)에게 선물로 보내졌다. ‘미리 보는 자’라는 뜻을 가진 현명한 프로메테우스를 속이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어리석은 그의 동생 에피메테우스를 이용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에피메테우스는 ‘나중에 알게 되는 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제우스의 악의를 잘 알고 있던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가 주는 선물은 무엇이든 절대 받지 말라고 아우에게 신신 당부하였다. 그리고 신비의 상자 하나를 주며 절대 열어보지 말라고 얘기했다. 다른 일설에 의하면 판도라에게 이 상자를 준 것은 프로메테우스가 아니라 제우스라고 한다.
판도라는 너무 아름다웠고, 에피메테우스는 너무 달아올랐기에 형의 경고를 딱 한 번만 잊어버리자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판도라와 결혼해버리고 말았다. ‘딱 한 번’이 모든 것을 바꾸어놓았다. 판도라는 남편이 절대 열지 말라는 신비의 상자에 대한 호기심을 누를 수 없었다. 그녀의 호기심이 이겼다. 어느 날 그녀는 기어이 그 상자를 열어보았다. 그때 그 안에 가두어두었던 가지가지의 불행과 악들이 세상으로 튀어나와 인간을 해치기 시작했는데, 놀란 판도라가 급히 뚜껑을 닫는 바람에 희망만은 그 상자에서 나오지 못했다.
그러나 또 다른 전승에 따르면, 그 상자 안에는 불행과 악이 아니라 온갖 종류의 재보와 복이 들어 있었다고 한다. 판도라가 생각 없이 뚜껑을 여는 바람에 복들이 달아나 신들의 세계로 올라가 버렸고, 그 때문에 인간들은 온갖 불행에 시달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여전히 희망만은 위로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이 설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신은 선하므로 여인을 만들어 인간의 남자에게 시집보낼 때 좋은 선물로 가득한 상자를 들려 보내 축복해주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 증거로, 희망이란 좋은 것이니 온갖 불행과 악이 담긴 상자에 함께 담았을 리가 없다는 것이다. 결국 그 상자 속에 담겨 있던 것들은 희망만큼이나 좋은 미덕과 행복이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신은 축복을 주었으나 인간의 여인이 호기심을 못 참고 동티를 내 그만 수포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두 번째 시나리오는 그리스인들의 사유방식이 아니다. 아버지를 제거하고 올림포스 산에 올라 신들의 왕이 된 제우스, 인간 여성들과 시도 때도 없이 치르는 무수한 간통과 겁탈, 때때로 인간보다 더 추악한 신들의 갈등을 들여다보면, 제우스는 결코 인간의 선악의 기준으로 보아 선의의 신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더욱이 불같이 화가 난 제우스가 인간에게 불을 훔쳐다 준 프로메테우스를 카우카소스 산의 절벽에 사슬로 매달아 독수리로 하여금 날마다 간을 파먹게 하여 고통을 준 정황으로 보아, 프로메테우스의 피조물인 인간을 축복했을 가능성은 전혀 없어 보인다.
4.
판도라의 상자 속에 들어 있던 불행과 악들은 어떤 것이었을까? 희망과 함께 그 속에 들어 있다가 세상으로 튀어나와 세상을 악과 불행으로 가득 차게 만들었다는 것들, 이 세상에 남아 인간을 지배하는 것들, 인간에게 끊임없는 불행과 희망의 역사를 선물한 판도라 상자의 상징성은 무엇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판도라의 상자란 애초부터 없었다. 처음에 나는 희망이 왜 모든 나쁜 것들과 같은 상자에 함께 들어 있어야 하는지 이해하게 되었을 때 기뻤다. 행복 속에는 희망이 없다. 이미 행복한 사람은 희망하지 않는다. 이미 배부른 사람처럼 채워졌고, 나른한 사지처럼 늘어졌기 때문에 희망을 갖지 않는다. 종종 채우고 또 채워야 하는 욕망이 지속될 뿐이다. 오직 불행 속에만 희망이 있다. 지금 아픈 사람들은 낫기를 희망한다. 지금 가난한 사람은 부자가 되기를 희망한다. 지금 헤어진 사람은 다시 만나기를 희망한다. 지금 감옥에 갇힌 사람은 풀려나기를 희망한다. 희망은 결핍과 불행과 고통 속에서만 자라나는 환각이다. 그러니 희망이 있어야 할 자리는 모든 불행, 모든 악덕, 모든 결핍이 있는 곳이다. 그것이 아직 상자 속에 남아 있는 이유도 다른 불행의 씨앗들은 이미 다 발아하여 그 숙주를 무한히 괴롭히고 있지만, 희망만은 미래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것은 여전히 마음의 상자 속에 감춰져 있는 것이다.
잠깐, 마음의 상자? 나는 여기서 멈춘다. 그렇구나. 판도라의 상자 따위는 애초에 없었구다. 판도라 자신이 바로 그 상자였구나! 판도라는 이미 모든 신으로부터 한 두가지씩 그 신만이 가지고 있는 가장 전형적인 특징들을 받았다. 상상력의 시인 헤시오도스가 '일과 나날' Works and Days 속에서 전하는 판도라 제작 과정을 다시 자세히 들여다보자.
제우스는 헤파이스토스에게 최대한 빨리 흙과 물을 섞게 하고, 거기에 인간의 목소리와 힘을 부여하여 생김새는 여신들을 닮은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처녀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아테나(Athena)로 하여금 직물을 짜는 법을 여자에게 가르치게 했다. 아름다운 아프로디테(Aphrodite)에게는 여자의 머릿속에 우아함과 고통스러운 욕망, 그리고 사지를 나른하게 하는 교태를 부어넣도록 했다. 전령사 헤르메스(Hermes)에게는 거짓과 속임수를 여자에게 심어 넣도록 했다. …… 신들은 제우스의 명에 따랐고…… 제우스는 이 여인을 판도라라고 불렀다. 올림포스 궁전에 사는 모든 신들이 그녀에게 한 가지씩 선물을 주었는데, 그것은 머리가 잘 굴러가는 인간에게는 재앙이 되었다.
‘모든 선물을 다 받은 여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판도라는 스스로가 신의 종합선물상자였다. 그녀는 인간의 남자를 만나 호기심에 가득 찬 동행의 삶을 살게 된다. 그리고 살아가면서 그때그때 하나씩 자신의 마음속에 담긴 신들의 검은 선물을 꺼내 펼쳐보게 된다. 힘이나 쓸 줄 아는 그녀의 남자는 어리석다. ‘나중에 아는 자’라는 그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속이 텅 비어 있는 것이다. 판도라는 겨우 OS가 깔려 있는 에피메테우스라는 육체 덩어리 하드웨어 속에 탑재된 가지가지의 흥미로운 소프트웨어 패키지를 상징한다. 이 신 저 신에게서 이것저것 받았기 때문에 서로 충돌을 일으키는 소프트웨어처럼, 판도라는 인간의 머릿속에서 복잡한 갈등을 일으키는 두뇌와 같았다. 텅 빈 육체 덩어리, 무뇌(無腦)의 남자와 사는 판도라는 살면서 열 받는 일이 많았고, 그때마다 그녀의 머리 뚜껑이 열리곤 했다. 판도라의 마음 상자 뚜껑이 열릴 때마다 신들의 악의가 하나씩 세상으로 퍼져 나왔다. 그리하여 판도라와 에피메테우스, 그리고 그들의 자식들이 만들어가는 세상은 온갖 싸움과 갈등, 불행과 악으로 가득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 희망이 남아 있으니 인간은 그때부터 불행과 함께 희망의 역사를 시작하게 되었다.
판도라가 없었다면 이 세상은 시간도 없고, 죽음도 없는 곳, 즉 신들의 영역으로 남아 있었을 것이다. 당연히 인간의 삶도 없었을 것이다. 결국 이 세상에 삶을 가지고 온 것은 여자였다. 그러므로 단명하여 필멸의 삶을 살아야 하는 인간들은 모두 판도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들의 선물 꾸러미인 인간 선물상자, 판도라 그 자체가 탐구되어야 한다. 판도라는 여자가 아니라 바로 인간의 삶 자체를 상징한다.
남자가 어머니 상을 버리고 천생연분의 신부를 맞이하게 됨으로써 판도라의 상자는 열리기 시작한다. 비로소 삶이 시작되는 것이다. 삶이라는 시련이 시작되면서 남자는 자기가 아버지와 동일하다는 사실, 즉 자기가 아버지와 동일한 입장에 놓이게 되었다는 것을 자각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의식의 증폭이며 자각이다. 세계와 자신과 삶과 여인에 대한 의식이 생겨나면서부터 우리는 고난과 시련에 이르게 된다. 삶 속에 나타나는 모든 종류의 미해결 수수께끼들이 바로 우리가 풀어내야 할 크고 작은 모험들이다. 만일 이 문제들을 대하면서 짜증을 내고, 투정하고, 피하고, 욕설을 퍼부을 뿐이라면 이것은 삶을 대하는 적절한 대응이 아니다.
우리가 행하는 모든 것에는 육욕의 냄새가 나게 마련이다. 우리의 본질을 이루고 있는 것, 우리가 꿈꾸는 욕망 속에는 자기중심적이고, 악취가 진동하고, 탐욕적이며, 음탕한 흥분이 들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살 속 조직 세포의 본질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면서 삶의 낭패를 경험하게 되고, 인간에게 또 자신에게 넌더리가 나기 시작한다. 우리는 이 구토를 받아들이는 대신 덧칠하고, 방향제를 뿌리고, 외면하고, 재해석하여 합리화함으로써 도주한다.
햄릿의 외침을 기억하는가?
한 방울의 이슬로 녹이고, 누그러뜨리고, 풀어내기에는 너무도 단단한 육체.
영원의 신도 자기를 학대하는 나에게 대포를 겨누지 못하는 것인가? 오, 신이여, 신이여!
이 세상 모든 것이 나에게는 진부하고, 짜증스럽고, 허접스런 쓰레기로 보이는구나.
싫구나, 참으로 싫구나, 자라서 씨앗을 맺을 이 잡초의 뜰이.
자연 안에서 무성한 이 잡초가 이 지경이 됐다는 것이 싫구나.
-셰익스피어 『햄릿』 1막 2장 햄릿의 독백 중에서
이 책을 통해 나는 판도라라는 인간의 마음상자를 뛰쳐나간 나쁜 것들, 조직 세포의 하나하나가 갈망하는 육욕의 냄새를 신화 속에서 하나씩 채집해보려 한다. 원초적 본질인 그것들, 깊숙이 숨겨둔 신들의 축복과 저주, 사람들의 얽힌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온갖 종류의 작동 원리를 탐험해보려 한다. 지금 어떠한 삶 속에 있든지 우리는 살아내야 할 희망을 가지고 있다. 그 희망이 등불이 되어 우리를 이끈다. 우리를 괴롭힌 것이 우리를 낫게 하고, 우리를 타락하게 한 것이 우리를 청결하게 하고, 단명한 것이 영원으로 우리를 구원한다. 그래서 중국 선불교의 육조 혜능(慧能)은 기가 막힌 명언 하나를 남겨두었다.
“우리의 순수한 정신은 타락한 정신 속에 있다.”
5.
무수한 악덕과 불행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최선의 삶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있다. 자아의 발견이라는 지극히 바람직하나 너무도 두려운 탐험을 시작해보자. 자, 그러면 이 세상을 지배하게 된 판도라 상자 속의 온갖 불행과 악덕, 인간에게 달라붙어 본성의 일부가 되어버린 육욕의 체취 가득한 그것들을 체포하러 떠나보자.
A-3 인간, 위대한 위험
B-3 ‘어떻게 다시 나를 창조할 수 있을까?’를 묻는 구본형의 신화읽기
선생님의 이미지나 그간의 책제목들을 보면 A-1 구본형의 신화 읽는 시간이 무난할 것이나 변화경영-->신화경영으로의 터닝포인트이니 좀 덜 착한 브랜드로 migration이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생각해 봤습니다. ^^ 도발적인 제목으로 시선을 잡고 친절한 부제로 책을 펴게 만드는 이른바 채찍과 당근의 조합입니다.
제 의견은,
빨간 신화 이야기
- 야생의 신화에서 길어올린 인간, 그 모순덩어리에 대한 불순한 독법
신화(神話)를 넘어 신화(新話)로
- 변신(變神) 이야기 뒤에 숨은 인간의 욕망 읽기
제시하신 것들 중 선정한 제목은 다음과 같습니다.
A-3. 인간, 위대한 위험
B-5. 신화를 통해 찾아 낸 인간에 대한 원시의 기억
제가 생각한 제목과 부제입니다.
원래 갖고 있던 모습이란 차원에서 초상이란 단어를 썼고
인식하지 못하고 살고 있다는 의미에서 잃어버린을 붙였습니다.
결국 신화는 현대인 들이 잃어 버린 자기 자신의 초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부제로 이 초상을 여행을 통해 다시 보게되고 결국 여행 끝에 독자 자기 자신과 대면한다는 의미를 부여하였습니다.
자기 자신과 대면하게 되면 그 때부터 변화의 여정을 시작할 수 있을 것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여행의 가이드는 구본형 선생님이십니다.
제목: 잃어버린 인간의 초상 : 신화
부제: 잠들어 있는 현대인의 내면을 깨우는 구본형의 신화 여행
이동희
경기도 용인시 상현동 현대아이파크 5단지 506동 1801호
010-6539-3697
이런 기회에 글로써 만나뵙게 되니 영광입니다.
B-3. ‘어떻게 다시 나를 창조할 수 있을까?’를 묻는 구본형의 신화읽기
C- 신화를 통해 바라본 인생사:
- 신화를 통해 조명해 본 인간의 내면탐구와 새로운 미래를 위한 자아성장
신화가 들려주는 인생이야기: 부재는 상동
※ 우선은 이렇습니다. 혹시, 마감일(6/20)까지 더 좋은 아디디어 생각나면 다시 올리겠습니다~~!
선생님.. 좋은 글 감사드리며.. 탈고하시느라 애쓰셨습니다.
[6/18]
C-1. 나를 찾아 떠나는 신화이야기 (신화를 통해 살펴본 인간의 내면탐구와 자아발견)
C-2. 신화는 사람에게(인간에게) 무엇을 남겼는가? (신화를 통해 살펴본 인간의 본성과 가능성)
C-3. 신화, 인간의 또 다른 이야기 (신화를 통해 알아보는 인생이야기)
C-4. 신화는 나에게 이렇게 다가왔다. (신화를 통해 바라보는 우리의 과거와 미래)
- 오늘은 여기까지!
[6/20]
추가로 더 생각해 보았습니다.
C-5. 인간의 두모습, 신화
- 신화를 통해 판독해본 원초적 욕망과 사회적 질서
C-6. 신화가 들려주는 나의 이야기
- 신화를 통한 자아발견
C-7. 나를 찾아 떠나는 신화 여행(탐험)
- 신화를 통한 자아발견과 자아성장
C-8. 신화가 전해주는 희망메시지
- 신화를 통해 살펴본 인류의 원초적 본질, 희망
* 기존의 아이디어 중 단어를 일부 수정하고, 추가 아이디어 올립니다~~ !
사부님 더 올려봅니당
C-1 구본형의 신화여행 - 부제 : 우주의 정보장에 접속하다 / 신화의 정보장에 접속하다. (접속하다. or 접속하라)
구본형의 신화 속으로 부제 : Connecting the Myth
아주 오래오래 전의 이야기가 많은 이들에게 공감되는 것, 스토리가 우리들의 존재를 건드린다는 것은
아마도 우리의 DNA에 우주의, 신화의 정보들이 저장되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C-2 구본형의 신화 속으로 - 부제 잃어버린 나를 찾아서 떠나는 여행
C-3 구본형의 신화 경영 창조 경영 - 신화 속에서 닮은 꼴 찾아내기
나는 어떤 신과 가장 닮아 있을까? 변화경영사상가 구본형 선생님과 같이 하는 신화에서 나를 찾기
사부님 탈고하시느라 고생하셨고 대박 나실겁니다.!!!
.
안녕하세요. 선생님. 필살기 참여했던 진화중 고범찬입니다.
작지만 이렇게 뭔가 제 생각을 보탠다는 생각을 하니 책을 기다리는 마음이 배가가 됩니다.
사물에 또는 사건에 생명을 불어넣는게 이것과 같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아. 참. 저는
A-2
B-4
C-1. 인간의 또 다른 이름, 신화
C-2. 인간의 욕망을 읽는다, 신화
C-3. 날 것 그대로의 인간이야기, 신화
C-4. 내 안에 신화를 찾아 떠난다.
C-5. 신화는 인간을 벗긴다.
C-6. 변화의 열쇠, 신화
C-7. 신화는 신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C-8. 인간 이야기, 신화
C-9. 과거를 죽이고 다시 태어나다, 신화
여러분들이 3일간 하나씩 둘 씩 올린 글들을 읽어보는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번 책은 아니지만 다음에 이어서 곧 나올 신화와 관련된 후속 작업들의 제목을 결정하는데도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또 신화에 대하여 여러분이 기대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도 하게 만들었습니다. 무엇보다 여러분들과 '함께 만들어 가는 책'이라는 느낌이 참 기분 좋게 해 주었습니다.
여러분들의 의견과 출판사 자체 네트워크를 통한 모니터링을 바탕으로 출판사로 부터 이런 의견을 받았습니다.
선생님 사이트에 나온 의견과 저희 쪽 모니터링 결과를 알려드립니다.
저희 쪽에서는 제목은 1)번 구본형의 신화 읽는 시간이 많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부제는 변화경영사이트에서 나온 것이 더 좋은 것 같아
이를 더 콤팩트하게 압축해서 부제 형식에 맞게 변용해본 것이 많은 표를 얻었습니다.
다음과 같이 갔으면 좋을 것 같은데 의견 어떠신가요?
제목: 구본형의 신화 읽는 시간
부제: 신화에서 찾은 ‘다시 나를 창조하는 힘’
나는 좋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좋은 표지 시안과 함께 여러분을 찾아 가도록 하겠습니다. 빛나는 제목으로 모두를 사로 잡은 새로운 제목이 등장하지 못했으나 여기까지의 과정이 매우 즐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저자 서명과 함께 책을 우송해 드릴 13분은 아래와 같습니다. 우편번호/전화번호와 함께 주소를 알려 주세요. 개인정보 노출을 원하지 않는 분들은 개인 메일로 보내 주면 좋겠습니다 (bhgoo@bhgoo.com) 참여해 주신 모든 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다독다독 (2권) - 최고예요.
라비나비 ( 이하 1권)
써니
이동희 ( 주소있음)
샐리올리브
레몬
진화중
우산
키스톤
키위군
정철 - 다음 책에 반영해볼만
김민정(주소있음)
상현 - 멋진 코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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